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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요엘-01 요엘의 권면(요엘 1장 1-4절)
성경말씀은 요엘 1장 1절에서 4절까지 봉독합니다.
[요엘 1장]
1 여호와께서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이르신 말씀이라
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거민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
4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조금 시간이 걸리겠습니다만 요엘 선지자의 음성에 우리 함께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예언자들이 꽤 여러 번 등장하는데, 그 예언자들은 뭐 어떤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정말 그 시대에 아주 절박한 그런 말씀을 전했는데 대체로 그 예언자들의 말이 그 시대에 먹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그냥 사라져 버린 경우도 있고 또 요엘 선지자처럼 책에 기록을 해서 남긴 분도 있는 거야. 그런데 그 말씀들이 그 시대에 기록으로 하지 않았던 예언자들의 말씀들은 우리가 잘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아히야 라든지, 오뎃 이라든지, 이런 여러 예언자가 있고, 엘리야, 엘리사 같은 분이 있는데 성경에 기록된 걸로 하면 엘리야가 한 말은 아주 극히 제한됩니다. 몇 마디 정도 밖에 없어요.
과연 그분들이 그런 정도 밖에 말을 적게 했겠는가? 할 때 그렇지 않았을 텐데요.
지난번에 우리가 요나서를 공부 할 때도 요나서에는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일한 이야기는 기록되어 있지만 열왕기 하서 읽어가다가 보면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의 말대로 뭐 어떻게 되었다. 이런 말을 보면 그 예언자들이 예언을 구두로 하고 문서로 남기지 않은 분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요엘 선지자는 그 자기가 한 말을 이렇게 문서로 남겼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정도 알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요엘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언제 부르심을 받았는지 그 시기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이 여러 고증을 다 참고해 봐도 그렇게 딱 부러지게, ‘아. 이때였구나.’ 하고 짚이지가 않아요.
그리고 그 예언자들은 대개 나타난 목적이 칭찬을 하기 위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책망을 합니다.
또 예언자가 나타난 그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는데 그 언약을 왜 지키지 않느냐? 그 언약대로, 그 계명대로, 그 율법대로 살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나타나기 때문에 예언자가 칭찬 할 리가 없죠? 다 책망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 예언자들의 그 말씀 속에 책망이라는 요소는 항상 들어있기 마련인데, 딱 이 성경책에 두 권이 예언서들 중에 두 권이 책망이 없는 예언서예요.
그 한권이 오늘 이 요엘서예요. 요엘서에 책망이 없고, 그 다음에 스가랴서를 보면 스가랴서 역시 책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 예언자들이 그 예언서 안에 있는 내용을 쏘스를 분해해 가지고 파악을 해 보면, 죄를 책망하는 요소, 그 다음에 ‘이렇게, 이렇게 잘해야 되지 않느냐?’ 하고 권면하는 요소, 그리고 위로의 말씀과 함께 소망을 약속하는 그런 부분이 있고..
그러니까 이걸 요약하면 ‘죄책, 권면, 위로, 소망’ 이게 예언서를 구성하는 4대 요소예요.
죄책 죄를 책망하는 것, 권면, 위로, 소망. 반면에 죄책, 저주, 끝장 그런 것도 있습니다.
죄를 책망하고, 저주하고 끝장 나 버리는 이런 것은 이방인들 일 경우에는 그래요.
예를 들어서 에돔을 질책하는 오바댜라든지,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하는 나훔서 같은 경우는 죄를 책망하고 그리고 저주를 하고 끝장을 내 버립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일 때는 대개 죄책, 권면, 위로, 소망 이런 패턴으로 가는데 요엘서하고 스가랴서는 죄를 책망하는 부분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예언서를 다 놓고 그 특색이라든지 약간 다른 점을 비교해 보면 그렇게 분류가 된다는 거죠? 일반적으로는 죄책, 권면, 위로, 소망 이렇게 되어 있고, 이방인 나라중애서 망할 나라의 뭐 에돔이라든지, 니느웨 같은 경우에는 죄를 책망하고 저주가 내리면서 끝이 나 버리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엘서 같은데 어째서 죄를 책망하는 것이 없는가 보면 책에는 그런 말이 없지만, 그 앞뒤에 이어지는 어떤 부분을 유추할 수 있다면 죄를 말로서 책망하다가 하다가 안 되면요 벌써 하나님께서 매를 들었어. 매를 들어서 때렸는데 한 대 때리고, 두 대 때리고, 세대 때리고, 막 네 대쯤 때린 거야.
보통 우리가 한 대 때리고 말거나 아니면 세대 때리고 말죠? 세대 때리고 한 대 더 때렸어.
그래서 그런 걸 기록을 해 놓은 이 예언서가 말하기를,
[요엘 1장]
1 여호와께서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이르신 말씀이라
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거민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이 없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타락을 해도 말이죠, 하나님께서 한 대 때리고, 두 대 때리고, 세대 때리고, 네 대까지 때릴 정도로 그런 일은 여태까지 별로 없었다는 거죠?
여러분 이 때린다는 것은 대개 징계인데, 징계라는 것은 언제나 결론이 아니죠? 결론이 아니고 언제나 과정입니다. 과정..
그리고 언제나 희망이 있고, 미래를 그래도 보장하고 미래가 있기 때문에 소망을 가지고 지금 보다는 나은 어떤 미래를 위해서 교정하고 그래서 우리가 지금은 교도소라고 옛날에는 형무소라고 그랬잖아요. 교도소라고 교도. 교도하는 것은 지금 비록 벌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교도해서 어떤 희망을 만들어 내겠다는 거야.
