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대한민국 정부는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새로운 국새를 제작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 국새는 인뉴를 봉황으로 만들었다.
용으로 만들자는 견해도 많았으나 윗선(?)에서 “용은 서양에서 사탄이 아닌가”라는 한 마디에 봉황으로 결정되었다는 후문이 나돌기도 했다. 어쨌든 봉황도 나름대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상상의 동물이라 그다지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졌다.
군자국에서 나온 봉황
당시 행자부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봉황은 ‘동방의 군자국(君子國 : 우리 나라를 지칭하는 옛말)에서 나와 4해(四海)의 밖을 날아, 곤륜산 약수(弱水)에서 깃을 씻고, 풍혈(風穴)에서 잠을 자며, 5음(五音)을 내는 전설의 신조(神鳥)인 봉황(鳳凰)은 용(龍), 기린(麒麟), 거북과 함께 4령(四靈)이라 불리며, 고귀함과 평화를 사랑하는 상서로움의 상징인 길조(吉鳥)로 사랑을 받아왔다’고 한다.
봉황은 정치적으로는 하늘의 이상을 실현하는 성천자(聖天子)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백성들에게 성군으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제왕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단성식(段成式)의 고전(古典) <유양잡조(酉陽雜俎)>에는 봉황을 타고 태극(太極)에 도달하면 선업(仙業)이 완성된다는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정부는 “국가를 이끌어갈 위대한 지도자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을 반영하여 대통령 휘장에 봉황을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새로 제작한 국새의 손잡이 형태에도 21세기 세계 중심 국가로의 도약과 비상(飛上)의 의미를 담아 봉황을 조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영원 교수의 봉황작품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바로 머리가 둘이라는 점이다. 우리 전통양식에 하나의 몸통에 두 개의 머리가 달린 짐승은 어디에도 없다.
국새의 몸체는 국가를, 머리는 최고 지도자를 상징하기도 한다. 국새의 머리를 둘로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의 국가에 두 명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전통 국새 제작법에 의하면 통치자뿐 아니라 국운이 갈라질 징조라 하여 엄격히 금지되었다고 한다. 국새에 대한 지식, 상징에 대한 이해가 조금만 있었어도 머리 둘 달린 봉황손잡이 국새는 탄생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봉황을 선택한 것 자체는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 여겨진다. 봉황은 하늘을 숭상해온 동이족의 상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봉황이 동방의 군자국에서 나왔다 함은 바로 동이가 봉황의 고향임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인이 물의 동물인 용을 숭상한 것과 달리 동이족은 하늘의 자손이라는 믿음 아래 하늘과 땅의 매개체인 새를 신성하게 여겼다. 새 가운데 으뜸으로 생각한 것이 하늘 새 봉황이다.
용과 봉황의 전쟁 그런데 하늘 새인 봉황이 용에게 눌리고 말았다. 동이족이 한족에 밀리면서, 봉황이 용보다 낮은 단계의 상징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한족은 동이족의 상징동물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 위해 용을 황제의 상징으로 하면서, 봉황은 황후의 상징 문양으로 사용한 것이다. 용맹하고 굽힐 줄 모르는 동이족의 상징을 여성화시킨 것이다.
