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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한민국>
부처님은 어떻게 인류의 이정표가 되는 ‘법’을 설하고, 지금까지 불교의 교주가 될 수 있었을까?
그는 한 나라의 태자였고, 부족함 없는 세속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또한 인간의 생로병사를 보고, 인간애와 측은지심을 느껴서 출가를 하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승가를 이루는 승려들을 보라.
‘루저’집단이다.
인류의 스승인 석가모니와는 달리, 되는 일이 없어서 출가한 사람들이 많다.
불행하게도, 이런 사람들도 열심히 수행하면 ‘신통지’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신통지’를 얻으면 어떻게 될까?
자기보다 나은 사람들을 잡아서(빙의들게 하거나, 신병에 걸리게 함)일을 그르치게 하고 돈을 갖다 바치게 한다.(원래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것은 쉬우나 성사되게 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들은 정법을 갖춘 ‘승가’가 아니라 법도 모르고 신통지나 휘두르는 ‘무속인들’이다.
왕이 출가를 하면, 일류를 구하는 석가모니 부처님같은 분이 되지만, ‘루저’가 출가를 하면, 그저 자기 죄업이나 참회하는 일에 그치고, 돈에 눈이 멀면,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부처님 당시에는 ‘살인자인 앙굴리마라’같은 사람도 출가를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석가모니라는 스승이 있었다. 지금 그런 살인자를 제도할 수 있는 부처님이 있는 시대인가? 없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부처님 제자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고대 한국스님들은 역경승, 염불승, 선승으로 나뉘었다.
당시에는 부처님 경전을 번역하는 ‘역경승’을 최고로 꼽았다. 지금이야 미국대통령이 한 말이 1초도 안 되어 전 세계언론으로 전달되지만, 교통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유명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의 내용처럼 많은 스님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구하기 위해, 중국을 거쳐, 사막을 횡단하고, 심지어는 바닷길까지 거쳐서 인도까지 다녀왔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어, 인도어 심지어는 아랍어까지 할 줄 알아야 했으며, 문맹률이 높았던 당시에도 글을 읽고 쓸 줄도 알아야 했다.
또한 먼 길을 여행하려면 천문지리에도 능통해야 했고, 무거운 책을 날라야 했으므로 체격조건도 남달라야 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으므로 말과 같은 운송수단을 잘 이용하고, 뱃길도 밝아야 했다.
(옛날 필자의 조부님은 지금도 가난한 제주도 시골마을에서 가기 힘든 함경도까지 다녀왔고, 배편과 산길을 이용해서 다녔으며, 제주도 섬에서는 말을 타고 마을을 오갔다고 한다. 눈이 내리면 지금도 교통이 마비가 되는데 당시 자동차도 없던 시절 아침에는 서귀포 지역에서 법회를 하고, 정오 무렵에는 제주시에서 법회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이러한 교통수단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큰스님이 ‘축지법’을 쓴다는 소문도 있었다.)
한마디로 현대판 ‘슈퍼맨’(현대에 와서는 5개국어 능통하고, 운전면허는 물론 비행기 면허까지 있는 수준이 아닐지 짐작해 본다.^^)정도는 되어야 이런 일을 할 수가 있었다. 팔만대장경 한편이 나오기 위해서 목숨을 건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 지 상상해 보라. 지금도 팔만대장경 활자본 한 판을 드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 힘든 일인가?
‘도서관’건물을 지을 때가 하중을 잘 지탱하는 제일 튼튼한 구조로 지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책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무거운 것’이었다.
문자가 없던 신라시대, ‘이두’문자를 활용하여 중국에서 건너온 경전을 받아 적었다.
산스크리트어 경전이 중국어로 번역되고, 중국어 버전이 이두문자로 그리고 그 이두문자가 지금에 와서 한글로 번역된 것이다.
지금도 일반 사찰 법당에 놓여져 있는 경전을 들여다 보면, 글자가 세로로 써 있는 것도 있고, 왼쪽에서 오른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나가게 되어있다.
