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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연합한 삶
로마서 6장 1-14절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항상 ‘균형(balance)’ 있어야 합니다. 운동에도 건강을 위해 지나치기 운동하면 안 됩니다. 음식이 맛있다고 과시하면 안 됩니다. 신앙에도 마찬가지로 균형(均衡)이 있어야 합니다. 한 곳으로 너무 집착하면, 잘못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때로는 광신자가 될 수 있으며, 더 나가면 이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균형있는 신앙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앞에서 죄로부터 구원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고 집착하면 악을 조장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 장에서는 그런 우려를 해소시켜 줍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범죄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의 다스림에서 벗어남(1-7)
사람들이 지혜로운 삶이란 그릇된 의견이나 이치로 어긋난 주장이 있을 때, 한 번 정도 자신을 살펴볼 줄 알아야 합니다. 앞부분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씀을 들을 때, 문맥 전후를 살피면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그렇게 주장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1-7)
병원에서는 큰 수술에 앞서 반드시 마취를 합니다. 환자가 그것을 거부한다면, 수술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우리가 은혜로 사는 삶에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도 없습니다.
(1) 은혜가 죄를 조장한다는 오해를 차단함(1-2)
바울 사도는 믿음으로만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에 오해가 있었습니다. 결론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질문을 1절에서 던집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5:20)면, 논리적으로 ‘은혜를 증가시키기 위해 죄에 거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단호하게 부정하면서, 바울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더 이상 그 가운데 살 수 없다’(2)고 말합니다. 바울의 선언은 (1)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죄의 결과인 사망을 모두 소진하셨다는 점, (2) 부활을 통해 그가 죄와 사망의 다스림을 정복하셨다는 점, (3) 그리스도께서 부활 생명이 다스리는 새로운 세대를 여시고 먼저 그리로 들어가셨다는 점, (4) 우리가 바로 그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가 다스리는 이 세대를 벗어났다는 점을 차례로 따라가야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바울의 강조점은 죄가 그 다스리는 힘을 상실했다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성도가 죄에 빠질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실제 죄에 빠집니다. 어리석게도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다스리는 권세가 여전한 것처럼 반응하고, 이미 정복당한 그 권세에 굴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정복하셨다는 사실을 되돌리지는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이 땅에서부터 죄의 다스림에서 벗어나 다음 세대의 삶, 곧 하나님의 다스림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2)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와 함께 죽고 부활함(3-5)
3-7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개념을 통해 2절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먼저 바울은 ‘성도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 받다’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일 수 도 있고, 초대교회의 실재 세례 의식을 지칭할 수도 있으나, 후자라 하더라도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태를 가리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으로 세례 받음’(3:27)과 함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갈 2:20)이라는 표현을 쓴 바울은, 3절에서 이 두 표현을 합하여(‘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세례 받았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바울이 전하려는 바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대의 죄와 사망의 권세를 해결/정복하시고, 다음 세대의 의와 생명의 다스림으로 들어가신 것처럼, 그와 연합한 자들도 이 땅에서부터 다음 세대의 생명을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4절은 이러한 사실을 하나님의 다스림의 관점에서 재확인합니다. 자신을 우리와 하나로 여기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되었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의 다스림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여 지금 이 땅에서도 ‘부활 생명’을 살아가게 합니다. 5절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그 ‘부활 생명’의 미래적 완성에 대해서 재확인해줍니다. 6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이전, 이 세대에 속해 죄의 다스림 아래 있던 자아를 ‘옛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은 그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이중적으로 설명합니다. 먼저는 ‘죄의 소마(몸)’가 힘을 잃었습니다. 바울이 사용하는 ‘소마’라는 단어는 주변의 환경에 제한당하는 인간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죄의 몸’이란 표현은 이 세대라는 환경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을 지칭합니다. 그런 점에서 같은 절의 ‘옛 사람’과 유사한 의미입니다. 그 옛 사람과 ‘죄의 몸’은 이제 힘을 잃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임한 다음 세대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 아래로 이미 '영역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3) 옛 사람이 죄의 노예 됨에서 벗어남(6-7)
6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전달하려는 의미가 더 강해집니다. 즉,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7절 전체는 ‘가르’로 시작하는 이유절에 해당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죄로부터 의롭다 함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죄에서 놓임 받은 우리는 다시 그의 의로운 행동과 순종하심(5:18, 19)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주어진 부활의 생명(8-11)
