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보다 더 찬란한 철메달(4위)
김재환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제32회 도쿄올림픽이 끝났다. 코로나19로 1년간 연기한 올림픽을 재연기하거나 아예 취소하자는 절반의 의견과, 강행하려는 일본정부와 올림픽위원회(IOC)의 강력한 의지의 충돌과 마찰 때문이었다. 전염병 확산과 무관중 경기, 후쿠시마 원전파괴로 방사능오염과 확산, 무더위로 인한 선수보호와 안전 때문이었다. 그로 인하여 선수와 임원 관련 관계자는 불안에 떨며 올림픽을 치르고 폐회를 맞았다. 전대미문의 무관중과 함성 없는 경기,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은 개막되었다. 국적, 성별, 나이, 종목에 관계없이 열정과 투지로 젊음의 잔치는 지구촌 반쪽 축제가 되었다. 결과물은 변변찮았으나 감동은 두 배 이상이었고 희망의 서광을 보았다.
우리나라는 금 6, 은 4, 동 10, 총 메달 20개를 획득 16위를 달성했다. 당초 목표치 10위를 금메달에서 뒤져 훨씬 못 미쳤다. 근래 올림픽대회에서 최하위 저조한 성적으로 마감했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을 정점으로 엘리트체육이 사양길을 걷고 있다. 아시아권에서 항상 중국과 일본 다음이었는데 이번 대회는 엄청난 차이로 뒤처졌다. 금메달 2/3인 4개를 양궁에서 획득하고 체조와 펜싱에서 각각 1개씩 얻었다. 종주국이라 자부하며 오만했던 태권도에선 연속 두 대회 노 골드의 참패를 당했다. 협회와 선수들은 깊은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겠다. 이웃 일본은 유도의 종주국답게 하나 모자란 금메달 싹쓸이를 했다. 여자골프에서 노메달은 큰 아쉬움이었다. 전 리우대회 우승국으로 디펜딩 챔피언을 보유하고 세계랭킹 10위 이내 박인비, 고진영, 김세영, 김효주 네 선수가 출전했으나 메달 획득은 기대에 부응치 못했다. 여자골프 최강국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이 4명이 참가한 유이한 국가였다. 미국 뉴질랜드 호주 대표선수에 한국계가 유독 많이 눈에 띠는 것은 긍지일까? 수치일까? 골프란 시간, 날씨, 나흘간의 변수가 많은 경기라 행운도 따라야 한다. 올림픽경기는 주최국의 이점은 있으나 206개 참가국 가운데 지정학적으로 일본과 가장 가까워 유리한 조건은 우리나라였다.
스포츠 경기는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구분되다. 개인전은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단체전은 협력과 조화를 생명으로 시너지효과를 극대화 시켜야한다. 경제력이 뒤떨어졌던 시절에는 격투기를 중심으로 개인경기인 권투, 레슬링, 태권도, 유도 종목이 메달밭이었다. 국가와 개인의 경제력이 좋아지면 험난한 운동을 기피하고 메달획득에서 멀어져 갔다. 양궁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9연패한 여자 단체전, 신궁의 경지에 이른 양궁종목이 없었더라면 이번 대회에 어찌되었을지 생각하기조차 끔직하다.
스포츠는 남성과 여성, 성별로 구분되어 펼쳐진다. 자연의 이치일까. 21세기에 이르러 양성평등사상에 힘입은 탓인지 혼성경기가 늘어나는 추세다. 탁구와 배드민턴 테니스 피겨 등 몇몇 종목이 있다. 올해 처음 치러진 양궁 혼합복식이 그렇다. 안산선수와 김제덕은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고, 약관 20살 안산선수는 올림픽 첫 출전에 이번 대회 우리나라 유일한 금메달 3관왕의 주인공, 신데렐라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남자보다 여자들이 운동을 더 잘하는 것 같다. 세계적인 선수도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양궁, 골프, 쇼트트랙은 세계제일이다. 김진호나 김수녕등 유명 양궁선수들은 제쳐 놓더라도 구기종목에서 농구의 박신자, 박찬숙, 배구의 조혜정, 김연경, 골프의 박세리, 김미현, 신지애, 박인비, 역도의 장미란,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쇼트트랙 선수는 하도 많아 그 이름들을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기라성 같은 세계적 스타들이 탄생하여 국위를 선양했다.
대회 운영상 모든 경기는 대륙별 예선 선발을 거쳐야 본선에 참가한다. 특히 국민스포츠 축구는 치열하다. 축구는 작전의 실패였다. 대표선수 선발과 선수기용에서 허점이 많았다. 첫 경기 뉴질랜드에 패한 예가 그렇고 8강전에서 멕시코에 참패한 예가 그렇다.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다. 명장 김학범 감독의 첫 판단착오가 본인과 선수, 국민에게 큰 실망과 상처를 주었다.
