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절을 받아들인 사람
대상 17:1-4
조상호 목사
오래 전 부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부산시내 모전화국에 근무하는 한 남자가 전화국 근처에 있는 어느 다방의 마담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다방의 전화료가 밀리자 ’잘 봐주겠다‘고 하며 술대접을 받은 것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 다방을 뻔질나게 출입하며 기회를 노리다가 큰 맘 먹고 프로포즈를 했는데,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그 남자는 다방에 연결되는 전화선을 차단하여 통화를 못하게 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거절을 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이야기와 같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큰 맘 먹고 프로포즈를 했지만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부모님에게 오랜만에 용돈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취직을 위해 나름대로 정성껏 CV를 작성하여 제출했지만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믿었던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절당했을 때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절당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을 거절당했다고 분노한다든지 억울해한다든지 폭력을 동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술을 마신다든지 절망한다든지, 심하면 목숨을 끊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본인에게 해만 될 뿐입니다.
☛둘째로 ‘이성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절당한 이유와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거절당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절당했다고 좌절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자신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큰 발전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많은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합니다.
☛셋째로 ‘신앙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반응은 이성적인 반응과는 차원이 다른 반응입니다.
합리성이나 논리에 근거를 두고 푸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오는 반응입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약속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신앙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거절당했을 때 어떻게 반응을 하십니까? 감정적으로 반응하십니까? 이성적으로 반응하십니까? 신앙적으로 반응하십니까? 어떻게 반응을 하십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거절을 당했지만, 신앙적으로 반응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다윗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사울 왕에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의미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사울 왕을 피해 오랫동안 피난살이를 했습니다. 온갖 고생과 어려움 끝에 20년 만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어느 누구도 감히 따라오지 못할 명예와 큰 권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예루살렘으로 옮겨놓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함께 제사를 드렸던 백성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지만, 다윗은 문득 하나님의 언약궤가 성막의 휘장 아래에 초라하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보관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겠다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던지 시편 27편 4절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야훼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야훼의 집에 살면서 야훼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그는 평생 동안 오직 한 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야훼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 그의 가장 중요한 소원이었습니다.
또 시편 69편 9절을 보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위하는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이처럼 성전을 사모하는 다윗은 성전건축의 소원을 가지고 나단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에 있도다.”(1절)
자기는 백향목으로 만들어진 호화로운 궁궐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초라한 천으로 덮여 있는 장막 속에 방치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에게 언약궤를 보관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겠다고 말합니다.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다윗의 소원을 들은 나단 선지자도 큰 감동을 받고 마음에 소원대로 행하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에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에게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다같이 3절과 4절을 보겠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야훼의 말씀이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무슨 말입니까?
성전을 건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보관할 성전건축을 그렇게도 소원했지만,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서 굉장히 보기 드문 장면입니다.
성경, 특별히 시편을 보면 그가 하나님의 역사를 많이 체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3편 4절에서 “내가 나의 목소리로 야훼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도다.”고 말씀하고 있고, 시편 34편 17절에서 “의인이 부르짖으매 야훼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고 말씀하고 있고, 시편 40편 1절에서 “내가 야훼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다 다윗이 고백한 말씀입니다. 다윗의 인생을 보면 그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역사하심을 수도 없이 체험했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으로부터 거절을 당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전건축을 거절당한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자기의 궁궐을 건축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많은 자녀를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적들을 없애 달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거절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역대상 22장 7절과 8절에 보면,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야훼의 이름을 위하여 선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간음죄를 덮기 위해 죄 없는 우리아를 살해하고 수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피를 본 다윗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그의 아들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셨습니다.
다같이 11절과 12절을 보겠습니다.
“네 생명의 연한이 차서 네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면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자기 대신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시 말하면 성전건축에 대한 소원이 하나님께 거절당했을 때, 다윗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거절을 받아들이라.
첫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거절을 받아들였습니다.
다같이 16절을 보겠습니다.
