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26. 흙날
[텃밭과 시설의 날]
8시 텃밭 오랜만이다. 일찍 가서 삽을 꺼내놓고 기다리니 도윤아버지가 왔다. 늘 시설 일을 도맡아 하시는 분이다. 8시가 되니 채원아버지가 커피랑 물을 들고 오셨다. 과거보다 텃밭 규모가 줄었지만 조금씩 세 군데 텃밭이 있다. 오늘은 열리는어린이집쪽 텃밭과 숲속놀이터 텃밭을 모두 정리하고 밭을 되집어야 한다. 그래서 교사들이 두 곳 텃밭 상황과 위치, 일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나 혼자다. 두 곳에서 동시에 일을 하면 나을 듯 해서 마을에 사는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는데 통화가 안된다. 아침 일찍이고 미리 일 나누기를 한 건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 텃밭 일은 교사들이 나서서 같이 해야 하는 일이라 미리 챙기지 못한 후과다. 다 내마음 같지 않은 사정이 있겠지. 오신 분들과 열리는어린이집쪽 텃밭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정말 밀림이 따로 없다. 둘레에서 밀림을 만든 돼지감자와 안에서 밀림을 만든 풀이 정글을 만들어냈다. 밭 가장자리부터 낫으로 치고 풀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땀이 뻘뻘 난다. 그래도 아침 일찍이라 더 낫다 싶지만 움직인만큼 땀이 나이 정말 비오듯 흐른다. 열사람이 뿜어내는 열기가 뜨겁다. 모두 밀림에서 길을 내는 사람들처럼 일을 잘 한다. 함께 땀흘리는 교육공동체살이 재미는 텃밭에서도 빛이 난다. 덕분에 안정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다. 나는 고구마밭쪽에서 햇볕을 가리는 돼지감자 밀림을 잘라내고 밑에 숨어있는 거름을 꺼냈다. 올해 고구마 농사는 지난해보다 낫겠다. 지난해는 어린이집에서 풀이라고 생각하고 고구마도 잘라버리는 틈에 수확량이 크게 줄었었다. 사람 손이 무섭다고 어느새 밀림이 텃밭으로 바뀌어갔다. 거름을 넣고 뒤집기까지 한 시간 넘게 작업을 하니 가을농사 채비가 되었다. 정리하면서 나온 고추와 지지대를 들고 학교로 돌아와 숲속 놀이터에서 쉬었다. 다들 땀으로 목욕했다. 배고플 때쯤 시설일꾼 도윤어머니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가져오셔서 다들 행복했다. 숲속 놀이터 그늘이 정말 고마운 때다.
숲속놀이터 텃밭은 규모가 작으니 금세 끝날 듯 한데 일을 해보면 또 다르다. 풀을 모두 잡고, 거름을 날라와 거름을 넣고 뒤집기까지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사람이 더 많으면 더 일찍 끝날 수도 있지만 오늘 오신 분들에게는 전체로 2시간 30분 정말 땀흘리며 일했다. 숲속놀이터 화단 풀도 모두 베어내고 뽑았다. 내가 가치지기와 풀 잡기로 돌보고 있는 머루밭 머루가 잘 익어간다. 올해 거둔 뒤에는 가지치기와 솎아주기를 제데로 해서 머루포도로 키워보리라. 토란이 크게 잘 자랐다. 토란대와 토란국 생각에 침이 고인다. 개학하면 머루를 따서 머루청을 담아야겠다.
10시 30분쯤 텃밭 일을 모두 마쳤다. 이렇게 땀흘린 덕분에 우리 어린이들이 개학해서 가을농사 공부를 할 수 있다. 어린이 농부들이 고마워 하며 가을 채소를 심도록 이야기를 나눠야 할 몫이 교사에게 있다. 과거 텃밭이 많을 때에는 어린이농부들과 교사들이 가까운 텃밭은 거름넣고 뒤집는 일을 거의 다하고, 부모님들은 큰 텃밭일과 주말이나 방학때 손길이 미치지 못할 때 일을 했다. 가깝게 양재천 텃밭이 있을 때는 코로나 시기에도 부모님과 교사들이 같이 땀흘린 기억이 있다. 어쨌든 과거보다 텃밭 규모가 줄었고, 어린이 농부와 교사 일도 줄어간다. 어린이 농부들이 텃밭 농사와 일놀이 교육을 충분하고 깊하려게 면 그만한 땀과 일놀이교육의 원칙을 새길 필요가 있겠다. 교사와 부모가 함께 땀흘리며 교육공동체 삶을 가꾸는 재미와 같이 어린이농부와 교사들도 밭 일구는 것부터 거두고 뒷정리하는 것까지 할 수 있도록 교육활동 밑그림과 연수가 깊어져야겠다.
