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메이저리거 추신수(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 성공은 신화를 낳는다. 실패는 교훈을 남긴다. 성공과 실패의 시작은 도전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신화도, 교훈도 얻을 수 없다.
2001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추신수는 성공을 꿈꿨다. 시애틀 매리너스로부터 계약금 135만 달러를 받았으니 이미 성공을 거뒀는지 몰랐다. 그러나 성공은 아직 먼 나라 이야기.
미국에서 추신수를 기다린 건 실패였다. ‘잠시’라고 생각했던 마이너리그 생활은 2007년까지 계속됐다. 그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도 드물었다. 그 사이 그는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고교 졸업하고 바로 미국에 오고 나서 앞만 보고 달렸어요. 부산의 가족도, 친구도, 제 또래 젊은이들이 흔히 누렸을 청춘 시절의 추억도 제겐 없습니다. 그라운드에서 뛰고 또 뛴 기억밖엔 없어요. 한국에서 뛰는 선수들의 국외리그 진출 소식 들을 때마다 조금 우려되는 것도 그거예요. 스타 플레이어일수록 포기할 게 그만큼 많아질 텐데, 그걸 감수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실패는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실패는 교훈을 남겼다. 교훈은 ‘포기하면 새로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 경우엔 포기할 건 깨끗하게 포기했어요. 포기하고 나니까 뭘 채워야 할지 알겠더군요.”
그가 포기한 건 가족과 친구와 청춘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버리고 새로 채운 건 야구를 향한 열정과 노력,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결국 추신수는 6년 후, ‘1억 달러의 사나이’로 등극했다. 이제 그의 성공은 야구 소년들 사이에선 신화가 됐다.
# 추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기자가 주목한 건 하나였다. 1억 3천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계약액? 아니다.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 가운데 최고 대우? 그 역시 아니다. 메이저리그 역대 27번째 초고액 몸값? 그건 더욱 아니었다.
정작 기자가 주목한 건 추신수가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국외리그에 진출한 역대 한국인 선수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었다. 많은 아마추어 유망주가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미국과 일본 무대를 밟았지만, 추신수만큼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추신수만큼’이 아니어도 국외 무대에 남아 결국엔 자신의 꿈을 이룬 이도 찾아보기 어렵다. 되레 갖가지 유혹을 참지 못하거나 국외 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서 쓸쓸히 돌아오는 유망주가 태반이었다. 그만큼 어린 나이에 국외리그에 진출해 성공을 거둔다는 건 애초부터 가능성이 희박한 모험일지 모른다.
사실이다. 20살이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기엔 어린 나이다. 공자도 그걸 알고 갓(冠)을 쓰기엔, 즉 어른이 되기엔 아직 부족하다(弱)고 하여 20살을 ‘약관(弱冠)’이라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약관에 추신수는 말과 문화가 다른 미국 무대에 도전했다. 그리고 실패를 교훈 삼아 마침내 성공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다른 약관의 선수들은 실패하고, 오직 추신수만이 성공한 것일까.
지난 9월 신시내티에서 추신수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빅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특별한 답을 원한 건 아니었다. 다만, 성공을 꿈꾸는 약관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답변이 나오길 기대한 것뿐이었다.
추신수는 “전 아직 성공한 선수가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선 “지금도 성공을 꿈꾸면서 하루하루 똑같은 훈련을 반복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1월 1일 훈련을 시작해 12월 31일 더 나은 선수가 되는 게 자신의 목표라는 뜻이었다. 그걸 듣고 역설적이게도 기자는 추신수가 어째서 성공한 야구선수가 됐는지 알았다. 또 그의 성공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리라는 확신을 하게 됐다.
언제부터인가 고교 유망주들의 국외 진출이 부쩍 줄었다. KBO리그 구단 관계자들도 “고졸 유망주들이 너무 쉽게 야구를 포기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성공은 더디다. 그래서 값진 것이다. 너무 일찍 성공을 맛보려는 것. 너무 서둘러 실패를 자인하려는 것. 어쩌면 그게 어린 선수들의 도전을 가로막고 있는지 모른다. 추신수처럼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도전하고서 하루하루 똑같은 스텝을 밟으며 때를 기다린다면 어떨까. 젊었을 때 흘리지 않은 땀은 나이를 먹었을 때 눈물이 된다는 걸 깨닫는다면 어떨까.
추신수의 성공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하나다. 노력은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는 것이다. 만약 보답 받지 못하는 노력이라면. 그건 아직 ‘노력’이 아닐지 모른다.
추신수는 앞으로도 자신의 스텝을 밟을 것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P.S 추신수는 야구로부터 받은 사랑을 야구를 통해 돌려주려 한다. 그는 “유소년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야구장을 짓고 싶다”고 했다.
“야구장도 한 면이 아닌 여러 면을 짓고 싶어요. 그 안에 숙소도 만들 겁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비싼 호텔이나 모텔을 얻어 생활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학부모님들의 부담도 줄겠죠. 전 그걸 통해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지금도 평생 먹고 살 돈은 벌어놨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그저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야구를 마음껏 즐기게끔 도와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추신수의 야구장 계획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야구 실력을 쌓으려 하루하루 같은 스텝을 밟아 노력하듯 그의 야구장 구상도 오랫동안 고민하고, 계획한 산물이기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 구장을 돌아다니면서 많이 보고 배워요. ‘아, 저런 게 우리나라에 필요하겠구나’ ‘저런 건 우리 아이들에게도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어쨌거나 저 어렸을 때처럼 땅바닥에서 야구하는 아이들이 줄었으면 하는 게 제 유일한 바람입니다.”
그가 야구로부터 받은 사랑을 야구를 통해 돌려주는 날. 그날이 오면 대한민국엔 추신수를 나침반 삼아 꿈을 향해 도전하는 아이들이 수없이 늘어날 것이다. 추신수의 ‘야구 기부’ 도전이 또 한 번 신화를 낳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댓글 좋을 글 잘 보고 감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