보통 우리가 책망이라는 말도 그렇죠? 책망도 사실은 성경을 보면 많은 책망이 나오는데 이 죄를 책망하는 것이 정말 미워할 때는 죄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그 정말 미워하며 그냥 내버려둬요. 하나님이 제일 미워할 때는 그냥 내버려 둡니다. 내버려둬.
그러니까 책망이라는 것은 책임을 묻고 그리고 소망을 주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책망 하는 거죠? 성경은 여러 곳에서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니까 네가 열심을 내라.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는 거예요.
여러분 부모님들이 자녀를 책망할 때 마찬가지죠? 사랑 하니까 책망을 하는 거야. 영 미워하면 그냥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고, 그저 버린 자식이고, 재껴 놓는 것이고..
그런데 책망은 보통 말로 하죠? 책망을 하다가, 책망을 하다가 안 되면 결국은 매를 들 수밖에 없는데, 매를 들어도 보통 한 대 딱 때리고 앞으로 잘 해라. 정신 차려라. 하고 마는데 여기는 벌써 네 대나 맞았어..
이걸 딱 기록을 해 놓되,
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
그러니까 후 시대에 고할 것이기 때문에 기록을 해서 남기는 거야.
여러분 이 기록이라는 것은 잊지 않기 위한 것인데, 기억하는 것이 잘 안되니까, 기념하고, 기념을 해도 잘 안 되니까, 기록까지 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억하고 기념하고, 기록하는 것은 잊지 않도록 그래서 후시대까지 고하라 하는데, 놀랍게도 우리 교회에서 요엘서를 가지고 요엘서를 교회에서 배운다는 것은 꿈같은 얘기입니다. 아무 교회에도 요엘서를 가르치는 교회가 없어요.
그래서 이 요엘이 이렇게 기록해 놓은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렸죠?
여기 하나님의 뜻은,
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거민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의 모든 거민’이예요. 여기에 뭐 심지어는 이 불신자까지라도 땅의 모든 거민이 다 귀를 기울이라고 하는데, 성도들까지도 심지어 목회자들까지도 ‘요엘서 이것이 그저 우리 구원하고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하고 그저 관심 없이 지나친다는 거야.
그리고,
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
계속 전달 돼서 교육되도록 그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여기 기록한 것 아닙니까?
기억해도 안 되고, 기념해도 안 되고, 기록까지 해서 그리고 계승되게 이렇게 한 거니까, 우리가 이런 말씀을 정말 귀담아 잘 들어야 돼요.
4절에,
4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팟종이가 먹고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었다는 것이 1차고, 그 먹었는데 한 대 더 때려서,
메뚜기가 또 먹고 나서도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어.
그럼 다 먹어 버린 거죠?
최근에 우리나라에도 여치 떼가 나타나 가지고 충청도 일대에 나타나 가지고 과일들을 다 갉아 먹어가지고 과일들이 다 떨어져 버렸어. 과일이..
또 어떤 지역은 사과가 아예 그 결실자체가 3분지 1도 안 되는데 그나마도 부실하다는 거야. 지금 미국에는 벌이 사라져 버려가지고 아몬드 농장에 수정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옛날 알버트 아인슈타인이라는 사람이 ‘벌과 나비가 사라지고 나면 이 지구의 역사는 미처 4년을 넘기지 못한다.’ 그 예언을 했다고 해요.
나는 뭐 그 예언대로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불길한 징조를 보인 것은 사실입니다. 지구온난화에 의해서 메뚜기가 일단 가을에 서리와 함께 죽어 버리고 알이 있다가 그 알이 이듬해 또 메뚜기 수명을 이어 가야 하는데 겨울에 메뚜기가 너무 겨울이 온난화 돼 가지고 죽지 않고 겨울을 난다는 거예요.
그래 이것들이 막 무진장으로 알을 낳게 되니까 걷잡을 수 없이 여치 떼가 이렇게 막 불어 나가지고 충청도 일대는 지금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런 뉴스가 나옵니다.
앞으로 이 지구상에 임하게 될 재앙들은 우리가 그동안에 이런 곤충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유익한 것들 이였는가? 인식도 못하고 살아왔어요.
여러분 신발 하고 옷이요 우리 몸에 너무 딱 맞으면 없는 것 같아요. 그렇죠? 신발이 발에 잘 맞아. 신발 안신은 것 같으면 그게 좋은 신발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자연 속에 하나님이 만든 이 천연 상태가 너무 우리에게 딱 맞게 해 가지고 전혀 그것이 고마운지 안 고마운지를 모를 정도로 그렇게 해 왔는데, 이제는 전부 모든 존재에 대해서 제 인식을 하지 않겠나..
그만큼 우리가 평소에 소중한지를 몰랐는데 그런 것들이 다 소중한 것이었는데 이것, 저것 사라지면서 우리가 맞이할 그런 불행들은 그 징조와 조짐들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5절에 보면 그 결과,
5 무릇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이제는 술 취하고 흥청망청할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
..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이제는 이스라엘 땅에서 포도가 나지 않는 그런 때가 된 거죠?
어떻게 해 가지고 이런 일이 발생했느냐?
6절에 보면,
6 한 이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한 이상한 족속이 내 땅에 올라 왔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그 이상한 족속은 어떻게 생겼느냐?
.. 그들은 강하고 무수하며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약한 것들도 무수하면 강하겠죠?
강하고도 무수하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저는 사자를 실물로 별로 자주 보지를 못했는데, 동물원에나 가서 볼까 잘 못 보는데, 그 동물의 왕국 이런데서 가끔 사자를 봅니다.
숫사자는 먹는 것은 잘 먹는데 그것은 사냥도 못하고 게으르고 아무것도 아냐. 그럼 사냥은 누가하느냐? 암사자가 해요.
