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한국판 로렌조 오일` 김현원 교수님 서포트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권대희(시안)
2012년 9월 말 초가을이 지나가는 오후에 병원의 당비서 (당시 54세 여)가 저의 진료실에 들어왔습니다.
“권 닥터. 나에게는 오빠가 두 분이 계시는데, 큰 오빠가 지금 병원에 응급으로 실려왔다네, 나의 큰 오빠는 집안이 지주계급으로 문화 혁명 때 큰 고생을 했서, 시골로 추방되어서 학교를 못 다니고 농촌에서 고생하다가 늦게 군대를 갔고, 결혼도 늦게 하여 아들을 늦게 보았지…..”
“ 고생만 했던 큰 오빠가 지금 병원에 입원했어”
“ 평 비서, 오빠에게 무슨 일 있나요 “
“ 내 큰 오빠 좀 도와주시게나…….”
“ 무슨 일이 있는데요….천천히 설명을 해보세요”
그러면서 눈물을 보이는 평당비서에게 녹차를 한잔 끓여주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차분하고, 냉정한 평당비서가 눈물을 보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권 닥터! 병원에서 나하고 친하게 지내던 이 교수에게 큰 오빠를 치료 중입니다.”
“그분은 경험이 많으시고 실력이 있으니 잘 했네요”
“그런데 며칠이 지났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네”
“무슨 병으로 왔는데요?”
“폐암!”
“며칠 된다고 해결되는 병은 아니 것 같은데요, 진행은 어느 정도 입니까?”
“T4N1M1…. 최악이라네” (옆 장기로 넓게 있으면서, 림프전이, 원격전이가 되었다는 뜻)
“그리고요”
“시경병원에서 방사능, 항암 4회 정도 치료하다가 포기하고 집에 돌아갔다가 우리병원에 다시 온 것이라네..”
“시경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왜 퇴원을 했지요?“
“암이 전이속도가 너무 빠르고, 암의 범위가 광범위해서 치료하기보다는 환자에게 나머지 여명을 편안하게 보내시라고……”
녹차 한잔을 드시고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 했습니다
“폐에서 시작해서 간과 위로 전이되었고, 대장에는 새로운 암이 발생했다네”
“우리병원에는 어떤 상태가 되어서 왔지요?”
“시경병원에서 여명이 한 달도 안되니, 집에 가서 마지막 보내시라고 퇴원조치를 내려져서 할 수 없이 집에 왔는데, 며칠 전부터 너무 통증으로, 일어날 수도 없어서….”
“큰 오빠는 문화혁명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 후에 어머니가 쓸쓸하게 돌아가시어서 가슴에 정에 대한 그리움이 많으신 분 입니다. 큰 오빠 밑으로 늦게 본 아들이 하나 있는데, 올해가 28세입니다. 내년 2월에 장가를 가는데……”
그러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습니다.
“큰 오빠가 아들 장가 가는 것 만 보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합니다. 며느리에게도 시아버지의 역할을 한번 해주고 떠나고 싶다고, 한집에서 몇 칠이라도 며느리가 해주는 밥을 먹고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와 가족사진을 한 장 남기고 싶다고……”
결국 펑 비서가 감정의 회환의 눈물을 흐리기 시작을 했다. 녹차 물을 따라주면서 평 비서가 진정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권 닥터! 6개월만이라도 여명을 연장할 방법이 없나요?”
“평 비서! 지금은 이 교수에게 의뢰를 했으니, 제가 참가하기가 어렵네요, 특히 고집 세고, 얼굴 차갑기로 유명한 이 교수(여성)와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도 병원에 별로 없지 않습니까? 저 또한 공인병원에 근무한지가 30년 된 이교수와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 권 닥터! 그래도 방법이 없나요 “
“평 비서가 이교수와 가장 친하니 잘 설득을 시켜서 양쪽 치료를 협진을 해보자고 해보세요. 그러면 방법이 있을 것 입니다. 지금 이교수 입장으로 대안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 입니다. 환자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습니다.!"
