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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18] (출12:14~51) 드디어 이렇게 마귀에게서 놓임 받는다!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유월절을 대대로 지킨다는 것은 계속 얘기하고 상기하라는 뜻이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해서 구원했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고통당하며 노예로 살던 나를 이렇게 구원하셨다.”라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자녀들에게 해줄 스토리가 있는가? 어떤 씨앗을 자녀들에게 뿌리는가? 가정안에 대대로 지켜야 할 규례가 어떤 것이 있는가? 주님은 우리를 유월절날 끌어내시고 좋은 땅에 왔으니 좋은 땅만 누리라고 하시지 않고 이 스토리를 계속 자녀들에게 얘기해 주고 지키라 하신다.
우리가 성찬식을 하는 것도 “구원의 확신이 있는데 왜 성찬식을 하면서 계속 예수님을 생각해야 돼?”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에 피를 바르고 다 벗어나서 좋은 땅에 들어왔을 때도 이걸 꼭 지키라는 것은
예언적인 행위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피를 바르는 것은 직접 바르지 않지만 영 안에서 계속 피를 바르고 주님의 십자가를 계속 적용하고 아이들에게 대대로 얘기하고 간증을 하라는 것이다.
15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7일이라는 것은 우리가 카이노스, 주님의 시간 안에 들어온 것이다.
6일이라는 것은 인간의 수이다. 인간의 수에 있을 때는 쉼이 없다.
예수님을 믿는다라는 것은 6일에서 7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7일 안에 있다라는 것은 온전한 숫자이며 안식의 숫자이다.
우리 크리스찬의 삶은 온전한 삶이고 안식의 삶인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하며 먹고 살기 위해 나 혼자 내 인생을 책임지려고 죽도록 사는 스트레스 받으면서 사는 삶이 아니다. 일을 하면서도 안식할 수 있다. 옛날에는 일을 안 해도 안식이 없었다. 6일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는 것은 크리스찬의 삶 가운데 일생 동안 계속 안식안에 머물면서 무교병을 먹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의 삶이며 크리스찬의 삶이라는 계시를 알아야 된다.
무교병은 부풀리는 게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죄가 없다. 죄가 부풀려지지 않는 빵이다. 우리는 굉장히 부풀리는 걸 좋아한다.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에 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죄를 쉽게 짓고 생각하고 위선 떨고 그런 삶이다. 그게 바로 유교병을 먹는 삶이다.
15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첫날 시작할 때 누룩을 제거 해야지 한 번 허락해버리면 이 누룩이 빨리 퍼진다. 그래서 첫날에 이걸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는 것은 예수를 먹지 않는 자는 예수하고 상관이 없다라는 뜻이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없는 예수를 매일매일 먹으라는 것이다. 그 방법은 말씀, 기도, 성찬식, 어센션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끊어진다.
우리가 살면서 7일 안에 들어왔다라는 것을 모를 수 있다. 계속 죽도록 일의 저주, 즉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을 책임지고 먹고 살아서 내 새끼를 책임지고 나를 책임질까 이러면서 피폐해져 병을 얻고 그러는 것은 유교병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7일 안에 들어와서 무교병을 먹는다면 예수를 먹기 때문에 건강해진다. 무교병이신 건강한 음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기 시작하자 영, 혼, 육이 다 바뀌어 나이가 들수록 더 건강하게 사는 것을 선교사님께서 보여주고 있다.
16 너희에게 첫날에도 성회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가 되리니 너희는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자의 먹을 것만 갖출 것이니라
주님은 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루를 쉬게 하면서 쉼이라는 걸 가르쳐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면서 일주일 내내 일을 하면서 쉼이 없었다. 쉼을 모르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맛보기를 주면서 “나는 네가 내 안에서 이렇게 쉬길 바란다. 나는 너한테 그 쉼을 주길 원하는 하나님이야. 나는 너를 일을 시키고 부려먹고 너를 옥죄는 하나님이 아니야. 너는 옛 아담에서 태어난 자는 죽도록 일하고 네가 벌어먹고 네가 책임져야 사는 삶이지만 이젠 나를 신뢰하고 좀 안식해.”라고 가르쳐주는 것이다.
신약에 와서는 우리 크리스찬의 삶이 주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왔기 때문에 우리는 일주일 내내가 안식일이다. 우리 인생 크리스찬의 삶 전체가 안식 안에 들어온 안식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우리가 적용해 볼 수 있다
17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내었다고 한다. 지금 군대라고 하신 것은 피를 거쳤기 때문에 군대가 된 것이다. 피가 있기 전에는 사람들은 죄인들이고, 다 노예들이다. 이 피를 통해서 군대가 된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예수의 피가 없는 인생은 세상의 노예로 환락의 노예, 돈의 노예, 명예의 노예, 섹스의 노예, TV의 노예, 술의 노예 등으로 묶여서 살아간다.
