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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이 생베조각에 대한 마태복음 9장 말씀을 지금 교제를 나누고 있는데요.
이 옛 종교 그리고 침례 요한의 제자들인 새 종교와 결코 함께 하나가 되 실 수 없으신 왕이신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가지고 계신 새 종교로서의 참 종교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나타나 보였던 옛 종교도 아니고 침례 요한이 추구하고자 했던 옛 종교를 떠나 광야에서의 삶을 통해서 왕이신 그리스도께 모든 유대 백성들을 이끌고자 했던 그 좋은 취지에서의 새 종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침례요한의 제자들 가운데 일부들이 바로 예수님께 나와 금식에 대한 문제로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라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신랑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그들이 비록 새 종교일지라도 종교는 종교일 뿐 어떤 하나의 종교를 형성하고 있는 옛종교에서 새로운것을 추구하여 떨어져 나간 새 종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없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그 모든 행위들과 행동들 그런 것은 다 종교적으로 바뀌어진다 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으로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예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임재가 없는 그 모든 것들은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서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행위들을 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없는 종교는 옛 종교이며 새 종교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추구하시는 참 새로운 천국 헌법이 가리키고 있는 참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어서 9장 9절에서 예수님께서 이 가버나옴 예수님께서 사시던 곳이죠 마태복음 4장 13절에 예수님께서 사셨던 곳이 나사렛에서 바로 예수님이 이제 성년이 되신 후에 주님께서 친히 사셨던 곳인 가버나움에서 침상에 놓인 중풍병자를 고치시기 위하여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그 권위를 가지신 왕이신 그리스도의 권위에 대해서 계시를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뒤에 9절에 이어서 죄인들과 함께 마태의 집에서 잔치를 베설함을 통해서 수많은 세리들과 수많은 죄인들을 위한 의원으로서 의사로서 병든 사람에게 치료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바로 이 왕이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장면에 이어서 바로 이 14절 말씀이 이렇게 종교와 결코 함께 하실 수 없으신 참 종교인 그리스도교인 예수님이 배제되어 있지 않고 바로 이 왕이신 그리스도의 임재가 있는 참 종교에 대해서 이 신랑이라는 이 잔칫집에서의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 슬퍼할 수 없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들이 오면 그때는 금식할 수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계속 이어지는 말씀이죠 16절부터 누구도 그 생베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지 않는데 왜냐하면 기운 조각이 옷을 당겨 옷이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라고 이 생베조각에 대한 얘기와 낡은 옷의 대조를 통해서 그 낡은 옷을 생베 조각에
기워서 이렇게 덧붙이게 되면 결국 그 기워서 조각이 바로 이 생베 조각이 오그라드는 그 성향이 있기 때문에 이 낡은옷을 잡아당김으로 말미암아 그 옷이 더 심하게 찢어진다라는 이러한 비유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지혜로우시다.
사람의 어떤 관점이나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와 같은 기가막히고도 신비하고도 오묘하신 말씀을 우리에게 이렇게 계시해 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계시의 말씀을 그리스도 께서는 그 영의 지각을 통해서 놀라운 지혜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계시로서
교훈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누가복음 5장 36절에 이 생베조각에 대한 말씀을 바로 새 옷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5: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9장 16절에서도 똑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누가복음 5장36절 5: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그리고 17절에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여기 누가복음에서 새 옷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은 누가복음에서 나타나고 있는 탕자의 얘기 여러분 기억하고 계시죠? 누가복음 15장 22절에 기록되어 있는 탕자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제일 좋은 겉옷을 가지고 오너라 라고 해서 새로운 옷을 집을 찾아온 아버지 품에 돌아온 그 탕자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주시는
장면이 바로 이 새 옷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누가복음에서는 새 옷으로 마태복음 9장 16절에서는 생베조각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요.
이것은 그냥 가공하지 아니한 천연적인 그 어떠한 것 그것이 생베조각 이라는 것입니다.
그 생베는 바로 옷감의 원단을 말하는 것이죠. 쉽게 말하자면 다듬어지지 않고 가공되어지지 않고 그것을 어떤 손길조차도
닿아 있지 아니하는 바로 그것이 생베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 생베조각이 의미하는 이 비유의 말씀의 본래의 뜻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지금 자신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베 조각에서의 그 생베란 예수님께서 하늘 높은 곳에서 이 땅 아래
세상에 방문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성육신하셨습니다.
육체가 되심으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이 베들레헴 생명의 떡집에서 태어나신 순간부터 골고다 언덕에서의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의 그리스도의 그 천연적인 자연적인 전혀 사람의 손길이 닿아지지 아니하는 사람의 손길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고 인위적이지도 않고 그냥 천연적인 그냥 원 그대로의 하늘에 계셨던 그분이 땅에서 바로 이 성육신 하시면서 33년 동안에
그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의 그리스도가 바로 생베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이 마태복음 9장 16절의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 생베가 뭐라고요? 성육신 하셔서 사람의 육체를 가진 그 순간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의 순전한
그 그리스도 사람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가공되거나 어떤 처리가 되거나 만들어지거나 손질되거나 하지 않은 생베 조각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그 육체가 되는 순간부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의 그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 36절에서는 이 생베를 새 옷으로 조금은 다르게 표현을 했는데요
생베는 예수님께서 육체가 되신 순간부터 십자가에 못박혀 달리시기 전까지 라면 새 옷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시죠. 그러고 나서 3일 후에 부활하시죠. 이러한 십자가의 죽음과 3일 동안 무덤 가운데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다시 부활하심으로 다시 처리되신 후에 조성되어진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새 옷인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 새 옷인 것입니다.
새 옷은 가공되어지지 아니한 생베 조각을 바로 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가공되어져서 처리되어져서 공정
가운데 완전무결하게 그렇게 마감 손질이 끝난 상태에서 부활로 말미암아 부활에 의하여 바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15장 45절 말씀입니다.
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15: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부정적인 모든 죄에 대한 문제 첫 아담에 속한 문제를 완전히 제거시켜주시고 종결시켜주신 후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 긍정적인 하늘에 속한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어주시기 위하여 처리가
되신 후에 새 옷으로 만들어짐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새 옷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복음 15장 22절에서 아버지의 집을 찾아 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이 탕자에게 입혀주신 그 옷은 바로 생명 주시는
그 영이 되신 부활의 영이신 바로 이 그리스도의 영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잔칫집에서 입어야 될 이 새 옷을 통하여 혼인잔치의 신랑이 되시며 새 옷이 되시며 새 포도주가 되시며 모든 것이
되시는 그분께서 모든 것들을 자신의 신부들을 위해서 완전하고도 온전하게 준비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서 구원의
주 그리스도가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도 결격 사유나 미비함이나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있으면 그리스도가 구세주가 되실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혼인잔치 그 자체가 되시고 혼인잔칫집에 새 신랑이 되시고 새 신랑의 그 음식이 되시고 포도주가 되시고 또 신부가
합당한 그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옷을 입어야 되는데 그 합당한 신부로서의 갖춰야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그러한 새 옷을 준비해야 되는데 그 옷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인 것입니다.
그 새 옷까지도 준비해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렇게
우리에게 제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의주가 되신다 라는 것입니다.