돌이켜 볼 때 이것이 나에게 정말 쓰라린 아픈 추억으로 남을 것 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지금도 많이 보고 싶고, 그분의 음성과 웃음이 많이 그리워지는 겨울입니다.
“알었네 잠시만 기다리시게나…”
마시던 녹차 잔을 놓고 급하게 나가는 뒤 40분 정도도 안되었는데 평 비서가 돌아왔습니다.
“ 권 닥터! 이교수가 협진을 허락을 받았네. 대신 이교수에게 치료행위를 허락받는 조건으로
말일세 가능하지?”
“사람이 우선 입니다. 자존심이 뭐가 중요합니까! 평 비서의 오빠가 몇 호실에 있나요?”
“304호”
“조금 후에 올라갑시다. 지금 전사장치로 뇌출혈환자 치료가 거의 끝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30분 후 같이 걸어서 계단을 오라가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병원에 입원 할 때 상태와 지금 상태는 어떻게 변화가 있어나요?
“우리병원에 올 때, 업혀서 들어와서, 지금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네. 암이 신경까지 누르고 있어서 통증이 많이 오고 있는 것 같네….. 며칠이 지났는데 똑 같네”
우리는 이야기하면서 3층에 있는 이교수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교수님 협진을 허가 해주시어서 감사드립니다.”
“권 닥터! 당신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그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오만에서 오지 않았나 생각해 본적이 없나!”
인사의 답변이 소문대로 칼날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래도 웃으면서 제가 말을 했습니다
“오만, 자만 이런 것을 다른 언어로 표현을 하면 자신감과 열정 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후배에 대한 칭찬으로 받겠습니다”
이교수는 어이 없는 표정으로 내를 쳐다보았다..
“이교수님! 평 비서님과 친한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환자의 담당의사로써가 아니라, 평 비서의 오빠만 생각하는 입장으로 진료에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교수님에게 모든 치료과정과 내용을 설명과 허락을 받겠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이교수가 말을 했다.
“권 닥터! 사실은 평 비서와 나는 같은 고향이고, 평 비서의 오빠와는 같은 소학교(국민학교)를 나와서 알고 지내는 사이라네, 그래서 협진을 허락을 했네. 그러나 현재로써는 한 달도 힘들 것 같네……”
진료실에 잠시 침묵이 흘렸다.
“이교수님! 지금 어떤 치료하고 있나요?”
“없네…… 진통제 처방, 링거 통하여 비타민과 영양제 외에는 방법이 없어
시경병원에서 넘어온 사진과 진료카드와 소견서를 읽어보시게나……”
“ 폐암에서 간, 위…그리고 대장 “
이교수가 다른 사진을 넘겨주면서
“권 닥터! 평 비서 오빠가 계속 허리 쪽 통증을 호소 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뼈까지 전이가 된 것 같네…….”
“알겠습니다. 병실에 올라가보고 내려오겠습니다”
3층은 거의 특실로 이루어진 곳 입니다. 이교수방 옆에 있는 304호에 들어갔습니다. 304호에는 부인과 평 오빠 단 두 분만 정적과 고요함 속에서 있었습니다. 평 비서의 소개가 끝난 후, 제가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잠시 부인과 평 비서는 나가 게세요. 남자끼리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분이 나가고 조용한 방에 남자들만 남겨지게 되었다
“ 나이도 저보다 많으시니, 평 형님으로 호칭을 하겠습니다. 형님도 저를 의사보다는 동생으로 보아주시고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의사선생! 호탕한 것이 나와 비슷하데, 그래 마음 편안하게 이야기 하시게”
“평 형님이 이곳에 왜 왔는지는 알고 게시나요?“
웃고 있던 얼굴이 고통의 표정으로 바꾸어지면서 말을 이어갔다.
“암이지. 그것도 상항이 아주 안 좋은…..”
“의사들이 얼마나 남아 있다고 합니까?”
"한 달도 안 된다는군…”
그러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평 형님이 이 세상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들 장가 보내고 죽는 것이 소원이네…..”
