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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묵상하는 아가서 4장1~16절 말씀 중에서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회개함으로 복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아깝거나 후회하기보다 너무나 감사한 절대 불가능의 과정을 통과한 충격적인 변화요 감동임을 잘 알아
그렇게 됨으로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를 이루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확인하고 신나게 누리는 삶을 위하여 서로 발을 씻기며 서로 사랑하는 구원받은 천국증인들이 어떻게 신기루인 이세상을 살아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이미 묵상한 것처럼 복음의 무지로 회개함으로 복음으로 구원을 받아 영생을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보다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이성으로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 영생을 소유하기 위하여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며 스스로 예수의 종이 되어 여호와로 착각한 도덕천과 표적인 예수의 은혜에 복과 평강을 비는 것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이 아니라 신기루인 이 세상이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주겠다는 신기루 평안인 불안과 구속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무지로 복으로 착각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표적을 구하게 함으로 이단인 교회가 되어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이성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순종에 걸림돌이 되는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감성을 소멸하려고 사탄 마귀와 죄와 악으로 미혹하여 불가능에 도전함으로 결국 온전한 복음을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알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라는 그림은 그렇게 갈망하는 그 복음을 만나려고 밤낮으로 쉼 없이 발악했다는 것이고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는 그림은 그러다 지쳐 꿈이나 환상 속에서나마 그 복음을 소유한다는 것이고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는 그림은 온전한 복음을 소유할 때까지 그나마 그것이라도 누릴 수 있도록 이 세상의 일상인 신기루 같은 헛된 유혹으로 나를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고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는 그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루같이 헛된 이 세상의 것을 정답처럼 착각하여 미혹된 자가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둘러쌌는데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는 그럼처럼 바로 솔로몬 자신으로 철통 같은 대단한 경계 속에 있지만 안전하지 못함을 알기에 헛된 것이란 것이고
“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가마를 만들었는데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깔개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엮어져 있구나”는 그림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것처럼 최고의 지혜로 최고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가졌지만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는 그림처럼 생로병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머니의 아들인 피조물 그대로라는 절망으로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시는 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2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3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4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 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5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
6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7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9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10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는 그림은
지혜의 왕인 솔로몬이 사랑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하여 사랑하는 여자에게 부른 사랑가로는 너무나 유치하고 어색하여 만약 이 노래를 들은 여자의 기분이 좋아지기보다 오히려 상할 것 같은 이유는 이 노래는 솔로몬 혼자서 복음을 상상하며 부르고 싶은 희망사항인 아가로 흥얼거리는 독백인 환상이지 정말 부르는 아가가 아닌 것으로 바로 알아야
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는 그림은 여인의 순결이나 신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누이 내 신부로 표현된 분명하게 잡히지 않는 복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바로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솔로몬이 왕으로 남녀가 평등하게 지금처럼 연애하는 시절이 아니라 한마디 말로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왕이란 신분과 시대상 만으로도 알 수 있고
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는 그림도 지혜의 왕 솔로몬이 상상하는 복음으로
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는 그림처럼 어떠한 방법이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더라도 그렇게 멋있고 대단한 복음을 소유하여 행복하고 싶다는 간절한 솔로몬의 마음으로 바로 알 때
복음의 무지로 이를 남녀의 사랑가인 아가로 착각한 목사들의 엉뚱한 헛소리로 신기루 도덕천인 하나님을 빙자하여 사랑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거나 복음에 대한 솔로몬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사람들이 용을 그리듯이 그린 신기루 외모를 참인 사랑으로 착각하여
