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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스승은?
성경본문 : 느헤미야 5:14-19
14.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왕 이십년부터 삼십 이년까지 십 이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15.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 토색하여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취하였고 그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16. 도리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
17.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일백 오십인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사면 이방인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18.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하나와 살진 양 여섯을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찌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
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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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회가 스승의 주일로 지키며 특히 교회에 수고하시는 교사님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5월 16일은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그 날짜의 신문기사를 보면 오늘 우리 학교의 선생님들에 대한 위상에 위기감을 느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생활지도부 교사 426명의 대답 중에서 학생들로부터 신체적인 폭행을 당한적이 있다고 3.8%가 말했습니다. 욕설과 폭언은 114명 26%, 폭행을 하겠다는 위협은 76명, 학교에 세워둔 자동차등이 파손된 교사는 189명 40%이며, 학교 홈페이지에 인신공격적인 글을 올려서 피해를 본 교사는 모두 187명 43%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이밖에 학교 건물벽에 선생님에 대한 욕설과 험담이 적혀있는 교사는 228명 54%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우리 교권의 추락이 심각한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는 세태, 학생이 선생님을 구타하고 욕하며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이미 교육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갈대까지 갔으며, 타락 할 대로 타락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어른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며, 자녀가 부모를 모르면 자녀가 아닙니다. 학생이 스승을 모르면 학생이 아닙니다. 옛적에 성인들이 우리에게 가르치시기를 석자 물러서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것이 제자의 도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우리 선생님들이 더러 계십니다.
스승의 날에 우리가 진정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실추된 선생님들의 명예를 회복시켜드리고 긍지를 갖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4년간 선생님들은 촌지 추방이라는 명목 때문에 이 나라의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할 분들이 개혁의 대상이 되어 정부가 앞장서서 교사의 권위와 사기를 땅에 떨어뜨리고 범죄자 취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스승을 존경하겠습니까? 스승의 날에 학교는 텅텅비었습니다. 선생님 한 분의 인터뷰 내용 중 그는 “스승의 날에도 한번 대접을 받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촌지 소리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 학교 선생님들의 좌절과 울분과 무기력에서 벗어나도록 해야하며, 명예회복을 해야 하는 정책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스승이 없는 사회는 교육에 미래가 없는 사회입니다.
진정한 교육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학생들에게 예의 바른 인간을 양육하는 것과 어른 공경하는 도리를 바르게 가르치는 일과 선과 악의 구별과 판단의 표준을 가르쳐 주는 일입니다. 이것이 안되는 교육은 실패한 교육입니다. 그러나 이 교육이 무너졌습니다.
희랍의 역사 철학자였던 크세노폰이 소크라테스에 대한 일화를 기록한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테네의 군관학교를 갓 졸업한 풋내기 청년 장교가 소크라테스를 찾아왔습니다. 자기의 공부한 것을 자랑삼아 “우리 선생님이 언제든지 좋은 사람의 행렬은 앞과 뒤에 두고 나쁜 사람은 행렬의 가운데 두고 가라고 가르쳐 주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매우 좋은 가르침을 받았네! 그런데 자네 선생님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가르쳐 주던가?”라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소크라테스는 “그러면 돌아가서 자네 수업료를 다시 찾아가지고 오게”라고 말했다는 일화입니다.
이처럼 선과 악이 구별되지 않고 판단의 표준을 가르쳐 주지 않는 교육은 어떤 종류의 교육을 무론하고 기본적인 인간교육에 실패한 교육이라고 할 것입니다.
며칠 전 유명한 모 배우가 17살된 어린 소녀를 성적으로 매매를 했다고 해서 크게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17살된 소녀가 만나는 사람마다 아무게 배우와 함께 잠을 잤다며 그 배우는 내 밥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17살된 소녀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세태입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분별력을 상실했습니다.
제가 5월 첫 주일 어린이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오늘 우리 시대에 진정한 교육의 마지막 보류가 교회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과 악을 누가 가르쳐 주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면 예의 바른 인간이 되며, 선과 악을 분별하는 인간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든 교사님들 이 사명 가지고 수고하며 힘쓰고 계신줄 알고 감사드립니다.
훌륭한 인물의 배우에는 훌륭한 스승이 있습니다.
여러분! 헬렌 켈러를 잘 아시지요? 삼중고의 아픔을 가지고 세상에 왔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 어린 아이를 설리번 선생님께서는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을 써주고 표시해 주면서 가르쳐 그가 인문학 박사와 법학 박사가 되도록 까지 가르쳤습니다. 위대한 스승이 있었기 때문에 위대한 헬렌 켈러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훌륭한 제자를 양성하며, 훌륭한 감독은 훌륭한 선수를 만들어 냅니다. 며칠 전 스코틀랜드와 축구를 했는데 4:1로 이겼다고 우리 한국 선수들과 모두가 신이 났습니다. 누구 덕입니까? 배후에 히딩크 감독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 주일학교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교사님들,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성 하시는 모습 감사합니다. 그러나 내가 10년을 가르치고 5년을 가르친 그 아이들 가운데서 진정으로 믿음을 가지고 내 제자라고 말하면서 길러낸 제자들이 몇 사람이나 되는지 이 시간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스승의 상은 어떤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느헤미야는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지도자상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런 인물로 평가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주전 445년 페르시아의 수산궁 아닥사스다 왕의 장관으로 임금을 받드는 고위직에 있었던 분입니다.