“형님 그 소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해보시겠습니까?”
평 형님의 눈에서 광채가 나면서 누어있던 상채를 일으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제가 침대의 키를 올리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번 해보실래요”
“6개월만 살아서 아들 장가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네….. 내가 지금 못 할 것이
무엇이 있겠나.”
“그러데 조건이 있습니다.”
“말하게 무엇이든지 하겠네, 그리고 무엇이든지 먹겠네…”
평형님의 눈에는 회색의 절망의 눈빛에서 생동감이 넘치는 눈빛으로 바꾸어지면서 몸을 앞으로 당기면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 시경병원에서도 공인병원에 이교수도 나에게 모두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방법이 있다면 해야지. 그럼 하구 말구. 아버지로써 아들과 며느리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인데…….”
그러면서 눈에는 눈물이 흘려 내려왔습니다.
“형님! 의사가 하나님 입니까? 아니면 염라대왕 입니까? 자기들이 뭔데 생명을 가지고 결정을합니까? 그런 말에 희망을 포기하지 마세요. 형님! 방법은 간단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형님의 의지와 마음이 중요합니다.”
“ 아우님 이야기 하게. 내 마음 열고 듣겠네.”
“ 첫째 암과 싸우려고 쓰지 마세요, 공생의 개념으로 받아주는 것 입니다. 암에 대한 두려움, 공포를 버리시고 자연스러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노병사”의 개념으로 받아달라고 하는 것 입니다.
둘째 의사에게 의존하지 말아주세요. 몸은 형님 스스로가 고치는 것이지 의사가 고쳐준다는 생각을 철저하게 버리세요.
셋째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하시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부장적인 생각,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모두 버리고 용서해주시고, 용서를 할 것은 하시고, 사랑을 한다는 말을 해주시고, 만나는 사람, 공기, 환경에 감사해주는 4가지 마음을 하루에 20번 이상 해주시었으면 좋겠습니다.
넷째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무조건 움직이는 것 입니다.
위 4가지를 동의를 해준다면 치료방법을 설명을 하겠습니다”
“어렵진 않군 바로 실천을 하겠네….”
“형님 그러나 세번째 내용은 그 냥 하는 것이 안입니다. 가족들에게 쓰는 편지 형태로 해주세요. 부인에게, 아들에게, 새롭게 오는 며느리에게 쓰는 편지 입니다. 형님이 그 동안 가슴속에 담 겨져 있던 말을 글로 써서 용서 할 것을 기록을 하는 것이고, 식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진심의 마음으로 글로 옮기고 서로에게 직접 읽어서 표현을 해주어야 합니다.”
“말로 하면 안 되나….”
“ 안 됩니다. 글로 써야 모든 것이 정리가 되고, 표현이 되는 것 입니다>
“ 내가 지금 와서 못 할 것이 무엇 있겠나! 하겠네…..”
“그러면 가족들에게는 제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무엇을 하면 되나? “
“제 병동으로 가서 간호사에게 유엠(정보 물)과 카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하루에 5L 음용하셔야 합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물과 카드? ….”
잠시 정보물에 대한 이야기와 파동에너지, 공간 에너지에 대한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기정화장치를 드리겠습니다. TV, 핸드폰 충전을 모두 여기를 통해서 해야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 직접 N극 자석을 가지고 올라와서 치료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추나요법을 같이 진행을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절대적으로 항암, 방사능치료를 받으면 안 됩니다. 약을 받으면 화장실에 버리세요. 또한 열이 난다고 해서 해열제, 소염제 약을 주면 모두 버리세요.”
저체온, 저산소에 대한 암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몸에 열이 올라가는 것은 암과면역세포간에 생존권(?)투쟁에 산물인데, 약을 통하여 저 체온 시키면 면역세포의 활동영역을 축소 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 고혈압과 진통제, 양약 표적치료제 (항암제) 먹고 있는데……”
“그것도 5일부터 모두 약을 끊을 것 입니다.”
