먼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라
왕상 18: 21-38
양다리를 걸치지 마라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갈멜산에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모으라고 합
니다.
어느 신이 참 된 신인지 결투를 벌이자고 합니다.
이에 바알 선지자 450명이 갈멜산에 나옵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결투를 보기 위해 갈멜산에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세상에 제일 재미있는 것 중의 하나가 싸움구경하고 불구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어떤 신이 참 된 신인지 850:1의 싸움이니 얼마나 볼만한 구경거리였겠습니까?
엘리야는 구경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결단을 촉구합니다.
21절입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
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한다.‘는 말은 재미있는 말입니다. 양 다리를 걸친다는 말입니다.
한쪽 발은 하나님에게 걸치고 또 한 다리는 바알에게 걸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으로는 하나님에게 있으면서 실제로는 아합 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이 무서워
서 바알을 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도 그런 분들이 많지요.
하나님과 세상에 양 다리를 걸치고 사는 분들이 많지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분들이 많지요.
양 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결단을 촉구하고 있지만 백성들 가운데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결단의 촉구에 그래도 몇 사람이라도 “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겨왔고 앞으로도 하나님
만 섬기겠습니다.” 라는 사람이 나와야 하지 않습니까?
이들이 얼마나 바알에 깊이 빠져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충청도에 조병무라고 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이 고등학교 때까지는 교회를 잘 다녔다고 합니다.
그랬는데 청년이 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교회도 안
나오더랍니다.
목사님이 만날 때마다
“병무야, 요새 왜 교회 안 나오니?”
“목사님 나갈께요.”
“너 오늘 어디 가냐?”
“친구들 만나러요”
“너 맨날 친구 만나 가지고 술 먹으러 다니지?”
“아니에요. 목사님! 내년부터 나 교회 나갈 거예요. 목사님 믿어주세요.”
이런 식으로 대답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탄절에 교회에서는 성탄절 행사하느라고 바쁜데 이 병무는 교회도 안가고
친구들과 같이 술 먹으러 갔습니다.
그날도 술을 잔뜩 마시고 술이 취해서 집에 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는 길에 철로가 있었어요. 친구들이 웬일인지 철로에 전부 주저앉았습니다.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야, 집에 가자. 여긴 철로야, 위험해. 기차오잖아. 기차 오면 죽어”
그러니까 친구들이 혀 꼬부라진 말로 말합니다.
“야, 짜샤, 기차가 무섭냐? 죽는 게 무섭냐? 야 그까짓 기차가 무서워? 남자가 쩨쩨하게...
야 임마 죽으면 죽는 거지 뭐, 자 여기서 자다 가자.”
“얘들아. 자면 위험해.”
그러데 술에 취하면 간이 붓쟎아요.
사람들이 겁이 없어지니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사라지는 겁니다. 그
래서 모두들 기차 길에서 누워 잠이 듭니다.
그런데 병무라는 청년이 갑자기,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이 성탄절인데 내가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내가 오늘 교회 가서 예수님 탄생하신 걸 축하해야 되는데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만해도
교회 다니면서 학생회 회장까지 하고 총무도 하고 그랬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야. 내
가 친구들하고 술만 먹고 이러면 안 되잖아.”
철로 위에서 술에 취한 중에도 무슨 정신이 있었는지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져서 간절히 기
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발 나 좀 도와주세요. 나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다시 하나님 잘 믿게 해주세요. 하나님 나 좀 살려주세요. 나 죄 안 짓게 해주세
요. 하나님 날 좀 구해주세요.”
이 청년이 철로 위에서 눈물로 기도하고서 그냥 누워버렸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잠을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일어나라, 달려라!”
병무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뛰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에 꽥하고 뭐가 지나갔다고 합니다.
고개를 들어보니까 논바닥에 쳐 박혀있더라고 합니다.
코피가 줄줄, 어 쌍코피? 그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저쪽에서,
“아, 내 다리, 내 팔” 하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비틀거리며 철도 길에 올라가 보니까 친구들이 비명을 지르는데 어떤 친구는 두 다리가 잘
라져 있고 어떤 친구는 두 팔이 잘라져 있고 어떤 친구는 아예 목이 잘려 있더랍니다.
하나는 죽고 둘은 평생 불구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건 실화입니다. 지금 그 사람이 장로님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우상,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머뭇거리면 안 됩니다. 왔다 갔다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우상, 하나님과 세상에 양 다리를 걸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광란의 몸부림에도
엘리야는 송아지 둘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송아지 둘을 각을 떠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신을 부르자고 합니다.
