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풀이: 낙양의 종이가 귀해졌다는 뜻으로 문장이나 저서가 호평을 받아 잘 팔림을 이르는 말이다.
*유래:
낙양(洛陽)은 중국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도시이다. 중화문명의 발원지이기도 한 이곳은 황하로 흘러드는 낙수(洛水) 유역의 북쪽에 위치해 낙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기원전 770년 주(周)나라가 이민족의 압력을 피해 낙양을 도읍으로 삼은 것이 인연이 되어 그 후 후한(後漢), 서진(西晉) 후위(魏) 수(隋) 등 13개 왕조가 낙양을 도읍으로 삼았다.
서진시기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이 못생긴데다 언변도 없어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서 쓸쓸하게 지냈다. 그러나 부친의 격려로 학문에 정진하였고 "제도부(齊都賦)"라는 서사시를 1년 만에 완성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제도부(齊都賦)"는 그의 고향인 제나라 도읍 임치(臨淄)의 풍물을 노래한 시이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좌사는 "삼도부(三都賦)"를 짓기로 했다. "삼도"란 삼국시기의 3개의 도읍인 위나라의 업(鄴), 오나라의 건업(建業), 촉나라의 익주(益州)를 일컫는다. 집안이 가난하며 남들의 놀림을 받아왔던 그가 세 도읍의 활기찬 모습을 노래로 지어 세상의 귀족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자 생각했던 것이다.
때마침 누이동생이 후궁으로 봉해져 입궐하게 되었다. 가족들도 따라 도읍 낙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좌사는 낙양에서 살면서 "삼도부" 구상을 짰다. 방에는 물론 뜰에까지 종이와 붓을 두고 훌륭한 글귀가 떠오르기만 하면 바로 적곤 하였다. 또 10년 동안 곳곳을 돌면서 자료들을 수집했고 많은 책을 읽기 위해 자진해서 왕궁의 서책을 관리하는 비서랑(秘書郞) 직책을 얻었다.
글을 잘 짓기로 이름난 오나라 사람 육기(陸機)가 마침 낙양에 왔다가 번화한 모습을 보았다. 그 역시 낙양을 노래한 시문 한편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좌사가 삼부도를 쓴다는 것을 전해 듣고 소리내 웃으며 말했다. "비천하고 어리석은 좌사가 분수를 모르고 삼부도를 쓴다니 종이를 허비하는 일이도다. 술독을 봉하는 종이로 쓰면 어떠할까?"
그러나 후에는 좌사의 삼도부를 읽고 감탄을 금치 못하며 비웃었던 자신을 크게 뉘우쳤다고 한다.
당시 조정에는 장화(張華)라는 유명한 문인이 있었는데 좌사의 "삼도부(三都賦)"를 반고의 "양도부(兩都賦)"와 쌍벽을 이루는 걸작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반고(32~92)의 "양도부(兩都賦)"는 동도 주인(東都主人)과 서도객(西都客) 간의 문답 형식으로 양도(兩都)의 장관을 묘사한 시이다.
"삼도부"는 좌사가 10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집필한 일생일대의 대작이다. 당시의 권문(權門) 귀족이나 선비들이 다투어 이를 베끼느라고 한때 낙양(洛陽)의 종이 값이 오를 정도였다고 한다.
낙양의 종이가 귀해졌다는 뜻의 낙양지귀는 문장이나 저서가 호평을 받아 잘 팔림을 이르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저서가 많이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다"의 의미이다. 또한 저자를 칭찬할 때 종이 값을 올리게 한다는 뜻으로 "낙양지귀" 사자성어를 쓰기도 한다.
첫댓글 어느 나라 말이건 다 숨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 카페에도 눈이 침침해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좋은 글을 많이 보아서인가 봅니다.
눈이 침침해 짐은 지혜와 마음이 늙어 가는 탓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