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청과시장
1.괘종시계의 아우성이 아니다
새벽 한기가 아니다, 우리를
잠에서 화들짝 솟아오르게 하는 것은
절벽에서의 추락, 혹은
산사태 아래의 매몰이다
살아있구나
간밤 그 텁텁한 꿈 죄다 녹아있을
냉수사발 들이켜며
세 번 외고
재빨리 무장을 꾸리자
문을 나서면 우루루 밀려와
텅텅 이마에 부딪혀
한켜씩 벗겨지는 이놈의 어둠
이놈의 어둠
2. 주머니 깊숙이 만져지는 차표모냥
일상은 절대적인 것이리라
숙취의 버스, 그 냉기 속에서도
우리네 졸음은 잠시 잠시 깊어
졸음 속에 마대는 하냥 터지고
쏟아진다, 마늘
쏟아진다, 고추, 양파, 무우 배추
더불어 뒹굴고, 부딪혀 멍들고
그렇게 또 시세가 하락하는 이것은
우리네 추락의 꿈이리라
3.어디보자, 내 새끼
중앙선 돌바람 속을
낙동대교 칼바람 위를
난민처럼 실려오며
얼지말자 서로 몸 부비다가
가마니 한 귀 나눠덮고
이제사 새벽잠 간신히 들었구나야
무장한 사람들이 슬금 모여들어
호각을 불면 여기 저기서 깨어나는
고향 단위의 청과
일없는 네놈들을 위해
네놈들의 은밀한 거래를 위해 우린
수화를 한다
손, 손들이
허공에 순간 파드닥거리다
핑그르르 떨어질 때마다
네놈들은 다시 나뉘고
어디론가 실려가고
빈 곳은 햇살이 내려와 메꿔주고
치밀한 의삭 끝에 남은 허기를
콩국사발 막걸리 사발로 달래며
비로소 우리는 네놈들의 안부를 묻는다
4.내 무심코 질펀 밟는 진창 속에도
몇 마리 벌레 있을까
낮술에 취해
더러는 좌판 위에 나자빠지는
웃음의 하루라도 어쩔거나
내가 퍼붓는 쌍욕과
내게 뜯기우는 머리채가
우리가 풀어나가야 하는
하루분의 매듭인데 어쩔거나
매듭은 어지럴수록 좋다
일당은 치열할수록 좋다, 좋아
5. 땅을 닦으면 먼저 묻어나는 어둠이다
실려갈 것은 실려가고
언 배추, 바람 든 무우, 밟힌 밀감, 농한 사과
때국 절인 면장갑같은 내 하루도 어둠 저편으로 실려가고
휘감기는 피로
아득한 매몰의 피로를 축축 뜯어내는 국밥집에서
구겨진 지폐를 애서 펴는 우리
오늘도 악착같이 살았네 그려
다행이지
어두워 내 돌아가야 할 마을 지붕 위에
얼마만인가, 오늘은 참 맑은 별이 떴네
식구가 많은 너와, 식구가 없는 그와
더불어 소주 한 병 나누고 헤어지는
새벽 청과시장
밤이 와도, 새벽
새벽 청과시장.
<3인 시화전 시들>
-20대에 김상득씨와 같이 대구에서 시화전한 시들이라고 알고 있음
첫댓글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