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30일 주일예배 설교문 / 마 5:1-4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3절)
팔복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의 제자의 반열에 이르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복은 마카리오스인데 이는 호격으로 선언적인 말입니다. “복이 있도다!” 주 예수님께서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선포하셨습니다. “복이 있도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복은 원어로 살펴볼 때 복과 행복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복이란 공급을 받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고 행복이란 복을 받아 누림을 말합니다.
창세기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브라함은 복과 행복이 함께 한 복덩어리가 된 것입니다. 8복의 말씀을 모두 아멘으로 받아먹어서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복덩어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우리의 영을 비우고 비워서 내 안에 예수님으로 채우십시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님이 함께하니 반드시 공급과 누림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 안을 비워서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면 나는 이미 천국백성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으니 가는 천국만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이루는 천국생활이 된 줄 믿습니다.
영을 비우고 예수님으로 채우는 방법:4단계 기도로 영을 비우십시오. 죄악이 생각나거든 회개기도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충만히 적시기 바랍니다. 모든 죄가 용서받으며 도말되어져 빈 영이 될 것입니다. 이때 쓰레기들은 십자가에 내버려서 처리하십시오. 그리고 이 비워진, 이 가난해진 영 안에 보혜사 성령의 기름부음을 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채우십시오. 아멘 아멘 말씀을 받아먹고,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계시의 영 가운데 거하십시오. 이제 나는 주님의 다스림 가운데 거하는 천국백성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복으로 애통하는 자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절)
애통은 원어로 펜데오입니다. 이는 고통스럽게 근심스럽게 아파한다는 것입니다. 비진리가, 죄악이, 마귀가 나를 지배하고 세상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이를 뼛속 깊이 아파하는 것입니다. 내 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질병 때문에, 다른 사람의 슬픔에 함께 뼛속 깊이 아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파하는 자의 눈물을 주님이 닦아 주시면서 위로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다보면 주님이 내 눈물을 닦아 주시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시며 “걱정 마 자녀야! 내가 함께 하잖아. 내가 너를 도와줄게.” 이렇게 주님의 음성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이런 위로를 주실 때 힘을 얻어서 힘든 삶을 헤쳐 나가는 소망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위로의 축복입니다.
1. 무엇보다 자기의 죄에 대해서 애통합시다.
사도 바울의 자기 고백입니다.
로마서 7:21-24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 안에 주님이 계시니, 어두웠던 내 속사람에 빛이 비추어져서 죄의 뿌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마귀가 보이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렇게 애통해하면 할수록 주님의 은혜는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ex1) 워치만 니의 간증 – 폐병으로 죽을 위기 속에 있을 때에
어느 날 나는 하나님께 “왜 이렇게 저를 빨리 데려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곧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내게 아직 충성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까봐 내 죄를 자복했다. 동시에 나는 하나님께 나의 믿음 없음을 고백했다. - 회개의 금식기도를 함. 오후 3시에 회개기도 한 워치만 니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린도후서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회개기도했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사죄의 확신 가운데, 말씀대로 믿음으로 반응하고 믿음으로 일어섰더니 죽을 폐병이 낫는 역사를 경험하였습니다.
천국은 눈물의 회개 없이는 못가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축복입니다. 눈물의 회개로 기도의 문을 여십시오. 애통하는 죄의 회개에 주님은 위로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 위로는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화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소망의 위로일줄 믿습니다.
2.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아파하는 애통을 하십시오.
사랑하면 좋습니까? 아픕니까? 진짜 사랑을 해보십시오. 진짜 사랑을 하면 아픔이 옵니다. 그 아픔을 이겨내야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사랑의 기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랑을 해야 하지요? 아픈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복음 14:23-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기를 기뻐하고, 그 말씀을 지키려고 눈물 나도록 애쓰고 수고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삶의 현실이 말씀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눈물을 머금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눈물입니다.
세상은 점점 타락하여 지금은 세상 사람들도 말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연일 터지는 참혹한 사고들... 거기다 전쟁까지. 사람들은 어차피 죽게 되어있는데도 서로 못 죽여서 안달입니다. 이를 애통하는 것입니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오로지 돈, 물질, 세상을 최고라 여기는 현실에 애통하는 것입니다. 저들을 구원해야 하는데, 한 영혼이라도 살려야 하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는 애통입니다.
3. 애통하는 자는 사랑덩어리다.
그래서 저는 애통하는 자를 사랑덩어리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곧 바로 갔습니까?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에 이르니 아비가 같이 못가는 것입니다. 연세가 많으니... 그러니 아비가 데라가 205세가 되어 죽어 장례를 치른 다음에야 다시 일어나 가나안 땅에 갈 수 있었습니다. 조카 동생 롯도 데리고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했지만 차마 롯을 떼어놓고 갈 수 없었습니다. 롯은 동생 하란의 아들이었는데 하란이 아버지 데라보다 일찍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큰아버지인 자기가 데리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미련 많은 사랑덩어리였던 것입니다. 아버지 때문에, 조카 때문에, 나중에는 아내 사라 때문에 속상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화내는 것 봤습니까? 아브라함은 불쾌했던 일에도, 손해 보는 일에도 누구에게나 결코 화내거나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피붙이 같았던 롯이 이제는 컸다고 재산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뭐라고 하냐면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고 합니다. 약속의 땅이라도 좋으니 다 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롯이 지가 가지고 싶은 것 가지고, 가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맙니다. 그런 롯을 지켜주려고 하나님과 생명을 건 중보기도를 한 아브라함입니다.
이런 애통의 사랑덩어리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눈을 들어 북쪽과 남쪽을 보라, 동과 서를 보아라 네 눈이 보이는 대로 다 네게 주겠다. 네가 일어나 이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 내가 걷는 모든 땅에 네게 주리라.”(창세기 13장) 아멘.
애통의 사랑덩어리가 하나님이 위로하시니 소망을 받아서 축복덩어리, 복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내 죄에 대해서 애통합시다. 주여! 아직도 저는 영으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죄의 뿌리는 여전하고 아직도 저는 마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모든 죄를 회개하오니 저를 보혈로 깨끗이 씻겨 주옵소서.
남의 아픔에 애통합시다. 주님! 원수가 망했다고 좋아하는 자가 아니라 그의 아픔이 내 아픔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속히 저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아픔에 애통합시다. 주님! 세상이 너무 타락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영혼들,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이 땅을 불쌍히 여기사 속히 구원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애통하는 사랑덩어리는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을 것이요, 소망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