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인 고라와 르우벤 지파가 주동하여 모세와 아론에게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모세의 권위와 아론의 제사장 직분에 대해 공평과 정의를 내세우며 비난합니다.
1-3절 레위인 고라와 르우벤 지파 일부가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합니다. 모든 회중이 거룩하다는 공평이라는 잣대를 내세워 모세와 아론의 권위가 과도하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를 수직적인 구도로 이해하여 비교하는 것은 스스로 높아지고 싶은 욕구를 드러낸 것일 뿐입니다. 기계적인 평등이 곧 정의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구조와 역할을 바르게 수용하고 순종하는 것이 바른 신앙의 자세입니다.
4절 모세는 높아지려 하는 무리를 상대하기 전에 낮게 엎드립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권위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반란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명확히 알기에 자기 힘으로 상대하지 않고 자신을 낮춥니다. 먼저 상황과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하나님께 반응하고 있습니다. 나를 공격하는 이들 앞에서 힘을 빼고 자세를 낮추고 있습니다.
5-11절 모세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시험하기 위해 반역한 무리에게 향로를 가지고 성소에 모이라고 요구합니다. 향을 드리는 일은 제사장만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고라가 맡은 성막에서 봉사하는 일 역시 레위인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자 의무이지만, 그는 섬김의 자리를 떠나 군림의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높아지려는 마음은 우리 안에서 사랑과 분별력을 빼앗고 미움과 시기를 낳습니다.
12-15절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은 한 술 더 떠서 모세가 왕이 되려 한다고 모함합니다. 거짓말로 모세를 매도하고 자신들의 불순종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아왔으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 선동을 일으킵니다. 출애굽의 이적과 거사, 광야에서 돌보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고 자기만의 논리를 만들어 모세를 공격합니다. 모세는 똑같이 대응하기 보다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스스로 방어하기보다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이기 때문입니다. (매일성경, 2023.03/04, p.156-157, 고라와 일당들의 반란, 민수기 16:1-15에서 인용).
① 레위인 고라와 르우벤 지파가 주동하여 모세와 아론에게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모세의 권위와 아론의 제사장 직분에 대해 공평과 정의를 내세우며 비난합니다. 레위인 고라와 르우벤 지파 일부가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합니다. 모든 회중이 거룩하다는 공평이라는 잣대를 내세워 모세와 아론의 권위가 과도하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를 수직적인 구도로 이해하여 비교하는 것은 스스로 높아지고 싶은 욕구를 드러낸 것일 뿐입니다. 기계적인 평등이 곧 정의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구조와 역할을 바르게 수용하고 순종하는 것이 바른 신앙의 자세입니다.
② 모세는 높아지려 하는 무리를 상대하기 전에 낮게 엎드립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권위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반란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명확히 알기에 자기 힘으로 상대하지 않고 자신을 낮춥니다. 먼저 상황과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하나님께 반응하고 있습니다. 나를 공격하는 이들 앞에서 힘을 빼고 자세를 낮추고 있습니다.
③ 모세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시험하기 위해 반역한 무리에게 향로를 가지고 성소에 모이라고 요구합니다. 향을 드리는 일은 제사장만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고라가 맡은 성막에서 봉사하는 일 역시 레위인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자 의무이지만, 그는 섬김의 자리를 떠나 군림의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높아지려는 마음은 우리 안에서 사랑과 분별력을 빼앗고 미움과 시기를 낳습니다.
④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은 한 술 더 떠서 모세가 왕이 되려 한다고 모함합니다. 거짓말로 모세를 매도하고 자신들의 불순종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아왔으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 선동을 일으킵니다. 출애굽의 이적과 거사, 광야에서 돌보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고 자기만의 논리를 만들어 모세를 공격합니다. 모세는 똑같이 대응하기 보다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스스로 방어하기보다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