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메리카 식민지 정부들이 특정 원주민 집단의 포획·살해와 두피(scalp)에 현상금을 지급한 역사적 사례가 있었다
식민정부가 그것을 공식적인 금전 보상제도로 만들었다는 사실
1755년 매사추세츠베이 식민정부의 펜옵스콧(Penobscot) 대상 포고문 원문도 남아 있습니다.
원주민의 머리가죽에 가격을 매기다
1755년 11월 3일, 영국령 매사추세츠베이 식민정부의 부총독 스펜서 핍스는 펜옵스콧 원주민을 국왕의 ‘적·반역자·배신자’로 선언하고 이들을 추적하고 포획하고 죽이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에 가격을 매겼다.
12세 이상 남성을 산 채로 붙잡아 오면 50파운드, 죽인 뒤 두피를 가져오면 40파운드였다. 여성이나 12세 미만 남자아이를 포로로 데려오면 25파운드였으며, 여성 또는 12세 미만 남자아이를 죽였다는 증거로 두피를 가져오면 20파운드를 지급했다. 돈은 식민정부의 공공재정에서 지급되었다. (Maine Indian Tribal-State Commission)
단순한 잔혹행위가 아니다.
인간을 죽인 증거가 돈으로 교환되는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다른 인간의 목숨에 가격을 매길 수 있었는가?
그 출발에는 토지와 자원, 영토와 지배권을 둘러싼 충돌이 있었다. 유럽의 식민지 확대와 원주민 사회의 생존이 충돌했고, 전쟁과 보복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어린아이의 두피에까지 현상금을 거는 행위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상대방을 자신과 똑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생각이 필요하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그들을 위험하고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그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폭력은 폭력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과오를 과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 과오의 가장 깊은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그 생각은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가?
편견과 증오만으로는 대규모의 폭력이 지속되기 어렵다.
권력이 그것을 승인하고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1755년의 포고령은 그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가 특정 원주민 집단을 ‘적’으로 규정했다. 죽이는 것을 허용했다. 그리고 포획한 사람과 죽은 사람의 두피에 각각 가격을 정했다. 공공재정으로 현상금을 지급했다. (Maine Indian Tribal-State Commission)
그 순간 개인적인 증오와 살인은 하나의 경제적 유인과 행정제도로 변했다.
인간 → 적, 적 → 제거 대상, 제거 → 두피라는 증거, 두피 → 현상금, 현상금 → 다시 살해의 유인. 끔찍하지만 하나의 자기강화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이것이 과오의 현상론이다.
잘못된 세계관이 권력·법·행정·돈과 결합하면 개인의 악행을 넘어 사회적으로 재생산되는 체제가 된다.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해결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지 말자’는 도덕적 훈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먼저 인간을 우열로 나누고 타자를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세계관을 바꾸어야 한다.
동시에 토지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몰아내는 구조, 폭력에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제도, 특정 집단을 인간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는 정치와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전환은 생각의 전환, 관계의 전환, 제도의 전환, 경제의 전환, 기억의 전환이어야 한다.
이 사건을 원인론·현상론·전환론으로 압축하면 이렇게 된다.
원인론은 묻는다.어떻게 우리는 다른 인간의 생명보다 우리의 땅과 부와 안전을 더 중요하다고 믿게 되었는가.
현상론은 묻는다.그 믿음은 어떻게 권력·법·돈과 결합하여 사람을 죽이면 보상받는 현실이 되었는가.
전환론은 묻는다.인간을 수단으로 만드는 생각과 그것을 강화하는 제도를 어떻게 바꾸어 같은 과오가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것인가.
머리가죽에 매겨진 20파운드와 40파운드는 오래전의 숫자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지금도 남아 있다.
오늘의 문명은 다른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다른 방식으로 가격을 매기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