만유를 포함한 주 그래서 그분의 바로 왕이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에 의하여 먼저 무엇이
됐습니까? 자격을 갖춘 의로운 자로 우리에게 의로운 품성을 전가해 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기쁘게 받으시도록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이 그리스도의 의로서 우리를 덮는 새 옷으로 만들어지셨다는 것이 바로 누가복음
15장 22절에 나오는 새 옷이라는 것입니다.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낡은 옷에 대고 이 생베 조각을 왜 함께 그것을 기워서 하나로 연결하면 안 됩니까? 예 생베는 끌어당기는 오그라들임으로 말미암아 낡은 옷을 잡아당겨서 수축하는 그 힘을 통하여 옷을 잡아당김으로 말미암아 낡은 옷을 더 찢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바로 침례 요한이 바리새인들과 같이 합류하여서 침례 요한의 몇몇의 일부분의 제자들이 왜 선생님들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라는 금식의 문제를 거론할때 주님께서는 지금 이러한 말씀의 비유로 그것에 대한 해답을 이렇게 계시로 말씀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생베조각은 오그라지는 그러한 성질과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본성 때문에 생베 조각을 그 옛날의 낡고 구태의연한
옛 종교 또는 침례 요한이 추구하고자 하는 어떤 천연적인 행습을 이렇게 유지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그 낡은 옷에 대고 입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전혀 이 세상에 의하여 처리되지 않고 손질이 되지 아니한
생베 그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비슷한 예수님의 그 좋은 면, 예수님의 어떤 옳은 면, 예수님의 품성을 따라서 옳게
보이는 그런 것들을 모방하면서 비스름하게 꾸며대는 그러한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생베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는다
라는 그러한 의미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현대주의자들과 어떤 보수주의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천연적이고 높은 하늘에 속한 그 주님께서 이 낮은 땅 아래에 내려오셔서 정말 그 생베가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처리되지 않고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지지 않고 사람에 의하여 조성되지 않고 그 손질이 전혀 되지 아니하는 온전하고도 순결한 생베 그 조각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 어떤 행동의 옳은 것과 맞는 것 그리고 좋아 보이는
그런 것들을 자기 것과 합쳐서 자기 것과 보완을 해서 결합을 시켜서 예수님의 어떤 그 인간적인 행위를 모방 하여서 따름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이렇게 유대 백성들에게 내보이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출생하신 순간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구속주 이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심을 통하여 의의 구주가
되셨는데 그 의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 어떤 옳고도 좋아 보이는 그 행동들을 자신의 것들과 결합시켜서 개선함으로 말미암아 좋은 것으로 내보이기 위한 예수님의 그 인간적 행위를 모방하는 그 자체가 바로 생베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는 것이다 라고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의이신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그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생명 주시는 영
이 부활의 영, 구주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 보혜사를 믿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롭다 하실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시지 않게 됨으로 그들을 하나님 아버지 천부께서 받으실 수가 없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나 그리고 이 침례 요한의 그 일부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어떤 좋아 보이고 옳아 보이는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생활, 어떤 인간적인 그런 것들을 모방하는 것은 타고난 옛 생명에서 산출된 어떤 그들의 행위에
낡은 옷을 잡아당기는 것과 같은 행위의 형태라는 것을 이렇게 성경은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 백성은 주님께서 바로 이 바리새인들과 침례 요한이 이 옛 종교를 완전히 떠나 뒤로 하고 이 광야에서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께로 유대 백성들을 인도하고자 새 종교를 형성했는데 그 새 종교까지도 마찬가지로 종교는 종교일 뿐 종교를 갖는 것 종교적이 된다 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임재 없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기쁘게 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없는 그러한 형태의 일들은 종교이며, 종교적인 어떤 행동들의 행습이 된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주위에 있는 세리들과 수많은 죄인들과 그리고 이 마태의 집에서 잔치가 배설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그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냐면 천국 백성은 그렇게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베들레헴의 생명의 떡집에서 출생한 순간부터 육체가 되심부터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의 그리스도가
바로 처리되지 아니하는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지지 아니한 생베라는 것입니다.
생베조각이 성육신 한 때부터 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의 그리스도의 삶이라면 그 생베가 바로 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손질이되어지셔서 가공되어져서 바로 마감되어진 그 옷이 바로 새 옷인데 그 새옷을 주님께서 만들어 놓고 가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잘 이해가 안되겠지만 무덤 가운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머리맡에 세마포옷을 포개져서 두고가신 장면을 여러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바로 생명 주시는 영을 믿고 영접한 그들에게 새 옷을 입혀주시기 위하여 왕이신 그리스도의 신부들에게 합당한 자격의 모양을 갖춘 그런 새 옷을 선물해 주기 위하여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생명 주시는 공기 생명 주시는 호홉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 생명 주시는 영을 믿고 영접한 그들에게 새 옷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제자들에게 그 주위에 있는 앞으로 장차 제자들도 신랑 되신 예수님의 신부가 될 자들이죠.
계시록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죠. 바로 그들에게 장차 신랑의 신부가 될 자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그리스도 곧 새 옷으로 마감되어져서 입혀줄 수 있는 완성된 옷인 바로 생명 주시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영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의로서 그들을 덮는 새 옷을 부활로 말미암아 만들어주셔서 입혀주실 수 있도록 그때부터 새 옷이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혼인 잔치집에 잔치 그 자체가 되고 새 신랑이 되어주시고 포도주가 되시고 먹을 양식이 되시고 또 혼인 잔치집의 신부가 입을 합법적이고도 합당한 자격의 소유자로 표현될 수 있는 새 옷 그 자체가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신랑과
하나로 연합될 수 있는 신부를 위해서 다 만족하게 예비하시고 준비하시고 온전케 하셨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우리는 그리스도 구주, 구원의 주라고 이렇게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그냥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이런 여러 가지 유형의 방면의 것들을 통해서 완전하고도 온전하게 신부들을 위해서 하나도 모자람이나 결격사항이 없도록
바로 이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생베조각이 되신 그분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셔야 새 옷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되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는 일이 이렇게 힘들고 이렇게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우리를 위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 정말 영광을 돌립니다.
그분이 부활하시지 않으셨으면 새 옷이 우리에게 만들어지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신부가 된 우리가 혼인 잔칫집에 들어가서
합당한 신부로서의 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취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 생베조각은 낡은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라는 이 낡은 옷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이 침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또 바리새인의 그 옛 종교 안에 있었던 사람들 처럼 그리고 오늘날 교회 안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타고난 옛 생명 첫 아담 속에 있었던 타고난 육적인 어떤 옛 생명에서 산출되어져서 표출하고자 하는 선한 행위들, 선한 행동들, 아주 그럴 듯한 긍휼과 자비와 어떤 구제와 이러한 어떤 그 옛 생명 안에서 천연적인 관념 속에서 행해지는 이웃들을 향해서 보여지는 선한 행위나 선한 어떤 행동들 그런 종교적인 실행들 그 모든 것들이 낡은 옷이라는 것입니다.
옛 생명에서 산출되어진 첫 아담에 속해 있는 자들이 제아무리 선한 일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하고 선한 행위들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천연적인 관점에서 나온 종교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낡은 옷에 불과하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는 새 포도주에 대한 새 것에 대한 얘기 새로 방금 만들어진 가장 최근의 시점에서 새로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왜 새 포도주를 얘기하고 있습니까? 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신부들에게 취하게 하기 위해서 부활을 통하여 전혀 처리되지 아니한 가공되지 아니한 원단인 생베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가공되어져서 공정 과정을 특별한 아주 마지막 마감 손질을 하여서 여러분 혹시 양복을 맞춰본 적 있습니까? 이 양복을 맞추게 되면 한 번 두 번 이렇게 공정 과정을 통해서
처음에 가서 치수를 재고 또 옷이 거의 만들어지는 마지막 시점에서 그것이 확실한 어떤 옷으로서의 형태를 갖추어졌는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다시 우리들을 호출하여서 이렇게 가봉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부활을 통해서 최후로 마감되어져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그 기간 동안에 만들어진 이 새 옷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새 옷이신 생명 주시는 호흡 생명 주시는 공기가 됨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생명 주시는 영을 자유롭게 공기를 들이마시는 호흡을 소유하는 것처럼 그렇게 누구든지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 바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의의 새 옷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선물만 해주시면 뭐해요? 탕자에게 깨끗하고 제일 좋은 겉옷을 내어다가 입혀주어라.
