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과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세네갈에 정착할 이주민 등 400여 명을 태운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가 난파한 것은 1816년 7월 2일이었다. 선장과 고급 선원 등 250명은 야음을 틈타 구명보트를 타고 도주했고, 나머지 하급 선원과 승객 등 150명은 급조된 뗏목을 타고 표류하게 된다. 하지만 150명이 남은 뗏목에서는 서로 살기 위해 살육전이 벌어졌다. 병에 걸린 사람들을 물에 던져 넣어 입을 줄이기도 하고, 굶주림으로 시체를 먹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12일에 걸친 표류 끝에 작은 범선 아르귀스호에 의해 구조된 것은 15명뿐이었다.
그림은 1819년 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을 때 제리코가 그린 그림이다.
메두사호의 비극은 우리에게 생존의 문제만 남은 극단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극단의 사건 속에서 도덕성과 책임을 묻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극단의 현실 속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도덕성을 발휘하는 것은 그야말로 숭고한 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도덕성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을 함부로 비난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메두사호와 달리 우리가 세월호 사건에 대해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첫째는 전체의 생명을 좌우하는 배의 안전을 위해 응당 취해져야 할 사전 조치들이 사적 이익을 위해 무시되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마이크를 잡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면서 책임 회피의 욕구가 판단과 실행을 마비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을 통해 한국사회의 지나친 사익추구와 권위주의 병폐가 극단적으로 노출되게 된 것이다.
두 배 모두 지도자도 현자도 없었다. "설국열차"처럼 그런 영웅들이 있기를 바라지만, 많은 경우 영웅 없는 편에 가깝고, 또 있다고 해도 한 때의 영웅이 영원한 영웅으로 남는 경우도 드물다.
중요한 것은 개인들이 가진 삶의 권한이 온당히 작동할 수 있고 인간적 가치와 척도를 일상에서부터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첫댓글 우리가 죽든 살든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인드ㅋ <우리>에 <나>가 포함되지 않는 기이한 착시의 우리에 갇힌 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