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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의 풀꽃을 찾아서 – 오대산 호령봉
1.호령봉 아래 한강기맥 연릉
꽃들은 서로 화내지 않겠지
향기로 말하니까
꽃들은 서로 싸우지 않겠지
예쁘게 말하니까
꽃들은 서로 미워하지 않겠지
사랑만 하니까
비가 오면 함께 젖고
바람 불면 함께 흔들리며
어울려 피는 기쁨으로 웃기만 하네
더불어 사는 행복으로 즐겁기만 하네
꽃을 보고도 못 보는 사람이여
한철 피었다 지는 꽃들도
그렇게 살아간다네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간다네
―― 이채, 「5월에 꿈꾸는 사랑」
▶ 산행일시 : 2024년 5월 12일(일), 맑음, 미세먼지 나쁨
▶ 산행인원 : 6명(악수, 버들, 자연, 메아리, 하운, 해마)
▶ 산행코스 : 상원사주차장,1,342m봉,1,404m봉,주릉 1,533m봉,호령봉,감자밭등,호령봉,1,533m봉,가래터골,
중대사자암(적멸보궁) 입구,상원사주차장
▶ 산행거리 : 도상 9.5km
▶ 산행시간 : 7시간 47분(09 : 43 ~ 17 : 30)
▶ 갈 때 : 상봉역에서 KTX 열차 타고 진부(오대산)역에 가서, 버스 타고 상원사주차장으로 감
▶ 올 때 : 상원사주차장에서 버스 타고 진부에 와서, 저녁 먹고 택시 타고 진부(오대산)역에 와서,
KTX 열차 타고 상봉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7 : 28 – 상봉역
08 : 46 – 진부(오대산)역
09 : 43 – 상원사주차장 버스종점, 산행시작
10 : 05 – 서대 수정암 갈림길
11 : 15 – 1,342m봉
11 : 36 – 1,404m봉
12 : 20 – 호령봉 직전 안부, 점심( ~ 13 : 20)
13 : 32 – 호령봉(虎嶺峰, 1,565.5m)
14 : 19 – 감자밭등(1,430m) 직전 안부
15 : 11 – 호령봉
15 : 27 – 1,533.4m봉, ┣자 갈림길
16 : 00 - ┫자 갈림길 안부
17 : 08 – 가래터골, 적멸보궁, 중대사장암 입구
17 : 30 – 상원사주차장( ~ 17 : 45), 산행종료
18 : 25 – 진부터미널, 저녁, 진부역( ~ 20 : 00)
21 : 23 - 상봉역
2. 연령초, 상원사주차장 옆 풀숲에서
3. 참꽃마리
4. 회리바람꽃
6. 홀아비바람꽃
7. 홀아비바람꽃
진부(오대산)역에서 열차에 내려 상원사 가는 버스를 타려면 바삐 서둘러야 한다. 화장실을 들를 여유가 없다. 열차
가 약간이라도 연착하면 버스는 이미 출발하고 없다. 버스와 택시 간에 알력이 있다고 한다. 택시는 버스더러 운행
시간을 절대 준수하라고 한단다. 작년에는 열차에 내려 화장실을 들렀다가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오늘은 열차 안에
서 미리 용변을 보고 곧장 버스승강장으로 가서 출발하려는 버스를 탔다. 상원사까지 약 21km, 택시로는 36분 걸리
고 그 요금은 34,000원 정도다.
오늘은 버스기사님이 화장실에 간 모양이다. 차문을 열어 놓았다. 당연히 월정사나 상원사 또는 적멸보궁을 간다는
많은 사람들이 교통카드로 자동결제하고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버스기사님은 성질이 났다. 한 사람 한 사
람이 목적지를 알려주면 자기가 거기에 맞는 요금을 기기에 입력한 다음에 교통카드를 대야 하는데 모두 이미 타버
렸으니 당혹스러운 처지였다. 상원사까지 버스요금이 3,640원인데 거기 가는 대부분의 승객이 기본요금인 1,500원
을 내고 타버렸다. 성질이 날만도 했다.