누가복음 15장 22절에 말씀을 했지만 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합당한 자격의 표현인 옷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배고품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요. 기진맥진해 있습니다.
그래서 기진맥진하는 것을 채워주고 공급해 주고 만족해 하기 위해서 새 포도주에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뭡니까? 아주 먹고 마심으로 말미암아 힘이 넘치는 활력이 넘치는 바로 이렇게 활력이 넘쳐서 기분 좋아지는 충만케 되는 그러한 바로 그 잔칫집의 주인공인 그 탕자가 아주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입었지만서도 힘이 빠져서 축 늘어진 상태에 있으면 그 잔치집의 모양이 바로 이렇게 훼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아주 배부르게 하여서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 찬 활력이 넘치는 그러한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새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시는 영을 그에게 부여해 주시는 이 새 포도주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천국 백성의 누림을 위해서 신랑 그 자체가 되시고 그리고 혼인잔치집의 그 혼인잔치 자체가 되셔서
외형적으로 신랑의 신부가 될 자들에게 바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혀주심으로 말미암아 합당한 신부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을 보여준 다음에 새 옷은 바로 결혼식에 신부로서 참석할 합당한 자격을 주기 위한 외형적인 것이죠.
그러나 그가 배고픔 때문에 기진맥진해 있는 그들에게 바로 신부들에게 내적으로 충만케 함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 감동시켜서 활력이 가득 찬 사람들로 만들기 위하여 열광하게 하는 아주 기운차게 하는 새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 새 포도주인 것입니다.
포도주도 포도주 나름인데 내적으로 충만케 하고 내적으로 활력 있게 하고 내적으로 감동시키셔서 잔칫집에서 신랑과 함께 연합되고 결합되어지는 그 신부와 신랑이 함께 누리게 하는 것을 온전하고도 완전케 하기 위해서 바로 이 새 생명의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들에게 그러한 새 포도주 같은 활력이 넘치는 자들로 우리를 감동시키고 생명 주시는 영이 우리에게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렇게 변화시켜 주신다 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입니다.
그래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천국 백성의 누림을 위한 신랑 그 자체이십니다.
그리고 그 잔칫집의 혼인잔치 모두의 주인공으로서 이 하늘에 속한 천국 백성이 신랑 되시는 왕이신 그리스도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새 옷을 부여해 줌으로 말미암아 신부가 된 그들이 합당하게 아버지 앞에서, 우주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합당한 결혼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5가지 결혼 잔치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5가지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해 주신 이러한 일들을 이 신부가 되는 신랑의 신부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우리들이 이렇게 새 옷을 입었죠, 또 결혼 잔치에 참여했죠, 그리고 결혼 잔치 그 자체에 합당한 자격이 있는 새 포도주가 준비되어 있죠, 이런 모든 것들이 천국 잔치에서 바로 이 그분을 합당한 신랑으로 우리가 누리기 위하여 외형적으로는 크게 새 옷을 주시고 원래는 뭡니까? 육체가 되심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의 전혀 사람의 손길이 닿아지지 아니한 전혀 사람의 손길로 손질되지 아니하고 조성되지 아니한, 바로 생베가 되신 것이 육체가 되심부터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의 그리스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 생베 조각이 이제 공정의 특별한 과정을 통해서 마감 처리되어서 새 옷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예수님께 십자가에 달리셔서 3일 후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새 옷이신 생명 주시는 영을 우리에게 이렇게 공기 호흡으로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영이라는 존재 안에 생명 주시는 영이 임재하셔서 거듭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 순간부터 우리를 활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생명과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 생명과 본성을 우리에게 주입시켜 주시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형적으로는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생베조각 이셨던 그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3일 후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새 옷, 곧 생명 주시는 영이신 새 옷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합당한 신부로서의 그러한 바로 하늘에 속한 신부로서 합당한 결혼 잔치에 참여하게 만들어 주시고, 그리고 내적으로 그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새 포도주이신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 시는 영이신 새 옷을 허락해 주셨던 그분은 또한 내적으로 감동시키셔서 그 신랑과 함께 그 혼인잔칫집에서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누리게 하는 삶을 갖게 하기 위해서 새 포도주 그 자체가 되신 분이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분은 원래 마감 처리되지 아니하는 천연 그대로의 가장 높은 하늘에서 가장 낮은 땅으로 내려오신 생베 조각이었지만
원단 그 자체이셨지만 죽음과 부활이라는 특별한 공정 과정을 통해서 새 옷이 되시기 위하여 부활하심으로 이 죽음과 부활
안에는 얼마나 기가 막힌 말할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새 옷이 되시기 위하여 그 새 옷은 자신이 입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담에게 입혀주시기 위한 창세기 말씀이죠. 예 그들이 두렵고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개를 만들었는데, 그 가리개는 온전치 못한 것이기 때문에 양을 피 흘려 죽임으로 말미암아 가죽 옷을 만들어주신 그 가죽
옷이 바로 새 옷에 대한 예표인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모두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예표하고 있는 그 예표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날 수가 없기 때문에 항상 예표와 상징적인 것이 보여진 다음에 실제적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래서 피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죽음에 대한 얘기를 통해서 부활을 통해서 생명 주시는 영 새 옷이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음과 부활을 예수님이 경험하지 않고 체험하지 아니하셨다면 우리에게 빛나고 개끗한 세마포를 전혀 전달해 줄 수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우리는 정말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요? 정말 그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어떤 놀라운
그 감동과 감격 그분 앞에 그냥 온 존재가 굴복되어져서 그냥 아무 소리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의 것이 바로 외형적으로는 우리들의 새 옷이 되기 위해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시고 그리고 내적으로는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 새 옷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그분께서 내적으로는 감동시켜주셔서 우리를 열광케 하기 위해서 흥분케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어서 활력이 가득 찬 그 혼인잔칫집에 신부가 인상을 찌푸리고 뭔가 그냥 피곤한 모습으로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면 그 자리에 온 하객들이나 그 주인공이신 신랑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바로 기쁨과 즐거움 안에서 온전하고도 완전한 잔칫집을 형성하기 위해서 조성하기 위해서 새 포도주 그 자체가 되신 그리스도 할렐루야 이분이 우리의 구세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낡은 가죽 부대는 침례 요한의 몇몇 일부의 제자들이 금식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지금 예수님께 따지고 있는데
이 종교적인 구태의연한 옛 율법 안에 속해 있던 그 천연적인 타고난 옛 생명 안에서 산출되어진 마치 금식을 하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처럼 보여지는 선한 행위들이지만 종교적인 하나의 실행들 가운데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이 종교적인 실행들은 옛 낡은 옷 낡은 가죽 부대에 불과하다라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옛 종교에 속한 바리새인들이나 침례 요한에 의하여 새 종교를 취하고자 그 안에 들어왔던 요한의 제자들까지도
금식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정죄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 그리고 종교적인 것 예수님 없이 행해지는 모든 것들 하나님을 섬기긴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도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일들을 행하지만 그리스도 없이 행해지는 모든 일들은 종교적인 하나의 형태라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와 종교적인 것들은 낡은 가죽 부대들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오묘하고도 심오하게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부활하심으로 부활에 의하여 생명 주시는 영 생명 주시는 공기가 되어 주시고 호흡이 되어 주시고 생명 주시는 그 영 자체가 되어 주신 그리스도의 영이시죠 성령님이시죠 보혜사이시죠 그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새 포도주로서 낡은 가죽 부대에 옛 생명에서 산출된 침례 요한의 일부의 몇몇의 제자들처럼 그리고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어떤
