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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이사야(63)/믿음/기도
제목 : 히스기야가 선택한 믿음의 길
성경 : 사 37:1~20
찬송 : 539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30412 낙양교회 수요예배
사 37:1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사 37:2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 옷을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사 37: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사 37: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하니라
사 37:5 그리하여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사 37: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사 37:7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사 37:8 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떠났다 함을 듣고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그 왕을 만나니 립나를 치고 있더라
사 37:9 그 때에 앗수르 왕이 구스 왕 디르하가의 일에 관하여 들은즉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가 나와서 왕과 싸우려 한다 하는지라 이 말을 듣고 사자들을 히스기야에게 보내며 이르되
사 37:10 너희는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는 네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에 속지 말라
사 37:11 앗수르 왕들이 모든 나라에 어떤 일을 행하였으며 그것을 어떻게 멸절시켰는지 네가 들었으리니 네가 구원을 받겠느냐
사 37:12 나의 조상들이 멸하신 열방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및 들라살에 있는 에덴 자손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더냐
사 37:13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 왕과 이와 왕이 어디 있느냐 하라 하였더라
사 37:14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사 37:15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사 37:16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사 37:17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사 37:18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고
사 37:19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사 37:20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
36장은 랍사게를 만나고 온 신하들이 히스기야에게 보고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본문은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신실하게 대처하는 히스기야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랍사게를 만나고 온 신하들의 보고를 듣고 히스기야는 크게 낙심했지만, 절망에 빠져 있지 않고 하나님을 찾고 기도합니다. 마치 욥이 고난 가운데 끝까지 하나님을 찾은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경건한 성도의 특징입니다. 신실한 성도에게도 위기와 고난은 찾아옵니다. 그때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 요청
사 37:1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사 37:2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 옷을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신하들을 통해 랍사게의 협박과 회유의 말을 들은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왕이 입는 옷은 매우 화려하고 멋있습니다. 옷을 찢는 행위는 ‘나는 이 어려움 앞에서 더 이상 왕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겸손의 표현입니다. ‘굵은 베옷’을 입은 것은 지금 상황이 노예나 포로와 같이 비참하다는 뜻입니다. 요즘에는 옷을 여러 벌 두고 외출할 때마다 갈아입습니다. 그런데 옷이 전혀 의미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곧 죽게 되거나 사업이 망했을 때는 그 많은 옷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 신문 기자는 세계에서 가장 멋없는 옷이 환자복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그 옷만 입으면 예쁘게 보이지 않고 환자처럼 보입니다.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검진을 해보니 큰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평상시 입었던 옷을 벗고 기꺼이 환자복으로 갈아입습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왕의 공격과 그 신하의 욕설 앞에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사치를 즐기거나 왕의 권세를 나타낼 형편이 아니며 오직 정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자세를 확 낮추어야 살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얼마나 낙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아버지 아하스처럼 두려워 떨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하스는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강대국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으로 갔습니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신하들을 이사야에게 보내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사 37: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사 37: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하니라
신하들이 전하는 히스기야의 기도 요청 속에 현 상황에 대한 그의 인식과 절박한 심정이 잘 드러납니다. 히스기야와 그 백성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환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 환난은 하나님의 ‘책벌’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단어에는 회개하고 있는 히스기야의 자세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쳐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던 것, 애굽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던 것 등 자신의 과오에 대한 뉘우침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책벌의 결과로 유다는 이방 민족에게 ‘능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솔직한 고백입니다. 인간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3절은 위기 상황에 대한 탄식이고, 4절은 현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하나님이 도우시도록 기도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여기에서 히스기야는 단지 자신의 구원과 안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훼방하는 랍사게의 말을 하나님이 견책하시기를 바랍니다. ‘견책하다’(아카흐)는 ‘꾸짖다’ 혹은 ‘교정하다’라는 뜻입니다. 히스기야는 랍사게의 불경스러운 말이 잘못되었음을 확신하기에 하나님이 그것을 바로잡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이사야에게 요청합니다.
앗수르가 이미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정복했고(36:1), 예루살렘만 겨우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히스기야는 예루살렘마저 앗수르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간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스기야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엎드렸습니다. 살다보면 정말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도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길 없는 광야에도 길을 내십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아무리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거기서 길이 시작 됩니다.