우리들이 세례를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여인들이 좋은 배우자와 결혼함으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우리들의 죄도 죽은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혀 장사 지낸 바 될 때, 우리도 같이 묻혔습니다. 죄에 대해 이렇게 죽었기 때문에 다시 죄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8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8-11)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날 것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다시 죽지 않으십니다. 사망이 죽임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1)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얻게 될 생명(8)
이제 8절부터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도래한 결정적인 구속사적 전환 혹은 ‘영역의 이동’에 근거해서, 성도가 살아갈 다음 세대의 생명에 대해서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은 구속사적 계획의 절반에 해당할 뿐입니다. ‘그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부활 생명을 얻는다’(8).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계획한 완성된 구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2) 사망을 이기시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나신 그리스도(9-10)
9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사망의 세력을 완전히 정복하셨음을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5:12-21에서도 전제되었고, 고린도전서 15:26에서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듯이,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인간의 궁극적인 ‘원수는 사망이다.’ 하나님꼐서는 죄에 빠진 인간을 사망에서 건져내어 완전한 생명을 주기를 계획하셨는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그 성취의 결정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10절은 지금까지의 논의를 다시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죄의 삯인 사망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헤파팍스’라는 헬라어 단어가 강조해주듯이,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인간을 대신하고 대표하기 위해 필요했던 ‘단 한 번’의 죽음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는 모든 인간을 대표하여 완전한 부활 생명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은 이를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 나섰다’(10b)고 표현합니다. 바울이 ‘산다’라는 동사를 쓸 때 부활 생명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을 향해 살아남(11)
11절에서 바울은 지금까지의 논의에 근거해 6장에서는 처음으로 명령형을 던집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선언한 바, 즉 ‘너희가 죄에 대하여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는 살았다’는 진리를 사실로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근거한 순종과 의로움의 삶(12-14)
감옥에서 누군가의 희생으로 풀러나와 자유롭게 된 사람이라면, 세상에 살 때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대속으로 용서받고 자유를 누린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며 남은 삶 동안 의롭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특별히 자신을 위해 희생의 대가를 치른 존재를 생각하며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도록 애쓸 것입니다.
12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12-14)
바울은 사람이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거룩하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롭고 거룩한 피조물로 거듭난 존재이긴 하지만, 죄에 대한 욕망을 제어해야만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1) 죄의 다스림에서 떠나라는 명령(12-13a)
12-13절에서 바울은 다시 강력한 명령형 문장 두 개를 쏟아냅니다. 6절에서 ‘죄의 몸’이라는 표현을 쓴 바울은 이 세대의 ‘몸’을 입고 사는 성도들에게, ‘죄가 너희의 죽을 몸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몸을 입고 있는 인간은 여전히 어떤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울은 부정사 구문을 사용하여 ‘그 몸의 욕구들에게 순종하기 위하여’라는 구절을 더합니다. 즉, 이 세대에 속한 몸/자아의 욕구들을 따르도록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2) 의로운 삶을 추구하라는 명령(13b)
본 13절에서는 ‘지체’라는 말을 사용하여, ‘너희 지체, 곧 너희의 내적인 기능들을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신학적 근거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의 다스림이 우리 (지체)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3) 더 이상 죄가 지배하지 못하는 은혜 아래 있는 삶(14)
본 절에서 바울은 1-13절까지의 논의를 한마디로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정리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미래형 동사를 사용한 것에 근거하여, 현재는 성도들이 죄의 다스림 아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1-13절까지의 주장과 나아가 로마서 5-8장의 모든 논의를 뒤집는 결과를 낳습니다. 바울의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우리에 대한 죄의 다스림은 현재적으로도 그 권세를 잃었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에 더욱 선명하게 확증될 것이다.’ 바울은 그것이 우리가 ‘(율법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심으로 죄의 진노를 소진케 한 그 은혜가 우리를 죄의 다스림에서 해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죽은 자들입니다. 우리 속에는 죄와 싸울 수 있는 강력한 은혜의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부딪히는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과 정체성을 주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 대항하는 한, 죄는 우리를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비다. 우리는 항상 죄에 대해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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