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만족성 (잠 20:13-15)
13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 14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이 시간에는 “성경의 만족성”이라는 제목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 영혼을 가장 복되게 하고 가장 기름지게 하는 음식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시19:7-11) 노래했습니다.
성경은 어떤 사람에게 진정 만족할까요?
1. 부지런히 성경을 보는 사람입니다.
13절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 게으른 자에 대한 경고입니다. 잠언에는 게으른 자에 대한 경고가 많습니다. 게으르면 답이 없습니다. 국가도 어떻게 해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는 자에게 눈을 뜨라고 말씀합니다.
영혼의 양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보기에 게을러서는 영혼의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 만나가 언제 내렸습니까? 출16:13-14에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그리고 21절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새벽에 내려 아침에 거두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지런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많이 읽어 닳을수록 좋습니다. 성경 깨끗한 건 자랑이 아닙니다. 보고 또 보고 일고 또 읽고 밑줄 치고 또 밑줄 치면서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여러분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속일 수 없어요. 사람은 먹은 것만큼 크고 힘을 씁니다. 영의 양식 많이 먹어야 믿음도 생기고 큰 사람 될 수 있습니다.
다윗 보세요. 시119:147-148에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했습니다. 다윗보다 더 분주하고 바쁜 사람 있을까요? 우리 육신 하나 추스르며 사는 것도 분주해서 이 난린데 왕의 몸과 마음 그리 편안한 자리 아닙니다. 그래도 성경부터 보았습니다. 그랬기에 그 엄청난 믿음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졸음부터 오려고 하는데 그것은 성경을 사모하지 않거나 성경 내용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평소 안 보던 사람이 갑자기 성경 마니아가 되겠습니까? 요즘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 마니아(Mania)란 집착증을 일컫는 말입니다. 약간은 부정적인 말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마니아가 될 필요가 있어요.
그러므로 기도하고 보세요. 쉬운 책부터 보세요. 신약부터 보세요. 많이도 좋지만 매일 빼놓지 않고 꾸준히 보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항상 가까이 하세요. 그렇게 하면 많이 볼 수도 있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진정한 영적 부요와 만족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알지 못해 갈등하더라도 계속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14절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이건 틀림없는 말입니다. 사지 않을 사람은 무조건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살 사람은 좋다 나쁘다 싸다 비싸다 따집니다.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참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돌아간 후에는 그 물건을 잘 샀다고 자랑합니다.
성경도 처음 볼 때는 의문도 들고 갈등합니다. 그러나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모든 말씀이 값지고 자랑스런 보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이 밤송이와 같다고 하지 않습니까? 달콤하고 고소한 밤을 먹으려면 가시를 벗기고 또 단단한 밤 껍질을 벗기고 또 떫은 막을 제거해야 하는 것처럼 성경도 그러합니다.
성경을 봐도 처음에는 배경도 모르고 단어도 모르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 큰 원인은 영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영의 흐름을 타지 못하면 이해되지 않습니다. 영적 체험이 없으면 무슨 말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 알고 나면 이보다 더 귀한 책은 없습니다. 믿으면 믿는 대로 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신비로운 책입니다. 성경은 쉬우면서도 어렵고 어려우면서도 쉽고, 다 해석한 것 같아도 다 해석했다고 볼 수도 없고, 보는 자의 관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풀려나옵니다. 성경 주석 하나 가지고 있다고 다 아는 것처럼 하다가는 낭패입니다.
처음 예수 믿고 성경을 알고 싶어서 신학교 다니시는 전도사님에게 내촌감산 선생이 쓰신 구로자기 주석을 사다 달라고 해서 보는데 아는 사람이 봐야 알지 모르니까 더 혼란만스러웠습니다. 삶의 적용도 되지 않고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습니다. 성경도 꿸 줄 알아야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보면서 전체적인 주제와 맥을 알아야 합니다. 총회헌법 대요리문답 제 5문에 “성경은 주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성경은 주로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게 믿을 것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무가 무엇임을 가르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고, 예수님은 우리 구주이시며, 성령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구속사적이고 신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걸 알면 답답하지 않습니다. 뭔가 우리를 위한 구원의 말씀일 것이다 라는 답을 가지고 성경을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자적으로도 보지만 신령한 관점에서도 봐야 합니다. 가장 좋은 성경해석학 교과서는 히브리서입니다. 이 책을 교과서로 삼아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학자 중에서 히브리서를 그런 관점에서 제대로만 써놓으면 대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3. 성경을 읽고 들을 뿐 아니라 행하는 사람입니다.
15절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지혜의 우월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혜가 세상 사람들이 가장 가치 있다 생각하는 금이나 진주보다 더 가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했습니다. 그냥 지혜가 아니라 말하는 지혜니까 일종의 행하는 지혜입니다. 이처럼 성경에도 금과 같고 은과 같고 진주 같은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더 귀한 것은 그 말씀을 믿고 읽고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계1:3에도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했습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께서 외치시던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곁에 있으니 복음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임합니다. 장래만이 아니라 당장에 복이 오기 시작합니다.
눈으로도 읽고 글로 쓰기도 하지만 입술로도 읽어보세요. 독서량과 속도에 매이지 말고 뜻을 생각하면서 읽어보세요. 음성으로 읽는 은혜도 대단합니다. 느 42장을 보면 율법을 읽고 해석만 해줘도 모든 백성들이 은혜를 받아 울며 회개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행하는 가치는 구원을 얻게 하고 영적으로 풍성함은 물론, 삶의 원동력 세상을 이기는 힘을 얻게 하며, 경제의 복, 건강의 복, 형통의 복, 승리의 복, 평안의 복 등 현실적 가치도 무한합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습니다. 혹 음식 없이 살 수 있다 해도 성경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바쁘더라도 그 무엇보다 부지런히 성경 보고, 알지 못해 재미없고 의문 나더라도 기도하고 성경 보고, 또 읽고 들을 뿐 아니라 행하므로 우리가 알지 못한 만족하고 귀한 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