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소네가 흐르는 거리
류윤
깐소네가
우울한 밤의 계단을
한 칸씩 내려오고 있다
축축한 골목은
흐릿한 불빛이 번지고
전깃줄에 매달려 잉잉대는
상한 바람이
비애를 횡단해가고 있다
붉은 조명 아래
유리잔들은
외로운 입술처럼 빛났고
굵고 낮은 목소리
깊게 저미고 지나가고
겨울은 구두 굽처럼 닳아간다
네온싸인의 거리에서
마른 입술로
오래된 이름 하나를 듣고 있다
음악이 아니라 '상실의 시간'을 듣는 시
― 류윤의 「깐소네가 흐르는 거리」를 읽고
류윤의 「깐소네가 흐르는 거리」는 제목에서부터 독특한 정조를 형성한다. '깐소네(Canzone)'는 이탈리아 대중가곡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시 속의 깐소네는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사랑과 기억, 그리고 삶의 허무가 응결된 정서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첫 연은 매우 인상적이다.
깐소네가
우울한 밤의 계단을
한 칸씩 내려오고 있다
음악이 '흐른다'거나 '들린다'가 아니라 '계단을 내려온다'는 표현은 청각을 시각적 움직임으로 전환하는 공감각적 장치다. 더욱이 "한 칸씩"이라는 표현은 시간의 느린 진행을 암시한다. 이 음악은 갑자기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층위를 따라 천천히 내려오며 화자의 내면을 잠식한다.
도시 풍경의 우울한 초상
이어지는 장면은 도시의 밤을 배경으로 한다.
'축축한 골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정서의 상태다. 습기와 흐릿함은 선명한 현실이 아니라 기억과 상실의 세계를 상징한다.
특히 다음 구절은 매우 뛰어난 이미지다.
여기서 바람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상한 바람'이라는 표현은 이미 상처 입고 부패한 감정을 암시한다.
"비애를 횡단해가고 있다"는 진술 역시 탁월하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슬픔을 건너가지만, 이 시에서는 바람이 비애를 횡단한다. 주체와 객체가 뒤바뀌면서 비애는 하나의 공간이 되고, 바람은 그 공간을 지나가는 존재가 된다.
이는 인간의 슬픔이 개인적 감정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사물의 의인화가 만들어내는 고독의 미학
세 번째 연에서 시는 더욱 깊은 고독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유리잔을 '외로운 입술'로 본 순간, 술집의 풍경은 인간적 결핍의 풍경으로 변한다.
유리잔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입술이며,
사랑을 잃은 입술이며,
말을 잃어버린 입술이다.
이러한 사물의 의인화는 김광규나 정현종 계열의 도시서정과도 연결되지만, 류윤은 보다 영화적인 조명을 사용한다.
특히
붉은 조명 아래
라는 구절은 이후의 모든 이미지를 붉은 색조로 물들인다.
붉음은 사랑의 색이면서 동시에 상처와 고독의 색이다.
시간의 마모를 형상화한 절창
이 작품에서 가장 뛰어난 구절은 다음 부분이다.
겨울은 구두 굽처럼 닳아간다
겨울은 보통 지나가거나 끝난다.
그러나 여기서는 '닳는다'.
이는 시간의 소모를 촉각적으로 형상화한 표현이다.
구두 굽이 닳아가듯 인간의 청춘도,
사랑도,
기다림도,
서서히 마모된다.
짧은 한 줄이지만 삶 전체의 피로와 소진을 압축해 놓은 시적 성취라 할 만하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이름 하나
시의 종결부는 절제되어 있다.
네온싸인의 거리에서
마른 입술로
오래된 이름 하나를 듣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부르고 있다"가 아니라 "듣고 있다"는 점이다.
이름은 화자가 부르는 것이 아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이다.
그 이름은 과거의 연인일 수도 있고,
잃어버린 청춘일 수도 있으며,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일 수도 있다.
결국 시인은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그 공백 때문에 독자는 자신의 기억 속 이름을 불러 넣게 된다.
바로 이 여백이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이다.
총평
「깐소네가 흐르는 거리」는 도시적 우울과 상실의 정서를 음악적 리듬과 감각적 이미지로 정교하게 직조한 작품이다. 시인은 직접 슬픔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축축한 골목, 상한 바람, 외로운 입술, 닳아가는 구두 굽 같은 이미지들을 배치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비애를 체험하게 만든다.
특히 "겨울은 구두 굽처럼 닳아간다"와 "오래된 이름 하나를 듣고 있다"는 구절은 이 시의 정서를 집약하는 핵심 문장으로, 도시적 서정시가 도달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감각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 시는 결국 음악에 관한 시가 아니다.
깐소네를 빌려 사라져버린 시간과 사랑의 잔향을 듣는 시, 그리고 도시의 밤 속에서 자기 상실의 목소리를 듣는 시라 할 수 있다. 독자는 시를 다 읽고 난 뒤에도 한 곡의 오래된 깐소네처럼,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이 오래 귓가에 남는 경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