“다윗 왕이 야훼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야훼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나님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거절을 받은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호들갑을 떨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습니까?
아니면 신하들을 소집해서 상의를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조용히 꿇어앉아 모든 것을 수용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할 때, 다윗처럼 하나님의 거절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엡3:20).
옛날 임금님이 키우던 개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러나 짓지도 않고 하는 일이라곤 머리를 아래 위로만 흔드는 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님은 "내 개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 수 있게 하는 사람에겐 큰 상을 내리겠노라"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며칠 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개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게 만들어 보려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마지막으로 한 남자가 007 가방을 들고 들어섰습니다.
"제가 개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도록 해보겠습니다." 하더니 007 가방에서 벽돌을 한 장 꺼내어 개에게로 다가가더니 느닷없이 개의 머리를 벽돌로 두 세 번 내리찍자, 놀란 개가 뛰다시피 임금님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그 남자는 개를 빠끔히 쳐다보자 한마디 했습니다.
“더 맞을래?" 개는 겁에 잔뜩 질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댔습니다.
그 사람은 많은 상금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일이 있은 후 개에게서 또 다른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젠 개가 고개를 늘 좌우로만 흔들어대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임금님은 개의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 수 있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노라고 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으나 모두 실패하고 돌아갔습니다.
또 그 007 가방을 든 남자가 마지막으로 들어섰습니다.
"제가 개의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게 해 보겠습니다."
그러더니 007 가방을 열고 벽돌을 보이면서 개에게 한마디를 툭 던졌습니다.
"너, 나 알지?"
개가 고개를 어떻게 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007 가방과 벽돌을 들고 서계신 분은 아닙니다.
그런데 주위에 보면 이 유머에 나오는 개처럼, 외부적인 압력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수용성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거절하신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원망대신 감사하라.
둘째로 다윗은 원망대신에 감사했습니다.
다윗은 그토록 소원하던 성전건축의 꿈이 거절당하였지만, 오히려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17절에서 ‘야훼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들 같이 여기셨나이다’ 18절에서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영예에 대하여 이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불평대신 과거를 회상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감사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NO'라고 응답하셨다 할지라도, 다윗처럼 환경과 상관없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랜드 그룹의 박성수회장님이 이런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지난 20년 동안 그렇게 화를 잘 냈다고 합니다. 직원은 물론이고, 특별히 아내에게 화를 많이 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큐티도 하고 기도도 했지만, 치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회사에 어려움이 있어서 2000년도에 미국에 들어서 생활하면서 3년 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노동도 하고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 종업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그 수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한국에 돌아온 다음부터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에게도 감사했습니다.
특히 아내에게 ‘여보 감사해요’ 그랬더니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더랍니다.
20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감사하다고 하니까 아주 이상하게 보더랍니다.
그런데 1년을 계속해서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하니까 그제 서야 상처로 말미암아 꽁꽁 얼어붙었던 아내의 마음이 녹더랍니다.
박성수회장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분노는 감사하지 않을 때 생긴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감사하자 화가 사라지고, 감사하자 부부싸움이 사라지고, 감사하자 가정에 천국이 임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면 행복해집니다.
화가 사라져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면 화를 내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절대로 저절로 되지 않고 훈련으로 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원망도 습관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든지 부정적으로 보고, 단점을 보고, 안 되는 쪽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처럼 원망 대신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거절당했다 할지라도, 다윗처럼 환경과 상관없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때 역사가 나타납니다.
미래를 준비하라.
셋째로 다윗은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역대상 27장 2절에서 “이에 다윗 왕이 일어서서 이르되 나의 형제들, 나의 백성들아 내 말을 들으라. 나는 야훼의 언약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판을 봉헌할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어서 건축할 재료를 준비하였으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그토록 소원하던 성전건축의 꿈이 거절당하였지만, 오히려 미래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사실 ‘너는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는 말을 듣고도 다른 사람을 위해 열심히 준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나 몰라라‘ 했을 지도 모릅니다. “내 일도 아닌데, 내가 고생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주시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지도 않았습니다. 언젠가 이루어질 하나님의 일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였습니다. 앞으로 있게 될 성전건축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준비했습니다.