그런데 주님은 이 피를 거친 자, 우리를 군대라고 한다. 우리가 이 애굽에서 구원받고 이 세상에서 나왔기 때문에 군대인 것이다. 세상에 있는 나를 군대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18 첫째 달 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14일부터 21일까지 일주일 내내 무교병을 먹으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는 것이다.
19 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니
우리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무교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으면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된다라는 것이다.
20 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
너희가 있는 곳에서, 너희 삶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만 먹으라는 뜻이다. 무교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만 먹어라. 우리 크리스천 삶은 예수를 먹고, 예수를 살고, 예수를 숨 쉬고, 예수와 함께 하고 예수가 다 나의 존재하는 이유이며, 그분이 나의 호흡이며, 그분이 나의 기도며, 그분이 나의 생명이며, 그분이 나의 힘이며, 그분이 모든 인생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다. 크리스천은 예수와 함께 하나 된 자라는 뜻이다.
22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주님이 천사를 시켜서 피를 바르지 않았다. 하나님은 명령만 하셨다. 바르는 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랐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적용하는 거는 내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피를 바를 때 너희가 살아. 너희는 안전해. 이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주는데 피를 바르는 건 천사가 해준 게 아니라 그들이 했다.
우리도 똑같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우리를 위해서 구원을 하셨다고 하는데 적용하는 거는 내가 해야 된다는 것이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어. 그러니까 다 끝났어. 이제 문제없어. 막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피를 바르는 건 내가 해야 되는 것이다. 바르다 말다 하는 게 아니라 매일 제대로 지키라고 그리고 문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것은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다.
사람은 문 밖에 나오는 순간 이 피와는 상관이 없이 죽임을 당한다. 문 안에 있는 자들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죽은 자로 보는 것이다. 피가 있다라는 것은 피가 흘려지는 건 죽은 자에게 흘려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밖에서 볼 때 이 사람은 죽은 것이다. 문안에 있으면 죽은 것이다. 애굽 사람도 죽고 이스라엘 백성도 죽은 것이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은 죽은 걸로 치는 것이다. 직접 죽이지 않고 양이 대신 죽었으니까 이 안에 있다라는 건 죽은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피 흘리는 예수를 보고 내가 죽은 걸 보신다. 내가 그걸 믿을 때 너도 죽었구나 이렇게 본다는 것이다.
똑같은 원리로 우리가 죽은 걸로 주님이 여기시는데 내가 죽은 걸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옛 사람인 육의 부모, 거듭나기 전에 태어난 그 DNA 그대로 갖고 있어서 몸이 아픈 거야. 우리 부모가 이렇게 학대해서 나는 이런 상처가 있고, 나는 이렇게 분노가 있다.”라고 여러 이유가 엄청 많다. 그래서 내적 치유가 필요하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닌다.
단번에 죽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인지한다면 사실 내적치유 같은 거 필요 없다.
선교사님은 그냥 믿음으로 다 치유가 됐다. 저의 과거를 생각할 때 옛날에는 너무 수치스러워서 우리 아버지가 얘기하는 걸 너무 싫어했는데 아버지 술주정했던 것 이제는 전혀 부끄럽지 않다. 그전에 그렇게 수치스러운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죽었고 끝났다. 거듭났다. 과거에 연약하고 약한 DNA 타고난 나도 끝났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의 영 잔뜩 있고 혈기가 장난 아니었는데 죽은 걸 아는 순간 그 혈기가 떠나버렸다. 내적 치유 안 했지만 계시가 오면 다 끝난다. 깨닫는 게 중요하다. 깨닫는 영이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레마로 말씀이 오면 끝난다.
그래서 문지방에서 그래서 나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피바른 집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죽는 것이다. 피를 적용하고 문 밖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 집 밖에서 나오면 마귀가 와서 잡아먹는다. 죽은 자는 안 건드린다. 피를 적용하지 않고 혈기를 막 내면 뱀이 와서 확 물어린다. 뱀은 흙을 먹고 산다. 우리가 흙을 표현할 때 육체를 표현할 때 와서 우리를 물어버린다. 그러면 공격당하는 것이다.
“나는 영적인데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그러니까 공격당해.”라고 말하는데 우리가 꺼리가 있다는 뜻이다. 회개하고 주님 앞에 고백하고 피를 적용하고 문 밖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
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이걸 영원히 지켜 죽을 때까지 매일 적용해야 한다. 한 번 적용하고 나 십자가에서 끝났어 라고 하면 우리 삶이 변하지 않는다.
구원은 한 번에 끝났는데 그건 법리적인 구원이 끝났다는 뜻이다. 성경에 보면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말이 있다. 법리적인 구원은 단번에 끝났다.
그런데 유기적인 구원은 실제 그 끝난 것을 내 삶 가운데 계속 적용해서 유기적으로 내가 구원을 받아가는 것이다.
