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조 피정
남미 순례의 인연으로 만난 우리(4조)는 천 바오로 신부님과 함께 길을 떠났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길을 달렸다. 하양에서 신령방면으로 가다가 거조암의 이정표를 따라 산골로 접어들었다. 길 좌우측에는 사과나무의 가지에 풋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골 깊은 팔공산 뒷자락에 거조암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도착하여 오백 나한상을 모시는 곳에 들어갔다. 오백여 분의 존자(성인)의 모습이 제각기 달랐다. 돌로 빚었는데 어떻게 닮은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곳을 벗어나 차를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갔다. 헤인 농원에 도착했다. 그곳 농원은 삼천여 평에 체리나무가 울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체리는 보이지 않았다. 체리는 6월에 전부 수확하여 지금은 나뭇잎만 무성히 달고 있었다. 체리 맛도 못 보고라는 한탄에 주인아주머니는 냉장고에 보관된 체리를 두 쟁반 내어와 맛을 보게 했다.
그러는 동안 주문한 콩국수가 나왔다. 국수의 면(麵)도 직접 만들었으며 콩도 즉석에서 갈아서 만든 국수가 그릇에 가득 담겨 나왔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맛이 일품이라고 했다. 나는 가끔 콩국수가 생각나면 지인 몇몇과 함께 이 농원을 찾곤 한다. 이 집의 맛에 익어 도시의 콩국수와는 비교되지 않는 독특한 맛이다.
그곳에서 내려와 일행 중의 한 사람의 동생이 주인인 별장에 들렀다. 주인은 주말에 들르며 평일에는 비워놓고 있었다.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남미 순례 때를 떠올리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신부님께서 내년에 아프리카 순례가 있다며 갈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다들 의기투합하
여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으며 다시금 우리는 내년 순례의 동지로 입지를 굳혔다.
다시금 차를 몰아 영천 화산에 있는 시안 미술관에 갔다. 전시관의 작품을 둘러보았다. 작품의 소재들이 우리 생활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 삶을 주제로 한 평범한 것이었다. 지나쳐버릴 뻔한 것들이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표현한 것이어서 마음에 깊이 다가왔고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평소 알고 지내는 그곳 미술관장님을 만나 차를 나누면서 바깥에 펼쳐지는 시골의 고즈넉한 풍경에 마음이 동요되기도 했다.
미술관 인근 마을에는 마을 전체를 미술 마을로 꾸며 놓았다. 담벼락의 벽화며 빈집을 이용하여 설치 미술, 동네의 역사를 나타내는 공동 전시실 등 다양하게 꾸며져 있었다. 마을이 시골 같지 않고 시내 계산동 일대의 골목을 거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열하는 열기에 항복하면서 그 마을을 빠져나왔다.
벌써 해는 서쪽으로 저만큼 기울고 있었다. 다시 경산으로 들어와 저녁을 먹으로 갔다. 돌메기 매운탕으로 유명한 곳에 갔다. 자인 방면으로 가다가 한의대학교로 가는 길목에 있다. 이 집의 뼈 추린 매운탕은 역시 맛이 일품이라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그 집은 맛도 맛이지만 종사하는 사람들의 친절미도 으뜸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해는 서산에 몇 발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작별의 시간을 맞았다. 오늘 하루의 피정을 아쉬워하며 또 다른 요한 조의 순례를 꿈꾸며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