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1-9
내 인생의 피난처 / 오정호 목사
사람은 누구 없이 물질적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추위가 몰려오면 몸을 녹일만한 자리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영적이며, 정신적 존재 이기도합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차 한 잔과 대화를 나눌 상대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계급이 높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할지라도 자신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면 그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믿음생활은 주님께서 나를 조건 없이 약속하신대로 받아주시는 것을 확신하며 사는 삶입니다. 복음은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아니라 무한하신 주님의 사랑과 은총 가운데 우리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따뜻한 심정을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축복의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구약의 도피성(逃避城)제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깨닫기 원합니다.
“부지(不知)중 오살(誤殺)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報讎者)를 피할 곳이니라”(3절).
‘부지중’이라는 말은 고의성이 없다는 말입니다(5절). 의도함 없이 이웃의 생명을 해친 자는 안타까운 사정이 있기는 하나 결과적으로는 이웃을 죽였으니 피의 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유대법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일가친척들은 끝까지 살인자를 추적해서 생명을 해함으로 복수 할 수 있는데 그때 살인자가 도망가서 목숨을 구제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도피성입니다. 그래서 도피성(refuge city)은 안식처, 피난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피성제도는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 이전에 모세시대에 이미 두 번이나 말씀하신 제도입니다(민수기 35:9-15, 신명기 19:1-13). 도피성제도를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도피성을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하나님은 도피성제도를 통해 하나님의 주도적인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1-2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1-2절).
도피성제도는 여호수아나 모세의 요청에 의해서 형성된 법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도적으로 주의 백성들에게 주신 사랑의 법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가만히 계시는 정(靜)적인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이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시는 주도적인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주님은 역동적(力動的)으로 주
도적으로 구원계획을 이루시고, 우리의 미래를 친히 이끄시고 충만케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하나님의 주도적이고도 주권적인 사랑에 대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God is love)”(요한일서 4:8b). 사랑은 가만히 있지 않고 먼저 나아가 상대의 필요를 채워주고 상대를 위험으로부터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먼저 다가오셔서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 도피성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대(代)를 잇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도적이고 역동적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삭을 사랑하시고, 야곱을 붙들어주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출애굽기 3:6,15).
하나님의 사랑은 “택정하심”으로 나타납니다(2,7-8절, 요한복음15:16, 로마서1:1). 우리가 주님을 택하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로마서8:29-30). 우리가 주님을 택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주님의 넓은 사랑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 것이지 우리가 먼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끄심,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우리보다 앞섰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도피성제도를 통해 섬세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9절).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한 자로 그리로 도망하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그는 회중 앞에 설 때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9절).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은하계, 태양계를 운행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풀 한포기, 참새 한 마리에도 관심을 베푸시고 그것들을 돌보십니다(마태복음 6:26-30).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뿐 아니라 그들 중에 우연히 거하는 객(客)들도 위하십니다.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무릇 그릇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민수기 35:15).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뿐 아니라 구약시대 이방인까지 포함하여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많이 배운 자나 적게 배운 자나 문명인이나 야만인이나 어떤 사람에게든지 주님은 사랑과 관심을 베푸십니다(갈라디아서 3:28). 만약 우리가 구약시대에 살았다면 우리 모두는 도피성에 들어갈 대상이었겠지만, 주님은 섬세하게도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도피성의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이를 품을 만큼 넉넉한 사랑입니다.
도피성의 위치가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편에 3곳, 서편에 3곳의 중앙지역에 각각 위치한 것을 보면 어디서나 접근이 용이하게 주님이 은혜를 베푸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7-8절, 接近容易性 ). 주님은 광야에서 불평하다 불뱀에 물려 죽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구원의 놋뱀을 만들게 할 때도 장대위에 높이 매달게 하여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든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민수기 21:9). 이것은 주님의 섬세하신 배려이며 바로 여기에 복음의 비밀이 들어있습니다(요한복음 3:14). 누구나 언제나 주님께 나아올 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시는 땅의 전체를 삼구로 분하여 그 도로를 닦고 무릇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케 하라”(신명기 19:3).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도망가다 행여나 돌부리에 넘어져 피의 보복자에게 잡히는 것을 막기 위해 도로를 반듯하게 닦아 놓으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주만물을 한손에 잡고 운행하시기도 하지만 우리의 머리털까지 헤아리시는 섬세하신 하나님이십니다(마태복음 10:30).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아실 뿐 아니라, 미래에 좋은 길도 예비해놓으신 섬세하신 주님이십니다.(시편139:1-10)
셋째, 하나님은 도피성제도를 통해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구원을 예표(豫表)해 주셨습니다(6절).
“그 살인자가 회중의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찌니라”(6절).
당시 대제사장이 죽은 후 살인자가 가족들을 만나러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모든 사건 중 의미 없는 사건은 하나도 없습니다. 특별히 구약에 나오는 사건은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로 의미를 줄 수 있는 사건입니다. 도피성사건은 구약의 한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고 인류의 대제사장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구원을 예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영원히 살지 못하며 도피성에 들어갈지라도 일시적으로 육신적 생명을 연장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구주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육신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영혼이 영원히 사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됩니다(고린도전서 5:17). 이 복된 메시지를 주시기 위해서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도피성 제도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구약의 도피성제도만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구주가 되게 하심으로 크신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요한복음 3:16).
사랑하는 새로남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 인생의 유일한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교회는 도피성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알려주는 곳입니다. 인생의 여러 문제 때문에 피의 보복자의 칼날이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인생의 목적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 사탄은 정죄의 칼날을 번뜩이며 다가옵니다. 우리는 세상의 학문, 제도, 철학, 지혜로 정죄의식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품안에 있을 때에만 인생의 죄의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한사람도 예외없이 우리를 택하셔서 역동적으로 우리의 구원계획을 이루시고 우리 앞서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사랑을 확신하십시오!
우주만물을 한 손으로 붙잡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머리털까지 헤아리시며 우리의 삶을 섬세하게 예비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우리 가정과 교회의 영원한 피난처 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사십시오! 육신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십시오! 영혼이 영원히 사는 축복을 확신하며 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도피성 되심을 찬송합시다!
피난처
헐벗은 영혼
입히고자
이리 저리
몰려다니는 현대인
젊은 날은 록 뮤직
중년의 시기 직장몰입
철들기전 소꼽놀이
철들자 재테크
물정 모르던 시절 사람따르기
물미 깨친 후 자아건축
이러나 저러나
끝없는 방황
얼짱
몸짱
다 해본들
영혼 춥기는 마찬가지
인간의
영과 육의 생채기 아시고
피난처 허락하신
사랑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방황의 종착역
죄인의 도피성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의 유일한 대안
인생의 영원한 피난처
예수 그리스도
환희의 출발점
두려움의 종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