영은 한 번에 단번에 구원받았다. 그런데 혼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구원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것을 영원히 지키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은혜를 너무 잊어버리는 그런 연약한 존재라는 걸 주님께서 아시기 때문이다.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우리가 피 바르고 성찬식하고 어센션하고 피를 적용하고 있는데, 계시가 없는 사람들은 성경의 진리를 모르면서 “구원은 단번에 끝났다 그러는데 근데 뭘 이렇게 적용하라 그래. 저건 안 믿는 행동이야. 저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야.”라고 할 수 있다. 계시로 구약을 이해해야 신약이 이해가 된다. 말씀은 주님의 호흡이다. 그분을 계속 호흡하고 그분에게 집중하면 말씀이 깨달아진다.
26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자녀들이 “왜 이렇게 무교병을 먹어야 돼? 왜 이 7일째는 쉬어야 돼?” 라고 묻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 세계에 이천 년 동안 흩어져 살았는데도 강한 이유는 율법, 이 예식을 행하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맨날 공부하라 소리만 하고 신앙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들한테 가르쳐줄 각자 자신들의 간증이 있어야 한다. 대충 살고 신앙생활 대충 하면 간증이 없어 자녀들에게 내려가지 않는다. 우리 다음 세대가 없는 것이다.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28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32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축복해 달라는 것은 “당신이 나보다 높습니다.” 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축복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한테 하는 것이다. 바로가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참신입니다. 나를 축복해 주고 제발 좀 떠나주세요.”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마귀가 제발 저 좀 살려주시고 가세요. 나는 보기 싫습니다. 우리를 계속 붙들고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던 마귀(그 세상 신)가 제발 나가라고, 우리가 너무 강하니까 맨날 무교병 먹고 예수님만 외쳐대니까 나는 빛이 싫어. 자기는 어둠이니까 빨리 가라고 말한다. (이렇게 우리를 내보내는 이 역사가 여러분과 저와 있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서 너희의 말대로 여호와를 섬기라고 할 때까지 버텨야 한다. 마귀가 손발 다 들고 절레절레 완전히 포기할 때까지 버텨야 한다.
33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34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구하매’ 라는 단어의 원문을 보면 ‘백성에게 말하여’라는 단어는 ‘따빼르 나메오즈네 함’ 히브리 단어인데 ‘이제 그 백성의 귀에 말하라’ 라는 뜻이다. 백성에게 말하여라가 아니라 그 귀에 말하라. 이 귀에 말하라는 ‘따빼르 나메오즈네’라는 단어를 쓰면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관용구이다. 귀에다가 “그냥 너희 순종해. 너 내 말 들어” 이런 의미가 있다. ‘구하게 하라’ 이것도 “제발 뭐 좀 주세요.” 가 아니라 ‘청구하라’는 뜻이다. ‘레이슈와루’라고 ‘청구하라’이다.(* 단어는 히브리사전보고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그동안 노예로 공짜로 부려먹었으니 이제 내가 너한테 당당히 청구한다. 다 내놓아라.” 그런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판도가 바뀌었다. 이집트 사람들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볼 때 자기 마음대로 진짜 개, 고양이 만도 못하게 막 부려먹었던 자들이 이제 바뀐 것이다.
지금 우리는 사단에게 잃어버린 것이 많다. 주님이 다 갚아줬다고 하셨다. 우리는 빚진 자, 불의한 자여서 뺏길 수밖에 없었고 사단이 가져가도 할 말이 없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갚아줘서 우리를 의로운 자로 만들었으니까 의로운 자의 것을 뺏어간 사단에게 우리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고 청구해야 한다,
“야, 너 내 인생 돌려놔! 너 내 돈 돌려놔! 너 내 건강 돌려놔! 네가 네 마음대로 뺏고 취하고 파괴하고 그랬지? 더 이상 안 돼. 다 내놔!”
판도가 바뀌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 입은 자들이다. 그래서 은혜의 시대라고 한다. 은혜를 입은 자들은 세상이 우리에게 꼼짝 못하는 권세가 주어졌다.
피를 안 바르니까 내가 죽은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내가 살아 있어 피가 달린 집 안에 있어야 되는데 밖으로 나와 있으니, 하나님 아들의 정체성이 없으니 맨날 주눅들고 스트레스 받고 아프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로 끝내고 밖으로 나오지 말아야 한다.
51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
그런 군대로 우리를 인도해 내신 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판도가 바뀌는 그런 실제의 역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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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붉은색 글자만 봐도 강조점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간사님~~ 수고많으셨습니디~~💕
감사합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 💕 💜 💏
세상에 꼼꼼히도 정리하셨네요 앞으론 그냥 간단히 아웃라인만 하셔도 됩니다 간사님.. 넘 길면 보는 사람이 적을수도 있어요 그럼 수고하신게 넘 아깝잖어요
정성스럽게 써 주신 사랑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