하나님의 응답
사 37:5 그리하여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사 37: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사 37:7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이 즉각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첫 마디는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랍사게의 말이 “여호와를 능욕한 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랍사게 능욕에 먼저 분노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히스기야의 마음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7절은 하나님이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실 것인지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영을 그의 속에 두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영’을 가리킬 때 쓰이는 ‘루아흐’가 사용되었지만,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초자연적으로 감동하시고 능력을 주시는 긍정적인 상황과는 다릅니다. 마치 하나님의 교훈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과 지도자들에게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부어 주셔서 그들을 무지하게 만드신 것처럼, 교만한 앗수르 왕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실 것임을 의도한 것입니다. 그 결과 앗수르 왕은 소문을 듣고 고국으로 돌아가 거기에서 암살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이 선포됩니다. 이 말씀에 대한 성취는 3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앗수르 왕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교만하게 큰 소리쳤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주관하실 뿐 아니라 그의 나라 역사까지 주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최고의 전략가이십니다. 하나님은 산헤립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며, 그곳에서 그를 죽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유다를 위해 구원 계획을 다 수립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전략
히스기야가 랍사게의 말에 어떻게 응답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랍사게가 라기스를 떠나 립나를 치고 있는 앗수르 왕에게 합류합니다. 그렇다고 앗수르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나와서 싸우려고 한다는 소문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 사자들을 또 다시 보냅니다.
사 37:8 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떠났다 함을 듣고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그 왕을 만나니 립나를 치고 있더라
사 37:9 그 때에 앗수르 왕이 구스 왕 디르하가의 일에 관하여 들은즉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가 나와서 왕과 싸우려 한다 하는지라 이 말을 듣고 사자들을 히스기야에게 보내며 이르되
사 37:10 너희는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는 네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에 속지 말라
큰 싸움에 집중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빨리 접수하고 상황을 마무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앗수르 왕은 히스기야와 백성의 신앙의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합니다. 지금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며 항복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속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의 신을 믿었다가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고 덧붙이면서 말입니다.
사 37:11 앗수르 왕들이 모든 나라에 어떤 일을 행하였으며 그것을 어떻게 멸절시켰는지 네가 들었으리니 네가 구원을 받겠느냐
이 편지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라는 식으로 예루살렘의 신앙과 단결을 시기하여 마지막으로 욕을 퍼붓는 내용입니다.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일치단결하여 하나님만 믿으면 어떤 군대도 그들을 이길 수가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는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철저하게 하나님 한 분만을 붙들고 기도하면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욕을 얻어먹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시기심이 나서 죽을 정도로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악한 자들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인정합니다. 설사 산헤립이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 죽였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는 진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을 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존경합니다. 그러한 신앙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부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아니면 아무리 그럴듯한 소리라도 듣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방법이 아닌 세상적인 방법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것을 조금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천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히스기야가 잘한 점이 또 있습니다. 산헤립이 보낸 협박성 편지를 자기가 해결하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편지를 자기 품에 간직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하나님이 읽으시게 한 것입니다.
사 37:14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사 37:15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히스기야는 랍사게에게 협박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성전에 올라가 기도합니다. 이번에는 앗수르 왕의 글을 가지고 올라가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기도합니다.
사 37:16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사 37:17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앗수르 왕의 생각처럼 다른 신들과 다를 바가 없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각 피조계의 대표인 그룹사이에 계신 지존하신 분이십니다. 천하만국에 유일하시며, 창조주이십니다. 그런데 산헤립은 그 여호와를 열국의 신들과 다를 바 없이 취급하고 신뢰할 수 없는 신이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훼방한 것입니다(17절).
사 37:18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고
사 37:19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사 37:20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
앗수르 왕이 정복한 나라의 신들을 헛된 우상에 불과하기에 그 백성을 구원하지 못한 것입니다(18-19절). 그러나 여호와는 그것들과 전혀 다르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그 백성을 구원하셔서 여호와가 유일한 하나님이신 것을 천하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난과 고통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그것이 바로 절망입니다. 절망은 사건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날 때 절망이 아니라 믿음을 만들어 내십시오. 인생의 문제는 믿음으로 바라볼 때 은혜로 바뀝니다. 절망처럼 보이는 그 마지막 순간에 응답하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절망의 끝자락은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히스기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것을 명령하였고, 선지자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믿음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믿음에 화답하셔서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구원이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