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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683) - 제7차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기행록 3
1. 가족처럼 다정한 발걸음(용인시청-죽산 37km)
4월 3일(수). 걷기에 쾌적한 날씨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용인시청에 도착하니 7시 40분, 준비체조로 몸을 풀고 8시부터 걷기에 나선다. 출발에 앞서 다카하시 씨가 선창하는 GO, GO, LETS GO를 힘차게 외쳤다. 선상규 회장이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우리가 출발하는 날, 장정길 대원의 아들이 세계적 기업의 아시아지역 부사장으로 승진하였다는 내용이다. 일행 모두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일행 모두 고락을 함께하는 한 가족, 오늘도 유쾌하고 씩씩하게 걷자.
전날에 이어 경찰이 에스코트, 한 시간여 걸으니 복잡한 시가지를 벗어난다. 길가의 주유소에서 잠시 쉬는 중 주유소 주인이 짜증을 낸다. 45명의 일행이 한꺼번에 몰리니 신경이 쓰였을까, 이를 지켜보던 임은 씨가 부끄럽다며 안타까운 표정이다. 조금 더 너그럽고 친절하면 좋을 텐 데.
주유소 지나서 이내 시골길로 접어든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한적한 도로 양편으로 풍요로운 논밭이 펼쳐지고 운치 있게 자란 노송이 목가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벌써 다섯 번째 걷는 길인데 어떤 풍광은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다. 감흥이 올라 옆에 걷는 엔요 씨와 손을 잡고 고향의 봄을 부르며 나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오전 10시 반, 양지면사무소에 이르니 여러 차례 함께 걸었던 손형권∙장정윤 부부가 두 손을 번쩍 들어 일행을 반긴다. 떡과 과일, 음료 등을 푸짐히 싸들고. 오랜 친구들을 격려하러 찾아온 친절과 정성이 고맙다. 이들과는 자주 메일과 카톡을 주고받는 사이, 오늘의 행적을 포함한 걷기 리포트를 계속 보내 주리라.
양지면사무소에서 휴식 후 기념촬영
20여분 휴식 후 양지면사무소를 출발하여 큰길에 들어선다. 잠시 걸어가니 길 건너편으로 국내 굴지 물류회사의 신축창고가 눈에 띤다. 2년 전에는 못 보던 건물, 이처럼 크고 산뜻한 건물들이 곳곳에 새로 들어선다. 한 시간쯤 걸으니 점심장소, 매번 들르는 음식점의 이름이 운치 있다.(00꽃 필무렵) 메뉴는 메밀냉면에 유부초밥을 곁들였다. 20여일 서울-부산 구간을 걷는 동안 60여 끼니를 한 번도 겹치는 메뉴 없이 음식점 고르느라 신경 많이 썼다는 선상규 회장의 설명이다. 세심한 부분까지 고려하는 노고에 감사.
오후 걷기 코스가 오전보다 더 길다. 13시에 출발, 발걸음이 빨라진다. 잠시 후 이른 곳은 좌향초등학교 앞, 옛 좌찬 역참이 있던 자리라는 설명이다. 두 시간여 열심히 걸어 백암면사무소에서 휴식, 주민들이 길게 늘어서 있어 무슨 일인가 물으니 묘목을 나눠주는 중이란다. 내일모래가 식목일, 자치단체들이 주민들의 생활과 밀착한 현장을 살펴보누나. 면장이 음료를 들고 찾아와 인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입구에 새로 들어선 다목적 체육관이 듬직하다. 전국이 모두 잘 사는 고장이어라.
오후 3시에 백암면사무소를 출발하여 넓은 들판 지나 물이 잘 흐르는 수로의 공터에서 노천 휴게, 화장실 대신 인근의 숲속에서 용무를 마치고 오혜란∙영란 자매가 가져온 막걸리로 입가심을 하며 마지막 휴식을 취하였다. 이들은 자매 최초로 3∙1절 무박 120여km를 완주하였고 오전에 만난 손형권∙장정윤 씨는 부부 최초 120km 완주자다. 그 기운 받아 모두들 건강하게 걸으시라.