그래서 어금니가 암사자 어금니 같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암사자의 어금니가 그 무서운 거야. 순전히 암사자가 새끼가 있으니까, 자기도 먹어야 하고 새끼도 먹어야 하니까 사냥을 해 놓으면 수사자가 먹으러 와요. 전혀 수사자는 사냥을 하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그저 누워 자고 그리고 해가 늬엿늬엿 해서 암사자가 잡아놓으면 그것 먹으러 오는 거야.
그래서 수사자가 실컷 먹고 떠난 후에 암사자하고 새끼가 달라 들어서 뜯어 먹는데 그 다 먹어서 또 하이에나가 떼려 몰려오면 또 암 사자는 또 놓고 도망을 가야 돼.
그런데 ‘그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하는데, 여기 우리가 성경 해석하는 사람들이 참 실수를 많이 하는데, 그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제가 여기 오늘 몇 가지를 짚어 드릴 테니까,
자. 여기 성경을 기록하는 분들이 그 수사학 중에 비유법을 참 많이 씁니다. 비유법..
그러니까 비유법이라는 것은 익숙한 것을 비유개념으로 그 원관념이 어렵기 때문에 익숙한 것을 가져 와요.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것 옆에 갖다놓으면 익숙하지 않던 것도 자연히 보인다는 거야.
그래서 원관념하고 비유관념을 ‘같이 곁에 놓다.’ 하는 말이 그 헬라어로 ‘파라볼래’ 라고 그래요. 파라볼래. 파라 곁에 놓다. 그 곁에 놓고 보면 안 보이는 것도 보인다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 어떤 것을 지금 말 하려고 하는데 지금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니까 익숙한 것을 가져오는데 암사자의 어금니는 익숙한 거야. 그 갖다놓으니까..
이게 뭔지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이럴 때 ‘뭐뭐 같다.’ 하면 뭐뭐가 아닌 거죠? 다시 말하면 ‘암사자의 어금니 같다.’하면 암사자의 어금니가 아니죠?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그 다음에 또 비유로 착각할 수 있는 부분이 나오는데 7절에 이런 부분이 꼭 착각하기 좋은 부분이야.
7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그들이’ 여기서 그들은 아직 누구인지 모릅니다. ‘강하고 무수한 한 이족’이야.
그러니까 여기 포도나무라고 나오고 무화과나무가 나오면 대부분 은유 영해한답시고 하는 옛날 어른들 그런 할아버지 목사님들이 실수를 하는데 ‘포도나무는 뭐냐? 이스라엘 나라다.’ ‘또 무화과나무가 뭐냐? 예루살렘이다.’ 꼭 그렇게 해석을 해요.
하여튼 우리가 젊어서 어른들 설교 들어보면 맨날 그저 포도나무만 나오면 이스라엘이라고 그러고, 포도주만 보면 그냥 예수님 피라고 그러고, 기름만 보면 성령이라고 그래요.
뭐 여러분도 아마 그런 설명 많이 들었겠죠? 그런 부분도 혹 있습니다. 없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 한두 번 그런 경우가 있는데 모든 포도주가 다 예수님 피냐? 그리고 또 모든 기름이 다 성령이냐? 아니거든요.
지금 무료 성경 신학원이라는 곳에 가면 꼭 그렇게 가르칩니다. 모든 포도주는 예수님 피라는 거야. 그리고 기름만 나오면 성령이라고 그러고, 산만 나오면 교회라고 산. 무슨 산이든지 그래 그 사람들이 대입하는 그 공식적인 도구가 있는데 그걸 그냥 무작위로 적용을 시키는데 성도들은 그 모르니까 거기 그냥 다 빠져 들어가요.
왜냐하면 여기에 이것을 비유로 볼 것인지? 실제로 볼 것인지? 아주 정확하게 해야 하는데 그걸 잘못하면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리게 돼.. 잘못 가르치고 잘못 배워서 잘못 믿으면 믿음이 흔들리는 거죠?
여기 아까 4절에 나온 팟종이, 메뚜기, 늣, 황충이 뭐냐? 그걸 꽤 유명한 학자들도 이걸 또 비유로 비유인줄 알고, 실제로 말한 것인지, 비유로 말한 것인지를 그걸 분별 못하고 뭐라고 하느냐?
제롬 같은 아주 유명한 학자가 이 ‘팟종이, 메뚜기, 늣, 황충’을 ‘앗수르, 바벨론, 헬라, 로마다.’ 이렇게 규정을 한 거야. 해석을..
그러면 그게 맞느냐하면 그 안 맞거든요. 그게.. 그럼 안 맞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느냐? 그러니까 성경을 정밀하게 좀 더 읽어서 앞뒤를 다 보면 아닌 게 분명히 들어 납니다.
여러분 저와 같이 공부하다보면 그 제롬이라는 사람이 확실히 실수를 했구나.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여기 7절에 아까 포도나무하고 무화과나무가 예루살렘도 그 이스라엘도 아니고 그냥 포도나무는 포도나무고요. 무화과나무는 그냥 무화과나무야.
그러니까 그런 것을 조심해야 돼요. 왜냐하면 조금 있다가 석류나무도 나오거든요. 대추나무도 나오고 사과나무도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그 잘못된 해석들 참.. 지금도 이 라디오 방송이라든지 TV 방송을 볼 때 가끔 그런 실수하는 사람이 나오거든요. 그 성경을 잘못 본 거야..
8절입니다.
8 너희는 애곡하기를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편을 인하여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같이 할지어다
처녀가 어린 소녀 시절에 약혼을 했는데 그만 결혼도 못한 채 남편이 죽어버렸다 그러면 그 소녀가 얼마나 슬퍼하겠습니까? 그만큼이나 슬퍼해야겠다는 얘기죠?
