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국립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이태주 역 정진새 각색 부새롬 연출의 햄릿
명동예술극장에서 국립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이태주 역 정진새 각색 부새롬 연출의 햄릿을 관람했다.
이태주(李泰柱, 1934년 ~ )는 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이다. 부산 출신이다.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연극 전문지 <드라마>를 통해 데뷔했다. 현재 단국대 명예교수로 셰익스피어 희곡과 영미희곡을 번역했다.
각색을 한 정진새는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극학과를 졸업했다. SF연극을 표방하며 [브레인 컨트롤], [세월호 오브 퓨처패스트], [시골여자], [액트리스 원-투], [2021 대학수학능력시험 통합사회탐구 영역] 등을 썼다. 설정과 설명으로 가득한 연극을 상상하고 있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부새롬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이자 연출가다. 순우삼촌, 마우스피스, 햄릿, 20세기 블루스, 달콤한 노래, M 버터플라이, 연변엄마 그 외 다수 작품을 연출한 발전적인 미래가 예측되는 연출가다.
국립극단의 햄릿은 원작과 다른 ‘햄릿 왕자’가 아닌 ‘햄릿 공주’의 이야기다. ‘여자 햄릿’이 무대에 오른 것은 사실은 연극사에서 오래된 일이다. 1899년에 프랑스 여성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주연한 ‘햄릿’이 있었고, 당시 햄릿의 나이보다 많은 여배우가 햄릿으로 나와 연극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번 햄릿역은 무대, 드라마, 영화를 가리지 않고 인상적인 연기파 배우 이봉련이 맡았다. 부새롬 연출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캐스팅했다. 정말 그것 하나였다”고 캐스팅 이유를 설명한다. 대신 오필리어(류원준)는 폴로니어스(김용준)의 딸이 아닌 아들로 나온다. 이봉련 이외에도 햄릿의 친구인 호레이쇼 역에 김유민, 마셀러스 역에 김별 등 여성 배역들이다.
‘햄릿’은 패륜적인 막장 복수극이다. 동생 클로디어스가 선왕을 살해하여 왕위를 차지하고는 형수 거트루드와 결혼한다. 그리고 조카 햄릿은 광기의 복수로 숙부를 살해하는 것이 줄거리다. 그 과정에서 주변에 있던 총리 폴로니어스, 오필리어 등도 모두 죽게 된다. 혈육 간에 벌어지는 이런 복수극이 셰익스인기작이 된 이유는 권력에 대한 탐욕, 양심 앞에서의 고뇌와 번민, 선과 악에 대한 질문, 진실과 위선, 사랑과 배반, 삶과 죽음을 둘러싼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기에 사람들은 ‘햄릿’을 읽거나 보면서 자신의 삶을 대입시키며 공감하곤 한다.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알고서는 햄릭의 복수가 깊은 실존적 고뇌를 거친 이후에 결행된 선택이기 때문이다. 괴테는 일찍이 햄릿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훌륭하고 가장 도덕적인 인간이지만, 영웅적인 기력이 부족하여 스스로 짊어지지도 못하고 던져버리지도 못하는 무거운 짐을 진 채 거꾸러진 인간이다.”
이번 ‘햄릿 공주’는 원작과는 달리 양심 앞에서 고뇌하기보다는 그 또한 권력욕을 가진 인물로 나온다. “착한 공주는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악한 공주는 뭐든지 할 수 있지”라고 말하면서 복수를 망설이지 않는다. 원작의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며 숙부 클로디어스를 향한 복수 앞에서 주저하지만, ‘악한 공주’에게는 그런 양심의 거리낌이 없다. 햄릿이 여성이라고 해서 ‘착한 공주’를 예상하는 것은 착각이다. 햄릿 공주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왕권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고 복수심에 불타는, 그래서 남자 햄릿과 다르지 않은 인물이다.
등장인물들엔 선과 악이 혼재돼 있다. 선왕을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하고 형수와 결혼까지 한 클로디어스에게도 선왕에 의해 조카 대신 적대국으로 끌려가 죽을 운명을 피해야 했다는 이유가 주장된다. 남편을 죽인 클로디어스와 패륜적 결혼을 한 왕비 거트루드에게도 햄릿을 지켜야 했다는 이유가 있다. 원작에서는 클로디어스를 맹종했던 폴로니어스도 양면성을 가진 인물로 나온다. 죽음을 맞는 순간 "더러운 왕가 놈들"이라고 외치며 욕망에 갇힌 권력을 질타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각색한 햄릿은 “인간은 자기들만이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해 왔어. 인간한테만 영혼이 있고 마음이 있다고 착각했지. 다른 모든 생명체는 마음이 없어서, 고통을 느낄 줄 모른다고 생각한 거야. 아니, 고통 자체를 모른다고 생각한 거지. 웃기지 않아? 모르긴 뭘 몰라?.... 인간은 얼마나 우스운가. 진실을 감추려고 온갖 애를 쓰지. 인간... 너무 싫어. 인간도 싫고 인간이 만들어낸 이 세상도 싫다.“
이런 대사는 권리를 빼앗겨 정치력을 상실해 버린 햄릿 공주의 인간혐오이기도 하고, 진실을 외면하고 생명을 경시한 인류에 대한 자조적인 성찰이다. 1600년대의 원작과 2020년대의 각색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 지점이다.
이봉련(햄릿)과 함께 김수현(클로디어스 역), 김용준(폴로니어스 역), 성여진(거트루드 역), 류원준(오필리어 역), 안창현(레어티즈 역), 신정원(오즈릭 역), 김유민(호레이쇼 역), 김별(마셀러스 역), 김정화(버나도 역), 이승헌(로젠크란츠 역), 허이레(길덴스텐 역), 노기용(레날도 역) 등이 출연해 호연을 펼친다.
무대 박상봉, 조명 최보윤, 의상 유미양, 분장 장경숙, 소품 김혜지, 음악 카입(Kayip), 음향 안세운, 무술 이국호, 움직임 이경은, 조연출 조예은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국립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이태주 역 정진새 각색 부새롬 연출의 햄릿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박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