몇몇 선 사람들은 버스기사님에게 가서 버스요금을 수정하여 결제했다. 진부터미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탔다.
한 사람 한 사람 결제하느라 꽤 시간이 걸렸다. 버스는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버스기사님은 승객들더러 내리실
때 요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월정사에 내리는 사람 중에 요금을 더 내겠다는 이는 없었다. 상원사에
내리는 우리는 자수하여 요금을 더 내야 할 것인가 고민했다. 아무도 그러지 않는데 우리만 중뿔나게 자수한다는 게
도리어 어리석어 보였다.
우리는 남들처럼 남들은 우리처럼 자수 않고 그냥 내렸다. 버스기사님은 이에 대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다.
한편,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마치 큰돈을 벌기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오대산 일주문부터 걸어놓은 ‘산불방지출입통제’와 ‘산나물 채취금지’ 라는 플래카드와 안내판이 눈이 거슬린다.
오는 5월 15일까지 일부 개방탐방로를 제외하고는 모든 탐방로가 통제 중이다. 눈 닿는 데마다 그런 공고가 보이니
우리를 겨냥하는 것만 같다. 선재길이나 상원사에서 적멸보궁까지 2km는 개방탐방로다.
오늘따라 국공과 국공차량이 자주 보인다. 묵직한 배낭 메고 등산화 신고 스틱 짚는 우리의 산행차림이 적멸보궁
찾는 불자의 그것으로는 어색하다. 걸음걸음 풀꽃 찾는 시늉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상원사주차장에서 대로 따라
0.8km 정도 가면 왼쪽 사면을 오르는 가파른 소로가 서대 수정암으로 간다. 불자말고는 사시사철 통제구간이다.
불자처럼 익숙하게 그 길로 올라간다. 작년에 이 길을 갈 때(5월 1일이었다)에는 새끼노루귀도 보았다. 그들은 다
졌다. 삿갓나물과 회리바람꽃만 우리를 반긴다.
산을 오르는 데 왕도는 없다. 어쨌든 그 높이는 올라야 한다. 수정암 쪽 잘난 등로를 따르거나 바로 생사면을 치고
오르거나 1,342m봉 그 높이를 올라야 한다. 지도 자세히 읽어 산허리 두 차례 돌고 생사면을 치고 오른다. 일반등로
와는 달리 다져지지 않은 푸석한 부토의 사면이라 발걸음은 훨씬 더 힘들다. 더구나 푸른 사막의 연속이다. 능선에
올라서면 바람이 세게 분다. 제법 찬바람이다. 오를 때는 시원하지만 쉴 때는 춥다.
얼레지는 이미 졌고 홀아비바람꽃은 어떨까? 다행이다. 1,404m봉을 내린 야트막한 안부에서부터 홀아비바람꽃을
본다. 이정도면 고원이다. 납작 엎드렸다 일어나고 삼보일배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주릉 1,533.4m봉이다. 억센
잡목들이 길을 막고 있어 지나기 여간 고역이 아니다.
뜻밖에 반가운 사람을 만난다. 바람부리 님이다. 불자라는 친구 한 분과 함께 왔다. 상원사에서 자고 아침 일찍 호령
봉을 올랐다가 내려가는 중이라고 한다. 아울러 바람부리 님이 어제 이 산에서 만났다는 악우들의 소식도 듣는다.
8. 홀아비바람꽃
9. 연령초
10. 홀아비바람꽃
15. 미나리냉이
16. 홀아비바람꽃
17. 연령초
18. 귀룽나무
20. 홀아비바람꽃
호령봉 직전 야트막한 안부다. 등로 살짝 비킨 너른 풀밭에(홀아비바람꽃 꽃밭이다) 점심자리 편다. 주변에는 당귀
가 수두룩하다. 그중 몇 개를 솎아 점심 쌈한다. 그 달짝지근하고 쌉싸름한 맛이라니 산중일미다. 당귀는 혈액순환
을 촉진시키고 진통에 효과가 있고, 보혈작용이 현저하여 빈혈에 유효하고 일반 타박상이나 혈전성동맥염의 치료에
도 응용되고 만성 화농증에 사용하면 순환을 개선시키고 체내의 저항력을 증강시키며, 변비에 복용하면 장관운동을
원활하게 해주어 배변을 용이하게 한다고 한다. 이를 간단하게 말하면 만병통치 보혈강장제이다.
