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할 때 우리는 풀을 사랑하게 된다.
헛간도, 가로등도
그리고 밤새 인적 끊긴 작은 중앙로들도.
로버트 블라이
한 친구가 인도 여행 중에 현지인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그러자 모든 풍경이 아름다워졌다고 한다.
벽의 낙서, 함께 탄 자전거 릭샤, 길에 널린 소똥과 경적 소리들,
노천 식당의 찌그러진 주전자마저 사랑하게 되었다.
힌디어를 배운다는 명분으로 만났는데, 그녀가 가르쳐 주는 단어마다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빛은 로스니, 어둠은 안델라, 운명은 바갸, 작별은 비다이......
사랑을 하게 되면 평소에 관심 갖기 않던 것들까지 두루 사랑하게 된다.
무심코 지나치던 길가의 풀꽃, 페인트칠이 벗겨져 얼룩진 벽, 밤새 사람의 발길 끊어진 고독한 도로조차도.
갑자기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것처럼 세상이 새롭게 다가온다.
사랑은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며, 이를 통해 주위 모든 것들의 아름다운 속성까지도 인식하게 된다.
그떄 우리는 자기중심적이었던 자아를 열어 더 많은 세상과 만난다.
그것이 사랑이 주는 존재의 확장성이다.
노르웨이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로버트 블라이(1926~ )는 현대 미국 문단에 큰 영향을 미친 시인이다.
하버드대학 졸업 후 동양적 세계관이 담긴 시들을 발표하는 한편 파블로 네루다, 잘랄루딘 루미,
까비르, 하피즈 등 당시 미국에 알려지지 않았던 인도와 아랍 및 중남미 시인들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공로가 지대하다.
하이쿠와 참선 등에 심취하며 명상 시인으로서 독특한 시 세계를 열었다.
난해한 언어 지향적인 현대시에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반전운동가,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했다.
사랑이 끝났을 때도 우리는 길가의 풀과 전선줄 위의 새와
한밤 중 인적 끊긴 네거리를 변함없이 사랑해야만 한다.
그것들은 사랑의 징표이며 그것들로 인해 자아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사랑이 우리에게 일깨워 준 것은 우리가 가진 사랑의 능력이다.
사랑을 하기 전에는 그 놀라운 능력이 우리 안에 있음을 알지 못했다.
로버트 블라이는 시 <제3의 몸>에서 사랑의 또 다른 신비를 묘사한다.
두 존재가 사랑을 할 때, 그 둘은 새로운 하나의 존재를 창조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가까이 앉아 있다.
두 사람은 이 순간
더 나이 들었기를, 더 젋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른 나라,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태어났기를
바라지 않는다.
지금 있는 그곳에
말하는 것 혹은 말하지 않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의 숨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남자는 자신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본다.
그리고 자신에게 책을 건네는 여자의 손을 본다.
그들은 자신들이 공유하는 제3의 몸에 복종한다.
그들은 그 몸을 사랑하기로 약속했다.
늙음이 오고 이별이 오고 죽음이 올 것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가까이 앉아 있다.
그들의 숨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안다 해도 우리가 본 적 없는 누군가에게.
시로 납치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