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커피
강 병 숙
ㄱ. 건천궁에서 즐기셨다던
ㄴ. 누룽지 맛의 구수한 커피를 모처럼
ㄷ. 대청마루에 앉아서
ㄹ. 여치 귀뚜라미소리 들으며
ㅁ. 먼 산에 눈을 두고
ㅂ. 반 모금씩 음미 해본다
ㅅ. 시인 엄마 커피중독자는 황제커피 맛을
ㅇ.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한 딸아이가
ㅈ. 저 멀리 군산에서 공수해왔다
ㅊ. 처음엔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ㅋ. 커피에 상술을 덧붙인 불순한 의도가 싫어서
ㅌ. 타국에서 건너온 검은 빛깔의 차를 마시며
ㅍ. 풍전등화 같았던 나라 걱정으로
ㅎ. 힘들었던 고종께서는 잠시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을까
ㄱ. 구수한 이 맛에서
ㄴ.나는 잠시 건천궁으로 향해본다
ㄷ.대들보의 위용에 압도당하며
ㄹ.라디오 축음기 타자기 여러 소품 중에
ㅁ.명성황후가 좋아했다던
ㅂ. 본차이나 커피잔에 유독 눈길이 간다
ㅅ.사방을 병풍으로 둘러
ㅇ.아늑함을 주고
ㅈ.자연스럽게 비단방석이 놓여 있다
ㅊ.처음으로 두 분이 마주 앉아
ㅋ.커피를 마셨을 때 기분을
ㅌ.타인인 내가 한 세기를 넘어
ㅍ.풋풋한 연정으로 느끼는 것은
ㅎ.황후의 피가 흘러서가 아닐까
광 양 명 검
강 병 숙
오늘은 우리가 은퇴하는 날
멀리 광양에서 소를 따라 와
이 곳 강남에서 호흡을 맞춰온 지 30년
언 손 호호 녹여가며
한석봉 어머니 심정으로 심혈을 기울여
살점을 얇게 얇게 저미는 일
육즙의 풍미를 위한 작업이기도 했지만
세 아이 희망의 뜨락에
기도를 심는 일이기도 했어
네 희생이 요구되는 일이기도 했지
매일 숯돌에 너의 날을 아프게 비벼대며
시퍼렇게 깎아 내야 했으니까
희망의 뜨락에서 잘 자란 꿈나무들은
여섯 아이들의 아버지 어머니로 우뚝 섰으니
양 어깨 짓눌렀던 무거운 짐
이제는 가볍게 내려놓고 훨훨 날으리
내 어깨 굽어지고
손가락 관절이 울퉁불퉁 변하는 동안
서슬 퍼렇게 번뜩이던 너도 닳고 닳아
볼품없는 기다란 창칼이 되어버렸네
겉이 깎이는 동안 안으로 삭혀진 희생이
내공으로 쌓여 그 위용은 더욱 빛나니
나는 이제 너를 광양명검 이라 부르리
고운 칼집 만들어 네 공을 기리며
대대손손 가보로 삼으리라
카페 게시글
타 문예지 발표 원고
월간 '시'2023,10월호 통권117 이달의 시 2편
강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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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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