또한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유교서의 잘 갈고 닦인 한자와는 달리 글자가 꽤 ‘원시적’으로 느껴진다. 삼국시대 한자가 전해진 것이라 ‘뜻’보다는 ‘발음’을 소리나는 대로 쓰고 엮은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한 번만 바뀌어도 뜻이 많이 달라지게 되어있다. 이런 것을 두 번 내지 세 번을 다른 언어로 번역을 했으니, 그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성질 급한 문자를 모르는 이들은 ‘선승’이 되었고, 꽤 폭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부처님 역시 문자를 깨우친 후 선정에 드셨던 것처럼, 문자를 모르는 이가 선정에 들면 이렇게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지금 ‘선승’들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부처님만큼은 아니지만, 학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선정에 들어가길 바란다. 참고로 대승불교가 한국보다 늦게 전해진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Zen’문화가 발달하였다. 또한 일본은 삼국(한중일)중 문자가 가장 짧은 나라였고. 'ZEN'문화가 가장 발달하였으며, 전쟁의 종주국이 되었다.)
최근 들어 중국어와 같은 다른 언어를 거치지 않은, ‘빨리어’,‘산스크리트어’경전이 한국어로 바로 번역된 주석서들이 등장하여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예를 들어 뜻을 알기 힘든 ‘신묘장구대다라니’부분의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랴~’등은 삼귀의 빨리어 버전인 ‘나모 따사 바가왓또~’의 소리와 앞부분이 비슷하다. 또한 '나무 아미타불'로 익숙한'나모' 소리는 계속 나온다.
영어책이 없던 시절 미국에 가게 된다면, 어떻게 외국어를 공부했을까?
지금처럼 ‘phonics’ 프로그램도 없던 시절, 선생님이 ‘사과’를 보여주면서 ‘APPLE’이라고 말하면 한국어로 ‘애플’이라고 적으면서 익혔을 것이다.
그런 것처럼 우리나라 승려들이 서역의 스님들이 기도하는 곳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음성을 들으면서 당시의 원시적인 문자였던 ‘이두문자’로 받아 적으면서 가지고 온 책이 부처님의 말씀을 전했던 경전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두문자는 현재 발음이 비슷한 한글문자로 바뀌었다. 삼국시대에는 왕실에서 불교 역경사업을 크게 지원하였으나, 한글이 창제가 된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의 흔적도 경전의 번역과정을 통해서 느껴볼 수가 있다.)
따라서 당시 역경승의 재능이 얼마나 출중했는 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부처님 시대에는 종이가 없었다. 문자도 없었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억했다가 제자들에게 ‘염불chanting’로 전해졌다.
(운율이 있는 언어가 외우기도 싶고, 따라하기도 쉽다. 공자나 맹자도 이런 식의 리듬감 있는 소리를 냈다. 이렇게 전해 내려온 것이 오늘 날 내용은 바뀌었지만 노래하는 가수들이 되고, 그런 가수들을 따라다니며 열광하는 팬들의 모습은 당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깨달음을 얻었던 대중들과 흡사한 느낌이 든다. 가수가 노래를 할 때만큼 많은 사람들이 집중할 때도 없는 것 같다. 나는 노래를 하는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타고난 목소리로 큰 어려움 없이 대중들을 짧은 시간 안에 주목시키고, 고음을 처리할 때에는 대중과 함께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중생의 근기에 맞게 에너지를 잘 전달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법’을 갖추지 않은 내용에 휩쓸리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런 문화는 부처님 재세시부터 ‘법음’을 간절히 원했던 대중들의 마음이 현재까지 남아있다는 뜻은 아닐지? 우리는 윤회하고 있으니까...^^
실제로 내가 아는 역경학자 중에는 ‘그 분의 음성’을 기억하기 위하여, 외국명문대로 진학하여 아무데서나 배울 수 없고, 아무도 배우려 하지 않고, 지금은 남아있지도 않은 ‘빨리어’를 공부하여 학위를 받았다. (빨리어는 부처님 재세시에 사용했던 언어라고 한다.)
우리들 중에 ‘소크라테스’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단지 그가 남긴 어록으로 그를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곳에서, 소크라테스가 입던 옷을 입고, 소크라테스가 썼던 언어로 그가 한 말을 되뇌어보자. 잠시지만 내가 소크라테스가 된 것 같지 않은가?