지금도 그 외모에 합당한 모습이 되어 사랑인 행복을 찾기 위하여 성형을 비롯하여 온갖 발악을 할 뿐 아니라 그 안목으로 상대방을 평가하여 사랑인 행복을 찾기 위하여 발악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바로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헛되고 헛된 짓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참 소망인 진리인 영생 즉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소유하기 위하여 철학은 이성으로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대단한 철학자 플라톤이 주장한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누구도 찾지 못하고 대단한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포함으로 결국 신에 대하여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으로 실패를 선언 하였고
또 모든 종교는 피조물의 참 소망인 이데아인 영생 즉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소유하기 위하여 우연히 보게 된 이데아의 외모인 달을 가르치는 손가락을 깨달음으로 착각하고 지금까지의 자신들의 수행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이상적으로 판단한 악하고 음란한 생각으로 자신도 소유하지 못한 그 길로 이끌어 신기루인 바람을 잡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게 함으로 자유의지인 감성을 소멸하기 위한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고 있는데
그것을 크게 보면 기독교처럼 자신보다 대단한 외부에서 정답을 찾기 위하여 신기루 도덕천을 표적으로 그 안에 거하므로 영생인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나 불교처럼 자신의 내부에서 정답을 찾기 위하여 자신의 자성을 표적으로 구하며 순수한 자성만 남기고 다 버리는 해탈로 무아와 무상의 경지인 중도가 되면
악(惡)의 3가지 뿌리인 3업 즉 탐(貪, lobha)/탐욕, 진(瞋, dosa)/노여움, 치(癡, moha)/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미혹하여 종교로 추구하고 있지만 이를 통하여 자신들을 물론 어느 누구도 참이고 진리인 온전한 행복인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철학과 종교를 초월한 지혜의 왕인 솔로몬을 통하여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신기루처럼 살아질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을 소유하게 하려는 여호와의 뜻인 복음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절대로 알 수도 없고 이해 할 수도 없는 바람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보여 주시며
이런 사실을 바로 깨달아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나의 하나님인 신기루 도덕천을 만들어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예수를 비롯하여 복음의 도구인 모든 몽학 선생들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를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로 자신을 부인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누구든지 복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데
그것은 여호와께서 근본적으로 주신 자유의지인 감성과 선악과로 표현된 이성의 온전한 조화이며 그렇게 서로 사랑하므로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게 되므로 그것으로 스스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확인하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정해주신 연수까지 행복하게 증인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또한 복음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무지로 피조물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도구로 만든 나의 하나님인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이성으로 판단하여 표적을 구하기 위하여 방해가 되는 자유의지인 감성을 소멸하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한 것이 구약으로 바로 이단의 시발점이고
구약의 도전이 불가능하자 회개를 하기보다 다시 2차 도전을 위하여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됨으로 복음의 초대 증인이요 최고 몽학 선생인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는 2차 도전이 신약으로 오히려 수많은 이단들의 출현에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것은 복음과 온전하신 여호와에 대한 무지로 여호와께서 스스로 구약과 신약을 주고, 아론과 멜기세덱의 대를 잇는 두 라인의 제사장 직을 주고, 성소라는 이름으로 이땅에 천국 모형을 주고, 이 땅과 천국에도 제사장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복음의 무지로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이성적인 이런 참담한 주장들을 하는 것은
자유의지인 감성을 소멸하기 위하여 온전하신 여호와를 폄훼하며 온전한 복음으로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표적을 구하게 함으로 자신들은 물론 구원을 소망하는 사람들을 가로막아 구원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하는 불의와 불법의 나팔과 꽹과리 소리가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거나 반대로 너무나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을 비롯하여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이를 비우는 회개를 해야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용을 그리듯이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구약과 신약으로 멋대로 분별하여 복음을 그리므로 지금까지 이단이 되고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제사장, 제자, 기도, 예배,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아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고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다시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본다.
첫댓글 솔로몬이 복음을 소유하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글로 바라보니 솔로몬의 마음이 복음에 대한 얼마나 안타깝고 애절한것임을 느낄수 있으며 또한 역시 지혜의 왕임을 알게 해주는 아가서 입니다. 솔로몬이 세상부귀영화를 다 가졌지만 그것과 비교할수 없어 그토록 소망한 복음을 소유한 우리가 곧 아담이며 솔로몬이며 예수인 우리가 됨으로 그 복을 멋지게 잘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예~~ 아멘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