그런 사람들의 유형의 것들처럼 이 금식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이것이 옳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마치 옳아 보이지만 바로 새 포도주와 새 옷으로 조성되어진 그리스도를 오히려 훼손시키고 그분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지금 예수님께서는 아주 강력하게 그들에게 계시의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를 만약에 낡은 가죽 부대 이 옛 생명 안에서 옛 종교 안에서 산출되어진 선한 행동과 선한 행위들로 이렇게 보여졌던
금식과 같은 행위를 통하여 그렇게 따지고 드는 것은 열광케 하는 흥분케 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어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이신 새 옷을 주시고 아주 내적으로 감동시키셔서 신랑과 함께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누리게 하는 그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그 어떤 자신들의 굴레, 자신들의 울타리, 자신들의 어떤 관념 안에 자신들의 그 틀 이 바리새인들에게는 옛 종교요 침례 요한의 제자들에게는 새 종교 안의 틀에 가두어 놓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표현하고 나타낼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교회들, 현대주의자들, 근본주의자들, 보수주의자들 또 천주교까지도 포함한 이런 사람들에 의하여
이러한 일들이 지금 실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천주교에 한번 가보신적 있습니까? 저는 수십년 전에 한 번 그 천주교회에
한번 찾아가서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런 행위들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이 열광케 하고 기쁘게 하고 활력 있게 하는 새 생명이 되시는 새 생명 주시는 그 영이신 새 포도주인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틀 안에 넣음으로 말미암아 온전하신 그리스도 생명의 그리스도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고 나타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저들이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구나 라는 것을 제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종교적인 사람들은 바로 이 새 종교이며 참 종교이신 왕이신 그리스도를 자꾸 자신들의 어떤 울타리 안에 가두어 저장하고
보존하고 유지하려고 함으로 말미암아 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이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된다 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기서 17절에 나오는 새 포도주, 새 것은 지금 바로 현 시점에서 어떤 갓 만들어진 그 자체 전혀 사용하지 아니한 것
전혀 손길이 닿지 아니한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물건을 살 때 보면 새 물건과 헌물건이 있죠? 누군가가 한 번 그 물건을
취하여서 사용해 본 적이 있는것이라면 그것은 새 물건이 아니라 옛 물건이 돼버리는 것입니다.
새 물건이란 전혀 손길이 타지 아니한 사용하지 아니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새 포도주와 새 가죽 부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17절에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존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새 가죽 부대와 새 포도주는 모두를 열광케 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내적으로 생명 주시는 영을 믿고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품안에 들어온 자들을 감동시킴으로 말미암아 신랑과 함께 누리는 그 잔치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 열광하게 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을 담는 그릇이 바로 이 새 가죽 부대라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열광케 하는 그 생명 그 자체이신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죠.
그분이 생명주시는 영으로서 새 포도주가 되어서 우리를 활력 있게 만들고 기쁘고 막 흥분케 하고 뭔가 하늘을 향해서 사는
도저히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러한 자들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는 새 포도주가 되시고 그리고 바로 이 옛 종교 안에 있는 삶이 아니라 타고난 옛 생명에서 산출된
어떤 그러한 천연적인 행동과 천연적인 선한 행위들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라는 이 새 생명 되신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그분과
하나로 연합되어져서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새 포도주 열광케 하는 흥분케 하는 내적으로 감동을 주어서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고 혼인잔치 그 자체를 빛나게 하는 내적인 생명이 되시는 것이 새 포도주인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여러분 제가 한 40년 전에 이런 경험을 한번 해본 적이 있는데요.
술을 마신 적이 없었는데 마치 새 포도주가 나를 흥분케 하고 열광케 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이 땅에 있는 내가 그냥 하늘로 높이 공중으로 올라가는 삶을 살게 하는 이러한 내적이고도 충만한 생명 주시는 영이신 성령님께서 저에게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제가 이러한 새 포도주를 한번 경험하고 체험한 과거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새 옷이 되실 뿐만 아니라 새 가죽 부대가 되어 주시고 또 새 포도주 내적으로 감동케
하시는 새 포도주를 담는 외적인 그릇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그릇을 통해서 그릇 안에 들어갈 때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
자체가 새 가죽 부대인데 새 가죽 부대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을 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에게는 금식이나 어떤 외형적인 천연적인 관념 속에서 나온 선한 행위나 행동들 그 종교적인 실행들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주재가 되어 주시고 우리들의 생명이 되어주시고 우리들의 내용물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그 자체가 되는 신앙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가죽 부대에 우리가 이렇게 만들어져서 들어가게 세포도주를 담는다라는 그러한 의미인 것입니다.
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재가 되시고 참이 되시고 이 내용물이 되시고 이 생명이 되시고 임재가 되어야지 그리스도 없는
어떤 옳아 보이고 맞아 보이는 모든 형태의 행위들이나 행동들이나 실행들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 낡은 가죽 부대 또는 낡은 옷에 대고 기움으로 말미암아 둘 다 온전히 보존하지 못하고 쏟아져 바깥에
낭비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생명의 왕이신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그 왕국 곧 생명의 천국을 설립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그 천연적인 어떤 타고난 옛 생명에서 산출되어진 그러한 종교적 실행으로 자신의 나라, 자신의 왕국 자신의 천국을 세우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셔서 우리에게 새 포도주가 되신 그 자신으로 우리들의 그 내용물이 되시고 주재가 되시고,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그 자신으로 천국을 세우기를 원하고, 지금 그 천국을 세우고계시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 포도주를 새 가죽 부대에 넣으신 그런 자들을 통해서 신랑과 함께 누리는 혼인잔치 중에서 완전한 신부로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새 옷을 입은 자로서 완전한 누림이 될 수 있는 자들이 바로 새 옷을 입고 새 포도주를 마신 자들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합당한 신랑의 신부, 아내가 되게 하기 위한 모든 일들을 예비하고 온전케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그 순간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생베의 조각이셨던 그리스도께서 마감 처리가 되지 않고
끝에 공정 과정을 거치지 않으신 그분이 손질되지 아니한 생베조각이신 그리스도께서 이제 그 생베조각 원단을 가공하여서
마지막 특별한 공정 과정을 취해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전달해 주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가지고 체험하셨던 것입니다.
그 부활과 죽음을 통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처리되신 후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주시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임재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바로 누가복음 5장 36절에 제일 좋은 그 겉옷을 끄집어내어서 내 아들에게 입혀라 그리고 나서 송아지를 잡아라 라는 새 포도주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놀라운 얘기입니다.
