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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준 전남도민일보 제주 올레길 용천수
제주 올레길 제17코스를 걸었다. 광령리사무소에서 출발하여 하얗게 파도가 부딪치는 해안, 바다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용두암을 거쳐 제주시내 동문로터리까지 이어진다. 17.8Km로 6시간 정도 걸리는 길인데 나는 시내쪽에서 출발했다.
은퇴목사로서 모처럼 누리는 여유로움이다. 1981년, 신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교회를 개척하여 30년을 섬겼다. 70세 정년을 5년 앞두고 목회현장에서 물러앉았는데 생각되는 일들이 참 많다.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혼자 걷기에 좋은 코스이다. 제주 시내 호텔에서 2박3일 함께 했던 목사님들 부부는 공항으로 나가고 나는 배낭을 짊어졌다. 용연출렁다리를 건너 용두암에 내려갔다가 해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바다 쪽에서 맹추위의 칼바람이 불어온다. 잔뜩 찌푸린 먹구름 하늘이 수평선에 내려앉았다. 걸멍 쉬멍 사진을 찍으멍 자연을 즐긴다. 하얗게 밀려온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깨어지고, 갈매기는 바람을 타며 난다. 올레길을 걷는 길손들이 짝지어 지나간다.
시원하다. 바쁠 것도 없고, 쫓아 가야할 급한 일도 없다. 비행기 시간까지는 넉넉하다. 어제 밤에 사모님들과 나눈 이야기다.
“조기에 은퇴하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물러난 후에 겪는 허전함과 외로움. 평생을 함께했던 교인들과의 관계를 한 순간에 단절해야 하는 아름, 부부만 남은 딴 세상이 수용하기 어려웠습니다. 호흡하듯 교인들과 함께 했던 삶, 믿음으로 교인들을 위해서 살았던 헌신과 열심, 심었던 것들이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그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하루아침에 싹둑 끊어버림을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은퇴하고 3년을 지내며 가슴 앓았던 심정을 이야기했다. 목회가 힘들고 어렵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은퇴보다는 교회를 섬길 때가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목사인 나는 여러 교회로부터 초청을 받아 설교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더러는 등산도 하지만 다리 수술을 한 아내는 출타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고 많이 외롭습니다. 은퇴하면 부부만 남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을 잘 관리하십시오. 그리고 사모님들의 모임을 갖도록 하십시오. 언니와 동생 같은 관계의 만남이 은퇴 후까지 이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목회자 가족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말이나 생활을 섞기가 어색하고 어렵습니다.”
목사님들의 은퇴 준비를 돕는 말씀을 나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로서는 조기은퇴가 참 좋았습니다. 교회가 내 나이 따라 굳어지기 쉬운 때에 젊은 목사님을 세운 것이 좋았습니다. 분위기가 달라지더라고요. 나는 지쳤던 건강을 회복하고, 여가로 취미생활도 하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이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두 시간이 넘게 걸었다. 도로 아래쪽 해안에 돌샘이 있고, 어영마을 ‘섯물’이라 푯말이 붙었다. 한라산 자락의 지하수가 암석과 지층 틈으로 솟아나는 용천이다. 그 생수를 물병에 담아서 꿀꺽꿀꺽 마신다. 샘은 위아래 새 칸으로 막았는데 생수가 용출하는 윗샘은 먹는 물, 둘째 칸은 야채 씻는 물, 셋째 샘은 빨래도 하고 여자들이 목욕도 한단다. 여성 전용 샘인 것 같다.
오염되지 않은 제주 생수를 샘가에서 마실 수 있으니 이 어찌 감격 아닌가. 거기 주저앉았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 하얀 파도가 밀려와 용틀임을 하며 깨어져 솟구치는 해안, 하늘을 쳐다보며 ‘단물 용천수’를 마시니 마음도 시원하지만 몸속을 싹~씻는 것 같이 시원하다. 동행하지 못한 아내에게 줄 선물로 물병을 채웠다.
물은 생명이다. 영혼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이다. 목회자는 이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다. 주님 오실 때까지 외쳐야 한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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