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夏曰 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 자하가 말하길, “벼슬하면서 여력(餘力)이 있으면 배우고, 배우다가 여력이 있으면 벼슬을 하니라.”라고 하였다.
優 有餘力也 仕與學理同而事異 故當其事者 必先有以盡其事 而後可及其餘 然仕而學 則所以資其仕者益深 學而仕 則所以驗其學者益廣 優란 여력이 있다는 말이다. 벼슬과 배움은 이치는 같지만 일은 다르다. 그러므로 그 일을 맡은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일을 다 할 수 있게 된 연후에 그 나머지에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벼슬하다 배우는 것은 그가 벼슬하는 것을 도와줌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배우다 벼슬을 하는 것은 그가 배운 것을 검증함이 더욱 넓어질 것이다.
新安陳氏曰 行有餘力 餘力猶言暇日 是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행하다가 여력이 있으면’에서 여력은 겨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仕所以行其學而學所以基其仕 故曰理同 然仕則以陳力就列致君澤民爲事 學則以誦詩讀書格物致知爲事 故曰事異 경원보씨가 말하길, “벼슬은 자신이 배운 것을 행하는 것이고, 배움은 자기의 벼슬을 터 닦는 것이기 때문에, 이치가 같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벼슬은 힘을 펼치고 관리대열에 나아가 임금에게 충성하고 백성에게 은택이 미치도록 하는 것을 일로 삼고, 배움은 시를 외고 책을 읽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을 일로 삼기 때문에, 일이 다르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仕與學理同者 皆所當然也 事異者 有治己治人之別也 學以爲仕之本 仕以見學之用 特治己治人之異耳 以理言 則學其本也 以事言 則當其事者 隨所主而爲之 緩急必先盡心於所主之事 有暇日 則及其餘 非有所輕重於其間也 호씨가 말하길, “벼슬과 학문은 이치가 같다고 하는 것은 모두 마땅히 그러할 바이기 때문이다. 일이 다르다는 것은 자기를 다스리고 남을 다스리는 구별이 있기 때문이다. 학문은 이로써 벼슬의 근본으로 삼고, 벼슬은 이로써 학문의 사용을 보여주지만, 단지 자신을 다스리느냐 아니면 남을 다스리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치로써 말하면, 학문은 그 근본이고, 일로써 말하면, 그 일을 담당하는 자는 주안점을 두고 있는 바에 따라서 그것을 행해야 한다. 완급에 있어서는 반드시 먼저 주안점을 두고 있는 일에 마음을 다해야 한다. 만약 겨를이 있으면, 그 나머지에 미치는 것이니, 그 사이에 경중을 따질 바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仕者先盡仕之事 有餘力則益及於學 學者先盡學之事 有餘力則始及於仕 신안진씨가 말하길, “벼슬하는 사람은 먼저 벼슬의 일에 마음을 다하고, 여력이 있거든 더욱 학문에 미치는 것이고, 배우는 사람은 먼저 학문의 일에 마음을 다하고, 여력이 있거든 비로소 벼슬에 미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仕優而不學 則無以進德 學優而不仕 則無以及物 仕優而不學 固無足議者 學優而不仕 亦非聖人之中道也 故二者皆非也 仕優不學 如原伯魯之不說學 是也 學優不仕 如荷蓧丈人之流 是也 子夏之言 似爲時而發其言 雖反覆相因而各有所指 或以爲仕而有餘則又學 學而有餘則又仕 如此則其序當云學而優則仕 仕而優則學 今反之則知非相因之辭也 朱子曰 舊亦嘗疑兩句次序顚倒 今云各有所指 甚佳 누군가 묻기를, “벼슬하다가 여력이 있어도 배우지 않으면 덕을 증진할 수 없고, 배우다가 여력이 있어도 벼슬을 하지 않으면 남에게 미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벼슬하다 여력이 있어도 배우지 않는 것은 본디 논의할 만한 것이 없고, 배우다가 여력이 있어도 벼슬하지 않는 것도 역시 성인의 中道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2가지는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벼슬하다 여력이 있어도 배우지 않는 것은, 예컨대 原伯魯가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배우다가 여력이 있어도 벼슬하지 않는 것은, 예컨대 荷蓧丈人과 같은 부류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하의 말은 마치 때에 따라 그 말을 해서 비록 반복되고 서로 원인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 가리키는 바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벼슬하다 여유가 있으면 또 배우고, 배우다가 여유가 있으면 또 벼슬한다고 여기는데, 이와 같다면, 그 순서는 마땅히 배우다 여유 있으면 벼슬하고, 벼슬하다 여유 있으면 배운다고 말해야 하는데, 지금은 이와 거꾸로 하였으니, 곧 서로 원인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옛날에도 역시 일찍이 두 구절의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은 아닌지 의심한 적이 있었다. 