상징의 높고 낮음은 특정 토템을 가진 집단의 흥망성쇄와 함께 한다. 용을 토템으로 하는 집단이 권력을 쟁취하게 되면 용이 봉황보다 우위에 있는 영물이 되고, 봉황을 토템으로 하는 집단이 패권을 장악하면 봉황이 용보다 높은 단계의 영물로 인정받는다. 그러므로 봉황은 용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잘못임을 깨달아야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상징 문장도 봉황을 쓰고 있다. 두 마리의 봉황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의 문장을 대통령이 수여하는 상장이나 상패 혹은 휘장 등에 새겨 넣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용이 아니라 봉황을 상징 문장으로 삼은 데는 특정 종교단체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종교도 한 몫한 것 아닌가 싶다. 용과 드래건을 동일시하여 반대하는 바람에 정부에서 봉황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1998년 대한민국 국새제작 당시에도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께서 “용은 사탄아닌가요?”라는 한마디에 봉황 인뉴(손잡이)로 급선회했다는 후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아직도 봉황대신에 용을 상징문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봉황 역시 동이족의 상징인 삼족오에서 출발한 영물이다. 중국 사학자 왕따이유(王大有)의 <용봉문화의 원류(龍鳳文化源流)>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용봉문화(龍鳳文化)에 대해 용과 봉 각각의 기원 용봉문화의 형성과, 전개과정 용봉문화의 전파에까지 가장 체계적이고 폭넓게 연구한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왕따이유는 이 책에서 봉황은 동이족의 상징 토템이었으며, 그 원조는 삼족오라고 설명하고 있다. 삼족오가 분화․발전하는 과정에서 봉황, 주작 등의 여러 모습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삼족오는 천손민족의 상징 금이 간 국새를 대체할 새 국새(國璽)의 인뉴(손잡이) 형태는 무엇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 용으로 하자는 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봉황, 곰, 거북 등 다양한 제안이 제기되고 있다. 행자부에서 수렴한 국민제안 가운데 가장 많은 의견이 접수됐던 것은 삼족오였지만, 국새제작자문위원들이 ‘삼족오가 까마귀’라는 이유로 꺼려한다는 분위기다.
삼족오를 까마귀로 보는 것은 우리 문화의 상징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 결과다. 삼족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하고, 검은 새는 무조건 까마귀로 본 것은 분명 잘못인 것이다. 국민제안에서 1위로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거부감이 없다는 의미다. 그들이 무지해서 까마귀를 선택했다고 결론 내린다면 제안은 뭣 하러 받았는지 궁금해진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한 민족의 고유한 전통문화 속에는 그 민족이 오랫동안 공유해온 ‘상징의 숲’이 있다. 거기에는 과학적 접근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깊은 의미가 심연에 내재해있다”고 밝히고 있다. 상징은 상징으로 이해해야지 현재의 과학기준으로 상징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럽의 독일이나 신성로마제국, 러시아에서는 머리가 둘 달린 쌍두 독수리를 상징으로 삼았으나 누구도 기형독수리로 보지 않는다. 삼족오 역시 ‘세발달린 기형 까마귀’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우주관을 반영한 상징물인 것이다.
우리 민족은 하늘로부터 시작된 천손민족(天孫民族)이다. 천신(天神)을 숭배해온 한민족은 하늘을 상징할 수 있는 태양을 그 대상으로 했다. 태양 속에는 ‘세발 달린 검은 새’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태양 속에 살고 있는 ‘세발 달린 검은 새’는 현조(玄鳥), 혹은 삼족오(三足烏)라 불렸는데 이는 태양조(太陽鳥)의 명칭이다. 태양조가 ‘세발 달린 까마귀’로 잘못 알려진 것은 ‘오(烏)’를 까마귀로 해석한데서 생긴 오류이다.
‘오(烏)’는 검은 색을 지칭하는 글자이기도 하다. 즉 삼족오는 ‘세발 달린 까마귀’로 보기보다는 ‘세발 달린 검은 새’로 봐야한다. 모든 닭이 금계가 아니듯 검은 새라고 해서 모두 까마귀가 아니다.
사전에서는 삼족오에 대해 ‘태양을 다르게 가르키는 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족오는 그 자체가 태양인 것이다. 삼족오의 가장 완벽한 원형은 고구려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인들은 태양 속에 산다는 태양조三足烏를 각저총(角抵塚), 오회분(五회墳) 4호묘, 덕화리 1, 2호분에 벽화로 표현, 하늘민족임을 강조하고 있다.