그래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혼인잔칫집의 신랑과 하나가 되어 연합되어져서 결합되어져서 완전한 신부로서
완전하고도 온전하며 합당한 자격을 가진 누림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그런 신부가 되게 하고자 혼인 잔치의 그 주인공으로서
바로 신랑이 되어 주시고 특별히 그전에 의사가 되어 주시는 그 말씀이 있었고요 그리고 세리와 수많은 죄인들에게 금식의
문제를 가지고 따지고 드는 그들에게 신랑이 되신다는 얘기를 하시고요. 그리고 지금 생베와 새 포도주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부들인 우리에게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을 소유하여서 영접하게 되어서 거듭난 자들에게 완전한 혼인잔칫집의
아내로서 신부로서 누림이 되시기 위하여 구주가 되어 주시고, 의사가 되어 주시고 신랑이 되어 주시고 생베가 되어 주시고
새 포도주가 되어 주셔서 바로 이 성도들이 거듭난 자들 생명 주시는 영, 생명 주시는 호흡과 공기를 주시는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과 함께 하나 되어 움직이는 그들에게 바로 새 가죽 부대가 되도록 천국의 백성들 천국의 구성원들이 되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 그분께서는 새 포도주가 되어 주시고 새 가죽 부대가 되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합당한 신부로서의 삶의 자격을
가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들어가서 살기에 적합한 자로 만들어주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신 예수님을 말씀으로써 우리가 볼 수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 36절에서 탕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제일 좋은 그 겉옷을 그에게 입혀라 라고 하셨는데 요셉에게는 제일 좋은
겉옷뿐만 아니라 속에 금사슬까지 입혀주시죠. 이 옷이 두 가지 종류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하여서 머리를 숙일때 금사슬이 밖으로 드러나 지는데 그것이 바로 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천국의 구성원이 될 자들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이 구약 성경 요셉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옷도 옷 나름이라는 것을 여러분께 말씀을 드립니다.
탕자에게 입혀주신 가장 좋은 제일 좋은 옷인 겉옷이 있고 또 속옷이 있는데요 겉옷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3일
동안에 엄연하게는 이틀 동안의 황폐함 속에서 일몰의 삶은 주님께서 다 가져가 주시고 일출의 삶 삼일 후에 나타나실 새벽 미명에 예수님께서 부활의 모습으로 막달라마리아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일몰의 삶은 깜깜함과 어두움 가운데 계셨던 예수님께서 다 품어 가져가 주시고 3일째 된 날 둘째 주의 첫날인 여덟 번째 날이죠 부활의 날 우리가 말하는 주일날 여덟 번째 날 바로 여덟 번째 아들인 다윗처럼 여덟 번째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42대의 계보에 마지막 종결이면서 시작이면서 새로운 시작점이 되시는 그분께서는 두 번째 주의 첫날 첫 번째 주의 다음 날인 여덟 번째 날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처리된 마지막 어떤 특별한 공정 과정을 거치신 후에 부활을 통하여 새 옷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이렇게 만들어 주셔서 입혀주실 수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새 옷이 그러한 과정들을 거쳐서 우리에게 입혀졌지 그냥 뚝딱 새옷이 만들어져서 우리에게 입혀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 새 옷의 이 “새” 라는 말은 전혀 다듬지 아니한 천연적인 어떤 가공되지 아니하는 손길이 타지 아니한
바로 그런 것들이 새 라는 단어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3일 후에 부활을 통하여 새 옷으로 그리스도께서 만들어 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께 열납되게 하기 위해서 새 옷이 되어 주셔서 우리에게 이렇게 입혀주셨고 덮어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그 의를 우리에게 전달해 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의로서 우리를 덮혀주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의
그 새 옷이라는 것입니다. 지성소에 있는 덮개가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덮으셨다 시은좌 은혜로 감싸주셨다.
은혜의 보좌 이것이 이 창세기에 나오는 그들의 무화과 나무로 가리개로 덮은 그들의 훼손될 수밖에 없고 잘못되어질 수밖에
없는 그들을 어린 양을 잡아서 피 흘려서 죽게 한 다음에 입혀주신 옷이 바로 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덮어주신 이 옷이라는
것입니다.
이 새 옷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우리가 열납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기에 적합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보여져야 자신의 아들이신 그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로서의 합당한
자격을 가진 자로 공개적으로 인정을 해 줄 수가 있기 때문에 새 옷으로 만들어져서 우리를 입혀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께 열납되어져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하기 위한 일 때문에 우리를 덮어주시기 위하여 새 옷으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누가복음 15장 22절의 말씀과 고린도전서 1장 30절 말씀인 것입니다.
15: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명령하였다. 어서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1:30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롭게 하여 주심과 거룩하게 하여 주심과 구속하여 주심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낡은 옷에 붙인 그 생베조각은 그 옷을 오히려 잡아당겨서 오그라지는 그런 성향과 성질과 본성이 있기 때문에
그 낡은 옷을 더욱더 찢어지게 하여서 오히려 두 개 다 못 쓰게 되는 그러한 상황이 연출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낡은 옷에 붙인 생베조각은 낡은 옷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인생의 33년 반 동안의 삶을 사시면서
보이셨던 좋은 면들 어떻게 보면 선한 행위들, 선한 행동들 이런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을 모방하여서 그 길을 따르고자
하는 침례 요한이 만든 새 종교 안에 들어가 있는 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예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없이 그리스도가 배제된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임재 없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행해지는 모든 것들은 종교를 갖는 것이고 종교적인 형태의 행위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종교를 가진 자들 종교적인 행동들을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좋아 보이는 인간적인 행동들을 모방함으로
말미암아 조금만 우리가 어그러지고 새 포도주가 새 가죽 부대에 들어오는 삶을 사는 거듭난 자들 정말 이 생명 주시는 영에
의하여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사람들을 오히려 손가락질하고 조롱하고 이 침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바로 아니!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습니까 라고 따지고 제자들과 예수님을 정죄하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처럼 그렇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자신들이 옳아 보이는 자신들이 맞아 보이는 어떤 예수님을 통하여 조금 조성되어지고 만들어진 어떤 인간적인 어떤 타고난 천연적인 행동들을 통하여 마치 그것이 옳아 보이는 자신들의 의로서 자신들을 가리는 그 구속자로서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바로 새 옷으로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영이 되셔서 새 옷을 입혀주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자신들의 그 의로서 자신들을 가림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구속주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셔서 새 옷을 부여해 주신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이러한 사람들의 인간적인 행동들 모두가 바로 낡은 옷들에 불과하다 라는 것입니다.
그 16절에 나오는 그 낡은 옷 낡은 가죽부대 특별히 낡은 옷은 사람의 천연적인 타고난 생명에 의한 사람의 선한 행동들 선한 행위들 맞아 보이고 옳아보여요, 종교적인 그러나 구태의연한 종교적인 행실들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종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아무리 치장되어지고 위장되어지고 좋은 것으로 이렇게 무화과 나뭇잎으로 그들의 앞을 가린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만들어주신 새 옷이라야 그것이 효과와 효력이 있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1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침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의 옷들이 구멍이 났다 헤어졌다라고 이렇게 얘기하지
아니하시고 침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그 주위에 있는 제자들에게 세리들과 수많은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계시는
계시의 말씀은 너희가 그들이 침례 요한의 제자들 새 종교 안에서 옳아 보이는 행동들을 하지만 낡은 옷의 생베 조각을 마치
깁고 있는 행동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너희는 지금 온전한 옷을 갖고 있지 않다 낡은 옷 옛날 옷 오래된 옷 너희들은 새 옷을
가져야 되는데 새 옷이 아닌 온전한 옷을 갖고 있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생베조각조차도 그것이 하나로 연결되어져서 깁게
되면 두 개 다 못 쓰게 된다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다가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댄 조각이 그 옷을 당겨서, 더욱더 크게 찢어진다.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가죽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가죽 부대는
못 쓰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침례 요한의 몇몇 일부분의 제자들이 바로 금식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옷이 크게 구멍이 났다.
