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하룻밤' 계엄령 선포로 대혼란에 빠져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은 제1야당 대표의 '배제'를 노렸다는 보도도 있다. 야당 세력은 윤 정권에 대해 탄핵 공세를 펴고 있고, 궁지에 몰린 윤 대통령은 '폭주'한 것인가. 윤 정권은 이대로 자멸할 수 있다.
(히라이 토시하루, 한국 한양여대 조교수)
■ 그때 서울 시내 상황은...
그 큰 사건을 알게 된 것은 서울의 중심부, 구시가지의 광화문에서 회식하고 있을 때였다. 동석하고 있던 미디어 관계자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조금 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만, 곧 방송국으로 돌아갑니다. 이거 큰일 났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계엄령을 내리고 있어요"
그때까지의 환담 분위기는 일변했다. 한국의 계엄령 등 아주 오래전 일이라고 누구나 생각했는데, 그것이 이 시점에서 발령된 것이다. 그야말로 잠꼬대다.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한국 보도를 확인하자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제목의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계엄령에는 경비계엄과 보다 엄격한 조치가 취해지는 비상계엄 두 가지가 있다. 비상계엄이 내려진 것은 1980년 민주화운동 때 이후 44년 만이라고 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이 '종북세력·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한다'는 말이었다. '척결'이란 도려낸다는 뜻이고, '종북세력'이란 북한을 따라 정부의 전복을 물고 늘어지는 세력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전쟁입니다. 큰일 났어요"
함께 있던 한국인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황급히 집에 갔다. 귀로, 서울의 거리는 언제나처럼 평온했고 계엄령이라는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44년 만의 계엄령을 받고 역사적 순간이라고 웃으며 말하는 사람의 모습이 있었을 정도일 것이다.
난리가 난 곳은 마시던 지점에서 5km가량 남서쪽에 위치한 국회의사당이었다. 집에 도착해 TV를 켜자 국회의사당에 군대가 투입되는 영상이 나왔다. 그 규모는 수십 명 정도로 보이며, 3대의 헬기가 국회 부지 내에도 착륙했다고도 보도되었다.
날이 바뀌어 4일 오전 1시경 국회에서는 계엄령 해제 요구가 통과됐다. 해제 요구에 찬성표를 던진 사람은 그때 국회에 모일 수 있었던 국회의원 전원 190명. 그중에는 여당 당원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당·국민의힘의 한동훈 대표도 「위법·위헌」이라고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즉, 여야가 누구 하나 대통령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리고 가결 30여 분 만에 투입됐던 군대가 숙연히 국회 부지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은 발령 6시간여 만에 계엄령을 해제했다.
한국 언론에서는 계엄령이 선포된 경위와 그 이유에 대해 한창 논의 중이다. 보도부터 그 내용을 보자.
■ 왜 지금 한국에서 계엄령?
이번 계엄령은 여권 인사는커녕 한국군 참모들에 대해서도 사전에 알려지지 않았다. 동맹국인 미국 백악관에도 아무런 타진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보도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계엄령 발령이라고는 하지만 군대 투입 규모는 수십 명 규모에 불과했고 국회를 봉쇄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하룻밤 쇼처럼 끝났다. 이에 대해 TV조선 보도프로그램에 출연한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이) 정치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라서 그런 것이냐" 며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표적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투입된 군대가 대표실에 난입하는 모습이 CCTV를 통해 확인됐고, 이 대표를 구속하려 했다는 주장이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오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해 온 윤 대통령에게 국내에서 대립하는 야당은 종북세력으로 비친다. 따라서 이번 계엄령 발령은 이 대표의 배제가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 윤정권 붕괴 자멸
금년 4월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국민의 힘은 대패했다. 이후 윤 대통령의 정권 운영은 암초를 만났다.
지금까지 다수의 정부 관료에 대해 탄핵소추가 발의됐으며 검사나 기타 정부의 핵심 보직에 있는 인사들도 탄핵의 표적이 되고 있다. 예산안도 통과시키지 못하는 사태에 빠졌고, 윤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 회견에서 정당한 국가기관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야당 측을 비난했다.
윤 정권의 지지율은 20% 안팎으로 낮은 수준이다. 배경에는 한국 경제의 정체가 깔려 있다. 지난달 말에는 2024년과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이 함께 하향 조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정체된 경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배경으로 야당 측은 윤 정권 비판을 격화시켜 왔다. 궁지에 몰린 윤 대통령은 폭주했나.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야당의 정부 비판이 국가운영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명분을 든다 해도 애초에 윤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국민이 이번 계엄령을 납득할 것 같지는 않다.
나도 계엄령 선포 소식을 확인했을 때 이런 일을 해서 정권이 잡히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뇌리를 스쳤다. 실제로 퇴근길에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윤 대통령이 사퇴하지 않으면 군대 동원 내란죄를 근거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조속히 이뤄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탄핵투표로 민의를 따지려면 국회에서 3분의 2가 넘는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는 총 의석수 300석 중 야당 세력은 192석에 머물고 있다. 3분의 2에 한 걸음 더 부족하다.
이번 계엄령 해제 요구에는 여당 국민의힘까지 포함해 국회에 모인 모든 의원이 찬성하고 있다. 계엄령 발령을 비판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탄핵을 요구하는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에 따라 윤 정권의 운명이 크게 달라진다.
히라이 토시하루/ 1969년, 토치기현 아시카가시 출생. 가나자와대 이학부 졸업 후 도쿄도립대 대학원에서 독일 문학을 연구해 한국으로 건너간다. 전문은 한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정신사. 한양여대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