왜냐하면,
9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전에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왜 그렇게 슬퍼해야 되느냐? 하는 이유가 하나님께 그 제사 지낼 것도 없이 지금 흉년과 기근과 기갈이 너무 심해서 하나님께 제물 드릴 것도 없어. 지금..
9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전에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10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처량하니 곡식이 진하여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11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 할지어다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의 연고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12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및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인간의 희락이 말랐도다
어떤 학자는 이 사건이 도대체 이스라엘 역사 중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었느냐?
저는 아무리 봐도 이 언제라는 것이 그 추리가 안 되는데, 일반적으로 어떤 학자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요아스 그 직전. 요아스 그 직전이 남쪽 유다의 아달랴. 그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6년간 왕위에 있을 그때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래서 아달랴가 죽고 요아스 왕이 등극 할 때쯤에 이 백성들이 각성하고 하나님께 엎드려야 되지 않느냐? 하고 권면하는 이런 내용의 메시지가 나온 것이 아니냐? 이런 추측이 나오는데, 글쎄 뭐 그렇게 개운하지는 않아요.
하여튼 뭐 제일 중요한 것이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언제’라는 것인데, 그 언제라는 것이 이게 책을 쓸 때 빠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고민에 빠지는 거죠?
그래서 이런 성경 연구를 많이 하던 학자들이 앞으로 우리가 성경 연구를 할 때 반드시 언제라는 것을 제일 먼저 써야 되겠다.
그래가지고 이게 문학이 발달된 거야. 반드시 기사를 쓸 때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이른바 육하원칙을 지켜서 글을 써라. 그런 말이 나온 거죠? 왜냐하면 이 공부할 때 제일 애 먹거든요. 언제인지를 모르니까.
그래서 죄책, 권면, 위로, 소망인데 죄책은 없고 이 요엘서가 권면부터 뭘 좀 하자. 뭘 좀 해 보자. 하고 권면부터 나오는데 그게 뭘 하자고 나오느냐 하면, 그 통곡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엎드리고, 애통하고 울자. 그런 권면이야.
‘하나님 앞에 좀 겸손하게 자세를 낮춰서 엎드려라.’
자. 무슨 얘기냐 하면 앞을 보세요. 그 아이가 아들이 잘못해서 말로 하다가, 하다가 안 돼서 결국은 매를 들었어. 아버지가 매를 들었는데 아 그저 한 대 때리고 말 줄 알았는데 너무 화가 나니까 한 대 대리고, 두 대 때리고, 세 대 때리고, 말 줄 알았는데 한 대 더 때려 그냥. 네 대나 때리니까 맞은 아이가 ‘씨!’ 그러면서 맞은 아이가 맞았을 때 때릴 때 그렇죠?
아버지가 어른이 뭐 때리면 방법이 몇 가지 있죠? 그냥 무릎 꿇고 ‘잘못했습니다. ’비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도망가는 놈도 있어. 그렇죠? 어른은 나이가 들어서 느리고 아이는 빠르니까 안 맞으려고 도망가는 수가 있는 거야.
그래 어떤 더 심한 것은 대들어 또 그래서 여기 위험한 분위기가 때린 분은 내가 오늘 죽여 버리고 만다하고 딱 네 대 때리고 말았는데 맞은 놈은 너무 심하게 맞았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때 누가 필요 하느냐? 엄마가 필요한 거야. 엄마가 뭐라고 하느냐?
‘요엘’. ‘여호와는 엘로힘이야. 여호와는 하나님이야.’ 하나님은 네 죄보다 매를 가볍게 한 거야. 너 더 맞아야 돼. 사실은..
오늘 너 정말 아빠가 죽여 버리려고 하다가 너 이만큼 때리고 만 건데, 그래 가지고 삐어져 있지 말고 빨리 가서 무릎 꿇고 빌어 빨리.. 하고 가서 항복하고, 자복하고, 엎드리고, 빌어라.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라. 그런 권면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거야.
이야기가 그러니까 그 분위기 파악을 해야 돼. 이 예언서가 선포될 당시에 하나님의 감정과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과 태도가 그 분위기를 파악하고 읽으면 쉽게 보이는 거죠?
그래서 13절에,
13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를 입고 밤이 맞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얼마나 기근과 이런 그 재앙이 혹심했던지 하나님께 제사드릴 것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14절에.
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어차피 먹을 것도 없으니까 금식을 해야지 뭐..
..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이보다 더 심한 날이 온다는 거야. 지금..
지금 맞은 것만 해도 네 대 맞아서 많이 맞았다고 생각하는데, 이보다 더 심한 날이 온다. 만약에 이만큼 딱 해 놓고 어떻게 하는지 보자. 하고 있는데 회개 안 하고 있으면 그 보다 더 혹심한 날이 오는데,
15절에,
15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거기 줄을 그으세요. 여호와의 날. ‘욤 야훼, 욤 예호바’
..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16 식물이 우리 목전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전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17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18 생축이 탄식하고 소떼가 민망해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떼도 피곤하도다
19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거친 들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밭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
20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앞을 보세요. 자. 가뜩이나 그 푸른 것이 있을 때에는 팟종이, 메뚜기, 늣, 황충이 와서 싹 다 먹고 지나가 버렸어. 그리고 나무가 그냥 메뚜기 떼가 한번 앉았다가 지나가 버리면 나무껍질 까지 다 벗겨가지고 나뭇가지가 완전히 하얗게 돼 버리니까 다 말라버렸어.
얼마나 비가 안 왔던지 들에 풀이 다 바짝 말라 있는데 불이 또 났어. 들불이..
