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묵상:
많은 성도들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고
두려워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두려워하는 이유는
6절에서 말하는 "타락한 자들"에 자신도 포함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성경의 몇몇 본문에서 한 번 받은 영생(구원)은 영원하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구절만 인용해 보자.
요 10:28~29,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롬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는 양 극단 즉, 두려워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버려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본문이라고 해서 그 말씀을 무시해 버릴 자격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본문을 한 번 깊이 읽어 보자.
그리고 본문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3가지 질문을 해 보자.
1) 먼저, 타락한 자들은 누구를 말할까?
4~5절,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구원의 조건이 무엇인가?
오직 "믿음"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타락한 자들은 "믿었다"는 말이 없다.
도리어 "맛보다"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중심으로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하도록 한다.
어떤 사람을 예로 들 수 있을까?
예로 들 수 있는 사람은 신약 성경에 허다하게 많다.
한 개인을 꼽으라면, "가룟 유다"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무리를 꼽으라면, "예수님을 만난 수많은 군중"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만났다.
빛을 체험했고, 은사를 맛보았고, 성령의 역사에 참여했다.
예수님으로부터 선포되는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들었고, 내세의 능력에 관한 말씀도 들어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을 통하여 이 모든 것들을 맛보았지만, 받아들이기를 거절했던 것이다.
2) 구원받은 것 같이 보이지만 구원받은 것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착각한다.
구원받은 것이 아닌데, 구원받은 것으로 말이다.
성경을 다시 보자.
한 번 빛을 받은 것은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본 것은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성령에 참여한 것은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맛본 것은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본 것도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자전거가 차고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자동차가 되지 않듯이,
중생하지 않는 자가 교회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 것이다.
교회에 수십년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다 보면,
한 번 빛을 받을 수도 있고,
하늘의 은사를 맛볼 수도 있고,
성령에 참여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맛볼 수도 있고,
내세의 능력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체험했다고 해서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 보자.
가룟 유다는
한 번 빛을 받았을까? 3년 동안 수 십년 빛을 받았을 것이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을까? 수많은 은사들을 맛보았을 것이다.
성령의 역사에 참여했을까? 그도 제자들과 똑같이 사역했기 때문에 그랬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맛보았을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인물이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을까? 예수님과 함께 3년 동안 있었는데, 내세의 능력을 맛보지 않았다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무슨 말인가?
이 모든 것들이 구원받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해야 한다.
3) 그렇다면, 무엇이 구원받은 증거일까?
오늘 본문 7~8절을 읽어 보자.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을 불사름이 되리라"
오늘 문맥과 전혀 상관없는 말씀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 것이다.
땅이 비를 흡수하여 채소를 내듯 하는 사람,
땅이 비를 흡수하지 못하여 가시와 엉겅퀴를 내듯 하는 사람.
무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을 때, 그 복음을 흡수하는 사람이 있고,
복음을 들었지만, 그 복음을 흡수하지 못하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흡수한다는 것은
당연히, 중심으로 그 복음을 믿고 영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믿고 영접한다"는 것은 조금 추상적인 단어일 수가 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대로 "비를 흡수하여 채소를 낸다"는 표현이 더 쉬울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이 있다.
비가 그 위에 내린다.
식물의 뿌리가 그 비를 흡수한다.
뿌리에서 줄기로 물과 영양분이 전달된다.
줄기에서 가지로 또한 전달되고, 그 가지에서 결국 열매를 맺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내가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아는가?
내 신앙이 이 과정 중에 있는지를 점검하면 된다.
신앙은 이벤트(event)가 아니라 인테그리티(integrity)다.
무슨 말인가?
이벤트는 단회적 사건이지만, 인테그리티는 지속적인 진실한 삶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한 번"과 "맛보고"는 모두 단회적 사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한 두 번 경험했다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신앙의 인테그리트가 있는가?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우리의 신앙이
주님을 향하여 지속적으로 진실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살다보면,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마음 중심에는 주님을 향한 지속적인 진실한 믿음이 존재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인 것이다.
주님,
진실한 신앙을 가지기 원합니다.
한 번 맛보는 체험이 아니라, 일생동안 신실한 신앙을 가지기 원합니다.
성령께서 저희의 마음 깊은 곳에 오셔서 저희의 삶과 신앙을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