이처럼 부처님의 제자들은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다.)
그렇게 수백 년간 염불로 전해오다가 ‘종이’와 ‘문자’가 생기자 비로소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의 염불승은 당시 염불승과 목적이 달랐다.
당시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암송했으나, 지금은 ‘수행력’을 갖추기 위해 이렇게 옮겨진 경전을 그대로 암송을 하는 것이다.
(지금도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하는 철학자들처럼^^)
21세기에 대학을 나오고 외국어를 좀 한다고 하는 필자도 염불을 익힐 때는 상식적으로 일반 선생님들께는 들을 수 없었던 ‘쓴소리’를 들으면서 암송을 했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말로 ‘애플’이라고 적은 것처럼, 원시적으로 보이는 경전의 글자였으나, 그것을 한 글자라도 틀리게 읽거나 암송했을 경우에는 크게 호통을 들었다.
그러니 팔만대장경이 오타율이 1%로도 채 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업적이었는 지 뼈져리게 느껴야 할 것이다. 경전의 언어는 20~21세기 대학에서 건성으로 쓴 학사 논문에 난 ‘오타율’과 비교할 수 없다.
또한 학문적인 지식을 많이 가진 이들도 이러한 원시경전을 암송하기가 힘들다. ‘상’은 물론이고 번뇌망상이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염불을 암기할 능력이 된다면, 웬만한 외국어학습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대에 외국어도 못하는 스님들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수행을 모르는 가짜스님들이 많기 때문이다. 불자가 되려면 먼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여야 한다. 그런데 불자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이런 계정혜 삼학을 모르는 승가에 공양을 올릴 수 없는 사람들이 절반이상이나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가’와 승가인 것처럼 보이지만 승가가 아닌, 잘못된 ‘종단’에 대한 구분을 명확히 하라고 하고 싶다.)
스님들의 ‘습의’가 엄격해야 하는 이유도 이렇게 지켜야 할 ‘보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부처님의 말씀인 다르마(법)를 지키기 위한 이러한 노력들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사찰땅을 차지하기 위해, 법을 잊고, 법조계 인사들을 동원하여 부동산 등기를 바꾸고, 조폭들을 사찰 땅에 거주시켜 ‘점유’하려는 데만 급급하다.
이러한 현실이 점점 사찰에서 ‘법’이 사라지는 이유이다.
필자가 대한민국의 지도자라면, 이 나라의 많은 국토의 면적을 차지하는 사찰 땅에 ‘독립운동가 후손’을 거주하게 하여 조상 다례를 모시면서, 이 나라의 업보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탈북민을 비롯한 이재민, 실직자 등 소위 ‘열받은 사람’들이 늘어갈 전망이다. 이런 사람들을 다스리기에 ‘선방’ 혹은 ‘명상센터’,‘수행센터’만한 것이 없다. ‘화’를 다스리기에는 ‘참선’이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간절히 바라본다.
현대에 와서 ‘선승’만 남았다. 당시 문맹이었던 ‘조사’들을 따라서 엉뚱한 문화가 전승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선승’이 되려면 부처님처럼 ‘靑出於藍’해야 ‘正法’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
이런 법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나라 승가가 현대에 와서 쉽게 어그러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 알아차림하고 ‘참회’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소위 우리나라 승가라고 불리는 조계종에서 총무원장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을 가진 승려는 321명밖에 없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321명을 제외한 나머지 승려들은 승복을 벗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번역해야 할 경전도 남아있지 않고, 컴퓨터나 종이가 흔한 지금에 와서 염불은 큰 의미가 없다.
또한 일반인도 선방에서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놓았으니, 법도 모르면서 승복을 입고 다니는 부끄러운 짓은 하면 안 될 것 같다.
현전승가법에는 4인이상이면 승가를 구성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전하고, 종교적으로도 이런 사람들이 수행할 수 있는 성역이 없다. 따라서 이런 분들에게 괜히 승복을 입고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불필요한 마장에 시달리거나, 업보에 엮이지 마시고, 승복을 벗고, 각자의 수행처에서 조용히 수행하시길 권한다.