그리고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라고 하자 백성들이 그 말이 옳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너희들이 숫자가 많으니 먼저 하라고 합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이 먼저 송아지를 잡고 각을 뜨고 나무 위에 올려놓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도 없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쌓은 제단을 돌면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정오에 이르러서 엘리야가 조롱을 합니다.
27절입니다. “.........................”
이 조롱에 화가 났던지 더 큰 소리로 바알을 부릅니다. 이제는 조급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베고 찌릅니다. 자해는 하는 것입니다.
자해로 온 몸에 피가 철철 흐르고 온 몸이 피로 범벅입니다.
무려 450명에 달하는 바알 선지자들이 온 몸을 피로 적신 채 광란을 벌이는 모습은 실로
끔찍했을 것입니다. 미친 자들 같았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광란입니다.
저녁 소제를 드릴 때까지 미친 듯이 바알을 부르고 광란의 춤을 추어도 아무 응답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고 돌아보는 자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고 응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상은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115편 4절부터 8절을 보면 우상의 정체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
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
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여러분! 다음 주면 추석입니다. 우상숭배하지 마십시오. 제사지내지 마십시오.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요 귀신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이것을 허락합니다.
그래서 천주교는 잘 못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단입니다.
우상은 광란의 몸부림과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고 반응이 없습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
이제 엘리야의 차례가 왔습니다.
엘리야가 백성들을 향하여 내게 가까이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합니다.
여기서 ‘수축하다’는 말은 ‘고치다’는 뜻으로 전혀 새로운 것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너졌던 것을 고쳐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일찍이 갈멜산에 여호와의 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어떻게 먼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습니까?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대로 열두 돌을 취하여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생각하면서 단을 쌓았습니다.
32절에 보면, 엘리야는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열두지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열두지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단을 쌓았습니다.
여러분! 엘리야는 무엇이 제일 시급한지 알았습니다.
그것은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다시 수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제단을 새로 만든 게 아닙니다.
전에 만들어졌던 하나님 제단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 제단을 다시 보수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무엇이 제일 시급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제일 시급한 일은 무너진 제단은 수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제단가운데 어떤 제단이 무너졌습니까?
예배의 제단입니까? 기도의 제단입니까? 말씀의 제단입니까?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시기 바랍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거룩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제단이 무너진 곳에 아무리 귀한 말씀이 임한다한들 무슨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여호와의 제단이 무너진 곳에서 무슨 거룩한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무너진 제단을 수축한 다음에 제단을 돌아가면서 도랑을 팝니다.
그리고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를 각을 떠 나무 위에 올려놓고 물을 나무와 번제물에 열두 통
이나 붓습니다. 물이 제단에 두루 흐르고 도랑에 물이 가득 찹니다.
불과 물은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단에 불이 임한다고 할지라도 물 때문에 불은 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속임수나 또는 나중에 무효화시킬 수 있는 여지를 막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물이 없다고 태우시고 물이 있다고 못 태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홍해의 바다를 바람으로 가르신 광대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홍해와 같은 많은 물이 있어도 얼마든지 한 순간에 다 태울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엘리야는 기도하기에 앞서 무너진 제단을 수축합니다. 기도보다 무너진 제단을 먼저 수축합
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한 다음에 기도를 합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한 다음에 기도해야 기도가 응답된다는 사실을 엘리야는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에 앞서 무너진 제단을 수축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36절입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
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엘리야는 세 가지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첫째는,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을 알게 하소서
둘째는, 내가 주의 종이 됨을 알게 하소서
셋째는,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소서
엘리야는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이 민족이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내 형제가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내 이웃이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거룩한 기도입니까? 명절을 앞두고 우리가 이 기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명절에 부모와 형제들을 만날 것인데 하나님! 이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 주옵소서!
이 거룩한 기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엘리야는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달라고 합
니다.
그러니까 이 갈멜산의 결투도 엘리야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요 하나님의 계획이라
는 것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엘리야의 기도는 심플하였습니다. 간단했으며, 짧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지극히 엄숙하고 침착하면서도 간절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내게 응답하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이 백성이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이 백성들이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알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저도 이런 기도를 많이 합니다.
무슨 이유가 되었든 눈에 안 보이는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하나님이 얼마나 원하는지 알게 하옵소서!
저도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은 저보다 더 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
합니다.
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하나님의 불이 임합니다.
그리고 그 불이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과 도랑의 물을 태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불로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의 삶들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때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39절입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보고야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응답해야만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기적을 베푸시고 응답하셔야만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만일 불로 응답하지 않았다면 무엇이라고 이들은 말했을까요?
하나님도 역시 죽은 하나님이다! 하나님도 헛된 신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기적이 있어야, 응답이 있어야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기적이 없어도, 비록 기도의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신 자 일뿐만 아니라, 나를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구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비록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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