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권 韓流] 雅山 박기래 기념사업회 무죄 확정 축하와 특별 강연 및 송년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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鬪爭은 偉大하고 抵抗은 아름답다!
眞情한 韓流는 人權의 價値 增進!
2023. 2.17(토) 마석모란공원 11시,12주기 추모식 행사!
권오철 기자등록 2023.12.30 21:36조회수 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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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통일혁명가 아산 박기래 기념사업회의 모임, 지난 수십년간 크고 작게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준 분들, 사진 기념사업회)
2023년12월29일 (금) 저녁 故 雅山 박기래 선생의 재심 승소에 따른 배상 대책등을 논의하고 한해를 마감하는 조촐한 행사가 ‘세상을 여는 창 (국일관드림팰리스 1층, 종로3가)’에서 십여명의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노태구(동민회 의장) 선생을 위시하여 전재진 선한길 우 성 이교영 김성호 박창선 권대섭 홍경표 위원外 김명학 이명호 최원녕 박믿음 등과 외부인사 김광수 작가, 이주형선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료되었다.
통일혁명가 故박기래 선생은 1926년 3월 전북 남원 가난한 소작농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영특하여 학업에 대한 열망이 컸으나 1939년 13세 되던 해 가난으로 중학교에 진학을 못 하자 일본 오사카에 살던 둘째 누나, 매형의 도뭉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에서 소년공으로 주간에는 후지모도 철공소 작업공으로 야간에는 이마미야 직공학교를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배움에 매진한다.
1945년 그의 나이 19세 되던 해 해방을 맞았고 그해 귀국하여 몽양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된다.
1947년 여운형 산생의 암살로 건국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고려대를 거쳐 중앙대 법대 정치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1950년 졸업 후 6.25가 발발하자 고향 남원으로 돌아와 전주 오수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서순자 여사와 결혼, 슬하에 2남(장남 박창선雅山 박기래 기념사업회 및 재단 회장임) 2녀를 둔다.
1957년 부패한 자유당과 이승만 정권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민주혁명과 통일혁명의 기치를 걸고 전국혁신청년동지회를 결성, 이 때부터 자주 민족, 민주주의와 한민족 통일주의자로서의 이념과 사상을 정립하게 된다.
그 뒤 1974년, 육군보안부대 산하 보안사령부에 불법 체포되어 고문 끝에 북한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통일혁명당의 재건 운동을 벌였다는 혐의였는데, 보안사 수사관들은 박 씨를 9일간 가둬둔 채 재우지 않고 고문하며, 불러준 대로 진술서를 쓰라고 했고 허위자백을 법정에서도 이어갔고, 이듬해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17년간 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박 씨는 2012년 숨졌는데, 유족은 6년 뒤 재심을 청구했고 기나긴 재판은 결국 2023년 5월18일 대법원에서 무죄확정(대법원 형사1부,주심 노태악대법관,2022도13084) 되었다.
그 이유는 ‘경찰과 검사가 작성한 박 씨와 공동피고인들의 피의자신문조서, 진술서 등에는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내용이 담겼다.며 (그 내용에 따르면) 불법체포, 구금된 상황에서 수사를 받았고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임의성 없는 자백으로서 증거능력이 없다.’라는 것이다.
(사진 재심 무죄 확정에 환호하는 기념사업회와 유족들, 잃어버린 세월과 그 억압을 과연 국가 배상으로 치유될 수 있는가? 배상도 단순히 금전적 환산은 재고해야 한다. 사진 네이버)
당시 박정권은 정권 안보를 위해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을 이렇듯 범법자로 엮었고 이는 그 뒤로 전두환 정권, 노태우 정권에서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이런 구시대적 작태를 아직도 자행되거나 준비되고 있다.
어찌 한 인간의 삶을 고문에 의해 사형을 선고 하고 ‘자백에 의한 선고가 가능하며’, ’자백에 임의성이 없다.‘라는 것 그 하나로 뒤집어 지는지 당시 민권이 얼마나 무시 당하고 정권의 입맛에 영합 권력기관의 비양심적인 작태가 있었는지 이에 대힌 역사적인 심판과 불법 행위 당사자들에 대한 국가의 구상권 청구와 내용공개를 통한 역사적 심판이 병행되어여 한다.
당시 조사관,검찰,판사등의 인적 사항을 공개하여 ’양심에 어긋나는 반인륜적‘ 행위가 비록 그릇된 신념이나 직업상 부득히 행해졌다해도 ‘역사의 눈’을 두려워 하도록 해야한다.
지금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억울한 범인으로 몰려 희생된 건의 조사관,검찰관이 문제가 되는 바 이들의 그릇된 판단은 비난 받아야 할 것이다. 특히 자신의 출세를 위해 무고한 양민을 무리한 줄 알면서 범법자로 몰아가는 일이 있다면 분명히 규명하여 공권력 오남용에 대한 국가 공신력 저하를 초래한 인물들에 대하여 국가적 진상규명과 합법적, 역사적 응장이 뒤따라야만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진정, 민권을 향한 가없는 민초들의 투쟁의 결과이다. ‘자신의 일도 아니지만 정의를 위하여 자신의 돈과 시간과 또 부당한 공권력의 위협에도 불굴의 투지로 항쟁하여 결국 약자의 인권을 지켜내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한 결과’는 이토록 위대한 것이다.
(사진 모란공원의 박기래 선생 묘소, 민주화에 앞선 이유로 1975-1979 소위 단군이래 최고의 경제의 그늘, 유신의 절정! 그 희생양, 사진 네이버)
이날 조촐한 장소 관계로 밖에서 맴돌다 발을 돌린 이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현실이니 어쩔수가 없다. 이 몇 분들의 수고와 관심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의 세계적 선진국진입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창선기념사업회 위원장은 "모임 장소가 협소해 모든 분을 모시지 못한 점이 송구하지만
2023. 2.17(토) 마석모란공원 11시. 故 박기래 선생 12주년 추모식 행사에 함께해 주시면
못다한 인사와 좋은 소식들을 전하고 나누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마무리 지었다.
(글 권오철 기자)
(사진 조촐한 장소, 국일관 그 소비와 퇴폐의 명소(?)에 피어난 한송이 들국화 같은 공간, 겨우 2-3평, 겉을 맴돌다. 약간은 페이소스에 젖어 아직도 계속되는 분단적폐의 난동이 어깨를 무겁게 누른다, 그러나 촛불 혁명의 꽃은 닥아오는 龍의 해. 그 점괘는 地雷復이다. 사진 권오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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