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AURA)의 시적 형상화 / 오형엽
2010년에 등단한 황인찬은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에서 평이한 일상과 신비한 신성(神性)의 아우라를 특유의 여백의 미학으로 형상화하면서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황인찬의 첫 시집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신비한 신성의 아우라’를 형상화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다음의 시를 들 수 있다.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그것은 하얗고,
그것은 둥글다
빛나는 것처럼
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있었다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
서 있었다
백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여름이 지나갔는데
나는 그것들을 대고 백자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여전했다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부분
1연은 황인찬 시의 기본적인 형상화 방법을 집약적으로 제시한다. 우선 “방”이라는 공간에 아우라를 부여하는 시적 방법론을 살펴보자.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방”에 나타나듯, “방”은 장소가 받는 빛의 양인 조도(照度)와 소리의 높낮이 정도인 음도(音度)에 의해 조율된다. 빛의 양으로 결정되는 밝기를 낮추고 소리의 정도를 최소화한 이 “방”의 아우라는 어둡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공백과 침묵의 공간성을 산출한다.
다음으로 이 공간성에 놓인 “백자”라는 중심 대상에 아우라를 부여하는 시적 방법론을 살펴보자. “단 하나의 백자”가 “빛나는 것처럼/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있었다”에서 제시되는 후광 효과로서의 아우라를 주목할 수 있다. “단 하나”라는 유일성은 시선의 집중을 유도하고 “하얗고” “둥글다”라는 양태는 원형적 순수성을 암시하는데, “백자”가 자체적으로 발산하는 “빛”의 이미지가 이 요소들을 숭고하게 변화시키는 동시에 “빛을 빨아들이는” 흡입을 통해 주위의 공기 밀도를 조율하여 정신적 차원으로 정밀하게 집약시킨다. 황인찬이 비유나 상징 등의 전통적인 시적 형상화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도하는 첫 번째 방법이 공간의 아우라를 조도와 음도로 조율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방법은 중심 대상의 아우라를 주위의 공기 밀도로 조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황인찬이 시도하는 세 번째 시적 방법론은 화자와 대상의 관계성에서 발견된다. 시적 화자의 모습은 1연에서 “비로소 나는 알았다”로 나타나고, 2연에서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서 있었다”로 나타난다. 화자는 관찰과 인지의 주체에서 질문의 주체로 이동하는데, 대상은 이러한 주체의 태도에 대응하지 않고 시종일관 그 자체로 존재한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주체는 개관하고 인지하며 질문하지만 대상은 자족적으로 그냥 있으므로 상호 침투가 허용되지 않는다. 시적 주체와 대상의 엇갈림 속에서 그 공백과 침묵의 공간성 속에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시간과 화자 자신이다.
이상의 분석을 요약하면, 황인찬의 시는 조도·음도·공기 밀도의 조율, 공간과 대상에 아우라 부여, 공백과 침묵의 공간, 주체와 대상의 엇갈림, 시간의 경과, 기억의 보존, 실체로서 대상과 주체의 사라짐 등의 요소들을 긴밀히 결합하면서 시적 장치를 구성한다.
오형엽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출처 : 고대신문(http://www.kunew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