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사랑키우기
조성례
올해는 가을날이 좋아서 예년에 없는 벼의 대풍이다.
다른 작물들은 가을 가뭄이 심해서 결실이 잘 안된다고 농민들의 얼굴에 그늘이 끼는데
벼만은 수도 작이기에 윗날이 가물어도 별로 걱정이 없다.
또 올해는 다행하게도 태풍의 방문이 없어서 벼에 소독하는 일도 없는 아주 바람직한 농사였다.
태풍이 자주 오면 벼멸구나 도열병 등 바람을 타고 오는 해충과 벼가 썩는 문고병이 와서 벼의 소출을 줄이는데
올해는 병충이 없어서 소독을 하지 않는 거의 무공해의 농사를 지었다.
우리는 5000평의 논에서 해마다 매상가마니 270개 내지 280개의 수확을 한다.
올해는 300개가 조금 넘을 듯 하다.
남편은 퇴직하고 중조 생 종의 "고시히까리"라는 질 좋고 맛 좋은 품종의 벼농사를 3년째 짓고있다.
현직에 있으면서도 논농사는 지었는데 이제 할일이 농사일뿐이니 전념하면서 농사를 짓는다.
소독을 안 하고 농사를 짓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고심한다.
조금만 소홀하면 건강에 제일 나쁘다는 제초제를 쓰지 않으니 논에 곳곳이 잡초가 벼보다 더 잘 자란다.
벼가 어릴 때부터 매일 논바닥에 엎드려서 잡초를 뽑아도 당해내기가 참 힘들다.
벼가 패면서 잡초도 함께 꽃을 피우고 풀씨를 맺으니 이 또한 결실을 하기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만은
하얀 쌀에 까만 풀씨가 섞이는 모습은 마치 생쥐의 눈깔 같은 얄미운 모습으로 보인다.
남편은 벼의 잡초를 뽑으면서 매일 풀에게 사과한다고 한다.
" 미안하다 너도 살려고 얼마나 힘이 들겠느냐 미안하다" 고, 나는 웃으면서
"풀이 알아들어요?"
" 알아듣거나 말거나 진심은 초목에게도 통하는 법이여" 한다.
벼를 매상하면 1가마에 6만원정도 된다 그것도 일등 벼에 한해서,
어느 날 남편이 벼를 집에서 도정해서 팔아보자고 한다.
일이 뼈에 박힌 사람도 아니면서 이제 늦은 나이에 건강을 생각해야지
한 두가마도 아니면서 어떻게 벼 가마니를 옮기느냐고 나는 심한 반대를 했다.
남편은 계산을 하더니 쌀 한 가마니면 매상가보다 도정을 하면 힘은 들어도 2만원정도를 더 받는 가격이 된다 한다.
,쌀로 내면 2백 만 원의 수입을 더 올릴 수 있다면서 집에서 놀면서 한달 생활비라도 벌어보자고 한다.
농한기가 되면 농촌의 늙은 사람들은 너무나 무료한 나날이다
젊어서처럼 어디를 나다닐 곳도 없고 시골다방에 가서 담배연기나 마시면서 심심풀이 화투나 하는 곳을 들여다보거나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거나 하는 것이 고작인 하루하루가 너무 지루하다고 한다.
그래서 퇴직한 첫 해에 시험 삼아 몇 가구의 주문을 받았다.
필요할 때마다 금방 도정을 해서 보내 드리니 쌀을 이용하는 가정에서는 너무나 고맙다고 한다.
어떨 때는 늙은 사람이 그것도 사회적 체면도 있고 하면서 쌀자루나 들고 배달을 하느냐고 툴툴거렸는데
고맙다고 전화나 소식을 주는 분들을 보면서 내가 지은 쌀로 여러 사람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봉사를 한다고
간혹은 돈을 떠나서 자긍심을 갖기도 하게 되었다.
올해도 여러분들의 주문을 받고 남편과 나는 매일 몇 가마니씩의 쌀을 도정한다.
그이는 벼를 퍼 나르고 나는 석발기를 통해서 나오는 쌀을 퍼 담아서 저울에 계량하는 일을 한다.
다르기가 힘들어서 20키로 씩을 담는다.
저울눈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입이 안 다물어진다. 정확히 20키로의 쌀이 담겨있다.
아마도 손이 수 없는 행위에 길 들여져서 스스로 계량을 하는 가보다.
그러면 나는 쌀을 조금 더 떠서 붓는다. 어떤 때는 눈금의 한 자리가 옮겨 갈 떄도 있다 .
내가 붓는 이 한줌의 쌀이 받는 가정에서는 한 끼의 식량이 되겠지 . 농사 짖는 내가 좀 후해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 시어머니 홀로 되셔서 가난하게 사실 때 쌀을 사러 가면 후한 집은 쌀을 되는 말에 한줌 더 얹어주는 고마운 집도 있고
또 어떤 집은 쌀을 사부랑사부랑 한줌도 흘러내리지 않게 야박한 말질을 하는 사람들의
수십 년 전의 이야기를 잊지도 않고 하시면서 말질을 후하게 하라는 당부가 아니라도
내가 좀 후해야지 하는 마음이 앞선다.
물론 먹는 사람들이야 그 마음을 알까 만은 꼭 잡초에게 하는 남편의 사과 같은 기분이랄까 ?
우리 부부는 쌀을 도정하면서 사랑도 함께 일군다.
늙어지니 젊어서의 연연한 사랑은 줄어들고 투박한 믿음과 의지심으로 사는 우리 부부에게
서로 힘든 것에 대한 안쓰러움을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표현을 하니
서로 바라보는 표정이 훈훈한 것이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주문 받은 쌀을 좀 먼 곳에 양이 많아서 직접 배달을 하고 자장면 한 그릇씩 먹고 돌아왔다.
벼 가마니를 드느라 담이 결리는 남편의 등에 파스를 부처주면서 안타까운 부부의 손길이 따듯하다.
남편은 내년에는 논에 우렁이를 넣어서 풀이 안 나고, 또 소독도 전혀 안하는 우렁이 농법 친환경농사를 지어야겠다고 계획을 세운다.
첫댓글 오래 전에 중부매일신문에 나팔꽃 필진으로 선정되어서
계재되었던 잡문을 올려봅니다.
금년도 열심히 써서 시와 수필로 책을 내볼까 하는 염원입니다
평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