고구려 문화 유물에는 태양(해) 안에 ‘세발 달린 검은 새’를 넣은 그림이나 조각이 여러 점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진파리 7호 무덤에서 나온 ‘해뚫음 무늬 금동장식품(日光透彫金銅裝飾品)’을 들 수 있다. 이는 왕의 장식품으로 추정되는데 중앙의 구슬을 박은 두 겹의 태양 동그라미 속에 황금빛 ‘세발 달린 검은 새’를 불타오르듯 절묘하게 넣었다.
물론 중국에도 태양조는 등장한다. 중국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의 ‘양오(陽烏: 태양조)’가 그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때의 ‘태양조’는 모두 ‘두발(二足)’ 달린 새다. ‘세발달린 검은 새(三足烏)’는 오직 동이족과 그 후예들에게만 있었다.
‘세발 태양신(太陽神)’에 대해 박은식(朴殷植)은 고조선의 국교는 삼신교(三神敎․神敎)라고 하면서, 3신은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였다. 태양조는 한국인의 우주관, 생명관의 반영이기도 했다. 태양의 둥근 형태는 ○형으로 온 누리를 뜻하고, 1이라는 새의 한 몸에 3개의 다리를 지님으로써 지혜와 생명의 끝없는 순리를 뜻하고 있다.
그런데 고대인들은 왜 태양 속에 새가 산다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물상(物像)적 근거는 바로 태양의 흑점이라는 주장이 있다.
흑점은 태양의 광구(光球)에 나타나는 검은 반점으로 이 흑점의 움직임에 따라 지구 환경은 매우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 흑점은 고대인들에게 마치 ‘해 속에 사는 새’처럼 보였을 것이다. 고대인들은 태양을 상징하는 청동거울을 만들고, 그 속에는 태양 속에 사는 삼족오를 새겼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30년에 3000년 역사 포기하나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에 왕권을 지켜주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세발 달린 검은 새, 즉 삼족오(三足烏)가 있었다. 현재 일본축구협회에서 삼족오를 상징물로 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이 동이족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삼족오를 쓴다는 이유로 새로운 국새의 상징으로 삼족오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은 30년 때문에 3000년 역사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조선 문명의 흔적인 삼족오가 북미인디언이나 마야문명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왕따이유의 연구에 따르면 동이족(東夷族)은 서쪽으로는 바이칼호, 동쪽으로는 쿠릴열도, 남쪽으로는 중국의 창청(長城), 북쪽으로는 대싱안링(大興安領)까지 영역을 확장했으며,
일부는 베링해협을 지나 북미와 마야 인디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북미 인디언이나, 마야족의 벽화에는 태양조가 어김없이 표현되어 있어 문화의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족의 역량을 펼쳐야할 이 시점에 만들어질 국새의 상징으로 삼족오만큼 적합한 것도 찾기 어렵다. 동이민족의 특질과 상징성을 한 몸에 안고 있으며, 고구려 벽화 등에서 뚜렷한 유적이 있다. 삼족오 국새는 우리민족의 상징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광개토대왕 비문 글자체 국새 바닥의 인문에 새겨질 글자체에 대해서는 광개토대왕 비문 글자체가 바람직해 보인다. 행자부조사결과 가장 많은 의견을 개진한 훈민정음체(7건)도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없다. 온화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훈민정음체는 누구에게나 부담없이 다가서는 서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한 에너지를 표방해야하는 국새의 글자체로는 나약해 보이는 단점이 있다. 훈민정음체에 이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 광개토대왕 비문 글자체(3건)는 웅비하는 국가의 힘을 나타내기에 더없이 적절한 글자체라 여겨진다. (광개토대왕 비문 글자체 제안자 한 명은 630명의 지지 서명도 함께 제출했다.)
광개토대왕비문의 글자체는 모든 획이 거의 직선으로 되어 있으며, 고구려의 토양과 민족성에 어울리게 남성적 넉넉함과 기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고졸하고 준엄한 기상이 넘치는 이 서체는 새 국새의 인문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