들불이 나가지고 또 다 태우고 지나가 버리니까 사람이든 가축이든 입에 넣고 씹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 어른 하는 거야. 그쯤 됐으니까
또 다시 2장에,
[요엘 2장]
1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그러니까 지금 당한 것만 해도 이렇게 혹독한데, 이보다 더 혹독한 여호와의 날이 또 이르게 된다. 임박하는 거야. 임박하다. 그 날은 어떤 날이냐?
2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
그런 무시무시한 날이, 지금 여기에서 이만큼 맞았다고 회개 안하고 그러고 있다가는 더 혹독한 날이 임한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죠?
3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 전의 땅은 에덴 동산 같았으나 그 후의 땅은 황무한 들 같으니 그들을 피한 자가 없도다
그러니까 이런 이상을 본 거죠?
어마 어마하게 무시무시한 그런 여호와의 날이 다가 오는데, 그때는 그 이전 땅은 에덴동산 같았다고 할지라도 그게 지나가고 나면 완전히 황무한 것 같이 되는데 피할 자도 없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다가오느냐? 4절 이하 보세요. 요엘이 본 이상을 묘사하는데,
4 그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그 모양이 말 같으면 말이 아니고 말 같아.
달리는 것은 기병이 아니고 기병 같다는 거야. 그러면 벌써 기병이 아니죠?
그럼 여기 보세요. 말도 아니고 기병이 아니면 아까 제롬이 말한 그 팟종이, 메뚜기, 늣, 황충이라는 게 그게 무슨 그 앗수르나 바벨론이나 헬라나 로마 군대가 아닌 거야.
그 군대 같으면 군대 같은 것이 아니라, 기병이죠? 그냥. 말 같으면 그냥 말이겠죠? 그런데 여기는 그게 아니고 말 같다는 거야.
5 그들의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가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초개를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항오를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그 병거 소리가 아니고 병거소리와 같고, 강한 군사도 아니고 항오를 벌이고 싸우는 것도 아닌데 그것 같다는 거야..
6 그 앞에서 만민이 송구하여 하며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7 그들이 용사같이 달리며 무사같이 성을 더위잡고 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행하되 그 항오를 어기지 아니하며
8 피차에 부딪히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행하며 병기를 충돌하고 나아가나 상치 아니하며
9 성 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에 달리며 집에 더위잡고 오르며 도적같이 창으로 들어가니
10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11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은 심히 크고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지금 이쯤해서 회개하지 않으면 이렇게 더 무시무시한 여호와의 날이 다가온다. 하고 경고하는 겁니다.
그래서 12절에,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거기 줄을 그으세요. 이렇게 많이 맞았기 때문에 늦었지만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이게 희망이죠? 때린 것이 저주가 아니고 돌아오라는 거예요. 회개하고, 회개하고 뉘우치고 돌아오라는 것이지, 그 때린 것이 저주가 아니라는 거죠?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정말 이 때 만약에 회개하지 아니해서 그 크고 두려운 날이 다시 닥쳐와서 하나님과 관계가 영원히 끊어져서 영원히 하나님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아니 하실런지 누가 알겠느냐?
또 다시 권면하기를 15절,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16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하고 하나님께 엎드려라.
그렇게 하면 18절에,
1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언제나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때렸을 때는 때릴 때는 막 정말 감정 없이 때리기 어렵습니다.
저도 자녀를 많이 때려 봤는데 때리기는 그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때렸으니까, 때렸는데 그 사실 감정 없이 때리기가 잘 어려워요.
사실 감정으로 때리면 안 되고 맑은 이성을 가지고 맞아야 되는 이유를 설명해 가면서 때리고 해야 하는데 말은 그렇게 하죠? 저도. 막상 맞을 짓을 해 가지고 말로 하다가 안 되가지고 때릴 때는요 그 감정 없이 때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감정은 오래 안 가죠? 때리는 사람의 때리는 감정 오래 가는 것 아냐. 얼마 안 가서 때렸는데 뭐 너무 심하게 맞았다든지 할 때는 또 때린 사람이 또 때린 쪽에서 가슴이 아픈 거야.
그 조금 가슴 아파할 그런 때에 때를 놓치지 않고 와서. 사람 마음은 바뀌어요. 좀 또 때리고는 내가 너무 심하게 때렸나?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또 삐딱하게 나와 봐. 뭬 야. 하고 그때 매를 들면 그건 더 무서운 거죠? 지금 분위기가 지금 그런 입장이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때리신 분이 조금 가슴 아파하게 생각할 그 때에 바로 가서 엎드리고 온 국민이 회개한다면 18절에,
1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여러분 노아 홍수 때 인간들이 얼마나 죄악이 목에 관영했던지 노아의 여덟 가족을 제외하고는 온 땅에 모든 거민을 진멸했습니다.
그렇게 해 놓고 역시 하나님이 감정이 있죠? 해 놓고는 그 인간들이 다 그저 동물들과 함께 그냥 막 끌어 묻혀서 죽어가는 걸 하나님이 보시고, 그 우리야 내 눈앞에 보이기는 거만 보이고 내 눈앞에 안 보이는 건 안 보이지만은 하나님은 다 보일 것 아냐? 함께..
그리고 그 뒤에 노아의 자손들에게 ‘참으로 내가 못할 짓이다. 이 인간들을 전멸시킨다는 것은 내가 다시는 못하겠다. 내가 다시는 물로 전멸 시키지 못하겠다.’ 그런 거죠?
여러분 그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것 아닙니까? 때리고 또 가슴 아파하고..