하루는 자기 동생이 돌아와서 고국의 참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성문이 다 무너지고 성벽이 다 불에 타고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환란 중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의 수심어린 얼굴을 본 임금님께서 “무슨 일로 그렇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는 임금에게 조국의 어려움 당함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임금님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어 고국으로 보내 일을 하도록 명을 내리며 일을 마치고 꼭 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국에 돌아가서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모든 수고를 하며 마침내 성벽을 쌓았습니다. 또한 유대민족의 신앙의 재건과 신앙의 부흥을 위해 지도자로서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훌륭한 지도자는 훌륭한 스승의 상을 보이게 됩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기업이나 정부나 할 것 없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존경받는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존경받는 지도자가 그 개인과 집단의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보여준 민족적인 스승의 상은 무엇입니까?
첫째,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고국에 있는 자기 백성의 아픔을 들었을 때에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임금을 받드는 고위직을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고난에 함께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명의식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확신이 없는 지도자는 환란과 어려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우리 선생님들 월급만 받고 일하려고 하면 얼마나 그 일이 힘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이 학교에 선교사로 보내주셔서 이 시대에 청소년들을 바르게 지도하고 이 나라에 재목들로 바르게 길러서 앞으로 이 아이들을 통하여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야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일하신다면 여러분의 일터는 바로 선교지가 될 것이며, 여러분이 하는 일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게 되면 내면의 세계와 내가 일하는 곳이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가 있습니다.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 우리 선생님들이 사명 가지고 학생을 가르칠 때는 보람되고 즐겁고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열매가 많이 맺혀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제가 맨 처음에 하나님 앞에 사명을 받았을 때에 저에게 두 가지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하나님의 일인 영혼을 위한 일, 영원한 일 보다도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였습니다.
그 전에 제가 늘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잘 살고 좋은 집 짓고 아내와 함께 어떻게 멋있게 살아볼까? 하는 것이 제 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명을 받고 나니 그것은 썪어져 없어질 것들, 내가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가! 이제부터는 내가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제게 주어진 사명이었습니다.
☛둘째는 내가 이 일을 하게 되면 아무리 어려운 역경과 시련이 다가와도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다는 그 기쁨이 가슴에서 솟아났습니다.
그리고 신학교를 갔습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이 두 가지가 저에게 항상 힘이 되어 주어서 목회의 길이 힘들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목사가 이것 저것 바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책도 봐야하고, 기도도 해야 하고, 여러분들을 돌봐주어야 하며, 대외적인 활동도 해야 됩니다. 그래서 12시 전에 잠을 잘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한지가 하루 이틀이 아니라 20 여 년 동안 해왔습니다.
월급 준다고 이 일이 될 수 있을까요?
만약 월급을 받고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직장을 수 없이 옮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명을 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고, 때로는 오해도 받아야 하며, 여러분들의 요구를 다 맞추어 주려고 힘써야 합니다.
월급 가지고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사명을 받았을 때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때문에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사들이여! 청소년은 우리의 내일이며, 이 나라의 장래이고, 천국 권세의 재목들입니다.
학교에서 주일학교에서 청소년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중학생들을 가르쳐 10년 후면 그들이 25세, 20년 후면 35세이며, 대학생들을 가르쳐 10년 후면 사회의 중견들이 되며, 20년 후에는 사회의 명사들이 되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가르치는 자의 보람이며 축복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다시 40살로 돌아가서 목회를 새로 하게 하신다면 어른목회 보다 젊은 대학생들 목회에 힘을 많이 써서 일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교사님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스승은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존경받는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누가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까? 모범을 보일때 입니다. 말과 행동이 본이 되어질 때에 존경을 받고, 존경을 받는 스승이어야만 제자가 따라며 배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몸으로 지도자의 모습을 보입니다.
오늘 본문에 “그가 유다 총독의 지위에 있었지만 백성들과 아픔을 같이 하기 위해서 총독의 녹을 받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백성들을 위해서 그 돈을 다 썼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세월이 12년 동안이나 되었으나 백성의 아픔과 고난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스스로 모든 권리와 힘을 유보했습니다.
