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挑戰
- 희망의 두레박질
최원현
1
겨울 초입의 지난 달 한 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Y대 교정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헌데 봄에만 피는 걸로 알았던 철쭉꽃 두 송이가 보란 듯 피어있지 않은가. 차가운 날씨에 이파리 가장자리가 검붉게 시들어 있었으나 겨울 철쭉은 실로 경이로움이었다. 이상난동 같은 그렇게 따뜻한 날씨가 아닌데도 제 철을 잊고 겨울 속에 피어있는 연분홍 꽃송이를 보는 마음속에서 너는 너무나 포기하길 잘 하지 않느냐는 자책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철쭉꽃은 결코 겨울에는 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게 그것은 참으로 충격이었다. 하기야 우리 삶에서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루어지는 걸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그것은 도전의 결과였던 것이다. 결국 인생이란 도전의 무대일 것이다. 도전의 무대에서 도전을 하여 이뤄내는 사람과 도전도 해보지 않고 아예 체념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삶을 논하는 것에서부터 다를 것이다. 물론 시대가 많이 변했다. 환경도 조건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인간에겐 휴화산처럼 내재해 있는 무언가가 있고 그것이 어느 순간 활화산이 되면서 변화를 만들게 된다. 자연 질서의 반란 같은 겨울 철쭉꽃을 보며 나는 휴화산이 활화산으로 변화되는 체험을 한다.
사실 50대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가 IMF와 함께 사라지고 지금은 그 자리를 40대가 메꾸고 있다. 따라서 50대가 되면 인생의 전성기를 포기하고 마는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이 어찌 나이에 의해 좌우되랴. 사람마다의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저마다의 삶을 책임진 주인공은 역시 자기 자신이지 않겠는가. 그래선지 요즘 들어 ‘도전’이란 말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따라서 뒷 힘도 약해져서 의지도 인내도 끈기도 생소한 단어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이러면 안 된다는 또 하나의 내가 자꾸 도리질을 해댄다. 새로운 시작, 그것은 도전이다. 그런데 그 도전을 충동질하고 있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누구일까.
도전 (挑戰)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서열이나 지위 등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겨루어 승부나 우위를 가리고자 하는 것’ 또는 ‘제 뜻을 이루거나 정복하기 어려운 일이나 대상에 어려움을 무릅쓰고 뜻을 이루거나 정복하고자 맞닥뜨리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결국 지금의 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상태로의 변신인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오는 현상은 바로 그런 도전의 욕망과 힘을 잃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몇 사람의 특별한 도전을 보았다. 그것들은 분명 내가 본 겨울 철쭉과 같은 경이로움이었고, 잠자던 나를 일깨우는 신호이기도 했다.
2
시각장애자이면서 축구를 하고 있는 오용균1) 씨는 어둠을 정복한 사람이다.
앞을 보지 못한다고 세상까지 못 보랴. 한국시각장애인축구대표팀의 오용균(吳鎔均․32)씨는 축구를 통해서 세상을 다시 보고 있다. 2002.11.9일부터 서울 송파의 시각장애인 축구장에서 열린 4개국 국제축구대회에 참가하여 그는 처음 만난 외국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자신의 살아있음을 만끽했다.
ꡒ축구를 한 뒤부터 삶이 달라졌습니다. 뭐든지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거든요. 보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제게는 큰 장애가 아닙니다.ꡓ 그는 3살 때 앓은 녹내장으로 10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그 후 어둠 속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2000년 여름. 시각장애인 축구를 활성화 시키려는 홍종태(洪鍾泰․39) 대표팀 감독으로부터 축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고서, 그때까지ꡐ상상 속의 스포츠ꡑ였던 축구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게 되었던 것이다. 펠레나 지단 같은 세계적인 선수 이름을 알고는 있었지만 시각장애인인 그가 축구를 직접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었다.
그런 그에게 축구는 그야말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다. 가로 18m 세로 38m의 공간에서 5명씩 팀을 나눠 펼치는 시각장애인축구는 그에겐 신나는 도전으로 눈 대신 귀에 모든 감각을 의존하며 소리 나는 공을 쫓아다니면서 그는 이제 어둠 속에서도ꡐ빛ꡑ을 보게 되었다.
처음엔 5분도 버티기 힘들었다고 한다. 눈을 보지 못하게 된 뒤 거의 뛰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몸도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이 터질 듯 뛰고 났을 때의 상쾌함은 그가 태어나 맛보는 최고의ꡐ다른 세계의 맛ꡑ이었다. 거기다 골을 넣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는 하루 4시간을 뛰어도 거뜬하다고 한다.
ꡒ축구는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펠레나 지단 같이는 될 수 없겠지만 축구를 하면서 그들이 무엇을 느끼는 지는 조금 알 것 같아요.ꡓ 그는 지단과 같은 10번의 등번호를 달고 운동장을 뛰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오히려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로 바꿔 놓은 것이다. 그에게 도전은 다시 태어남이었던 것이다. 캄캄한 어둠 속, 그러나ꡐ짤랑짤랑ꡑ공 속에서 나오는 방울소리를 따라 발을 갖다 대고 힘껏 공을 찼을 때 슛! 골~인, 아무도 가져다 줄 수 없는 감격과 행복을 그는 도전을 통해 얻어냈던 것이다.