그래서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그러니까 그들이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신랑도 신부도 다 나와서 제사장들은 낭 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엎드리고 그렇게 회개하고 간구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19절에,
19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20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군은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21 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 들짐승들아 두려워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여러분 그 들짐승 내지는 그 가축이 먹을 풀. 그 들에 들풀이 나고 꽃이 피고 과일 나무가 열매가 맺고 곡식이 심어서 무르익는 이건 하나님의 평화죠?
이건 우연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셔서 그렇게 된다는 거야.
그래서,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자. 여기 보세요. 비가 오는 것은 궂은 날이 아닙니다.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신다는 거야.
여러분 지금 제가 엊그저께 지리산 골짜기를 가 봤는데 비가 안 와가지고요 내 평생에 그런 마른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얼마나 비가 안 왔는지 제가 알기로는 아마 작년 여름 때 한번 비가 오고 아직까지 비다운 비가 안 왔습니다. 그래서 거의 뭐 다 가물어 지리산 계곡 바닥이 지금 말라 버린 거야.
이렇게 해서 지금 모내기가 되겠는가 싶을 정도로 물이 없습니다. 갈수록 비가 줄어들어요. 비가 줄어 둔다는 것은 맑은 날이 많다는 것이고, 맑은 날이 많다는 것은 지구 온난화. 기온 상승이 촉진 되는 거죠?
중국은 지금 급속히 사막화 되고 있습니다. 지금 그래서 왜 비가 안 오는가 보니까, 비가 오니까 사람들이 교회에 안 나오니까, 그럼 내가 비 안 오게 해 주지. 비 안 오게..
제가 한 10몇 년 전부터 비오는 날이 궂은 날이 아니다.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신다는 거야.
여러분 개인 날은 가만히 놔두면 개인 날이야. 그런데 비가 오게 하려면 상당히 신경을 써야 비가 오게 됩니다. 그 바닷물을 증류해 가지고 그 물을 대류라는 바람에 실어서 육지까지 끌어 올려가지고 그 햇빛을 적당히 비쳤다 말았다하면서 산꼭대기 이쪽저쪽이 온도가 차이가 나 가지고 그것이 산꼭대기에서 만나서 비가 이루어지는데,
여러분 비 한 가지만 안 와도 끝장납니다. 사람이 뭐 똑똑하고 그 잘나고 뭐 과학기술이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비 하나만 안 오면 끝장나는 거야.
그리고 여기 또 큰 흐름을 좀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하고 이스라엘 백성하고 사이에 관계가 깨어지면 또 이 사람하고 자연과의 관계도 깨어지는 거야. 하나님 하고 이스라엘 백성하고 사이에 관계가 잘못되면 이 사람 이스라엘 백성하고 자연과의 관계도 잘못된다는 거죠?
그러면 또 다시 역으로 이게 자연과 이 사람과의 관계가 잘못돼가지고 그 메뚜기, 늣, 황충, 팟종이가 다 먹어치우거나, 아예 비가 안 오거나, 곡식이 없어지거나 이렇게 하는 상황이 잘못 되었는데 여기서 이걸 가지고 우리 손으로 해 보겠다. 안 됩니다. 아무리 해 봐도..
근본이 하나님과 관계 깨어진 것 이걸 회복해야 되는데 여기 이들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금식하며 울며 하나님께 엎드리고 회개하는 그 관계가 회복되면 또 이스라엘하고 이 자연과의 관계도 회복된다. 그런 원리예요.
그래서 23절은 또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구절인데,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거기 줄을 그으세요.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린다. 미워서 비를 내리는 것이 아니고..
..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자. 이 구절이 수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불러 일으켰는데, 그 분위기도 파악을 못하고 역사적 배경도 모르고 뭘 만들었느냐?
여기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나오니까, ‘이른 비는 뭐냐? 이른 비는 오순절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내린 성령의 비다. 그리고 늦은 비는 뭐냐? 말세에 내릴 성령의 비다.’
이래가지고 오순절 교단이 나왔어요.
아닙니다. 여기 이른 비라는 것은 가을에 오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해요. 우리하고는 다릅니다. 우리는 이른 봄에 오는 비인데 그쪽 사람들은 가을에 오는 비가 이른 비야.
왜 그게 이른 비냐 하면 그들의 농사는 밀과 보리가 주곡식이기 때문에 밀과 보리 파종할 때 오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하고, 결실기에 오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해요.
그래서 우리하고 우기가 다릅니다. 우리는 여름이 우기인데 그쪽은 겨울이 우기가 되고 그래서 10월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이듬해 3월말 정도까지 비가 와요.
그래서 3월말에 오는 그 비가 우리 같으면 봄비인데 그들은 늦은 비야. 결실기에 오니까, 늦은 비야.
그러니까 그것은 진짜. 여기 뭐 이른 비가 뭐 오순절 성령비가 아니고, 이른 비는 진짜 그 땅에 이스라엘 땅에 10월부터 오는 비고, 늦은 비라는 것은 이듬해 3월말, 4월에 오는 그 비를 늦은 비라고 실제 비를 말합니다. 그 성령의 비 그런 것 아니고,
여러분 제가 성경을 이렇게 여러 차례 살펴봤는데 인류역사에 종국사적 종말에 성령의 늦은 비가 온다. 그런 말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오직 여기만 있는데 이걸 같다가 착각을 하는 거야.
‘말세에 내가 내 신을 내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준다.’ 그럴 때 그 말세라는 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 말세야. 예수님 오셔서 역사 종말까지 이게 말세인데, 그 말세에 내가 내 신을 내 남종과 여종에게 그것이 바로 오순절 비입니다. 그게 정확한 거야.
