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 잠깐……. (2인 옆방으로 들어간다. 우씨 뛰쳐 나오며)
<br>
<br>
<br>
김 의원의 방문
<br>
우 씨
<br>
임 선생이 왔다자, 응. 관가에서 나왔다지? 어서 우리들 얘기를 좀 그럴 듯하게 해요. 과히 억울치나 않게 돼야 할 게 아니요? 영감두 돌아가신 거루 됐구.
<br>
최 변호사
<br>
쉿.
<br>
우 씨
<br>
에그 참, 정신두 없어라. 영감일랑 완전히 돌아가셨으니 남은 식구들일랑 어떻게 굶주리지나 않게 돼야 할 게 아니요?
<br>
임표운
<br>
마님께선 들어가 계십쇼. 최 선생님이 요량해서 잘 처리허실 테이니.
<br>
최 변호사
<br>
쓸데없는 걱정일랑 덮어 놓십쇼, 헛허. 모두가 수완 나름이조. 천재 일우의 기회를 만만히 놓치겠어요, 헛헛.
<br>
우 씨
<br>
그럼 꼭 믿습니다. 술일랑 얼마든지 있으니 애들에게 일르슈. 삐루두 있구 영감 자시는 양국 술두 아직 몇 상자 남았다우.
<br>
임표운
<br>
어서 들어가십쇼, 나오십니다.
<br>
우 씨
<br>
그럼 최 선생님, 꼭 믿구 있습니다. (우씨 들어가자 송과 김, 다시 나온다.)
<br>
<br>
우씨의 불안한 마음
<br>
최 번호사
<br>
이리 앉으시죠. 주안상이 나왔으니 목이나 축이시구.
<br>
김 의원
<br>
아니올시다. 곧, 실례허겠습니다.
<br>
최 변호사
<br>
상가에 오셨다 그냥 가시는 법이 어딨습니까?
<br>
김 의원
<br>
그럼 잔칫집처럼 뛰다니구 놀아야 합니까?
<br>
최 변호사
<br>
헛, 헛, 그런 게 아니와요. 저, 어서 한잔 드십쇼.
<br>
김 의원
<br>
(마지 못해 술잔을 든다) 고인의 아들루 광복 전에 학도 지원병 간 이가 있었죠?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br>
최 변호사
<br>
그러니 말씁입니다. 영감두 삼대 독자루 눈에 넣어두 아프지 않을 귀여운 자식인데 십 년 동안이나 화태에서 억류되었다가 오늘이야 돌아온다는 소식이 어제서 왔습죠. 며칠만 더 참으셨던들 이런 변이 없었을지도 모를게 아닙니까?
<br>
이중건
<br>
죽는 순간까지 '우리 하식이, 우리 하식이' 허문설랑 차마 눈을 못 감더군요.
<br>
<br>
<br>
학도 지원병으로 나간 하식에 대한 김 의원의 심문
<br>
김 의원
<br>
그럼 영감께서는 운명하시는 걸 보셨구먼요?
<br>
이중건
<br>
그럼요, 내가 눈을 감겼죠. 경동맥으로 면도칼을 싹둑 잘러 버렸는걸.
<br>
최 변호사
<br>
헛, 헛…… 취하셨군. 면도칼로 경동맥을 끊었지.
<br>
이중건
<br>
어, 참…….
<br>
최 변호사
<br>
그래서 여기가 왼통 피바다가 됐더랍니다. 유설랑 고시란히 책탁 위에 놓여 있었죠. 송 선생…… 유서는 벌써 전에 꾸며 놓으셨죠, 네?
<br>
김 의원
<br>
유언엔 전재산을 송 선생께 양도하기루 됐다죠?
<br>
최 변호사
<br>
글쎄, 이 점이 또 고인이 대범하시구 촐중허신 점이죠. 보통 인간 같구 볼 지경이면 제아무리 열 사위 미운 데가 없다구 한들 아들 딸을 한 구들두구 어떻다구 사위에게 전재산을 양도헌답니까? 들어 보십소. 돌아가신 어른의 의견이…… 돈이란 건, 그걸 잘 이용할 줄 알구 나라에 유익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법이다. 저 혼자 잘 먹구 흥청거리구 놀라구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국가적인 사업을 하자구 귀하기두 하구 필요두 한 것이란 말이죠. 그러니간 돈이란 벌기보담 쓰기가 힘든 물건이라……. 하식군으로 볼 지경이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아직 입에 젖비린내 나는 삼십살 풋내기야 나라를 위해 적당히 쓸 줄 알 리 없을 터이구, 백씨 영감이야 실례의 말씀이지만 시골 양반이니 세상 물계를 아실 리 없으니 이루 두말할 필요조차 없구 보니, 예라 모르겠다, 그래두 믿을 만한 위인은 문중을 둘러봐두 여기 계신 송 선생밖엔 없으려니…… 그래서 유서두 그렇게 쓰셨죠. 그렇습죠? 고인의 유지가…… 송 선생……?
<br>
송달지
<br>
네…… 글쎄, 뭐 그렇겠죠.
