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5] 이요한(李耀翰) - 하나님, 나의 하나님 5. 대구에 개척나가다 - 1
1 1953년 여름이 되자 선생님께서는 전도의 중요성을 말씀하시고 우선 강현실 전도사를 7월 20일에 대구로 파송하셨다. 선생님은 개척 전도에 여자를 먼저 파송하시고 그다음 8월 초순에 남자인 나를 전도 일선에 보내셨다.
2 그전에도 나의 주요 일과가 기성교회 목사, 전도사 등을 찾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지만 전도의 방향이 구체화되면서 시작한 이 개척 전도는 큰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3 강 전도사가 닦은 터전 위에 교회를 세우라는 말씀이었다. 말씀의 사자로서 나는 열차 편으로 대구역에 도착했다. 우선 지승도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지승도 씨 며느리가 집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 며느리는 지승도 할머니와 피난을 와서 대구에 살다가 당시는 부산에서 살고 있었다.
4 그분의 소개로 교동에 있는 2층 집을 찾았다. 나는 가지고 온 가방을 두고 안지랑이 산을 올랐다. 나는 대구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어떻게 전도를 시작할까 생각도 하고 기도를 드렸다. 그곳 봉우리에는 권사나 집사들이 기도를 하기 위해 올라와 있었다.
5 대부분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었다. 주위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 기도를 드리고 찬송을 불렀다. 그 가운데 남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그날 오전 나는 말씀을 했고 그들은 은혜를 받았다. 그들이 가져왔던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서로의 신앙 상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6 이렇게 은혜를 받은 권사, 집사들이 다른 교인들을 데리고 다음날 찾아왔다. 그 가운데는 물론 방달순(方達順) 권사, 정덕기(鄭徳基) 권사 등이 있었고 임춘자(林春子) 집사도 있었다. 모두들 흠뻑 은혜를 받고 며칠 만에 산에서 내려와 예배를 가정에서 보게 됐다.
7 그다음부터는 임춘자 집사의 요청으로 그 댁에 가 예배를 보았는데 30~40명 모여들었다. 그때까지도 체계 있는 원리 말씀보다는 하나님의 사정,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 타락의 동기, 재림의 장소 등,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중심 삼고 전하였다.
8 모두들 은혜와 말씀, 그리고 신령을 통해서 다정다감해지고 한 형제와 같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말씀을 처음 받은 그들은 모두 놀라워했고, 소속 교회에서 느끼지 못한 은사를 받게 되자 세상의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