그걸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 그 구멍을 기우려고만 한다. 그 구멍 그 모자라고 부족한 것은 너희는 금식이라는 것을 통해서
땜빵질을 하고 그것을 바느질을 통하여 하나로 연결시켜서 뭔가 그럴싸하게 만들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은 곧 들통이 날 수밖에 없는 바로 그러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베조각을 잘라 너희의 구멍난 옷에 붙이는 것이 바로 너희의 금식에 대한 주장이라는 것을 얘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예수님께서 그 침례 요한의 일부분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금식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따지고 정죄하는 장면을 보일 때 바로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그 낡은 옷에 기워야 할 큰 구멍이 있는데 그것을 금식으로 땜빵질하고 그것을 떼우려고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지금 너희는 나를 왕이신 그리스도를 이용하여 그 구멍을 깁는데 예수님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
너희가 옳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 너희의 구멍을 땜빵질하는데 나를 이용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너희의 옷에 크게 구멍 나 있는 그것을 깁기 위해서 나의 생베 한조각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인간적인 행동을 모방하기 위해서
잘라서 그것을 깁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며 옳지 못한 것이다.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생베 조각은 오그라지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햇볕을 쐬거나 물에 담가지게 되면, 오그라지는 성향으로 인하여 잡아당기는 수축하는 힘을 통하여 낡은 옷들이 찢어지고 오히려 그것들까지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라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의 그 낡은 어떤 그 옷 조각으로 너희의 헤어진 구멍 난 것을 땜빵하기 위해서 내 낡은 옷에 붙이지 말라 만일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고장이 나고 그것이 또 훼손되어져서 그 구멍은 더 커져서 너희의 그 부끄러움이 드러날것이다 라는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5장 36절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새 옷에서 한 조각을 떼어 내서, 낡은 옷에다가 붙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그 새 옷은 찢어져서 못 쓰게 되고, 또 새 옷에서 떼어 낸 조각은 낡은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라고 새옷에 대한 말씀과 마태복음 9장 16절에서 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다가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댄 조각이 그 옷을 당겨서, 더욱더 크게 찢어진다.라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을 통하여 자신을 생베조각에 비유하신 것은 성육신과 십자가 사이에 바로 이 생애를 사신 예수님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이 33년 반 동안에 예수님께서는 생베로서 전혀 가공되지 아니한, 손길이 타지 아니한 사람의 어떤 인위적으로 조성되어지지
아니한 순전한 높은 하늘에 속한 왕으로서 세상의 낮은 땅에 내려오셔서 결코 가공되어지거나 사람들에 의하여 조성되어
다루어지지 아니하는 온전하고도 깨끗한 순전한 하늘의 새 천 이셨다 라는 것을 생베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생베가 특별한 공정 과정을 통해서 새 옷으로 만들어진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을 통하여 완전하고도 특별한 공정을 통하여 가공되어져서 부활이라는 것을 통하여 이 생베라는
이 새 천이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지지 아니한 순전한 이 원단, 그 하늘의 천이 다루어져서 부활을 통하여 완전한 새 옷으로
만들어진 것이 생명 주시는 영 할렐루야! 부활의 영, 성령님, 보혜사,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함께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바로
생명 주시는 영이신 새 옷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새 옷을 입어야 됩니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인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입되어진 생명 주시는 공기요, 생명 주시는 호흡이요, 생명 주시는 영이요,
우리를 분발시켜주고 우리를 촉진시켜 주시고 우리를 후원해 주시고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우리를 놀랍게 활력 있게 하시는
그 모든 것이 되어주시는 생명 주시는 새 옷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나의 그 천조각, 가공되어지지 아니하는 가공되지 않은 이 원단, 천조각, 생베 조각만
우리에게 주었다면 우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원단 그 생베조각을 그리스도께서는 새옷으로 만들어주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그 자격을 가진 자로서의 삶을 우리가 보여줄 수가 없기 때문에 바로 하나님 앞에서 이 새 옷으로
주님께서 친히 만들어 우리에게 전달해 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우리를 의롭다 하고 하나님께 열납되어져서 우리를 덮어질 수 있는 옷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베조각이 아닌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특별히 가공되어지고 공정되어진 그리고 여러 과정들을 거쳐서 끝손질로 마감되어져서 완전하게 처리되어서 우리에게 손수 입혀주심으로 말미암아 탕자에게 입혀주신 제일 좋은 그 겉옷 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완전히 의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전가되어진 그 의로서 우리에게 입혀주신 것이 이 새 옷인 것입니다. 예 할렐루야 새 옷을 주신 주님께 정말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돌리고 기뻐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냥 원단천인 생베조각만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생베조각을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이며 우리는 만들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완전한 수공자 하늘의 그 장인으로서 주님께서 만들어주셔야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보아주시고
우리를 열납하여서 기쁨으로 우리를 용납하게 되는 것입니다.
끝손질이 잘 된 옷이라야 마감 처리가 된 그리스도께서 친히 만들어준 옷이라야 우리가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님께
열납되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들로서의 합당한 자격을 갖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갈보리의 언덕에서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특별한 공정 과정을 통해서 새 옷으로 끝 손질이 되어지고, 부활을 통하여 그 새 옷이 마감되어져서 완전히 종결되어진 상태에서 끝 손질된 완전히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인 아주 화려하고도 아주 신부로서의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 집에서 입어야 될 옷으로 만들어짐으로 말미암아 생명주시는 영이신 그분을 영접하는 모든 자들에게 이 옷을 전달해줌으로 말미암아 그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주인공이신 그 그리스도께서 혼인잔치를 열 때 참석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의의 자격을 부여해 주신 것이 바로 이 새 옷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혼인잔칫집 그 자체의 주인공으로서 신랑이 되시며, 그리고 혼인잔치에 참석할 자격을 갖게
하는 우리의 혼인 예복이신 새 옷을 만들어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혼인잔치도 그분에 의해서 주관되고 혼인잔치 안의 주인공이신 신랑이 또 그 왕이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분께서 또 새 포도주가 되어주셔서 우리를 활력이 넘치는 그런 하나로 누리는 삶을 살게 하시고 그리고 혼인 잔치에 합당한 자격을 가진 자로 만들어주기 위하여 혼인 예복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인 새 옷을 우리에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전달해 준 것이 새 옷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부활은 이렇게 놀라운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이 빛나고 깨끗한 계시록에 나오는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그런 특별한 옷을 제공해 주 것이
바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왕이신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우리는 바로 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원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임재 없이 침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금식에 대한 문제로 따지고 드는 것은 옳지가 않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다른 것은 다 없어도 신랑이신 참 생명이 되시고 참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
되어 움직이는 삶을 살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삶의 형태의 것들을 바로 섬기는 것으로, 기쁘게 하는 것으로 여기고 우리를 받아주시는 용납하시는 장면들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혼인잔치 집에서 누리는 삶 임재를 누리기 위해서 기쁨과 즐거움의 임재를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격이 필요한데 그 자격은 바로 새 옷을 예비해주시고 준비해 주신 것을 입혀 주실 수 있는 생명 주시는 영이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허락되어 주신 생명 주시는 영이신 새 옷을 입는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 생명 주시는 영을 우리가 소유하고 영접하고 내주케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타고난 천연적인 것, 육체적인
것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 없이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버려야만 됩니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함께 드려지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받으시고 우리에게 합당한 자격을 주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없이 그리스도 없이 행해지는 모든 것들은 아버지이신 천부께서 우리를 받아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이 본문 말씀인 것입니다. 신랑은 우리들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잔칫집의 주인공도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하나님 자신이신 그분이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 옷을 예비하고 준비해서 우리에게 입혀주시기 위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9장 34절에 피와 물을 흘림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산출하여서 드디어 새 옷을 우리에게 입혀주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머리맡에 곱게 포개져 놓으신 최고의 중요한 선물로 우리에게 부여해 주고자 했던
그것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 앞에 합당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고 열납되어져서 우리를 신부로서의 자격을 갖게 하는
그 옷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 옷이 만들어지기까지 예수님이 걸치고 있는 옷을 그 로마 군병에 의하여 제비 뽑기에
의해서 그 옷이 조각조각 내어지셔서 특별한 수선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새 옷을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옷이 될 수가 있어서 하나님 앞에 열납되어지는 그러한 신부로서의 자격을
갖은 자로 될 수가 있었던 것이지 그렇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조금도 부족함이나 미비함이나 잘못됨이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충족되어진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 닛시 엘샤다이 모든 것을
충만케 하고 공급해 주는 바로 유방이라는 뜻을 가진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 주실 수 있고 소유케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라고 우리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누가복음 15장22절의 말씀인데요. 탕자 이야기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서 허랑방탕하게 산 그가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아들의 상태는 초라하기가
짝이 없는 완전히 거렁뱅이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 존귀하고 거룩하고 신성한 아버지의 그 모습과는 아들로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의 모습이 탕자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전혀 어울리지 아니한 그 아들을 어우러지는 합당한 자격을 가진 자로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자신 앞에
내보이기 위하여 종들에게 말하기를 가장 좋은 겉옷을 내어다가 입혀줘라. 그를 높으시고 존귀하시고 신성하신 아버지의
그 임재에 어울려지게 되도록 가장 좋은 옷을 입혀 주시는 것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인 것입니다.