<br>
<br>
이중생의 자살과 재산 상속에 대한 김 의원의 심문
<br>
이중생, 병풍 위로 머리를 내밀고 극이 진행하는 동안에 후수막까지 나와 귀를 기울인다.
<br>
<br>
최 변호사
<br>
그나 그뿐이겠습니까? 유언에 가로되 "황천은 굽어 살피소서"이랬겄다요. "소생은 죽음으로써 전생의 모든 과오를 청산하나이다. "이랬겄다요. "개과 천선은 고 성현도 용납하시는 바이오니 황천은 이중생을 긍휼히 여기사 용서, 용서하옵소서.……." 이 정신이야말루 과연 결백하다구 하겠습니까요, 숭고하다구 허겠습니까요?
<br>
이중건
<br>
내가 초잡은 게 어떻소?
<br>
김 의원
<br>
네 ? 뭣이라구요. (옆방의 이중생 기절하듯.)
<br>
최 변호사
<br>
(당황해서) 영감께서는 사랑으로 나가 계시죠.
<br>
이중건
<br>
옳지, 옳지……그런 게 아니었다 ! 저, 저, 사랑 손님이 있어서 전 실례합니다. (후원으로 나가면서 독백) 어 참, 큰코다칠 뻔했군. 기와집과 삼백만 환이 제물에 살짝 녹을 뻔했지. 달지, 아범더러 후원으로 한 상 채려 오라구 이르게.
<br>
최 변호사
<br>
영감이 동생 잃은 후론 그만 뒤죽박죽입니다.
<br>
김 의원
<br>
그러실 테죠.
<br>
최 변호사
<br>
암, 그렇구 말구요. 고인의 생전에는 모리배이니 인색가이니 많은 시비두 받았지만 한분밖에 없는 동기간에는 각별했습죠. 이번 유서에두 당신의 백씨 일을 가장 걱정했습니다. 훌륭허시죠. 보통이 아니예요. 자기가 과오를 범했다구 자결하는 그 용기만 보아두 범인이 아닙네다.
<br>
<br>
<br>
이중건의 말 실수
<br>
김 의원
<br>
양심의 가책대루 행동허신 게죠. 그래 송 선생의 희망이라구 헐까, 의견이라구 헐까, 어떻습니까?
<br>
송달지
<br>
의견이요?
<br>
최 변호사
<br>
희망 ? (이중생 긴장한다.)
<br>
김 의원
<br>
(달지에게) 조용히 선생을 찾아 말씀드릴 일이지만, 고인의 유지두 그러시다니, 우리두 그 유지를 존중하는 의미루 송 선생의 의사를 충분히 참고 하여 행정 당국과 사법 당국에게도 댁에 유리하도록 의견서를 제출할 아량이 있습니다. 돈이라는 건 필요하게 쓰구 유익하게 써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br>
최 변호사
<br>
아량?
<br>
<br>
<br>
김 의원의 방문 의도 표출
<br>
김 의원
<br>
(그냥 달지에게) 보건 시설 같은 것은 어떻습니까, 선생이 의사라구 허시니 말씀입니다만…….
<br>
최 변호사
<br>
보건 시설 ?
<br>
김 의원
<br>
네, 우리 나라처럼 보건 시설이 불충분한 나라도 없지요. (이중생 펄펄 뛴다.) 그야 그럴 것이, 지금꺼정은 저마다 도회지서만 개업할랴 했구 주사 한 대두 돈 있는 이만 맞게 생겼구, 돈 몇 환 있구 없구루 귀중한 생명이 왔다갔다하지 않었습니까 ? 무료루 치료해 주는 국립 병원이 있지만, 아주 시설이 불충분하거든요.
<br>
송달지
<br>
(의외로 흥분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의사 공부를 시작한 것두 그런 의미에서 한 것이죠. 의사란 상업이 아닙니다.
<br>
김 의원
<br>
잘 알겠습니다. 판결 결과가 이렇다 저렇다 경솔히 말할 수 없으나 송선생의 생각을 관계 당국에 보고해서 고인의 재산을랑 특별히 이 방면에 쓰게 하시죠? (이중생 곤두박질한다.)
<br>
<br>
<br>
유산을 보건 시설 확충에 쓰라는 김 의원의 제안
<br>
최 변호사
<br>
고, 고인의 재산을 어데다 써요 ? 헤헤…….아, 아니올시다. 고인의 생각은 그렇잖습니다. 좀더 찬찬히 의논해 가지구설랑 결정허시지……헤헤!
<br>
김 의원
<br>
그야 물론 당국에서 가부간 집행할 일이지 여기서 결정지을 성질의 것이 아니죠.
<br>
최 변호사
<br>
아, 아니올시다. 그런 의미가 아니구 고인의 가족, 이를테면 고인의 마누라…… 그러니까 바루 여기 앉은 상속인인 송 선생의 장모두 계시구, 그의 딸, 다시 말할 것 같으면 송 선생의 부인 두 있구. 아들두 있구, 안 그렇습니까? 그 가족들의 생각두 알아 봐야죠. 그렇게 됐지 아마, 송 선생 ?
