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 우리는 하루에도 쉼없이 걷는다.
지독하게 늘어지고 싶은 휴일 조차도 우리는 먹기 위해, 볼일을 보기 위해 최소한의 걸음을 걷는다. '걷는다'는 건 우리 일상을 지속시키는 원천이며, 우리의 욕망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행위다.
조지프 아마토는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에서 걷기의 과학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쭉 뻗은 다리로 지면을 박찰 때 땅에 닿은 뒤꿈치에 몸무게 전체가 실리고, 골반을 회전시켜 발바닥과 다리의 방향을 바꾸면서 무게중심이 엄지발가락으로 이동한다"고. 이런 현상이 실제 걷기 중 일어나는지 확인하다 보면 자칫 걷기 스텝이 꼬일수도 있지만, 걷기를 할때 온몸의 근육이 함께 움직인다는 점을 설명한 말이다.
걷기는 건강한 일상의 축복이다. 말기암으로 생애 마지막을 침대에서 꼼짝없이 보내야했던 나의 어머니는 '걷고 싶다'는 말을 수시로 하셨다. 걷기라는 행위는 그저 당연하게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큰 행운과 축복이다.
걷는 행위에 대해 누구보다 철학적으로 사고했던 장자크 루소는 미완성인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남겼다. '고독', '산책', '몽상' 이 세개의 단어는 걷는다는 행위와 참 잘 어울린다. 오로지 내 발에만 의지해야 하는 고독, 걸으면서 느껴지는 자연의 색과 소리, 머리가 가벼워지며 시작되는 몽상의 침투.
해남 달마고도는 이 기분좋은 세박자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길이다.
오로지 사람의 손길로 태어난 명품길
달마고도는 한반도 최남단 봉우리 달마산(489m)의 7부 능선을 잇는 트레킹 코스다. 2017년에 개통된 이 길은 미황사 금강 스님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금강 스님은 미황사와 도솔암을 오가면서 땅끝 천년 숲 옛길을 자연 친화적인 치유의 길로 만들었다. 자연친화적인 이 길은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들의 손길로만 만들어졌다. 하루 40여명의 작업자들이 250여일 동안 오로지 곡괭이와 삽, 호미만을 이용해 길을 닦았다. 그래서 달마고도라는 명품길이 탄생할 수 있었다.
달마고도는 공룡 등줄기처럼 달마산 능선에 붙어있는 뾰족뾰족한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다도해를 조망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금강 스님의 바램처럼 이 길을 걷다보면 마음속 짐이 가벼워지고 저절로 치유되는 듯하다.
오로지 사람의 손길로만 만든 달마고도. 이 사진은 바위가 가득한 너덜구간
전나무숲길
달마고도는 전체 17.7km의 둘레길로 총 4개의 코스로 나누어져있다. 걷는 속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6~8시간 정도면 가능하다.
1코스는 미황사부터 큰바람재 구간으로 미황사, 산지습지, 너덜, 암자터, 편백나무 숲이 포인트다. 2코스는 큰바람재부터 노지랑골 사거리 구간이며 3코스는 노지랑골사거리부터 물고리재까지다. 4코스는 몰고리재부터 미황사 구간으로 가는 길에 도솔암에 닿을 수 있다.
달마고도의 출발은 미황사다.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 창건된 천년 고찰이다. 기암괴석 달마산 경관이 병풍처럼 펼쳐져있는 풍치 절경의 산사다. 미황이란 이름은 노을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그림같은 풍경과 아름다운 노을까지, 마치 수묵화의 풍경속에 잠시 내가 들어간 느낌이다.
승려 민암이 1692년(숙종 18년)에 지은 <미황사사적비>에 미황사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현 갈두항)에 닿자, 의조화상이 이것을 소 등에 싣고 오다가 소가 드러누운 골짜기에 절을 지어 미황사라고 했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에서, 황은 금인의 황금빛에서 따와 지었다'
안갯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달마산의 풍경
미황사에서 가까운 송지해변의 일몰
달마고도는 미황사 왼쪽 1코스부터 시작한다. 나는 4코스인 미황사부터 도솔암을 거쳐 물고리재까지만 가볼 예정이다.
부처의 모습을 닮았다는 달마산에는 달마대사가 와서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달마대사는 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중국에 건너가 남북조시대 선종의 시조가 됐다. 그는 소림굴에서 9년간 잠도 자지 않고 면벽수행을 했다. 하지만 달마대사도 사람인지라 졸음을 쫓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인지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아예 자신의 눈꺼풀을 떼어내 뜰에 던져 버렸다. 뜰에서는 신기하게도 나무가 자랐고 바람에 스칠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났다. 바로 이 나무가 차나무였다고 해서 달마대사가 차를 가장 먼저 시작한 인물이라고 한다. 이후 갑자기 사라진 달마대사가 해남의 달마산으로 왔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어쨌든 교리, 경전을 뜻하는 다르마(dharma)가 달마산의 유래인 건 분명하다.
때론 등산로가 사라져버릴때도 있다
달마산 남쪽 끝자락의 도솔암은 풍수지리적으로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도솔암에 가보면 풍수지리 문외한인 사람도 이곳이 왜 명당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삐죽한 암벽 바위 틈에 끼어 다도해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도솔암은 조용하면서도 기운이 넘쳐난다. 도솔암에서는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다. 특히 일몰의 노을은 서방극락, 즉 정토를 상징하기 때문에 마음을 가라앉힌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화엄조사인 의상대사가 도솔암을 창건하였고, 미황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의조화상이 도솔암 서굴에서 수행하면서 낙조를 즐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명승들의 수행정진의 도량이던 이곳은 정유재란때 소실되다 시피 폐허가 됐다. 2003년 지금의 주지스님인 법조스님의 노력으로 도솔암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날씨 좋은 가을, 달마고도를 걸어보면 어떨까.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처럼 말이다.
기암절벽 사이에 있는 도량처, 도솔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