예 바로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자신으로서 우리들에게 이러한 아버지의 임재에
어울리게 하는 새 옷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고, 전달해 주시고 제공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그 과정을 견디시고 새 옷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틀 만에 황폐함 가운데 있었던 그분이 3일째 된 날에 부활하셔서 일몰의 삶은 자신이 다 가져가 주시고 일출의 삶
밝은 태양의 그런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둘째 주 첫날, 첫 번째 주의 그다음 날인 주일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왜 새 옷이 필요합니까? 지금 이것이 마태의 집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세리의 집에서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는 이 잔치를 배설한 장소가 세리 마태의 집이었던 것을 우리가 알수가 있습니다.
세리 마태의 집에서 잔치를 했었을 때 누가 있었습니까? 수많은 세리들과 수많은 죄인들이 있었다 라고 마태복음 9장 10절에서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다. 장차 이들이 신부가 될 자들입니다.
장차 이들이 천국 백성의 일원이 될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계시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전달해 주고자 지금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며 마주했을 때 말씀으로 가르쳐주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태복음 9장 10절에 나오는 세리들과 죄인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예수님 앞에 서 있는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 있는 세리들이요, 죄인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앞에 마주하고 서 있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다.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주님의 임재 앞에 앉을 수 있도록
우리를 덮어주는 바로 이 아담과 하와에게 덮어주는 가죽 옷이 필요했던 것처럼 시은좌 바로 은혜의 보좌를 상징하고 있는
그 지성소의 언약궤를 덮고 있는 덮개처럼 우리를 가려주는 세리들과 이 죄인들의 상태의 모습인 우리들을 가려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옷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신랑 되신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새 옷이 되시기 위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새 옷을 이렇게 만들어서 우리에게 가공되어진 완전히 처리되어진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과정들을 거쳐서 우리에게
조성되어진 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혀주시기 위하여 자신을 처음에 잔칫집의 신랑으로 말씀 하신 후에 신부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새 옷 빛나고 깨끗한 신부가 입어야 될 합당한 자격으로 보여주는 새 옷에 대한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옷을 입어야만 하나님의 임재 왕이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혼인잔칫집에서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함께
하나로 연합되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탕자가 가장 먼저 아버지 품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그 종들에게 명해서 첫 번째로 한
것이 송아지를 먹인 것이 아닙니다. 배고픔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자격이 있는자 하나님의 임재에 어울리게 되는 아버지의 임재에 어우러질 수 있는 왕이신 그리스도와 합당한 신부로서의 자격이 있는 자가 되게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그 겉옷을 입혀라 라고 옷에 대한 얘기를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새 옷을 입기 전까지는 죄인들이요, 세리들이요, 그 하나님의 임재는 물론 왕이신 그리스도의 신랑의 임재를
결코 누릴 수가 없는 존재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신부가 신랑의 임재를 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아시고 새 옷으로 입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성육신 하신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새 옷에 이 마감
처리되어 완전히 가공되어져서 우리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인 새 옷을 우리에게 마련해 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새 옷이 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새 옷을
입을 수가 있습니까? 새 옷을 입는 것이 중요하죠. 새 옷을 만들어주신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새 옷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 만들어 주신 새 옷을 이제 입는 그러한상황은 우리가 실행해야 될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7절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침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라고
침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침례를 통하여 이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준비해 주신 완전히 마감 처리되어서 빛나고 깨끗한 새 옷으로 마련해 준 그 새 옷을 입는 일은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 안에서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새 옷이 되어 주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근데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그분을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는 부활하신 후에 우리에게 생명 주는 영이 되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죠. 생명 주는 영을 믿고 영접하여 우리에게 내주케 하면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영 안에 생명 주는 영이
우리에게 내주하고 임재하여서 우리를 거듭나게 할 때 새 옷으로 우리가 덧입혀져서 그때부터 그리스도께서 부여해 주시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본성을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공급해 주시고 전달해 주시고 주입시켜 주셔서 촉촉하게 생명으로
넘치게 충만하게 한다 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후에 생명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바로 생명 주는 영이신 그분을 영접하여서 하나되어 움직이는 삶이 새 옷을 입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어러한 말씀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요?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말씀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새 옷에 대한 것이 있다라는 자체도 모르고 옷이 겉옷이 있고 속옷이 있다 라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요셉을 통해서는 속옷까지도 준비해 놓으셨는데 탕자를 통해서는 겉옷을 말씀하고 게시고
지금 여기에서는 이 전체적인 옷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이 말씀을 통해서 아~ 이 새 옷이 되시기까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생명 주는 영이 되시기 위한
그분의 몸부림과 고통과 희생 아픔 말할 수 없는 그러한 과정들 새 옷으로 가공되어지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일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생겼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이틀 동안에 황폐함 가운데 계시다가 3일째 되는 날 부활하심으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는 생명 주는 영, 생명주는 공기, 생명 주는 호흡이 되셔서 이제는 들숨과 날숨을
통하여 언제 어느 때든지 우리 안으로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기가 매우 쉽도록 공기 그 호흡 자체가 되셔서 우리가 그분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쉽고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도 쉬울 정도로 생명 주는 영 그 영이라는 것은 공기, 호흡,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바깥에 나가서 이렇게 호흡을 한번 해보세요. 바람을 마시는 일입니다.
그렇게 바람을 마시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으로 내주하는 것이 그렇게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 또한 이렇게 쉽다는 것입니다.
