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베흐노가 이 동네에 정착할 무렵 산골동네 이교도들에게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요정, 신, 악마, 악령이 이야기 속에 들끓었습니다. 그런 전설들은 기독교화 과정에서 하느님과 성인들이 악령들을 대신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바뀌었습니다. 16세기에 기록된 전설에 의하면 알프스 고개마루에 악마가 조각상을 세워 놓고 거기에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생 베흐노가 고개길로 올라오자 악마는 심술을 부리며 눈, 비, 바람을 일으켜 막으려 했습니다. 깊은 눈으로 고개길을 덮어버리고 검은 구름으로 하늘을 가득 채운 후에 번개와 천둥을 불러왔습니다. 생 베흐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고개 마루에 올라와 지팡이를 들어 조각상을 부숴버리고 악마에게 명했습니다.
“너는 몽블랑에나 가서 놀아라.”
악마는 몽블랑으로 꽁무니를 빼서 세상 끝날까지 그곳에 갇히게 되었다고 합니다.[1]
이 이야기는 켈트 족의 전설이 변형된 것이라고 합니다. 원주민들은 이 전설로 몽블랑을 몽모뒤(Mont Maudit) 즉 “지탄받은 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자 이방인들이 아름다운 산을 보고 하얀 산 즉 몽 블랑(Mont Blanc)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니 악마이야기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1779년 샤모니를 방문한 괴테(Johann Wolfgang Goethe)조차 몽블랑 밤하늘의 별을 보고 몽블랑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었다고 했습니다. 바야흐로 19세기 낭만주의 문학이 시작되는 것은 알프스의 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 생 베흐노의 별은 목전의 잠자리 문제로 엄두가 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낭만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순례길을 걷는다면서 잠자리 걱정이나 하고 있다니 … 대학 1 학년 시절을 생각하고는 멋적어졌습니다. 입주 가정교사를 했던 시절, 하루라도 주인 집 아이들과 그 친구들을 가르치지 않으면 그 집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학기말 시험이 다가오자 공부가 밀려서 아이들 가르칠 시간이 없게 되었습니다. 가정교사를 그만두고 나온 그날 오후가 되어 대학교 교문을 나서는데 그날 밤 잘곳이 없으니 갈 곳도 없었습니다. 그 막막했던 순간보다야 지금은 얼마나 넉넉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산을 내려갈 교통편 시간이라도 알아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여유로워졌습니다. 올데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스위스에 걸으려고 왔지 잠 자러 왔나?
순례자가 들어오면 방 없다고 절대 그냥 내보내지 않는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수도자들이었습니다. 비싼 호텔 방에서 잘 수 없으니 교통편이나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직원이 순례자 숙소 (St Bernard Hospice)의 도미토리 빈 침대를 내 주었습니다. 예약 안 된 침대가 있었습니다. 내친 김에 저녁식사와 내일 아침 식사까지 주문했습니다. 도미토리는 호텔처럼 깨끗했습니다. 8인실에 배낭을 내려 놓았습니다.
선물 받은 빵과 배낭 속 비상 식량으로 점심을 먹고 샤워했습니다. 오후가 되자 순례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마흐티니에서 헤어졌던 이탈리아 형제가 나타나 바로 옆 침대를 차지했습니다. 며칠 동안 씻지 않았는지 냄새가 지독했습니다. 며칠간 씻지 못하고 다닌 것 같았습니다. 샤워장에 다녀오니 냄새가 좀 가셔서 다행이었습니다. 건장한 체격의 프랑스, 스위스 사람들. 허연 두건을 쓴 프랑스 친구가 나를 안다고 했습니다. 보름 전 셩플리 까페에서 통성명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서둘러 걷는 사람이든 설렁설렁 온 사람이든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박물관을 한 시간 가량 둘러보았습니다. 많은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로마시대 유물들, 이곳 수도원의 역사. 그 옛날, 산적과 강도들이 괴롭히던 시절 이야기, 당시 숙소는 열악했고, 구명 개 때문에 목숨 건진 사람들. 나폴레옹은 이곳에 부하 장군의 영묘를 만들어 놓아 그가 지나간 흔적을 남겼습니다. 아름다운 경당과 제대.
