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도립리 산수유 마을/정동윤
춥고 긴 겨울 보내고
따스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봄소식 기다렸는데
눈으로 보여주는 고마운 소식은
봄 꽃들 아닐까요
그중에서도 춘분을 전후로
노란 산수유가 찾아오니
기다리던 봄이 성큼 다가온 느낌입니다
올해의 춘분은 3월 20일 바로 오늘,
이천 산수유 마을로 갔습니다.
몇 번의 전철을 환승하고
경강선 판교 역에서
분당 사는 친구와 반갑게 만나
이천 역에 도착하니 10시 반,
오전 11시 15 분에 출발하는
마을버스(23-8번)를
꽤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어디로 들어가 차라도 마실까
근처에 찻집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천 역 근처에는 역 건물 외에
판매 시설이나 기다릴 만한 장소가 마땅찮아 택시를 타기로 하였습니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달함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즐기는 것도 의미가 있지요
시내버스에서도, 전철에서도,
사람들의 모습에 매료되기도 하고
창밖의 이색적 풍경을
오롯이 카메라에 담기도 하지요.
그래서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설레고
떠나면서 두근거리고
목적지에 닿아 천천히 적응하면서
깊숙이 빠져 드는게
여행의 즐거움이라 생각합니다
혼자 명상하며 떠나는 일도,
다정한 친구와 둘이 걷는 여행도,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도
여럿이 시끌벅적 떠드는 여행도
모두 나름의 특색이 있어
우리는 여행을 다니는 게 아닐까요
드디어 도착한 산수유 마을,
우리나라 산수유 열매의 70% 생산하는
전남 구례로 가 보고 싶었지만
서울에서 당일로 다녀오기는 어려워
이천 백사 마을을 선택한 여행도
나름대로 좋은 결정이라 생각 합니다.
구례는 천 년 전 중국에서 시집온
신부가 산수유 나무를 가지고 와서
심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또 신라 48대 경문왕의 귀가 커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이발의 담당한
신하가 귀의 비밀을 견딜 수 없어
대나무밭에서 혼자 크게 외친 뒤로
바람만 불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들려와 왕은 대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산수유로 심었더니 바람이 불 때마다
'임금님 귀는 길다'라고 들렸다는 전설.
그리고 예전에 구례에서는
산수유 3 그루면 자녀의 대학 학비는
걱정 없었다는 얘기도 있었답니다.
열매의 까만 씨를 이빨로 빼서
빨간 과육을 말려 약재로 팔면
고수익을 얻었다고 합니다
산수유는 나무줄기의 껍질이
지저분하게 벗겨지는 것이 특징으로
꽃에는 꽃자루가 있어 왕관처럼 보이며
세로의 잎맥이 몇 개씩 휘어진 것이 생강나무의 잎과 다른 점입니다
산수유는 인가 근처에 많이 심었고 생강나무는 낮은 산기슭이나
계곡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열매도 산수유는 타원형으로 주렁주렁 달리나 동그란 생강나무 열매는 하나씩
따로따로 열리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도립리 마을은 내일모레부터 시작하는
산수유 축제 준비로 도로를 보수하고
편의 시설용 천막도 준비하고
안내인도 배치하는 등 축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으며
우리처럼 축제의 번잡을 피하여
미리 찾아온 사람들로 좀 붐빈다고
나이든 안내인이 귀띔하였습니다
이천으로 돌아갈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찻집에 들러 잠시 쉬어 가려다가
곧장 마을 안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도립서당을 찾아갔고 영축사에도 들러
영축사 9층 석탑이 미얀마 절의 화재로 진신사리 2과를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내용의 안내글에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산수유 마을의 유래가 된
마을의 중심인 육괴정에 들렀습니다.
1519년 기묘사화 때 사림의 선비들이
숙청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 왔답니다
6 명의 선비들이 6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고 육괴정 정자를 지어 글을 지으며 공부하였고 주변에 산수유 나무도
많이 심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 중에서
지금은 세 그루만 남았는데
500 년을 넘긴 고목으로
느티나무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름답고 경이롭고 웅장해지니 느티나무처럼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살아서는 서민의 그늘이 되고
죽어서는 사찰이나 중요 건물의 기둥이
되어 문화재로 쓰이는 고귀한 나무입니다.
육괴정 오른쪽 골목을 따라 올라가니
원적산 아래 산수유 군락지로
'연인의 길'을 조성하며 오래 된 산수유나무들이 점점
노란색으로 짙어지고 있었습니다.
축제의 노래자랑 무대도 준비되었고
미리 찾아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으며
주로 친구나 가족들 같았습니다
이천 도립리 마을을 둘러본 후
안내문에 적힌대로
원적산 산수유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낙수제와 잣나무 숲, 그리고 영원사를 거처 송림 1동을 지나 도립리로 돌아오는 코스로
언덕을 오르며 산길 따라 나섰습니다
봄 햇살이 유난히 포근하고 공기도 맑아
한가하고 여유롭게 밝고 환한 둘레길을
세상의 무거운 내려놓고 나란히 걸어가니
백 세 넘기신 김형석 교수의
6575 행복감이 봄볕을 품고
아련하게 감겨오는 듯 하였습니다
작은 폭포인 낙수제를 본의 아니게 생략하고 산길을 걸으니
널찍한 잣나무 숲에 닿았습니다
잣나무의 수형이 높고 나무의 간격도 충분하고 줄기 뻗음도 장쾌하니
건강한 잣나무 숲 아래서 돗자리 펴놓고
한나절 잠들고 싶었습니다
여름에 이곳으로 와서 오랫동안
쉬었다 가면 참 좋을 것 같았습니다
잣나무 숲에서 한 1km 남짓
둘레길로 걸어가니 영원사가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봄날의 풍경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와
우리를 반기는 듯하였습니다.
영원사의 큰 법당 앞에는
보통 절에서 보았던 탑이 보이지 않았고
불이문, 사천왕문, 금강문, 일주문도
보이지 않아 신라 시대 암자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가람의 형태로 갖춰가는 중에
아직도 사찰로 완성되지 못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은행나무와 연못은 보기 좋았습니다
거름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송림 1동으로
내려가 큰 길 따라 도립리 입구에 오니
이미 점심때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서 점심을 먹을까 망설이다
이천역으로 나가는 버스를 먼저 확인하고
1. 도립서당 옆의 식당과
2. 이천역에서 한 정거장 지나
신둔도예촌역 인근의 이름난 식당과
3. 이천 시내의 알아주는 식당을 검색하다
4. 동네 사람들이 추천하는 이 마을의
'두메산골' 식당으로 결정하고
발을 옮겼습니다
한 20여 분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야
겨우 식탁에 앉을 수 있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어
동네 분의 추천이 고마웠습니다
우린 해물 두부전골을 주문하였고
이천 쌀밥과 더불어 만족한 식사를 마치고
버스 정류장 인근의 커피점에서
느긋하게 담소 나누다 23-8 번
마을버스를 타고 이천 역으로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