풍요로운 용인 들판을 지나다
오후 5시경 수로를 출발하여 20여분 후 큰길에 들어서니 용인시와 안성시의 경계지점에 이른다. 이곳까지 에스코트 해준 용인경찰과 작별하고 다리 건너 안성시 죽산면에 들어선다. 여러 마을 거쳐 30여분 걸으니 4차선 간선도로 옆의 죽산면 비립거리 앞 찜질방과 식당을 겸한 리조트에 이른다. 3일차 숙박소, 잔디밭에서 체조로 몸을 풀고 사흘간 함께 걸은 백희선∙오혜란∙오영란 씨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다음 기회에 또 만납시다.
종일 걸은 거리는 37km. 강행군을 끝내고 숙소에 여장을 푼 후 대욕탕에서 몸을 씻으니 한결 개운하다. 7시부터 저녁식사, 생일을 맞은 임은 씨의 생일축하를 겸하였다. Happy Birthday To You를 함께 부르고 케이크를 자르며! 3일간 100여km를 완주하신 여러분, 따끈한 방에서 편히 쉬고 내일도 힘차게 걸읍시다.
리조트에 도착하여 몸 풀기하는 모습
2. 경기도 영남길 끝내고 충청북도로(죽산 – 생극 23km)
4월 4일(목), 리조트 창밖으로 비치는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이른 새벽에 욕탕에 들러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근다. 걷기 전 따뜻한 물로 씻으면 근육의 피로가 덜하다는 말을 수긍하며 기회가 닿는 대로 그렇게 한다. 아침 메뉴는 미역국 백반, 대접에 수북하게 담긴 국거리가 부드럽다.
오전 7시 40분에 잔디정원에서 몸을 풀고 숙소 건너편의 죽주산성 입구로 향하였다. 산성 입구에는 비립거리(비석이 서 있는 거리)라 적힌 팻말과 죽주산성의 역사를 새긴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내판의 요지, ‘해발 372미터의 비봉산 아래 있는 죽주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성하여 고려 때 몽고군의 침략에 맞서 싸웠고 임진왜란 때도 왜군과 대치한 싸움터로 외침의 수난을 극복한 유서 깊은 곳이다.’
주변을 살피니 입구의 서류함에 ‘동아시아 문화허브 경기도 영남길’이라는 팸플릿이 들어 있다. 사흘간 내내 영남대로를 걸으면서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을 일별하며 지나온 길들의 역사적 의미를 일깬다. 이를 요약, ‘영남대로와 영남길은 조선시대에 사용된 주요 간선도로의 하나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최단거리의 노선이다. 경기도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성남, 용인, 안성, 이천을 경유하여 충주, 문경, 경주를 지난다. 경기도는 영남대로의 옛 노선을 연구 고증하고 그 원형을 바탕으로 역사문화 도보탐방로로서 성남, 용인, 안성, 이천을 잇는 영남길 116km를 새롭게 개통하였다.’
이를 새기며 오전 8시에 산성입구를 출발하여 4일째 걷기에 나섰다. 10여분 걸으니 매산리 문화재마을, 그곳에서 경기도유형문화재 제37호인 석불입상을 살피며 묵상에 잠긴다. 56억년 미래에 도래할 미륵을 상징한다는 무한시공을 응시하며.
억겁을 묵상한 매산리 석불입상을 배경으로
이곳에서 한 시간여 걸어 도착한 곳은 죽산성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들의 영혼을 달래려 조성한 성지다. 엔도 회장이 묻는다. 당시에 천주교도들이 심한 탄압을 받았는가. 비석에 적힌 사연을 들어 25명의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와 더 많은 무명의 성도들이 순교하였다고 설명한 후 내가 느낀 소감을 덧붙였다. 당시는 처참하였지만 지금은 너무나 평화롭고 안온한 기운이 감도는 낙원처럼 느껴진다고. 힘들게 살다간 초로인생들의 사후도 이처럼 평온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죽산 성지 지나 한 시간 여 걸으니 큰 바위들이 널려 있다는 장암마을을 지난다. 길가의 조용한 음식점이 휴식처, 걷는 동안 지원을 맡은 김월호 이사가 따끈한 찐빵을 한 개씩 나눠준다. 쉴 때마다 요긴한 간식을 준비하느라 노고가 많다.