그리고 여기 이른 비 늦은 비는 진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말하는 건데,
왜냐하면 그 24절에 그 결과를 봐요. ‘그 결과로 성령이 충만해 진다.’ 이런 것이 아니고 그 결과는,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또 새 포도주가 무슨 성령이 아닙니다. 그것 무슨 예수님 피도 아니고 무슨 기름이 또 성령이 아니고, 새 포도주는 포도 가지고 만든 술이야. 술. 기름은 올리브기름 감람유.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 관계가 깨어지니까 땅에서 비가 내리지 않고 비만 안 올뿐 아니라, 어설프게 난 풀들도 메뚜기와, 늣, 황충과, 팟종이가 다 먹어 치워버리고 마른 풀들은 또 불에 다 타 버리고 끝장이 나버렸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게 되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되니까, 또 다시 하나님이 비를 내려가지고 자연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그런 이야기거든요.
그러면서 25절이 아주 핵심인데
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라고 비유 되었는데 실상은 뭐죠?
메뚜기, 늣, 황충, 팟종이 전부 군대로 비유한 것이죠. 비유 개념이 군대죠? 그렇죠? 마치 군대처럼 몰려왔어..
그런데 그것이 뭐냐 하면 메뚜기, 늣, 황충과, 팟종이야.
이것들이 마치 막 군인처럼 막 그러는데 큰 한 이상한 족속 전부 다 이걸 두고 말하는데, 그러니까 이게 비유가 군대고 실상이 메뚜기이기 때문에 아까 앞에 있던 그걸 그냥 메뚜기로 읽어야지. 그걸 무슨 뭐 앗수르, 바벨론, 헬라, 로마 그것 잘못된 거죠?
그 뭐 깨끗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유명한 학자라도 그런 실수를 많이 했더라고 제가 이걸 읽어 보니까 주석을 읽어 보면 주석하는 사람들이 엉터리를 많이 써 놨어. 잘 알지도 못하고 막 책만 잔뜩 두꺼워가지고 그런 잘못된 걸 쓰면서 책만 얼마나 두꺼워 지는지..
그래서 우리는 그런 주석 없이도 성경을 바르게 읽을 수 있도록..
그 다음에,
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해가지고 여기 일단락 납니다.
이렇게 예언자의 말로 하던 음성을 듣지 않다가 호되게, 네 번이나 연거푸 얻어맞은 후에 그들이 회개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정상화 되고, 하나님과 관계가 정상화 된 후에 이 자연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도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된다.
여기까지가 일단락된 뒤에 그러고 난 후에 무슨 일이, 그 후에 오순절이 온다는 거야.
28절,
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만민에게 부어준다’는 말은 그때부터 오순절 이후에 그 하나님의 영, 성령을 받는 일이 유대인들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고, 예언자들에게만 국한 것이 아니라, 만민에게 온 이방인, 로마인, 헬라인 할 것 없이 그저 뭐 한국, 중국, 할 것 없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그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그런 날이 온다. 하는 것인데,
이것은 아까 있었던 그 위에 있는, 다시 말하면 23절부터 27절까지 있는 일이 이루어진 후에 이루어지니까, 아까 위에 있는 이른 비, 늦은 비라는 것이 종국사가 아니죠? 종국사적 종말에 무슨 말세에 성령의 비. 이런 것은 잘못된 해석이야.
그것은 문맥도 잘 살피지 못한 분들이 하는 소리죠?
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하고 이 29절과 30절 사이에는 교회 시대라는 시대가 그 깔려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여기 30절은 그야말로 교회시대가 다 끝나고 난 진짜 종국사적 종말에 일어날, 요한계시록에 일어날 일들을 30절에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죠?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피’에 동그라미하고, ‘불’에 동그라미하고, ‘연기 기둥’에 동그라미 해 보세요.
여러분 ‘연기 기둥’이라는 말 들어 봤어요? 연기 기둥..
우리도 전에 이것 못 봤는데, 못 들어 본 말인데 요엘서에서는 벌써 지금으로부터 한 2600년, 2700년 전에 요엘이 연기 기둥을 본 거야.
다시 말하면 버섯구름을 본 거야. 버섯구름. 여러분 원자탄이 터지면 연기 기둥이 올라갑니다. 쫙 올라가서 이렇게 퍼지는 거야.
이것은 두 가지 경우가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일반 폭탄 가지고는 이런 연기 기둥이 안 올라갑니다. 연기 기둥이 올라가려면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하나는 원자 폭탄 같은 것이 폭발하거나, 아니면 소행성이 별이 작은 별 덩어리가 땅에 떨어지면 원자폭탄 떨어지는 것 같은 그런 어마어마한 연기 기둥이 올라간다는 거야.
31절,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그러니까 진짜 그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다시 말하면 여호와의 마지막 심판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할 것이다.
이것은 별이 떨어질 때 일어날 일이죠? 요한계시록 6장 12절 이하에 나오는 얘기야.
..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하고 여기 또 한 단락이 종말에 있을 이야기를 해요.
그 다음에 3장에는 지금 요엘 선지자가 말하는 그 때로부터 잠깐 후에 어떤 이루어질 일들 그런 일들을 이야기 하는데,
[요엘 3장]
1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우리가 예언서를 볼 때 주의해야 될 게 ‘그 날에’라는 말이예요. 그 날에..
‘그 날에’ 하면 우리말 어법에 그 날은 앞에 뭔가 말하던 그 날이 돼요. 그렇죠?
그런데 히브리어에서 ‘하욤’ 이라는 것은 정관사를 붙여서 ‘하욤’ 이라는 것은 앞에 말하는 그 날일 수도 있고, 전혀 앞에 말하는 그 말하고 상관없이 따로 그 날. 고유의 날. 정관사를 붙일만한 고유에 어떤 특정한 날 그렇게 되는 수가 있어가지고, 이걸 분별하지 못할 때는 예언서 해석에 또 큰 혼란을 초래합니다.