축구에 비해 참가국이 적은 야구는 더 큰 치명적 쇼크를 주었다. 대표선수 선발과정부터 삐걱거렸고 코로나 확진과 음주운전 폭력 등으로 이상소음이 나더니만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귀국했다. 객관적으로 야구원조 미국이나, 야구 선진국 일본을 이길 순 없다. 그동안 큰 대회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선동열, 박찬호, 유현진, 김광현, 이종범, 이승엽 같은 슈퍼스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일본은 A급 선수가 아닌 B급 선수로 대표팀을 구성한다. 이번 야구 대표팀은 투지나 열정 승리에 대한 목마른 갈증이 없었다. 스타급도 경험 많은 선수도 적었고 그들의 조화 또한 부족했다. 여자 배구선수들처럼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리더도 스타도 영웅도 없었다. 협회와 감독 선수들의 공동 책임이다. 단 몇몇 선수들의 고군분투를 안쓰럽게 지켜봐야만 했다.
3년 뒤 제 33회 파리올림픽에 기대를 건다. 영롱하고 찬란하게 피어오르는 양궁의 안산, 김제덕, 수영의 황선우, 체조의 여서정, 탁구의 신유빈, 다이빙의 우아람, 스포츠 클라이밍 서채현, 높이뛰기 우상혁, 금은동메달 보다 더 값진 철메달, 빛나는 4위와 신기록 달성 선수들. 그들에게서 미래의 젊음과 찬란한 희망의 영롱함을 보았다.
비 인기종목 선수들은 인기종목과 비인기종목 사이에서 갈등하고 좌절한다. 그들에게서 찐한 슬픔을 읽는다. 고독한 자신과 주변과의 처절한 싸움, 그 싸움에서 이기는 자만이 진정한 금메달 획득자다. 인생 패배자 아닌 진정한 승리자다.
국가대표는 영예롭고 고독한 자리다. 긍지와 자부심 극도의 부담감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온갖 시련과 역경을 이겨야 한다. 그에 대한 보상 또한 영광스런 훈장이다.
뭐니 뭐니 해도 진한 감동은 진정한 스포츠 근대5종의 정진화와 전웅태 선수다. 근대5종 경기는 근대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이 창안한 경기종목이다. 펜싱, 수영, 승마, 육상, 사격 등 5개 종목의 경기를 합산해 순위를 가리는 진정한 종합 스포츠다. 중세까지의 전형적 전사들의 표본일 것이다. 만능 엔터테이너 최고의 스포츠맨이다. 그들은 동료이며 동반자인 동시에 선후배이며 경쟁자였다. 그들은 결승선을 통과한 뒤에도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특히 감독은 더 할 말을 잊었을 것이다. 바램은 둘 다 메달을 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예상했었다. 스포츠는 예상을 불허하는 법, 예상 밖 막판 이집트선수의 총알 같은 출현으로 동반메달의 꿈은 한순간에 포말처럼 사라졌다. 결승점을 얼마 안남기고 2위를 달리다 4위로 처진 백전노장 정진화선수, 마지막 올림픽인 그가 한말 “웅태야 네 뒤에 들어와 맘 편했다.” 동메달을 딴 후배 전웅태선수는 뒤따라 들어오는 선배 정진화선수를 껴안으며 “형 수고했어, 고맙고 미안해”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이 보다 더 진한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전웅태는 금·은을 노렸고 정진화는 동메달을 노렸단다. 둘은 경기 전 4등은 절대 하지 말자고 굳게 약속했단다. 이 무슨 가혹한 시련일까. 하지 말자던 4등을 형이 하였으니. 3등과 4등은 하늘과 땅이며 동시에 백짓장 한 장 차이다. 동메달은 후배가 땄지만 후배의 길을 10년 넘게 열고 닦은 것은 선배였다. 정진화 선수는 오랜 선수생활로 부상에 시달렸고 진통제를 먹고 경기에 임했다 한다. 이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비참하게 하는가? 신은 가혹할 뿐이다.
올림픽 마라톤 2연패에 빛나는 케냐의 킵초케, 위대한 전설의 맨발 마라토너 에티오피아의 비킬라 아베베와 같이 전설의 신이 되었다. 케냐에서 귀화한 마라톤선수 오주한의 초반 기권은 씁쓸했다. 민족의식 한민족의 혼과 끈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른팔 없이 왼팔 하나로 탁구를 한 폴란드 국가대표, 나탈리 파르티카의 역동적 모습은 감동 그 이상의 울먹임이었다. 장애인 올림픽 선수로도 출전이 가능하겠지만 비장애인 국가대표가 된 것은 숭고한 인간정신과 불굴의 인간승리의 표본이었다.
올림픽에 참가하여 혼신을 불태운 모든 대한민국을 대표한 국가대표선수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사랑과 경의를 표한다. 앞날 무궁한 행운과 발전 진화를 기원한다.
금메달 황금색보다 회색 철메달 4등을 한 선수들의 무색깔이 더 찬란하고 영롱하게 빛난다.
<2021. 08 0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