<br>
송달지
<br>
네, 제 의견만으룬…….
<br>
최 변호사
<br>
암, 그렇구 말구. 가족의 의사두 참작해야지.
<br>
김 의원
<br>
잘 아실 분이 일부러 오해하시는 것 같구만요. 사기, 배임, 공금 횡령, 탈세, 공문서 위조 등을 법적으로 청산하면 고인에게는 아무런 재산두 남지 않는 것을 잘 아실 텐데…….
<br>
<br>
<br>
유산이 법적 처리 대상임을 강조하는 김 의원
<br>
최 변호사
<br>
그렇겠지만 개인 재산이야 침해할 수 없잖아요? 더욱이 이 양반에게 양도된 이상……
<br>
김 의원
<br>
그렇기에 우리는 이중생 자신이 이미 자기의 죄를 자각하고 국민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였으므로 고인의 소유였던 재산을 법적으로 처리하기 전에 우선 상속자인 송 선생의 의견을 참고하겠다는 게 아닙니까? 만일 가족 가운데 불만을 가진 분이 계시면 자기 죄과를 자인하고 입증하는 고인의 유설랑은 없애 버리구 이중생을 다시 살려 내 가지구 상속자인 송달지 찌를 걸어 고소라두 하시죠.
<br>
<br>
이중생 가족의 의견이 참작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최 변호사
<br>
이중생, 옆방에서 "그럴 법이 !" 하고는 제 손으로 입을 틀어 막는다. 송과 최, 어쩔 줄을 모른 다.
<br>
<br>
김 의원
<br>
…….
<br>
최 변호사
<br>
아, 아니올시다. 제 목소리가 갈려서……. (헛기침을 하고) 그럴 법이 있습니까, 헤헤. 그럼 이중생이가 다시 살아나야 상소라두 해 볼 여지가 있단 말씀이죠?
<br>
김 의원
<br>
다시 살아날 수도 없지만 기적적으로 부활한다 해두 유서를 자신이 번복 할 수야 있겠소? 저지른 자기의 죄과는 어떻구? 사기, 배임, 횡령, 탈세……
<br>
최 변호사
<br>
가, 가 가만.
<br>
김 의원
<br>
농담은 그만하시구, 하하……. 그럼 송 선생님의 의견이 그러시면, 진정서라구 할까 의견서라구 할까, 특위에 한 통 제출해 주십쇼. 참고하겠습니다. 무료 병원 설립은 정부의 방침과도 합치되니까요. 그럼…….
<br>
최 변호사
<br>
잠, 잠깐만……. 김 선생.
<br>
김 의원
<br>
매우 불만이신 모양이군요. 선생은 상속법의 권위이시니까, 법적으로 따지고 싶은 모양이시니 그럼 법적 장소에서 정식으로 뵙죠. 실례합니다. (최, 어안이 벙벙해 있다. 임표운, 전송한다. 김이 왼쪽으로 나가자 이중생 튀어나온다.)
<br>
<br>
<br>
송달지에게 의견서 제출을 당부하면 떠나는 김의원
<br>
절정 2 : 재산을 몰수당한 이중생의 분노
<br>
<br>
<br>
이중생
<br>
달지 !
<br>
송달지
<br>
…….
<br>
이중생
<br>
(두 팔을 휘두르고 두 발을 궁그르며) 달지 ! 자네는 누구의 허락을 받었길래 독단적 행동을 헌단 말야, 응? 누가 자네더러 무료 병원 세워 달랬어. 응? 대답 좀 해 봐. 나는, 그래 무료 병원 세울 줄 몰라서 이 지경인 줄아나? 내가 뭐랬어? 유산이니 재산 문제는 일체 함구 불언하라구……. 자네, 그래 무슨 원한이 있어서 우리 집안을 망치는 게야, 응? 천치면 천치처럼 말 챙견이나 말 것이지, 뭐이 어쩌구 어째? "내 의견은 그렇습니다만……?" 의견이 무슨 당찮은 의견이란 말야? 내 재산, 내 돈 가지구 왜 염치없이 제 의견을 말해…… 응? 의견이 또 도대체 자네 같은 위인에게 무슨 의견이야, 일껀 의견이랍시구 내세운 게 장인 재산 물에 타버리는 종합 병원? 에끼, 고약한 놈 같으니라구, 어디서 배운 의견이야? 자넨 살아 있는, 아니 죽어 있는! 아아, 아니 살아 있는 이중생…… 죽어 있는 이중생의 재산 관리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걸 몰라, 응? 이 천치! 어서 없어져! (달지, 묵묵히 일어난다.) 어딜 가?앉어 있지 못허구, 그래 어떡헐 셈인가, 응? 나는 그래 어떡허면 좋단 말야. 이 집은, 토지는, 현금은 어떡허란 말이야. 그래, 자네 의견대루 배라먹을 무료 병원에 내놓으란 말인가? 어디 좀 말해 보겠나, 응? 이 재산이, 내 재산이 어떤 건 줄이나 알구 그래? 이 사람, 왜 말이 없어? 일 처리 그렇게 잘하니 끝을 맺어야지.