보통 힘든 삶은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수준이 낮은 신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일이 잘 풀리거나 성공하는 사람들은 좋은 신을 받았거나, 열심히 노력해서 신통지를 얻은 사람들이다. 신통지라고 모두 ‘정법’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 초기에 이탈리아 교황청에 다녀온 것이다. 미국대통령도 이탈리아 교황청에 방문한다. 그 곳이 꽤 종교적으로 힘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불교는 성경처럼 유일신이 아니지만, 유일신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힘의 원리를 이해해야만 한다. 성서의 메시야(Messiah)는 불경의 '미륵彌勒' 즉, 메이트레야(Maitreya)에서 전해진 말이다.)
사람들은 부처님처럼 왕족신분정도 되는 귀한 신분에게 머리를 숙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도 능력이 되지 않는 수행자들은 자신들의 ‘신통지’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괴롭힌다. 그래야만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돈을 갖다 바치기 때문이다.
부처님처럼 한 나라의 왕이 출가를 해서 정법을 얻어야 동업중생 모두가 열반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탄생시 동방박사가 있었던 것처럼, 예수보다 500년 앞서서 태어난 부처님 역시 ‘아시타 선사’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 분은 부처님이 탄생하는 것을 보고, 석가모니는 ‘부처님’이 되거나, ‘전륜성왕(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
우리나라에 ‘전륜성왕’감이 있는가? 그래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줄줄이 구속된 것이다.
여러 가지 어지러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때문에 ‘왕(지도자)’의 업보가 확실한 이명박, 박근혜 등이 구속된 것이다.
말이 구속이지, 그들은 그 곳에서 속세를 떠나 부처님이 6년 고행을 한 것과 비슷한 환경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현재 승복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중에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부처님’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그들 중에 ‘전륜성왕감’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이란 다음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사람이다.
1. 참으로 존귀하신 그분
2. 모든 번뇌로부터 떠나신 분
3.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
4. 지혜와 훌륭한 덕행을 모두 갖추신 분
5. 잘 떠나신 분
6.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아시는 분
7. 위없으신 분
8. 어리석은 이를 으뜸이 되게 잘 가르치시는 분
9. 모든 천상과 인간의 스승
10. 깨달으신 분
11. 존귀하신 분
부처님은 존귀하시고, 해탈하시고, 깨달음을 이루시고, 지혜와 훌륭한 덕행을 모두 갖추시고, 잘 떠나시고(제일 중요!),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아시고, 위 없으시고, 어리석은 이를 으뜸이 되게 잘 가르치시고, 모든 천상과 인간의 스승인 분이다.
부처님의 정의를 잘 숙지하여, 부처님 행세를 하면서 사기나 치는 사람들을 주의하기를 바란다.
또한 당신이 부처님을 만나는 복을 받았다면, 반드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길 바란다.
경전에는
악인 백명을 먹이는게 착한 이 한명에게 공양함만 못하고,
선인 천명에게 공양함이 오계지킴이 한명에게 공양함만 못하고,
오계지킴이 만명에게 공양함이 수다원 한명에게 공양함만 못하고,
수다원 백만명에게 공양함이 사다함 한명에게 공양함만 못하고,
사다함 천만명에게 공양함이 아나함 한명에게 공양함만 못하고,
아나함 1억명에게 공양함이 아라한 한명에게 공양함만 못하고,
아라한 십억명에게 공양함이 벽지불 한명에게 공양함만 못하고,
벽지불 백억명에게 공양함이 삼세제불 한명에게 공양함만 못하고,
삼세불 천억명에게 공양함이 무심도인 한명에게 공양함만 못하다
고 나와있다.
대한민국을 구할 부처님이 없기 때문에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감옥에서 도를 닦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세금을 받아먹고 살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의 공양을 모두 받은 셈이다.
따라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부처님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기도하자.
참고로 우리나라의 모든 업보를 풀려면 ‘박근혜’만한 사람도 없다. 박근혜는 아버지인 박정희 때부터 우리나라의 모든 일들과 엮이지 않은 업보가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그 업보를 풀면, 이와 관련된 동업중생 모두가 해탈하게 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이후로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문화가 이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