부활 안에서 생명 주는 영이 되신 그분은 공기가 되시고 호흡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너무나 쉽고, 너무나 자유스럽고, 너무나 편하고, 너무나 용이하도록 만들어준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왕이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모실 수가 있어요.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영이란 그릇에 이 생명 주시는 영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은 들숨과 날숨 공기가 되고 호흡이 되고 영이 되기 때문에 그것도 영도 생명 주시는 영 생명 주시는 영
속에는 사랑이 포함되는 아버지의 사랑이 가미된 생명 주시는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호흡이 되시고 공기가 되시고 영이 되신 그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제 너무나 쉽기 때문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이런 얘기를 요한복음15장 4~5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알수가 있습니다.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이 자유스럽게 들어오고 나가고 자유스럽게 우리가 그분을 모시고 영접할 수 있도록 그러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시기 위하여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셨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부활 안에서 부활로 말미암아 영이 되셔서 그때부터는 마음대로 벽을 뚫고 제자들을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에게 순간적인 이동을 통해서 만나고,
또 갈릴리의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그 7명의 제자들 앞에 순간적으로 나타나셔서 또 만나는 이러한 부활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됨으로 말미암아 이 생명 주시는 영은 만유를 포함한 분이신 것입니다.
이 생명 주시는 영 안에는 예수님께서 하늘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땅 아래에 내려오기까지 그리스도께서 사신 모든 것들
그러한 베들레헴의 생명의 떡집에서 출생하신 그 순간부터 30년 동안의 생애와 3년 반 동안의 공생애 33년 반 동안의 그분이
성취하신 모든 것과 그분이 행하신 그 모든 것들이 이 생명 주시는 영 안에 다 있다 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 주시는 영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3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통해서 경험하시고 체험하신 모든 것들이 있기
때문에 만유를 포함한 영이라는 것이며 우리가 그 옷을 입을 때 조금도 부족함이나 결격사항이나 미비함이 없는 완전하고도
온전한 새 옷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을 우리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영 안에 그분을 모시고 영접하여서 임마누엘 할 때 하나가 되어서 움직이는 삶을 살 때 만유를 포함한 영이신 그분에
의하여 그분 안으로 침례를 받으므로 우리가 그 생명 주시는 영을 입게 됨으로 말미암아 새 옷을 입게 되는 것이라는
아주 기가 막히게 깊은 복음으로 우리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분은 부활을 통하여 부활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그분은 우리의 가리개, 우리를 덮는
그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이 되어 주시고 지성소에 덮개가 되어준 것처럼 우리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과 죄들을 가리는 것이
되시며 우리가 합당하게 아버지 하나님 앞에 마주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새 옷이라는 것입니다.
이 새 옷은 만유를 포함한 영이신 그리스도 자신인 생명 주시는 영인 것입니다.
영으로서 호흡이고 공기로서 자유스럽게 언제든지 그분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고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가는 아주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우리가 그분 안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쉽게 여러분 호흡을 한번 해보세요. 들숨과 통해서 날숨을 통해서 해보세요.
얼마나 쉽습니까? 내가 마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언제든지 그분을 영접하여서 새 옷을 입을 수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8장 19절 끝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의미가 이러한 말씀의 의미인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 안으로 침례를 주고 이 침례를 주고가
생명 주시는 영 안에 있는 새 옷을 입혀주라는 얘기인 것입니다.
침례가 단순하게 외형적으로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밖이죠.
침례교회에서 이렇게 주장하는 그러한 외형적인 침례 속에는 이러한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 이름 안으로 성령님 이름에서 침례를 주어라. 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 이름 안에서죠?
바로 아버지와 아들과 이 영께서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살고 계실 때 바로 예수님의 육체 안에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계셨지만 바깥으로 이렇게 영이 되어서 우리에게 바로 이렇게 교회를 산출하는 영이 되셔서 우리에게 자유스럽게 들어오시고
나가실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을 통하여 자유스럽게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안에 나타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이름 안으로 침례를 주는 것은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시는 영이신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허락해 주신 그리스도 그 생명 주시는 영 안으로 침례를 주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그런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 출생하심으로 말미암아 성육신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3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통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부정적인 것, 죄의 문제를 처리해 주고 제거해 주시고 해결해 주셔서
구속을 성취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3일 후에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을 통하여 부활로 말미암아 부활 안에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만유를 포함한 영이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이제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영적 존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곧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살아계실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을 거듭나게 한 이유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생명과 본성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가지고 계신
그 생명과 본성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서 우리를 새로운 출생의 일 거듭나게 하는 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영접하는 자에게는 거듭나는 일들을 하게 하신 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생명 주시는 영을 허락해 주시기 위한 일
때문에 그렇다 라는 것입니다.
성육신 한 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성육신도 이 생명 주시는 영 안에 포함되고, 그 30년 동안의 생애의 모든 것도 이 생명 주시는 영 안에 포함되어 있고, 십자가의 죽음도 이 생명 주시는 영 안에 포함돼 있고, 구속하신 것도 이 생명 주시는 영안에 포함돼 있고 이 호세아서에 나온 것처럼 5개의 줄들과 바로 이 사랑의 끈, 그것조차도 예수님의 성육신, 예수님의 공생애의 부활과 승천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그분의 성육신의 출생하심과 그리고 33년 반 동안의 생애의 삶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이 5가지가 바로 생명 주시는 영 안에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 그분의 성육신과 그분의 33년 반 동안의 생애의 삶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부활의 능력과 부활의 생명 모두가 이 생명
주시는 영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새 옷을 통하여 이것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하나로 통합시켜 주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과 영 안에서 침례받았을 때 우리는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침례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분을 입는 것입니다.새 옷을 입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 옷이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입어야 만유를 포함한
영이신 이분을 입어야 성육신 순간부터 승천하셔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아버지와 아들과 영 하나님을 보여주시기까지 이 모든
것들을 완전히 새롭게 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천국 잔치에 참여하여서 아내로서의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열납되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더 이상 생베조각이 되셔서 원단 가공되지 아니한 천으로서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완전히 마감되어지고 처리되어지고 공정이 끝난 끝 손질되어서 빛나고 깨끗한 새 옷을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완성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라는 이 생명 주시는 영을 통해서 만들어진 이 새 옷 안에서 우리는 구속과 부활의 능력과 신성한 예수님의 그 모든 인격의 모든 요소들 영원한 생명, 신성한 생명, 가장 높은 생명과 본성의 요소를 모두 갖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새 옷을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새 옷은 하나의 생베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의 가공되지 아니하고 마감 처리되지 않고 손질되어진 그냥 단순한 원단의 생베 천조각이 아니라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고 이틀 동안의 황폐함과 삼일째 부활하신 그 다시 사신 그 능력을 포함한
신성한 생명 주시는 영이 바로 새 옷을 입는 자들의 삶인 것입니다.
새 옷을 입는다는 것은 신성한 생명 주시는 영을 소유한 자들이요 바로 임마누엘 한 자들이요 주님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요
참 그리스도인 자들이요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혼인잔치집에서 바로 이렇게 하나로 연합될 수 있는 신부들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새 옷은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시는 영이신 것입니다.
부활의 영이신 생명 주시는 영을 우리가 모실 때 새 옷을 입는다는 것이 바로 이 완성된 옷인 생명 주시는 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제공해 주시고 예비해주시고 준비해 주시고 완전히 마감 처리해서
우리가 완전하게 입을 수 있는 혼인잔치에서 자격을 가진 자로서의 옷을 취한 자로서의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님께 열납 되어서 우리 모든 잘못되고 죄된 것들을 가려서 덮어주실 수 있는 그러한 새 옷이이신 생명 주시는 영을 입기 위해서 우리가 인생의 삶을 전적인 힘을 기울여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신 새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의 교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