<br>
<br>
<br>
송달지에 대한 이중생의 분노
<br>
최 변호사
<br>
영감, 그만 두십쇼. 또 좋은 방법이 서겠죠. 철머리가 없어서 그렇게 된걸.
<br>
이중생
<br>
(최에게)뭣이 어쩌구 어째? 그래 자넨 철머리가 있어서 일껀 맹글어 논게 이 모양인가?
<br>
최 변호사
<br>
고정하십쇼. 저보구꺼정 왜 야단이슈?
<br>
이중생
<br>
자네가 뭘 잘했길래 왜 날더러 죽으라고 해, 응? (면도칼을 휘두르며) 여보, 최 변호사!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걸로 목 따는 시늉까지 하구 나흘 닷새를 두고 이 고생, 이 망신을 시키는 거냐아! 유서는 왜 쓰라고 했어! 내 재산을 몰수하는 증거가 되라구? 고문 변호사라구 믿어 온 보람이 이래야만 옳단 말야? 이 일을 다 망쳐 버린 게 누구 탓야, 응? 유서는, 저 사람에게 책잡힐 유서는 왜 쓰랬어! 왜 내 입으로 발명 한 마디 못하게 죽여 놨냐 말야, 나를 왜 죽여! 이 이중생을…….
<br>
최 변호사
<br>
영감, 왜 노망이슈? 누가 당신 서사구, 머슴인 줄 아슈? 누구게 욕설이구 누구게 패담이야!
<br>
이중생
<br>
에끼, 적반하장두 유만부동이지. 배라먹을 놈 같으니라구! 은혜도 정리두 몰라 보구, 살구도 죽은 송장을 맨들어 말 한마디 못하구 송두리째 재산을 빼앗기게 해야 옳단 말인가!
<br>
최 변호사
<br>
헛헛……. 영감. 말씀 좀 삼가시죠. 영감 가정 일은 가정 일이구, 내게 내 줄 것이나 깨끗이 셈을 하십쇼. 영감 사위께 내 수수료를 청구하리까?
<br>
임표운
<br>
최 선생, 오늘은 어서 그냥 돌아가세요.
<br>
최 변호사
<br>
왜? 나만 못난이 노릇을 허란 말인가? 영감이 환장을 해두 분수가 있지, 내게다 욕지거리라니, 당찮은 짓 아닌가 말일세, 임군!
<br>
이중생
<br>
(벌벌 떨며) 애끼, 사기꾼 같으니라구, 아직두!
<br>
최 변호사
<br>
사기꾼? 영감은 무엇이구 응, 영감은 뭐야!
<br>
<br>
이중생과 최 변호사의 대립
<br>
하강 : 송달지와 하식의 이중생 비판
<br>
<br>
<br>
독경 소리 처량히 들려온다. 일동 무거운 침묵과 긴장한 공기 가운데 싸였다. 용석 아범은 륙색을 손에 들고 총총히 등장.
<br>
<br>
용석 아범
<br>
영감 마님! 도련님이 돌아오십니다, 도련님이. 이런 경사로울 데가 어딨습니까? 어서 좀 나가 보십쇼. (달지, 방에서 뛰쳐 내려와 왼쪽에서 등장하는 하연, 하식과 만난다.)
<br>
송달지
<br>
오! 하식이!
<br>
하 식
<br>
형님……. 아버지.
<br>
임표운
<br>
하식씨.
<br>
하 식
<br>
임 선생.
<br>
최 변호사
<br>
영감, 내일 사무원해서 청구서를 보내 드릴 테니 잘 생각허슈. 괜히 그러시단 서루 좋지 않지! 살구두 죽은 척하는 죄는……. 헛 헛 참, 이건 무슨 죄에 해당하누? 형법인가, 민법인가? (퇴장)
<br>
이중생
<br>
하식아!
<br>
하 식
<br>
(비로소 아버지의 의상을 보고) 아버지, 이게 웬일이십니까?
<br>
이중생
<br>
하식아, 네가 살아 왔구나, 네가……. (오른쪽으로부터 우씨, 하주, 옥순 등장.)
<br>
우 씨
<br>
에그, 네가 웬일이냐. (운다)
<br>
하 주
<br>
하식아!
<br>
하 식
<br>
어머니! 누나, 잘 있었수?
<br>
우 씨
<br>
에그……. 네가 살아 돌아올 줄야…….
<br>
하 주
<br>
얼마나 고생했니? 자, 어서 들어가자……. 아버진 나와 계셔두 괜찮수?
<br>
<br>
<br>
하식의 생활
<br>
이중생
<br>
다 틀렸다. 틀렸어! 네 남편 놈 때문에 다 뺏기구 말았어. 네 남편 놈이 내 돈으로 종합 병원을 세우고 싶다구 했어.
<br>
하 주
<br>
네?