“그러면 죽으라고 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 없는 삶을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좋네! 아우님이 그렇게 자신 있게 열정을 가지고 말을 하는데, 믿겠네. 그리고 당장부터 열심히 하겠네.”
“열심히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암과 싸우지 마시고, 생각도 하지 마세요. 그들과 공생하는 것입니다. 형님은 아들, 며느리, 부인,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유를 시작 해야 됩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가족과 평 비서를 304호로 들오게 하고, 평 형님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30분 후 아버지의 꿈을 향하여 치료가 시작이 되었다.
⦁ 일일 물 5L이상 응용.
⦁ 비타민 C 메가요법
⦁ 생 감자즙 식사 전 응용(평소에 음식을 짜게 드시기 때문에 몸에 누적된 염화나트륨 제거를 위해 5일간 응용)
⦁ 누워서 하는 명상법과 복식호흡 (유엔카드를 몸에 부착하고 진행) 긴 호흡을 통하여 저산소증을 해결하고자 개발한 호흡법
⦁ 오전, 오후 40분씩 N극 자석요법(김현원교수님 책에 근거하여 창안함)으로 척추와 경추, 요추에 신경세포와 자율신경자극 자석요법 후 20분간 추나요법으로 막힌 혈 자리를 자극함.
⦁ 절식과 소식……육류절대금지, 식용유사용금지, 과자금지… 병원음식 반입 금지
⦁ 홍삼뿌리 20g, 차가 버섯 30g, 상항버섯 20g 끓여서 일일 300~400L 응용
3일째 되는 날 혈압 150에 약을 끊었습니다. 약을 끊어야 말초혈관에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4일째 병원에서 공급하는 양약을 전체 끊었습니다.
5일째 침대에서 일어나서 부자연스러운 보행을 시작했습니다.
6일째 앞 병동에서 제가 있는 병동까지 300m스스로 걸어서 진료 받으러 왔습니다
1일3회 교수님의 전사장치와 반식요법(n극을 이용한)과 명상으로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을 했습니다.
10일째 계단을 혼자서 보행이 가능해졌습니다. 늘 웃는 모습과 생명력이 넘쳐가는 평형님은 우리 병원의 기적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10일만에 걸어 다니니 놀라워했고, 덕분에 저의 물 파랑새는 병원 내에서 명약(?)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15일째 야채생식, 과일 칵테일요법을 진행함
30일째 이 교수의 사진 찍어보자는 제안을 엄청나게 싸우면서 못하게 했습니다. 암이 전이된 상태에서 병원이 좋아하는 PET, X-RAY, MRI는 의미 없기에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날부터 이교수님과 주객이 전도 되어, 물 파랑새 권력이 막강해지기 시작 했다, 이교수님에게 보고하려면 물을 설명을 해주어야 되고, 파동에너지, 대체의학이 자동적으로 설명되니 결국 이교수님도 나에게는도움이 되는 우군이 되어주었습니다.
혈액검사 결과 : 종양마커 수치가 많이 내렸습니다.
백혈구수치 높아졌고. TH1수치(헬퍼T세포)가 20% 이상 나왔습니다. 이것은 면역력이 높아져서 몸에 B세포 T세포 NK세포가 잘 작동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병원에서 얘기한 시한을 넘기고 겨울이 왔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첫 눈 오는 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손에는 정보 물이 담겨있는 유리병을 들고 말 입니다. 내년 2월23일에 있을 아들 결혼식에 참가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말입니다.
2013년 1월 병원에서 신정휴가를 반납하고, 치료를 계속하였습니다.
2013년 1월15일 PET, MRI, 혈액검사를 통하여 암이 작아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2013년 1월20일 몸이 충분히 좋아졌다고 생각한 팽 형님이 퇴원을 요구했습니다. 아들 장가보내려면 많은 것을 준비를 해야 된다고……
저는 진료실과 304호실을 오고 가면서 만류했습니다.
“평 형님 지금 암이 작아지고 있지만 치유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가 상황이 역전되면 암이라는 놈이 내성이 생기면, 현재 치료방법이 먹히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퇴원은 안 됩니다.”