그림에 나오는 나폴레옹의 모습보다 실제 행군할 때는 더 소박했던 것 같았습니다. 부흑 생 삐에부터 그의 노새를 몰았던 스위스 청년은 나폴레옹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산길에서 미끄러져 눈발에 나뒹굴었던 높은 계급의 장교는 그 청년 덕에 다치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이 품삯을 주며 더 원하는 게 없느냐고 묻자 노새가 욕심났던 모양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타고온 노새를 주면서 메모를 적어 주었습니다. 청년이 병참장교에서 나폴레옹이 적어준 메모를 내밀자 그에게 농장과 주택이 생겼고 사랑하는 동네 처녀와 가정을 꾸리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니폴레옹인지 그때야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어떻든 청년의 형편이 나아진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생 베흐노 고개의 나폴레옹과 병사들 https://en.wikipedia.org/wiki/Great_St_Bernard_Pass#/media/File:Edouard_Castres-Bonaparte_au_St-Bernard_IMG_3221.jpg
밖에는 관광객들이 많았습니다. 수도원 뒤 언덕에서 스위스 구명 견들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마흐티니 개 박물관이 이곳 개 사육장의 분점인 셈이었습니다. 이곳 지명을 따서 세인트 버니드 개라고 부르는 종입니다. 수도자들이 눈에 빠져 조난을 당한 사람들을 구하려고 기르던 개였습니다. 이천명이 넘는 조난자들을 구했다고 했습니다. 이제 인명구조는 헬리콮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개들의 구명 임무는 끝났습니다. 애완견이 되었습니다.
코미디 영화 “베토벤”에서 주연으로 나온 개가 세인트 버나드 개입니다.[2] 주인 집 딸 에밀리가 베토벤 교향곡 5변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 박자를 맞추어 짖었다고 해서 베토벤이라는 이름을 얻었던 개. 몸집이 사람만큼이나 크고 온순하다고 했습니다. 마흐티늬에서 아침 출발할 때 로마 경기장 옆 개 박물관에서 잠깐 보았던 종류의 개들이었습니다.
수도원 건물 뒤 돌 십자가에 올라가서 걸어온 방향을 바라보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몽 빌랑(Mont Velan: 3727m)의 만년설이 오후 햇살을 반사하여 눈 부신 하얀 색이었습니다. 그 뒤에 있을 그헝 콩방(Grand Combin: 4313m)은 젊어 힘 좋았을 시절 오르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파란 하늘과 알프스 연봉은 언제 봐도 신비로운 모습이었습니다. 육중한 산맥 아래로 펼쳐진 스위스 산하. 아흐레 여정에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들이 스르르 눈 앞에 지나갔습니다. 내일 이곳을 떠나면 그림이나 사진으로 떠올리게 될 먼 나라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저녁 미사 시간이 되자 침실에 있던 순례자들이 모두 지하 경당으로 향했습니다. 6시 15분 미사. 해발 2473m의 높은 산에서 드리는 미사였습니다. 지하 경당은 울림이 좋았습니다. 집중이 잘되는 미사 시간이었습니다. 수도원 사제 일곱 분이 집전했습니다. 전례는 한국 성당 미사와 동일한 순서여서 기도문만 한글로 바쳤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50여명의 참례자들이 성체, 성혈을 모두 모셨습니다.
스위스 국경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민간 식당 앞에서 작은 광장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거리 악대가 모여 나팔불며 행진하고 구경꾼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스위스 건국일은 명화하지 않습니다. 대략 8월 초순이라고들 해서 1994년부터 8월 1일을 건국절로 정해서 축하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 밤 부흑 생 삐에의 불꽃 놀이는 국경일 전야제였습니다. 이날은 8월 1일 빵(1.-August-Weggen)을 만들어 선물로 주고받으며 축하합니다. 저수지에서 플로린 부부기 준 바로 그 빵이었습니다.
해가 기울어 그늘이 지자 추웠습니다. 7시 15분에 저녁 식사. 명패가 놓인 자기 자리를 찾아가 앉았습니다. 옆 자리 독일인, 맞은 편에 이탈리아 형제. 맞은 편 옆자리에 밀라노에서 온 20대 아가씨 키아라. 크림 수프, 빵, 구은 소고기, 야채, 케이크 한쪽이었습니다. 에너지를 갈구하는 몸이니 맛은 그만이었을 것입니다.
단체 테이블에서 왁자지껄했습니다. 50대 아니면 60대의 남녀라면 세상 사는 맛을 아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웃어도 단체로 깔깔거렸습니다. 우리 테이블의 키아라는 서글서글해서 좌중을 이끌었습니다. 자세한 이탈리아 순례길 정보를 풀어 놓았습니다. 언감생심, 얼핏 며느리가 저렇게 활달하면 어떨까 했습니다. 결혼 의시가 없는 아들이니 며느리를 볼 수나 있을지 … 저넉식사 후 침실에서 WIFI 가 터지지 않아 수도원 계단에 앉아 필요한 정보를 검색했습니다. 그믐이 지난 밤하늘, 초롱초롱한 별들이 지켜주는 스위스 고갯길.
오고 싶었던 곳, 그렇게 오고 싶었던 곳, 돌아가면 또 오고 싶어 할 곳.
뿌듯하면서 아쉬워서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 를 읊조렸습니다.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1] Edwin Bernbaum, Sacred Mountains of the Worl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2] Hughes & A. H. Jones, Beethoven, movie directed by B. Levant, United Studios,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