큰바위들이 널려 있다는 장암마을을 지나며
10시 반에 다시 걷기, 한 시간 쯤 걸어 안성군 일죽면을 지나 이천군 율면에 들어선다. 마을길로 접어드니 산양리, 어느 공장입구에 세워진 산양대장군∙산양여장군의 장승모습이 익살스럽고 석교촌과 산양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건너니 돌다리가 있던 석교촌 영남길이라 적은 현판에 효심 깊은 장수아들의 사연이 깃든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내용인즉 ‘석교촌에는 안 씨들이 많이 살았는데, 어느 날 석교촌에 사는 안 씨 남자가 젊은 아내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몇 달 후, 젊은 아내는 건장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는 자라면서 점차 몸집이 강대하고 초인적인 힘을 지닌 장사壯士가 되었다. 그러던 중, 안 장사는 어머니가 밤중에 몰래 외출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개울건너 사는 남자와 눈이 맞은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조용히 어머니를 따라가 보았는데 얼음장처럼 시린 개울을 맨발로 건너고 있었다. 효성이 지극한 안 장사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산위에서 큰 돌을 모아다가 다리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 다리를 안 장사 다리라 하였고, 장사가 태어난 마을을 석교촌石橋村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전국의 시군마다 이런 이야기들이 널려 있으리라.
석교촌 건너 야산과 들판을 지나는 동안 깃발을 들었다. 깃발 들고 걸으며 2년 전에 타계한 오시가와 코조 씨가 떠오른다. 몸이 불편한데도 서울-도쿄 구간을 기수노릇하며 꿋꿋이 걷던 모습과 함께. 유명을 달리한 걷기 동료들의 명복을 빈다.
노래도 부르며 열심히 걸어 12시 50분에 안성군 율면과 음성군 생극면을 잇는 도로변의 음식점에 도착, 메뉴는 갈비탕이다. 시장한 탓일까, 여러 식탁에서 김치와 깍두기의 추가주문이 빗발친다. 일본회원들은 한국식당의 무한리필 반찬제공을 좋아한다.
1시 40분에 오후 걷기, 10여분 걸으니 나흘간 걸은 경기도를 벗어나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들어선다. 목적지인 생극면사무소까지는 5km 남짓, 오전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생기가 돈다. 30여분 걸어 음성 큰바위 얼굴 테마파크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며 토마토로 입가심을 하는 사이, 지난번에 이곳을 지나면서도 멈추지 않아 궁금하던 큰바위 얼굴 테마파크의 입구로 다가섰다. 설립자가 집념을 가지고 십 수 년에 걸쳐 세계 곳곳의 자료와 현지답사를 거쳐 준비한 석상을 중심으로 20여 곳의 전시관을 마련하였다는 내부를 기회 있으면 다시 찾으리라.
큰 도로 따라 작은 고개를 넘으니 오밀조밀한 생극면 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는 길목에 십리벚꽃길이라 적힌 하천이 흐른다. 출발할 때 서울에서 피기 시작한 벚꽃이 아직도 망울을 터트리지 않아서 아쉽다. 만개하면 아름다운 풍광이리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십리벚꽃길 천변을 지나는 일행
목적지인 면사무소에 도착하니 오후 3시, 뒤따라 들어오는 이와 손뼉을 마주치며 4일째 걷기를 마무리하였다. 걸은 거리는 23km, 가볍게 몸을 풀고 숙소가 있는 금왕(무극)까지 4명씩 짝을 맞춰 택시로 이동하였다. 숙소에 도착 후 나흘간 함께 걸었던 홍순언∙강호갑 회원과 나는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귀로에 올랐다. 두 분은 서울로 나는 청주로. 시외버스를 타고 청주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가깝다. 동호인 여러분, 그간 즐거웠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걸으십시오. 며칠 후 뵙겠습니다.
첫댓글 집사님 안녕하세요? 인생은 아름다워 제목처럼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7차네요. 참으로 대단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체력이 대단하십니다,
건강하세요
정이 넘치는 동호인들이시네요.
정겨운 풍경, 감사합니다. 걸으며 기행록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