<br>
이중생
<br>
하식아, 최가 놈의 말을 들었지? 내가 죽어서라두 집 재산이나마 보전하려던 게 아니냐. 그런 걸, 에끼, (달지에게) 내가 글쎄 자네에게 뭐랬던가, 응? 난 무료 병원 세울 줄 몰라 자네 내세웠나? 자네만 못해 죽은 형지꺼정 하는 줄 아나? 하식아 글쎄, 그놈들이 나를 아주 모리꾼, 사기횡령으로 몰아내는구나. 그러니, 죽은 형지라두 해야만 집 한 간이라두 건져 낼 줄 알았구나. 왜 푼푼이 모아 대대로 물려 오던 재산을 그놈들에게 털꺼덕 내 주냐 말이다. 왜 뺏기느냐 말이다. 그래 갖은 궁리를 다 했다는 게 이 꼴이 됐구나. 에이, 갈아 먹어두 션치 않은 놈! 최 변호사 그 놈두 그저 한몫 볼 생각이었지. 하식아, 인테 집엔 돈두 없구 아무것두 없는 벌거숭이다. 내겐 소송할 데두 없구 말 한마디 헐 수도 없게 됐구나. (흐느낀다) 네 매부놈이 다 후려먹었다. 저놈들이 우리 살림을 뒤집어 엎었어! 하식아.
<br>
<br>
<br>
하식에게 하소연하는 이중생
<br>
하 식
<br>
아버지!
<br>
이중생
<br>
오냐, 하식아.
<br>
하 식
<br>
제가 하식인 걸 아시겠습니까. 제 이얘긴 왜 하나도 묻지 않으십니까?
<br>
이중생
<br>
오 참! 그래 얼마나 고생했니?
<br>
하 식
<br>
일본놈들에게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다가 그것두 모자라 우리 나라가 독립된 줄도 모르고 화태에서 십년이나 고역을 치르고 돌아온 하식이올시다. 화태에서는 아직두 아버지 같은 사람이 떠밀다시피 보낸 젊은이와 북한에서 잡혀 온 수많은 동포가 무지막도한 소련놈 밑에서 강제 노동을 허구 있어요.
<br>
<br>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하식
<br>
하 주
<br>
(달지에겍) 여보, 당신은 뭣이 잘났다구 챙견했수.
<br>
송달지
<br>
누가 하겠다는 걸 시켜 놓구 이래? 이런 탈바가지를 억지로 씌워 논 건 누군데? (상복을 벗어 내동댕이친다.)
<br>
하 주
<br>
누가 당신더러 무료 병원 이얘기하랬소?
<br>
송달지
<br>
하면 어때? 난 의견두 없구 생각두 없는 천치 짐승이란 말야? 난 제 이름 가지구 살 줄 모르는 인간이구? 왜 사람을 가지구 볶으는 거야.
<br>
하 주
<br>
그러구두 잘했다구 되려 야단이야. 우리집 망치구 뭣이 부족해서. 천치!
<br>
하 식
<br>
누님!
<br>
하 주
<br>
천치지 뭐야. 바본 바본 척 입이나 다물구 있으문 좋지 않어!
<br>
송달지
<br>
(하주의 뺨을 갈기며) 이것이?
<br>
하 연
<br>
어마, 형부가!
<br>
<br>
<br>
자신을 무시하는 하주에 대한 달지의 분노
<br>
절정 2 : 재산을 몰수당한 이중생의 분노
<br>
<br>
<br>
송달지
<br>
하식이, 내가 왜 자네 집 재산을 물에 타버리겠나. 재산두 귀하구 아버님의 명예와 지위두 소중하지만 어떻게 나라를 속이구 법을 어긴단 말인가. 옳다구 생각하는 처사를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까지 해서야 되겠나 말일세. 우리가 그러면 누가 국가의 사업을 돕구 우리들의 후배는 어떻게 되느냐 말일세. 아버지 일만 해두 한 사람의 욕심과 주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젠가? 더구나 나 같은 위인이 가운데서 무슨 일을 하구 묘한 꾀를 부리겠나? 또 아무리 내, 내 장인이래두 그럴 필요가 어딨겠나? 나는 구변이 없어 말을 잘 못하네만, 하여튼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떠들 때도 아니구, 장차로두 어떤 세력을 믿구 저 혼자의 이익을 위하여 날뛰어서는 안될 게 아닌가? 그 사람들은 좋겠지만 진정으루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말이지. 하식이, 자넨 내가 장인을 두호허지 않는다구 나를 미워할 텐가. 그렇다구 장인을 고발할 수도 없는 놈이지만. 하식이, 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잘못이 있거들랑 기탄없이 일러주게나. 광대같이 상복을 입구 꾸벅꾸벅 조을 수 있는 내 신세가 가련허구두 미련하지?