전에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는 사람> 제목의 책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유럽의 프로방스 지방의 한 고원을 지나던 한 여행자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100개의 도토리를 선별하여 황무지에 심는 엘지아 뷔페라는 노인의 인상적인 모습을 목격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세월이 흐르고 전쟁이 지나간 후 그 곳을 다시 찾았을 때, 여행자는 풍요로운 숲과 풍부한 물을 찾아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의 지상의 낙원을 발견합니다. 그 마을이 그렇게 된 이유는 엘지아 뷔페라는 노인이 30년이 넘도록 매일 도토리와 너도밤나무를 심었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 제목의 책에 나오는 엘지아 뷔페라는 노인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과 같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엘지아 뷔페라는 노인처럼 당장은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후손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있게 될 성전건축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준비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은 모습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엘지아 뷔페라는 노인처럼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40일 작정 새벽기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NO'라는 응답을 받으신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빠듯한 이민생활 속에서도 믿음으로 열 가지 소원과 함께 1,000번제 예물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하신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던 의대에 진학하지 못하고, 법대에 진학하지 못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도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의 중심 도시였던 로마에 가서 복을 전하기 위해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고, 오히려 죄수의 신분으로 호송선을 타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죄수가 된 것은 엄청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자, 그를 잡아 죽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혼자서 혹은 소수의 제자들과 함께 로마로 떠났더라면 로마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죄수가 되어 호송선을 탔기 때문에 로마 군인들의 보호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지중해 한복판에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죽기 일보직전에 놓이기도 했지만, 이 일로 인해 바울이 로마 군인들과 죄수들을 살려주는 생명의 은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호송하는 책임자였던 로마 백부장의 도움을 받아 로마의 귀족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에게 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를 가고자 했던 방법과 하나님께서 그를 이끌어 가신 방법이 달랐던 것입니다.
평생을 사랑하며 사이좋게 살아온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고칠 수 없는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남편이 이상하게 변해 버렸습니다. 평소 볼 수 없었던 짜증을 심하게 부리며 아내에게 ‘밥 가져와!’ ‘물 가져와’ 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한번은 친구가 왔는데, “뜨거운 물로 어떻게 약을 먹으라고 그래! 그렇게 머리가 돌지 않아?”라고 하면서 컵을 내동댕이쳤습니다.
부인은 당황하면서 ‘손님이 계신데서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가 있어요?’ 하면서 밖으로 급히 나가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친구가 그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부인에게 혹독하게 대하는 이유가 뭔가? 그 동안 자네가 이렇게 행동하지 않아 잖아?”
그러자 그 남편이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내 집사람은 너무 마음이 순하고 약하다네. 내가 죽은 후에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살아갈지 걱정이 돼서 그런다네. 일부러 라도 저 사람의 마음을 강하고 독하게 만들어야만 하네.” 그러면서 그 남편은 울더랍니다.
상대방의 진심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섭섭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마음을 알면 이해하게 되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 안심이 됩니다.
펼쳐진 상황이 이해가 됩니다.
여러분, 때때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펼쳐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9절에서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보다 더 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당신의 백성들에게 재앙을 주시지 않고 평안과 희망과 축복된 미래를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다윗의 인생을 보십시오
. 비록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원망대신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 성전건축을 준비했습니다. 결국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성군’이라는 칭호와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의 거절이 우리의 앞길에 더 큰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NO'하셨다 할지라도, 그 ‘NO'가 오히려 더 큰 축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거절당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거절을 받아들임으로 다윗처럼 하나님께 인정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거절당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원망대신 감사함으로 다윗처럼 하나님께 칭찬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거절당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미래를 준비함으로 다윗처럼 축복된 인생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박종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