만복이 되어 일어나고 호령봉을 오른다. 등로는 화원 원로다. 홀아비바람꽃 일색이다. 하나같이 고개 쑥 빼든 홀아
비바람꽃이다. 드문드문 연령초가 발길을 붙든다. 호령봉 정상은 찬바람이 불어 춥다. 곧장 감자밭등을 향한다.
잡목의 거센 저항에 더하여 지난겨울 폭설로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막았다. 메아리 님과 하운 님, 나 셋이서 간다.
열 걸음에 아홉 걸음은 포복하듯 낮은 자세로 잡목 숲을 뚫는다. 이때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보니 무릎과 허벅지는
온통 난자당했다.
개활지에 다다른다. 펑퍼짐한 안부다. 박새초원 지나 홀아비바람꽃 꽃밭이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른다. 작년
에도 이랬다. 올해도 우리가 첫발걸음이다. 감자밭등(1,430m)을 가려면 아직 멀었다. 잠깐인 것 같았는데 그새
시간이 많이 지났다. 호령봉을 다시 오르려면 무진 애를 써야 한다. 감자밭등이라고 여기보다 더 나을 것 같지 않다.
아쉽지만 뒤돌아선다. 아무래도 누비기 쉬운 박새초원을 쫓다보니 내려온 길이 아니다. 여기도 미역줄나무 덩굴
벨트를 뚫기가 버겁다.
호령봉. 찬바람과 미세먼지는 여전하다. 서쪽으로는 가까운 한강기맥 장릉과 계방산, 소계방산, 멀리 문안산을,
북쪽으로는 소대산 뒤로 병풍을 두른 듯한 방태산의 연봉 연릉을, 동쪽으로는 동대산과 황병산을, 남쪽으로는 발왕
산과 백적산을 알아본다. 온길 뒤돌아간다. 등로 양쪽에 줄지어 선 홀아비바람꽃이 온몸을 흔드는 건 비단 바람 때
문만은 아니리라. 내년에 다시 보자 기약한다.
주릉 ┣자 갈림길인 1,533.4m봉에서 일행 모두 모였다. 휴식한다. 자연 님이 비로봉 쪽으로 길을 잘못 갔다가 아직
지지 않은 얼레지를 보았다고 하기에 나도 보러 간다. 완만한 내리막 풀숲에서 독야청청하는 얼레지를 본다. 이곳
오대산의 얼레지는 다른 산에서 자라는 얼레지에 비해 꽃 색이 옅다. 이 또한 미색이다. “우리 꽃의 아름다움은 소박
한 데 있다고 한다. 산골 처녀처럼 청초하고 깨끗하며 단정한 이미지가 바로 우리의 아름다움이라고 하지만 더없이
깊은 산골에 살면서 누구보다도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아름다운 꽃이 있는데, 바로 얼레지다.” 전 국립수목원장
이유미 박사의 말이다. 나 역시 동의한다.
하산. 상원사주차장 버스시간이나 진부(오대산)역 열차시간이 넉넉하다. 상원사 앞을 오가는 국공차량의 퇴근시간
은 17시이리라. 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바람직하다. 천천히 걷는다. 길게 내린 1,404m봉 직전 ┫자
갈림길 안부에서 한참 해찰부리고 왼쪽 사면을 내린다. 여기도 지난겨울에 폭설로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들이 길을
막고 있다. 지나가기 사납다. 주춤주춤 내리고 낭랑한 물소리가 산골을 울리는 골짜기다. 가래터골이다.