“아우님! 이정도 건강이면 한 달은 충분히 버티고, 내 소원을 풀 수가 있네, 걱정하지 마시게….”
이틀간 논쟁이 했지만 설득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평 형님, 3가지만 약속을 해주세요, 그러면 퇴원에 싸인하겠습니다”
“무엇이든지 말을 하게나, 내가 지금까지 자네 말 잘 듣지 않았는가?
“첫째 건강 해졌다고 해서, 무리하게 일과 스트레스 받는 일은 하지 않고, 긍정마인드를 가진다.
둘째 카드, 물을 가지고 다니면서 응용한다.
셋째 모든 약을 저에게 먼저 확인해야 한다.
넷째 식당에 가서 절대로 식사하지 말 것. 술 마시지 말 것.부교감신경 활성화를 위해 9시전 취침.
(중국은 결혼식 전에 식사 초대가 많습니다. 그리고 농촌에서 결혼식은 보통 2~3일을 합니다. 거의 한 달간 친구, 친척, 사돈사람들을 만나서 돌아가면서 식당으로 초대 하여 잔치 하는 것을 하는 것 장안에 결혼 전통관례입니다. 이러한 문화, 식사 습성을 알기 때문에 제가 걱정한 것입니다.)
다섯째 음식요법, 과일요법, 운동요법, 특히 명상을 통하여 마음 다스리기를 적극적으로 해줄 것. 마지막으로 열과 감기에 걸렸다고 약을 드시면 안 됩니다. 암은 저체온와 저산소를 좋아하기 때문에 해열제, 소염제를 먹으면 안 된 것을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방종양증후군(PARANEOPLASTIC SYMODROME)에 대한 보충설명을 해주었다.
“형님…절대적으로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전화를 하시고, 일반 병원에서 약을 제조해서 드시면 안됩니다. 정보 물 잘 드시고, 음식은 제가 이야기한 데로 하시고, 과일 칵테일법, 요로법, 반식요법을 꼭 지켜주시지는 조건으로 퇴원에 싸인하겠습니다”
“결혼식 때 봄세”
즐거운 만남을 기대하고 헤어졌습니다. 형님은 23일 결혼식을 참가하였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평형님에게 절을 했을 때, 평형님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이고, 행복한 결혼식을 마쳤습니다. 그후 평형님으로 부터 소식 없이 두 달이 흘려 서안에는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이 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슬픈 비보가 날려 왔습니다. 형님이 운명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편지 한 장이 배달이 되었습니다.
“아우님! 자네를 만나서 소원을 풀고 가게 되어서 고맙네.
이제는 저 하늘나라에 가서도 편안하게 웃으면서 보낼 것 같으니 고맙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물 이야기 많이 해주고 강하게 지내다가 천천히 오시게나……
훗날 보세….”
오늘처럼 눈이 오는 날에는 평 형님이 많이 그리워지는 날 입니다.
다음에는 뇌출혈로 인한 반신마비를 극복사례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암치유에 참고할 내용도 있는 듯하여 퍼왔습니다...
좋은 내용입니다. 잘 봤습니다.
흔히 중국에서 비슷한 방법을 시행하는데, 사람에 따라 차이가 많다는 것도 살펴야합니다.
특히 물 5리터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분은 암은 온몸에 퍼져 있지만 먹고 어느정도 활동할 수 있는 상태이므로 암 크기와 전이 상태로만 판단하는 말기로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물은 하루 2리터 정도가 경험상 더 적당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암이 중하더라도 몸 상태가 어느정도 받침이 된다면 이분처럼 생명 연장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서안(시안)의 닥터 권님 참 훌류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모든환자에게 권닥터처럼 의사들이 대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할수있다는생각으로 하면 불가능이란 없다는걸 느끼고 갑니다.
중국병원에서 일어난 일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군요. 참고할 내용만 참고하시고~~정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 합니다. 내용을 체험담쪽으로 옮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