<br>
<br>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송달지
<br>
하 식
<br>
형님, 고정하십쇼. 잘 알겠어요. 아버지 시대는 이미 지났어. 형님두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을 가지구 번민할 게 뭐 있수. 형님, 우리 앞엔 우리를 새로운 권력과 독재자에게 팔아먹으려는 원수가 있어요. 나는 골고루 보고 왔어요. 할빈, 장춘, 홍5님이 인젠 제 대신 달빛은 유난히 밝고 독경 소리 점점 커진다. [막]
<br>
<br>
<br>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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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오영진의<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1(전문)| * 언 어 영 역 *
사무라이 조회 38 |추천 0 | 2004.08.31. 19:43
하3-(4)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李重生閣下)[앞 부분의 줄거리]
2. 3막 4장으로 된 이 희곡은 동일한 장소를 무대로 하여 전개된다. 무대는 이중생씨의 안사랑채로 온돌방에 연달아 오른쪽에 일본식 다다미방이 조금 보이며 왼쪽은 바깥 사랑이며, 그 뒤로 후원(後園)으로 통하는 울타리 길이 조금 보인다. 8·15 이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주택 구조로 이른바 일본식과 한국식의 절충식이다. 이 방의 배경으로 석등(石燈)과 정자까지 바라보이는 정원, 호화로운 집으로 방안에 놓인 화초분 등 모두가 값나가는 것이지만 격조는 없어 보이는 집이다. 이러한 무대 설정은 사건이 벌어지는 시기가 광복 직후의 사회상과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제 1 막은 이중생의 집에 손님이 오게 되어 있어 분주하게 준비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준비 과정에서 이중생의 가족과 그 주변의 인물들에 관련된 사정들이 드러난다. 이중생은 일제 시대에는 친일을 하여 돈을 벌었으며 해방 후에는 목재 회사와 산림 산업을 맞아 거드름을 부리며 살지만 본디 천박하고 보잘것없는 인품의 인물이라는 것, 이중생의 아내 우씨는 남편을 대단한 존재로 알고 부자인 것만 뻐기는 여인으로 집안 하인들에게조차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것, 현재 이 집안에는 첫째 딸 하주와 사위인 송달지가 함께 사는데, 본업이 의사인 송 머니 졸음이오니.
우 씨
어젯밤도 늘어지게 자구 그렇게도 졸릴까. 정신 채리구 있어. 오늘은 관청 손님이 조사 나온다는데.
송달지
어이, 졸려. 하식이 아직 도착 안했어요?
우 씨
하식이야 하연이가 마중 나갔으니 곧 들어슬테지만, 관청 손님들이 걱정이군그래. 말썽이나 없을는지 온. 정신 채리구 있다가 손님들 오시걸랑 지체 말고 알려요. 술상 준빈 다 됐으니. (오른쪽으로 퇴장. 송, 자기 입은 의복을 둘러보고 하품. 이중건, 김 주사, 변 주사, 홍 주사와 함께 후원해서 나온다. 다들 만취했다.)
송달지에 대한 우씨의 채근
상승 2 : 세 주사의 조문과 이중생의 등장
이중건
자, 우리들 이리 올라와 마른 안주로 다시 한잔 허지.
김 주사
아, 이젠 전 만취올시다.
변 주사
그만두시죠. 우리두 가 봐야겠수.
이중건
어...... 초상난 집에 왔다 그렇게 승겁게 가는 법이 어디 있어.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홍 주사
그 애련하고 품이 있게 경을 읽는 중이 아마 저 도렴골서 온 중이지요?
김 주사
그야, 본래 풍성풍성한 댁이니 어디 하난 소홀한 게 있을려구. 아마 저 맹인이 도림골서 있읍죠?
이중건
글쎄 소리깨나 하는군…… 여, 아범. (아범, 주안상을 들고 나온다.)
용석 아범
불러 계십쇼?
이중건
거 어디 가져 가는 거야?
용석 아범
아까부텀 바깥사랑 손님이 찾으십니다.
이중건
여기도 정갈히 한 상 봐 오게.
홍 주사
아아, 온 그만 두십쇼, 오늘만 날입니까? 인젠 매일같이 와 뵙겠습니다.
용석아범
영감마님, 도련님이 오늘 돌아오신답니다그려. 저, 우리 용석이놈만 죽었읍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왼쪽으로 퇴장)
이중건
그야, 팔자 소관인 걸, 너무 상심할 게 아냐.
만취한 이중건과 세 주사
김 주사
저번 백참판댁 상가에두 저 중이 왔었어…….
변 주사
백참판 대감이니 이대감이니 아까운 분들이지. 세상에서는 인색하다거니 모리배라거니 별별 말두 많었구, 실없는 사람의 입술에두 오르내렸지만 진실로 국보적 인물이었어. 하여튼 무슨 일을 했던 간에 이만 재산을 벌어 놓았으니 훌륭하지 뭡니까. 모리배라면 어때? 사기꾼이라면 어때? 공범이면 어떻구 아님 또 어떻단 말요? 우선 벌고 보는 거지.
홍 주사
그야, 자결허시는 것만 봐두 범상한 어른이 아니지. 누가 이 좋은 세상을 두고 한 번 가면 그만인 걸 성큼 헌단 말요. 춘추가 몇이더라…… 송선생?