지금 각자 가리키는 바가 따로 있다고 말하니, 매우 훌륭하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大學之道在明明德在新民 成己成物之無二致也 古之人學以終其身 故仕優則學 學優則仕 其從容暇裕如此 終始于學而無窮已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에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니, 자신을 이루고 남을 이루는 것에 두 가지 이치가 없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배움으로 그 몸을 끝마쳤으니, 그래서 벼슬하다 여유가 있으면 배우고, 배우다 여유가 있으면 벼슬을 하였던 것이다. 조용하게 여유롭게 함이 이와 같았으니, 처음과 끝을 학문에 두어서 다하고 그만둠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潛室陳氏曰 學是講此道理 仕是行此道理 學有餘暇 則可入仕 仕有餘暇 又當講學 主學而言 則仕爲餘用 主仕而言 則學爲餘功 互相發也 잠실진씨가 말하길, “학문은 이 道理를 익히는 것이고, 벼슬은 이 道理를 행하는 것이다. 배움에 여가가 있다면 벼슬길에 들어갈 수 있고, 벼슬에 여가가 있으면 또 마땅히 학문을 익혀야 할 것이다. 학문을 위주로 하여 말한다면, 벼슬은 학문을 하고 남은 활용이 되고, 벼슬을 위주로 하여 말한다면, 학문은 벼슬을 하고 남은 공효가 되는 것이니, 서로 피워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仕而優則學 爲已仕者言也 謂仕有餘力則不可以不學 不學則無知新之益以資其仕 學而優則仕 爲未仕者言也 謂學有餘力則不可以不仕 不仕則無行道之功以驗其學 是終始事 경원보씨가 말하길, “벼슬하다 여력이 있으면 배운다는 말은 이미 벼슬을 한 사람을 위해서 말한 것으로서, 벼슬하다 여력이 있으면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니, 배우지 않으면 새로운 지식이 늘어나 그 벼슬에 도움을 주는 것이 없다. 배우다 여력이 있으면 벼슬을 한다는 말은 아직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말한 것으로서, 배우다 여력이 있으면 벼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벼슬하지 않으면 도를 행하는 공효로써 자신이 배운 것을 징험할 수 없으니, 이는 곧 시작과 끝이 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聖賢之言 固自有因上句而生下句者 如夫子本言 晉文公譎而不正 因而曰 齊桓公正而不譎 若獨言下句 則齊桓豈正而不譎者哉 此亦因當時有仕優而不學者 故以下句意足之 獨言下句則學之優 固自有可仕不可仕者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성현의 말씀에는 본디 저절로 윗 구절로 인해 아랫 구절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공자께서 본래 진문공이 잘 속이면서도 바르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로 인해 말씀하시길, 제환공은 바르면서도 속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만약 아랫 구절만 홀로 말했다면, 제환공이 어찌 바르면서도 속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겠는가? 이 역시 당시에 벼슬하다 여력이 있었음에도 배우지 않았던 자가 있었음으로 인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랫 구절의 뜻으로써 그것을 충족시켰던 것이다. 아랫 구절만 홀로 말했다면, 배우다 여유 있는 자라도 본디 저절로 벼슬할 수 있음도, 벼슬할 수 없음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學以明其理者 體也 仕以行其事者 用也 體者用之本 用者體之驗 仕有餘力而不學 則將徇己蠹人 是有無體之用 學有餘力而不仕 則將愛身忘世 是有無用之體矣 子夏爲見當世多有仕而不學者 觀孔子以今之從政者爲斗筲之徒 則可想見 故首以仕優而學警世人 夫已仕者尙不可以不學 則未仕者必學優而後始可以仕 蓋可知矣 下句人所易知 上句人所易忽 故以人所易忽者先言之 신안진씨가 말하길, “학문은 이로써 그 이치를 밝히는 것이니 體다. 벼슬은 이로써 그 일을 행하는 것이니 用이다. 體라는 것은 用의 근본이고, 用이라는 것은 體의 징험이다. 벼슬하다 여력이 있음에도 배우지 않는다면, 장차 자신의 고집만 따라서 남을 좀먹을 것이니, 이는 곧 體가 없는 用이다. 배우다 여력이 있음에도 벼슬을 하지 않으면, 장차 제 몸을 사랑하여 세상을 잊을 것이니, 이는 곧 활용이 없는 體인 것이다. 자하가 당시 세상에 벼슬을 하면서도 배우지 않는 자가 많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였을 것이니, 공자가 지금 세상의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을 ‘소견이 좁은 무리’로 여겼던 것을 살펴보면, 생각만 해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벼슬하다 여력이 있으면 배운다는 말로써 세상 사람들을 경계한 것이다. 이미 벼슬한 저 사람들도 여전히 배우지 않으면 안 되니, 아직 벼슬하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배워서 여유가 생긴 연후에 비로소 벼슬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체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랫 구절은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는 바이고, 윗 구절은 사람들이 소홀히 하기 쉬운 바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홀히 하기 쉬운 바로써 먼저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