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향님, 오랜만이군요.
일본생활은 잘 하고계신지...
까뮈를 잘 모르지만 "부조리"라는 그의 핵심적인 한 마디의 사상을 듣고 저 나름데로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인생의 정답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알수없는 알수없는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잎파리가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에로의 용기가 가장 큰 영광이겠지요.
--------------------- [원본 메세지] ---------------------
카뮈는 언제나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초점을 재조정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경우
그저 하루하루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여전히 왜 사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하
는 물음에 대한 답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들은--결코 그 범주 속에
안주하는 법이 없다 하더라도-- 한결같은 형이상학과 윤리의 범주 속에 든다.
부조리와 반항은 그에게 있어 동시적인 것이다. 그가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품던 날 부조리의 감정이 태어났다. 동시에 그 무의미에 대해 항거하는 반항이 태어났다. 병
이 들자 그는 스스로가 필멸의 존재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온 생명의 힘으로 죽음
의 위협에 항의한다. 그는 병을 고치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병을 고칠 수 있을까 ? 이후 그의
온 삶은 오직 생명의 힘과 죽음의 힘, 피로와 창조의지, 불꽃과 잿더미 사이의 기나긴 싸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왜 사는가 ? <표리I'Envers et I'Endroit>로부터 <시지프스의 신화le Mythe de Sisyphe>
에 이르기까지, 그 한결같은 질문이 그의 전작품 속에 메아리치고 있다. 헐벗음과, 몰이해와, 고
독속에서 왜 사는가 ? 그러나 대답은 질문 그 자체 속에 있다. 실은 카뮈는 결코 이렇게 자문해
본 적이 없다. 계속 살아야 하는가 ? 이런 상태대로의 세계에서라면 자살해야 하는가 ? 혹은
이렇게 자문해 본 적도 없다. 왜 계속 살아왔던가 ? 사실인즉 이렇다. 아무튼 그는 살고 또
살기를 좋아한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그가 존명할 이유를 계속 찾아가면서 동시에 풀어야 할
신비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 있어 부조리의 감정이란 삶의 온갖 어려움을 요약하고 있고, 반항
이란 그 삶의 한계에 항의하고 있다. 요컨대 표면 없는 이면이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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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카뮈에 대한 글. -로제키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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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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