송달지
쉰……?
홍 주사
갑인, 을묘, 정유니까 쉰넷이겠군.
송달지
쉰셋……
변 주사
일생을 두구 모은 재산을 덤석 이 사위 양반에게 물리구 가신 건 어떻구.
예삿 사람이야 아들이 없으시면 딸에게 물릴 것이구, 마누라에게 줄 게 아니요? 그걸 왼통 사위 양반에게 주셨읍니다그려. 그것두 억만 환 하나 둘은 내리재 않으리다.
김 주사
온, 정신 없는 소릴……. 가옥만 해두 둘이 되고 남지. 이 집 한 채만두 집 지으실 때 구경했지만, 건평이 삼백팔십 평이……넘죠?
송달지
글쎄올시다. 아직 그런 데는…….
이중건
(혼잣말로) 그런 걸 이 눔이 단돈 삼백만 환.
변 주사
암, 그러실테죠. 오죽이나 상심하셔서 그럴 여가가 있겠습니까? 쯧쯧…….
이중생을 추켜 세우는 세 주사
홍 주사
그래, 자결하시기까지는 별루 태도엔 이상한 점이 없으셨죠?
김 주사
그야, 여부가 있소. 태연자약허셨겠지.
이중건
(책상 서랍에서 면도칼을 꺼내며) 이 면도칼로 경동맥을 싹뚝 끊어 버렸어.
변 주사
에그, 쯧쯧…….
이중건
그러니 팔팔 솟는 피가 뿜뿌 수도 같을 수밖에……. 여기두 피, 저기두 피, 원통 방 안이 피바다가 됐지. 앉은 데가 다 핏자리야.
홍 주사
이 자리가요……? 으째 으시시허다. 술이 깨는 모양이군, 어거, 으째 듣고 보니 좌불안석인걸…….
김 주사
홍 주사, 인젠 일어서 보지 않으려우? 난 집에 조카놈이 온다구 한걸.
홍 주사
어, 나두 참 깜박 잊었군. 오늘 반상회가 있는 걸.
이중건
홰, 한잔들 더 안하시려우?
김, 홍, 변 주사
네, 다, 다…… 다시 뵙겠슴니다. (왼쪽으로 퇴장)
이중건
어두운데 조심허우.
이중생의 자살 광경을 듣고 황금히 자리를 뜨는 세 주사
그때 다다미방을 거쳐 나오던 맹인 2인, 자기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맹인 1
우리는 어둡고 밝은 걸 별루 가리질 않습니다.
이중건
그야 그럴 테지. 어서들 들어가서 좀 주무시지. 오늘두 밤새 수고허셔야겠으니...
맹인 2
소경 잠자기루, 그것두 별로 가리질 않습니다.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맹인들의 해학
이중생, 병풍 위로 목만 내놓고 끼웃끼웃 살피더니 슬그머니 미그러져 나온다. 수의에 행건 친 차림이 과연 초현실적이다.
이중건
너, 여기가 어디라구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와!
송달지
손님들이 많으신데! 어쩔실려구…….
이중생
형님, 웬 손님들이 사랑에두 방 방이구, 정자에두 있구, 이러시는 거요? 무슨 잔치집인 줄 아십니까? 누구 쌀을 축내시느라구.
이중건
삼춘댁부터 심이춘, 사둔의 팔춘, 집안이란 집안은 콩나물대가리꺼정 다 모였구나.
이중생
관청에선 아무도 안 왔지?
송달지
아직 아무도…….
이중생
예끼, 고약한 놈들! 올 놈들은아니 오고.…… 엥이, 제 아무리 인정이 백짓장 같기루 내가 죽었다는 통지를 받구도 한 놈 얼씬 않는다? 어디 두고 봐라. 엊그제꺼정두 내 앞에서 알쫑거리구 꼬리를 쳤던 놈들이 오늘에 와서는 딱 돌아선다.? 이젠 알아볼 때가 있으렷다. 내가 다시 살아나구 볼 지경이면……. 에익, 괘씸한지고. 하식이두 아직 안 들어오구?
송달지
네, 하연이가 마중 나갔읍니다만.
이중생
하식이에게두 전후사를 잘 타일러 두게. 탈짐이 나지 않게.
수의를 거친 이중생의 등장
그 때 전화벨 소리. 이중생, 깜짝 놀라 옆방으로 굴러간다. 송달지 전화를 받는다.
송달지
네 네, 잠깐 기다리세요. 아버지 전화…….
이중생
엑끼……. 죽은 내가 전화를 받는단 말이냐?
송달지
아아 참, (전화를 계속 받으며) 네, 네, 알겠습니다.
이중생
(옆방에서) 누구한테서 온 거야?
송달지
임 선생님허구 최 변호사허구 곧 오신다구요. 국회 특별 조사 위원회의 김 의원 한 분이 같이 오신답니다.
이중생
(다시 나온다) 휘유……. 그 좁은델 드러누워 손가락 발가락 달싹 못허구 있으려니 신경이 칼날같이 되는군그래. 그래, 김 위원 한 사람밖에 안온댔어?