물소리가 더욱 요란하면 길게 포말 이는 와폭이다. 너덜과 잡목 헤치고 다가가서 바라보곤 한다. 풀숲 이끼 낀 너덜
을 지난다. 미끄럽다. 아무리 미나리냉이가 반겨도 지루하리만치 긴 계곡이다. 저 아래 적멸보궁 오르막 계단 아래
도로가 보인다. 또 휴식한다. 계류 옆이다. 탁족한다. 알탕하는 사람에게는 회비를 전액 면제한다고 광고했으나 나
서는 사람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계류에 발을 담그자마자 시리다. 얼른 꺼낸다.
21. 연령초
22. 홀아비바람꽃
24. 호령봉 정상, 멀리는 계방산과 소계방산
25. 계방산과 소계방산
26. 멀리 가운데는 황병산
27. 멀리 가운데는 발왕산
28. 감자밭등 가는 길
33. 다시 호령봉
도로에 주차한 차들이 보인다. 혹시 국공차량도 있는지 예의 살핀다. 국공차량은 ‘국립공원’이라는 표시를 한다.
그런 표시를 한 차량은 보이지 않는다. 안심하고 내린다. 적멸보궁을 오르는 불자들을 위한 간이주차장이다. 허리
펴고 활개 치며 대로를 간다. 이 길은 우람한 전나무가 볼만하다. 사열한다. 상원사주차장 가는 길은 전나무 말고도
비탈진 풀숲의 풀꽃 또한 볼거리다. 너른 사면을 수놓았던 피나물꽃은 졌다. 씨방을 뽐내는 너도바람꽃 옆에 나도바
람꽃은 한 꽃대 여러 송이 중 겨우 한 송이만 남았다. 참꽃마리, 광대수염, 당개지치는 작년 봄 그 자리에 꽃 피웠다.
상원사주차장. 그 가장자리 오대산상원사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 찍는다.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는 피천득(1910~2007)의 ‘오월’을 나도 애독한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사랑은 얻어도 괴로운 것이고)
失了愛情痛苦(사랑은 잃어도 괴로운 것이다)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은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진부터미널에 내리고 저녁 맛집을 찾는다. 운이 좋았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무슨 화로구이집이다.
각각 3인분씩 주문한 삼겹살과 돼지갈비가 잘못 나오지 않았을까 의심하게 양이 많기에 확인했더니 맞다고 한다.
맛도 좋다. 더구나 노릇노릇하게 군 삼겹살과 야들야들하고 쌉싸래한 곰취와 향긋한 생더덕주 삼합임에야.
34. 비로봉 쪽 풀숲의 얼레지
35. 회리바람꽃
36. 연령초
38. 삿갓나물
39. 노루삼
41. 가래터골 와폭
44. 상원사주차장 가는 길
45. 참꽃마리
46. 당개지치
47. 상원사주차장 옆에서
첫댓글 찬란한 오월 봄 날의 하루였네요...향긋한 당귀+곰취+삼겹의 삼합과 덕순주는 그날의 행복한 순간들의 합(合)이었습니다^^..덕분에 산상화원을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눈과 입이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이러니 오대산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험한 길 오르셨네요. 국공 눈치 보느라 고생하셨겠지만 아직 생생한 얼레지도 보셨고, 홀아비바람꽃밭도 다녀오셨으니 즐거운 산행하셨습니다. 덕분에 눈이 호강했습니다.
호령봉 아래 동피골에는 나도옥잠화도 있고 볼거리가 더 많은데 오르내리기 워낙 험해서 좀처럼 못가고 있습니다.^^
호령봉 감자밭등이 고생하네요 ㅋㅋ
정작 감자밭등은 가다가 말았습니다.
안부로 내려서기만 하면 대초원인데 거기까지 가기가 쉽지 않더군요.^^
오대산 야생화들이 악수님을 만나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언제 가도 좋은 곳, 우리들의 쉼터입니다...
그렇습니다.
킬문 님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