3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가수 하춘화, 그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47세, 나이로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할지 모르나 여섯 살에 데뷔해 지난해 노래 인생 40년을 맞았던 가요계의 대 스타로 무려 2200여곡을 취입하며 가수로서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위치에 올라있는 그가 새삼스럽게 뒤늦게 공부에 뛰어든 것이다. 그것도 동양철학 박사과정,
정확히 말하면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예술철학 박사과정이다.ꡒ대중가요는 민중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음악이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크게 대접받지는 못했다ꡓ면서 ꡒ대중음악에 대해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을 하고 싶었다ꡓ고 말하는 하춘화 역시 자신에게 도전하는 케이스다.
나는 이 보도2)를 보며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가수이며, 한 가정을 지키는 주부인 그가 학업을 병행하게 된 데는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했을까. 물론 회사원인 남편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가 공부를 다시 생각했던 것은 1995년 결혼을 하고 난 뒤였다고 한다. 그 때 남편은 ꡒ하고 싶은 것을 해 보라ꡓ며 그를 전격 지원했다고 한다.
그는 딸만 넷인 집안의 둘째딸로 그를 제외한 자매 셋이 모두 박사학위를 갖고 있고 그 중 둘이 교수라고 한다.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을 만도 했다. 그는 1980년 경남대 가정학과를 졸업한 후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여 2000년ꡐ한국 가요의 원류와 변천에 관한 연구ꡑ로 석사학위를 받았었다.
ꡒ주부로, 가수로 또 학생으로 1인3역을 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대학원 다닐 때는 지방 공연을 마치고 달려와 수업을 들은 적도 많았죠.ꡓ
수업시간에는 졸지 않기 위해 부러 앞자리를 택했다는 그, 시험공부를 하느라 휴가는 꿈도 못 꿨다고 했다.
그는 이 박사과정에 네 번의 도전 만에 합격한 것이라고 한다. 세 번이나 실패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그, 당장 의정부 예술의 전당 콘서트가 예정돼 있지만 그보다는 봄 학기부터 시작되는 박사과정 수업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새해 공연 스케줄을 대폭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철학과에서 대중가요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사례가 드물어요. 내 몫이라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앞서네요.ꡓ그는 가수로써 대중가요를 본격적으로 연구해 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만큼 남부러울 것 없이 성공해 놓고도 다시 새로운 길로 나서는 그의 도전의 발걸음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해 보게 한다.
4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고 현재를 중시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용기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삶을 보다 소중히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장군이 ꡐ뚝배기집 주인ꡑ이 되었다고 한다. 공군사관학교 19기로 군에 입대한 후 33년의 군 생활을 접고 2000년 7월 준장으로 제대한 손정환3)(孫廷煥․53․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장군.
그는 3000시간의 전투기 비행 기록을 갖고 있는 손꼽히는 ꡐ빨간 마후라ꡑ였을 뿐 아니라 장군 진급 후에는 공군사관학교 생도대장, 합참 전략본부 정책처장, 수원 전투비행단장, 정보사령부 여단장 등 군의 요직을 두루 거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가 은퇴를 하고 시작한 일이 뚝배기집 경영이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군 장성으로 은퇴한 그이니 골프나 등산 등 취미 생활로 소일하는 여유로운 삶은 아니더라도 퇴직금에 매달 받는 200여만원의 군인 연금이 있기 때문에 굳이 음식점을 해야만 생계가 해결될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가 굳이 뚝배기집 경영을 택한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도전의식 때문이었다.
물론 대학 다니는 아들(대학 3년, 대학 1년)이 둘이나 있다는 현실적인 면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음식점 내는 문제로 한 달간 고심하다 몸무게가 4㎏이나 빠졌다고 한다. 몸보다 마음이 더 흔들렸다. ꡒ장군이 ꡐ식당주인ꡑ그것도 뚝배기 집이라니….ꡓ 자존심이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ꡒ군에서 잘나가던 선배로서 혹시 후배들에게 좋지 않게 비칠까 그게 제일 두려웠다ꡓ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식당을 시작한 뒤 그는 새벽 6시에 일어나 부인 백미숙씨(50)와 함께 영등포시장에서 장을 본다. 하루종일 음식을 만들고, 그릇을 나르고, 설거지를 손수 한다. 이제는 순두부찌개, 불낙전골, 제육볶음 등 메뉴에 있는 모든 음식들을 척척 만들어 내는 요리사로 변신했다. 모습도 근엄한 장군에서 인심 좋은 동네 아저씨로 바뀌었다. 밤 10시 일을 끝내면 몸은 녹초가 되지만 손씨는 ꡒ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 만족스럽다ꡓ고 말한다.
지난 3월 개업을 했을 때 식당을 찾은 동료와 선후배들이 보내준 성원도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손씨는 ꡒ대부분의 직업군인이 퇴역 후 연금도 적고 한국 사회에서 효용가치가 없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ꡓ면서ꡒ그러나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니냐ꡓ고 말한다. 그는 ꡒ아이들 공부를 다 시키고 나면 음식점을 그만두고 봉사활동을 하겠다ꡓ며 또 다른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5
인간의 역사는 도전의 역사일 것이다. 꿈을 꾸고, 그 꿈같은 일에 도전하고, 도전 끝에 이뤄내는 위대한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도전 속에서 발전해 왔고, 또 그것이 더 나은 오늘이 되게 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창세기서 1장 28절)는 태초의 말씀은 바로 인간이 도전해야만 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인간의 삶은 그야말로 도전이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확실하게 도전하되 그것을 이루어내는 능력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아닐까.
도전은 그래서 희망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질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내일을 향해, 미래를 향해, 보다 나은 나를 위해, 살고 있는 이 땅 이 시대를 위해 희망의 두레박질 곧 도전을 쉴 수 없는 것이리라. 도전, 그것은 바로 살아있음의 증거요, 살아있다는 것은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간 <건강과 생명> 2003.1월호 특집.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