지도자는 자기 하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면 따라오지 않습니다. 지도자는 자기의 모든 주어진 권리를 유보할 때에 백성들이 그 지도자를 따라줍니다. 자기의 모든 재산을 털어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며 백성들과 고락을 같이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백성과 자기를 동등하게 여겼습니다. 성벽을 쌓을 때에도 같이 수고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그를 존경하게 되었으며, 놀랍게도 성벽을 52일 만에 다 쌓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시대에 존경 받는 선생님들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 교사님들, 주일학교 선생님들, 교회의 직분자들 모두 존경 받는 위치에 서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사랑을 실천하셔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자기의 재물을 가지고 자기 백성들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했습니다. 하루에 소 한 마리와 살찐 양 여섯과 닭도 준비했으며, 10일에 한번씩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으며 이같이 할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백성의 부역이 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백성들의 부역이 중하여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면서 고락을 같이하고 아픔을 같이하며 사랑을 베풀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자라야 정신이 건강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유치원에 평소에 자주 가지 못했으나 죄송하지만 제 외손녀 아이가 입학한 후에는 저도 모르게 자주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죄송하지만 나도 모르게 발이 자주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유치원에 올라가 제 손녀만 안아주면 되겠습니까? 모든 아이들이 다 달려오면 안아주어야 합니다. 힘이 있을 때에 다 안아줄 수 있으나 힘들 때에는 머리만 만져 줍니다. 이 아이들을 똑 같이 만져주고 안아주고 해야 사랑을 받고 자랄 때에 그들의 마음이 열리게 되어있습니다. 인간은 사랑을 받을 때 감동을 받고 감동 받아야 변화되어지는 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에 저의 고향이 경남 지수인데 며칠 전 신문에 난 것처럼 그곳은 이병철씨, 럭키 구인회씨, 효성 재벌 등이 그 학교 출신입니다.
해방직후 제가 3학년에 편입했는데 그때에는 나이 많은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학생들을 한 반으로 모아 특별반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반은 아이들 수가 많아 저는 특별반으로 전학이 되고 그 반에서 제가 나이가 가장 어리게 되어 선생님께서 저를 특별히 사랑해 주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받게 된 저는 그때부터 책을 보는 재미가 생기고, 공부를 잘 해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때부터 책을 가까이 하게 되어 그 후 제가 줄곧 학교에서 우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선생님들은 한 분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저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신 3학년 이병희 담임선생님은 이름도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베풀어주신 그 사랑 때문에 이렇게 제가 책을 좋아하는 학생이 되었으며, 그 이름이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관심과 사랑이 제자를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사랑으로 연결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학생과 교사는 돈으로 연결되어져 있지만 그 학년이 넘어가면 그만입니다. 그 학교를 졸업하면 그만입니다. 선생과 학생은 이렇지만 스승과 제자는 이렇지 않습니다. 스승과 제자는 일생동안 끊어지지 않는 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물리대 교수이셨던 이훈구 교수님은 우리가 젊었을 때에 존경 받던 이름 있는 교수님이셨습니다.
이분의 제자 한명이 구치소에 갔습니다. 구치소에 가셔서 그 제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괜찮다! 세상을 살려면 별 일을 다 겪어야 하는데 마음 건강하고 몸 건강해라”하고 말했습니다.
그 제자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또 어떤 학생이 약혼자를 데리고 인사하러 왔는데 그 학생이 학생회 회장으로 입후보했을 때 신문에 난 프로필을 오려서 약혼자에게 주면서 “자네 약혼자가 이런 사람이라네”라고 관심과 사랑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스승을 그 제자들이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넷째는 참된 시대의 스승은 꿈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도탄 중에 있는 자기의 백성들에게 성벽을 쌓게 하면서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민족의 부흥운동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성수주일을 하게 만들고, 십일조 생활을 하게하고, 이방 여자들과 결혼한 사람들은 다 정리하게 만드는 유대민족의 충흥을 위한 꿈을 그들에게 심어주고 실현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제자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를 했다고 하지만 우리 민족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민족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좌절 가운데서도 박 대통령은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 나라에서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그 민족이 할 수 있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용기를 불어 넣어 주고 신념을 갖게 하였습니다. 이 민족에게 꿈을 심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들에게 꿈을 심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도자는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총독이지만 12년 동안이나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녹을 받지 않고, 다른 총독들 처럼 텃새하지도 아니하고, 뇌물을 먹지 아니했으며,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대접을 하면서 “하나님 내가 하는 이 일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며 성벽이 52일 만에 완공이 되었을 때에 그는 자기를 나타내지 아니하고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지도자가 이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밖에 나가서 이 시대에 꼭 느헤미야와 같은 선생님과 교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시대의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본받는 우리 성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진정한 스승을 상실한 시대라고 말하지만 느헤미야와 같은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과 지도자가 우리 가운데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진정한 스승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사명 갖고, 본을 보이시고, 사랑을 실천하시고, 꿈을 심어주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의 모습으로 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