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어봐도 신박하다...2004년 '관습헌법 경국대전' 판결문.
헌재 재판관들 정말 창의적이었다.
16년전에 쓴 칼럼의 일부를 '재활용'했다(이럴땐 로또맞은 기분). 셀프표절이니 이딴 소리 말도 안된다. 상황이 똑같고 하고 싶은 말이 똑같은데 자기가 쓴거 좀 베끼면 어때서..박사할 것도 아닌데.
"서울대 지방 가면 한 푼 내겠다" "서울대가 세종시 '+α' 돼라"라는 제목으로 서울대부터 세종시로 옮기라고 쓴 것들도 조만간 재활용해야겠다. 암튼, 나도 한때 꿈은 세종시 취재본부장이었는데 이젠 물건너갔...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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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에는 한성부가 경도(京都) 즉 서울을 관장한다고 명시해 한성의 수도로서의 지위를 법상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경국대전의 내용은 개정됨 없이 조선왕조가 존속한 500여년의 장구한 기간동안 계속하여 국가생활의 기본적인 최고규범으로서 효력을 유지했다...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는 상황이 시작됐으나 이후에도 경성부, 즉 서울은 우리나라의 행정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계속하였으며...”
지금 다시 읽어봐도 ‘신박한’ 당시 헌법재판소(소장 윤영철)의 위헌 판결문이다.
2004년 1월 대한민국 국회를 통과해 공표된 행정수도 특별법(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이렇게 1470년(성종 2년) 반포된 조선의 경국대전 앞에 ‘위헌’딱지를 받고 무력화됐다.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명문화되지 않았을 뿐 헌법 조문이나 마찬가지다“
요즘 서울 이외 지역 주민들이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경제정의실천 시민운동연합 출신 이석연 변호사(훗날 이명박 정부 법제처장)가 위헌신청을 내면서 했던 말이다.
보수성향 재판관들이 주류를 이룬 당시 헌재는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행정수도 이전을 두고 서울의 경쟁력 약화나 비효율성, 재원낭비 등 여러 관점에서 반대논리도 많았지만, ‘경국대전’이 등장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표결 결과는 위헌 8(윤영철 주선회 김경일 김효종 송인준 권성 김영일 이상경), 각하 1(전효숙)이었다.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므로 헌법72조에 따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절차상의 위헌을 지적한 의견조차도 김영일 재판관 1명에 불과했다.
헌재는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점에 대한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당시 의석 분포나 정치상황상 개헌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효숙 재판관만이 ‘서울이 수도이다’라는 사실로부터 ‘서울이 수도여야 한다’는 헌법적 당위명제를 도출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며 각하 의견을 냈다. 헌법에 있지도 않은 사항을 ‘개헌’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대의민주주의 절차인 법률 제개정을 통해 다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상 우리 영토가 가장 광대했던 고구려의 수도 평양도 아니고, 최초의 중앙집권 통일국가를 이룬 신라의 경주도 아니고, 1000년이나 지속되면서 한민족의 한반도 정주를 확고히 한 고려의 개성도 아니고…
왜 '조선왕조 창건이후 600년간'을 관습헌법의 소급기간으로 가정했는지 헌재는 설명하지 않았다.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씌여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봉건왕조 이씨 조선의 통치이념과 관습의 연장선상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는 냉철한 자기 인식이었을까?
아니면 경국대전이 최초의 ‘성문헌법’이라서였을까? 관습헌법을 따지자면서 그 기준을 ‘성문’에서 찾는 것은 또 무슨 논리인가.
관습은 시대를 반영해야 ‘헌법’에 준하는 권위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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