송달지
딴 이얘긴 없는데요.
이중건
(중생에게) 너 어서 들어가거라. 수의 입은 놈과 상복한 놈을 마주 놓고 보기가 으째 으시시허구나.
이중생
어 참, 내 잊었군. 형님, 금방 여기 앉았던 것들이 홍 주사, 변 주사,김 주사 아니요?
이중건
글쎄, 초면 인사에 기억이 잘 안 된다.
이중생
얼굴 긴 놈이 홍가놈.
이중건
그래서?
이중생
코 아래 기미 있는 놈이 김가놈.
이중건
그래서?
이중생
대머리가 변가놈.
이중건
그래서?
이중생
다시 오거들랑 아예 술상 내지 마슈. 나 죽기를 기다리던 놈들이야. 홍가놈은 전쟁 전에 오푼변으로 삼만 원 가져가구는 오늘까지 이자 한 푼 안 들여 놨습니다. (달지에게) 자네, 잊지 말구 기억해 둬. 변가놈은 금전판인 종로에 있는 내 가게를 쓰구 집세라군 다달이 오천 환 들여 놓군 시치미를 떼는 놈이구, 변가놈은 어물판 구전 오만 환을 논아먹기루 약속허군 두 달째 얼씬도 않던 놈이라우. 유서에 써넣을 걸 깜박 잊었군. (달지에게) 기억해 두었다가 이후에라도 다시 오거들랑 채근해 받어. 알았어?
송달지
제가……그런걸…….
이중생
그러구 또 한 번 얘기하네만, 유산이니 재산이니 그런 얘길랑 딱 잡아떼구 말 말어. 내가 옆방에서 듣고 있지만서두, 도시 모른 척하구 잠자쿠 있으란 말야. 자넨 그런 것 아랑곳할 리두 없지만 대구허단 큰일 저지를 테니, 알았어?
송달지에 대한 이중생의 당부와 협박
절정 1 : 수포로 돌아간 거짓 자살극
이중건
위잇, 누가 나온다.
이중생
익크! (황급히 옆방으로 가다가 책상에 걸려 넘어진다. 옆방으로 가서 병풍 뒤에 숨은다. 맹인 안방에서 나오며 중얼중얼 경문을 외치며 다다미방을 거쳐 사라진다.)
용석 아범
(왼쪽에서 황급히 나오며)관가 손님이 오십니다.
이중건
응, 벌써 와? 아범은 어서 들어가 주안상을 탐탁히 봐 내 오게. 술은 저 뭐라구 했지? 양인들이 먹는 거 그게 상등이라니 그걸 내 오구, 안주도 성벽해서 입맛에 당기는 거루 챙기라구 쥔 마나님 보고 여쭤.
용석 아범
네, 네, 걱정 마세요. 아침부터 채려 놓구 기다리는 걸요. (안으로 들어가자 최 변호사, 임표운, 김 의원 등장. 이중건, 버선발로 마중 나간다)
이중건
공사간 분망허신데 이처럼 오시니 화송합니다.
최 번호사
어서 올라 가십시다. 돌아가신 분두 퍽 영광으로 생각허실 겝니다. 아참, 소개하죠. 이분이 바루 고인의 친형이신 이중건씨, 이 분은 국회 특별 조사 위원회의 김 선생님. 이 분이 상주되시는 송달지씨.
이중건
잘 보시구 잘 처분해 주십시오. 온, 이 일 때문에 늙은 게 잠도 잘 못 잔답니다. (인사를 바꾼다)
김 의원
망극합니다.
송달지
뭐…… 괜찮습니다.
김 의원
영구 모신 데가……?
송달지
저방이올시다.
이중건
그리 급할 게 있습니까? 우리 술이나 한잔 나누시구…… 게 누구 없느냐?
김 의원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소향을 했으면 좋겠는데요.
송달지
네, 이리 들어오시죠.
김 의원
그럼 잠깐……. (2인 옆방으로 들어간다. 우씨 뛰쳐 나오며)
김 의원의 방문
우 씨
임 선생이 왔다자, 응. 관가에서 나왔다지? 어서 우리들 얘기를 좀 그럴 듯하게 해요. 과히 억울치나 않게 돼야 할 게 아니요? 영감두 돌아가신 거루 됐구.
최 변호사
쉿.
우 씨
에그 참, 정신두 없어라. 영감일랑 완전히 돌아가셨으니 남은 식구들일랑 어떻게 굶주리지나 않게 돼야 할 게 아니요?
임표운
마님께선 들어가 계십쇼. 최 선생님이 요량해서 잘 처리허실 테이니.
최 변호사
쓸데없는 걱정일랑 덮어 놓십쇼, 헛허. 모두가 수완 나름이조. 천재 일우의 기회를 만만히 놓치겠어요, 헛헛.
우 씨
그럼 꼭 믿습니다. 술일랑 얼마든지 있으니 애들에게 일르슈. 삐루두 있구 영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