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무소불위의 권력
목련은 삶은 계란 터지듯 껍질을 벗고 피어나고, 서울의 4 월은 한반도의 정세처럼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피어나는 꽃잎 위에서 각축을 벌인다.
따뜻한 햇살이 축복처럼 내리는 많지 않은 봄날, 나는 한강 한가운데 있는 여의도를 달린다. 달리면서 나는 서울 구석구석을 탐험한다. 달리면서 바라보는 서울의 속살은 늘 내게 미지의 세계로 다가온다. 여의도는 섬 전체가 고층 아파트 단지 같다. 강변을 따라 개나리, 목련, 매화, 수선화가 싱그럽게 피어오르고 있다.
4 월 중순, 오랜 그리움의 힘이 솟구쳐 피어나는 꽃들이 아름답다. 계절의 축복을 만끽하며 달리는 사람들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꽃잎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영롱하다. 뛰는 허벅지의 근육이 옆으로 흐르는 고요한 강물처럼 일렁인다. 딱 벌어진 어깨와 군살이 하나도 붙지 않은 허리가 얼마나 도도하고 당당한지 모른다. 거친 호흡을 하기 위해 배시시 입을 벌린 모습이 꽃이 벙그러질 때 파르르 떨리는 것 같다. 마라톤으로 잘 다듬어진 조각 같은 몸매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여명이 밝아오는 강가를 달려가는 모습이 여의도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평화롭게 비행하는 갈매기들 보다 더 아름답다.
달리면서 날렵한 동물처럼 매끈한 여자들의 엉덩이를 바라보는 것은 나만의 비밀스런 즐거움이다. 살면서 개봉하지 않은 영화처럼 무덤까지 가져갈 아름다운 비밀 한두 개쯤 있는 것이 죄라면 죄값을 치르고라도 갖고 싶다.
아름다움은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 했던가!
새벽을 열고 달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오늘 빌딩 숲 너머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달리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든 아니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맞을 것이다. 여자나 남자나 아름다운 사람들은 상대방 이성의 이유 없는 미소를 즐기는 행복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이성 앞에서 지나칠 정도로 호의적이고, 바보처럼 쉽게 믿어버리고, 아주 유치하게 행동한다고 한다.
권력은 한번 잡으면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속성을 가졌나 보다. 어머니의 먹거리 권력에서도 그렇다. 어머니는 아직도 주방 권력을 통째로 며느리에게 평화적인 이양을 거부한다. 맛이 뭔가 부족하다는 터무니없는 이유에서다. 어린 우리 형제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봐 늘 노심초사했었다. 먹거리 권력은 가족들에게 절대적인 권력이었다.
아름다움이란 권력도 한번 잡으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칼바람이 부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달리고 또 달린다. 아버지 날 나으시고, 성형외과 의사가 내 외모를 만든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저 끝없이 달리면서 얻은 권력이니 끝없이 달리면서 권력의 누수가 없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어쩌면 ‘오래 달리기’ 그 자체가 이 병들고 나약하고 허겁지겁 바쁘게 사는 사회의 무소불위의 미래 권력이 될지도 모르겠다.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건강 불안증에 빠져 아이들 책가방보다도 큰 약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밥공기보다도 더 가득히 끼니마다 약을 드시는 은퇴자들 대부분은 ‘오래 달리기’와 손을 잡으면 더 활기차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국가는 덤으로 메말라가는 국민건강보험 기금이 남아돌기 시작하는 축복을 누릴 것이다.
게임기 앞에서 몸과 마음이 시들어가는 우리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도 활력이 넘치는 일상과 신선한 미래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달리는 습관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마치 태양이 수평선 뒤에서 떠오르기 전 어둠의 세상에서 수평선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 밝음의 세계로 바뀌듯이 나의 세계는 모든 것이 선명하고 밝은 세상이 되었다. 마라톤은 나를 폭발적인 힘과 끝없는 스테미너를 갖춘 내 인생의 절대 권력자로 바꾸어 놓았다.
마라톤이 얼마나 사람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지를 아는 현명한 판사라면 웬만한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새로운 범죄를 배워 나오는 교도소를 보내는 대신 풀코스 마라톤을 뛰라는 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들은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날을 제2의 생일로 생각하고 새로운 인생을 꾸며갈 것이다.
달리면 마음속에 평화가 그려진다. 마음속에 그려진 평화는 달리는 사람들의 매끈한 뒤태보다 더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평화가 한반도의 5월을 지배하는 사랑스런 폭군이었으면 좋겠다. 봄 햇살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