특히 이사야서에 ‘그 날에’라는 것은 전부 앞에 있는 날과 다른 날이야.
앞에 하던 말 하고 다른 그 날이야. 그 날이라는 정관사가 붙어가지고 그 날이지, 앞에 말하는 연장선상의 그 날하고 아닐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 3장에서 말하는 그 날은,
1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여기 ‘그 날’은 앞에 2장 끝에 말하는 ‘그 날’하고는 다른 날입니다.
2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여호사밧 골짜기’ 라는 것은 사람 이름이 아닙니다.
그 또 번역이 잘못되어가지고 ‘여호와께서 판결하는 골짜기, 여호와께서 재판하는 골짜기’라는 곳이 ‘여호사밧 골짜기’인데, 우리가 여호사밧이라는 사람 이름만 알고 있으니까 그만 이 사람이름으로 아는데 전혀 아니고 히브리어 살펴보면 여호와의 판결 골짜기예요.
..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3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취하고 동남으로 기생을 바꾸며 동녀로 술을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앞에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을 잡아다가 술 바꿔 먹은 놈들. 또 그 너무 어린 그 동녀 그걸 가져다가 술하고 바꿔 먹고 이렇게 한 놈들. 이방인들이 와서 예루살렘을 심하게 학대했던 그런 나라들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이런 나라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게 했던 놈들 언젠가는 재판을 받는다는 거죠? 하나님의 판결 골짜기에서..
4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의 보복하는 것을 내가 속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5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취하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궁으로 가져갔으며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모든 보물을 자기 신궁으로, 신전으로 가져갔던 놈들을 하나님께서 벌할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6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본 지경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
7 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의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8 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니까 어디 팔려가 있던지 간에 다 돌아오게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 예표가 옛날에 그 요셉이 애굽에 팔려갔잖아요. 팔려갔는데 나중에 다 다시 돌아오잖아요. 그 팔려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 봐요. 얼마나 돌아옵니까? 온 세계 만국으로부터 돌아오는 거야. 지금도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 돌아오는 것이 언제인가 하면 마지막 때 다 되 갈 때 돌아오게 된다. 여러분 지금 돌아오잖아. 아모스도 그 예언하고 있고, 여러 예언자, 호세아도 그 예언하고 있고, 여기 요엘도 예언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팔려가 있던 그 넓은 세상에서 다 본국으로 돌아온다는 거야.
9절,
9 너희는 열국에 이렇게 광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무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10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11 사면의 열국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12 열국은 동하여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의 열국을 다 심판하리로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 이스라엘 백성은 그 못된 것은 그 못된 대로 하나님이 벌주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그냥 조금만 내가 손 보라고 했는데 너무 심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다. 그런 놈들도 벌준다는 거예요.
스가랴서에서도 나오죠? 그런 말이 내가 조금만 손보라고 했는데 이 자식들이 말이야. 힘을 다 해서 고난을 더 했다 해서 누구 때릴 때 너무 심하게 때리지 마세요.
이스라엘 백성은 맞을 짓 했어도 때리는 애 너무 심하게 한 사람들 다 전부 대가를 지불해야 돼.
13절,
13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이것도 여러분 어디 또 들은 듯한 말씀이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씀이야. 요한계시록 14장을 한번 펴 보시면 좋겠어요.
요한계시록 14장 14절,
[요한계시록 14장]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이한 낫’이라는 것은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그 ‘예’자 하나 더 쓰면 훨씬 수월할 텐데..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요엘서 같은 것을 모르면 계시록 14장이 뭐 이해가 될 리가 없죠?
그리고는 그러고 나면 요엘서 3장 14절,
14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15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16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
17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거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18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19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강포를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20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21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주리니 이는 나 여호와가 시온에 거함이니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못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때릴 만큼 때린 후에 반드시 돌아오게 한다. 그리고 죄책, 권면, 위로, 소망이라고 하는데, 여기는 죄책은 없고, 권면과, 위로의 소망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구약 성경을 우리가 성실히 잘 봐 두어야만 나중에 요한 계시록이 어떤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되겠고, 또 스바냐서도 마찬가지고 앞으로 우리가 볼 특히 요엘서 이런 예언서를 잘 우리가 공부를 해야, 구약에 있는 예언서를 면밀하게 정밀하게 공부를 해 둬야만 예언서의 결집, 예언서를 총 집대성한 요한계시록이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꼭 오해하기 쉬운 부분들, 비유 관념인지 원 관념인지, 이런 것 분별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전체 문맥과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만 원만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니까, 자연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도 깨졌는데, 그 역으로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관계가 회복되니까, 자연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도 관계가 회복된다는 말씀을 주고 있고,
그리고 나서 오순절에 성령이 임할 것도 예언하고 있고, 마지막 날에 가서 또 세상 심판 할 것도 여기 예고되어 있는데 그 심판이 알곡을 모아서 곳간에 들이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져져서 심판 받을 사람까지 예언되어 있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이 말씀하신 것이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역사 가운데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날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날마다 경건을 연습하며 떨며 즐거워하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요엘 선지자가 우리에게 남기신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서 어려울 때 권면하는 말씀을 들었고, 또 그 교훈을 우리가 새기고 앞으로 세상 끝날에 당하게 될 그런 말씀도 우리가 들어보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날이 새어서 샛별의 말씀이 떠오를 때까지 항상 이 예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며 성령을 소멸하지 아니하고 늘 깨어 경성하며 경건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지 돌아보고, 혹은 우리 가운데 무슨 쓴 뿌리가 나서 교회를 괴롭게 하는 일이 없는 가 서로 살펴서,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