[개학맞이 교사회의와 모두모임]
11시에 개학 점검 교사회의가 있어 서둘러 집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학교로 다시 왔다. 병가를 마치고 복귀한 선생님이 있어 여섯 사람이 모이는 회의가 한참 된 것처럼 새롭다. 개학맞이 교사회의는 가을겨울학기 모둠마다 밑그림을 다 같이 살피고 도움말을 주고받으며 한 번 교육밑그림을 완성한다. 모둠마다 알찬 교육밑그림으로 가을 겨울학기가 채워져 있다.
모둠마다 살피는데 첫 차례는 깊은샘 교육밑그림이다. 전체로도 중요한 학사일정이라 가을 자연속학교 채비가 큰 논의다. 가을 졸업여행 자연속학교는 본디 부모님들과 함께 하는 지리산 종주를 바탕으로 6학년 청소년들과 교사가 만들어가는 여행이 섞여있다. 그래서 지리산 종주 3박 4일 더하기 며칠의 여행을 기본 골격으로 한다. 그런데 올해는 모둠 선생님의 처지를 살펴 올해만 지리산 종주를 가지 않고 특별하게 제주도로 방향을 정했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과 청소년이 만들어가는 여행 성격이 동시에 들어있고, 11명이 가는 터라 기간과 자원교사, 예산까지 살필 게 많다. 모둠에서 알아서 채비하는 것도 있지만 전체 자연속학교 활동이라 기획안을 갖고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제주도는 교사와 졸업하는 학생들이 겨울에 떠나는 마지막 졸업여행지로도 가장 많이 갔고, 자람여행이나 졸업여행으로도 자주 간 곳이다. 그런데 부모참여와 학생자치의 두 가지 성격이 잘 실현되도록 채비하려면 교사 채비부터 준비모임까지 미리 살필 게 많다. 그렇기에 여름방학 평가회 때 많은 논의를 통해 제주도 자연속학교에 대한 방향을 잡아놓았는데 살펴야 할 지점이 보여 다시 처음부터 방향을 잡는 이야기가 제안되었다. 당장 6학년 학부모님들이 오늘 모두모임 마치고 준비모임을 가질 예정이라 교사회에서 뚜렷하게 방향을 잡아야 하니 꽤 많은 시간 살피게 되었다. 세 군 데로 나눠 가는 자연속학교이고, 학부모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졸업여행 자연속학교이니 세 군데로 나눠가야 하는 교사회 형편과 처지가 중요하다. 결론은 예정대로 제주도로 방향을 잡고, 학부모 참여와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자연속학교 기본 골격을 잘 살려가기로 했다. 과정에서 학부모 자원교사 준비모임을 따로 갖고 교장이 함께 졸업여행 자연속학교 채비를 돕는다. 교사회에서 예산과 일정도 함께 더 살피고 예상되는 것까지 감안해서 다음주 본격으로 기획안을 살피기로 했다.
5학년 자람여행은 춘천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방향을 잡았다. 담임교사가 걷기 여행이 어려운 처지라 학부모님들이 자전거여행을 뒷받침하는 지원을 해주기로 하고 일정도 조절했다. 1-4학년 하동 자연속학교는 넓은 운동장과 자고 먹고 씻는 시설이 안정된 학생야영수련원으로 잠집을 옮기는 터라 어린이들이 더 좋아하겠다. 다음 주 자연속학교 기획안을 자세히 살펴 채비를 단단히 하는 일만 남았다. 학교를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는 활동은 아무래도 챙길 게 많다. 무엇보다도 5학년과 6학년처럼 학년 자연속학교는 담임교사 처지와 형편, 마음이 아주 중요하다. 또한 학년에서 가는 자연속학교지만 학년이 알아서 기획하는 성격과 전체 학사일정으로 잡아내는 자연속학교 성격이 더해지는 것이니 당연히 교사회에서 함께 살피고 도와야 한다. 더욱이 부모자원교사의 도움으로 완성되어갈 수 밖에 없는 여행 자연속학교는 교사를 돕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맞춰가는 게 가장 중요한 태도이다. 자원교사가 담임교사를 잘 돕는 전통은 맑은샘교육공동체의 힘이다. 자원교사의 힘에 의지하더라도 아이들과 더 재미나고 특별한 교육활동으로 삶을 가꾸려는 핵심 주체는 교사이다. 더하여 몸이 아픈 일을 겪고 난 뒤 온 힘을 다해 교육활동을 하는 교사들을 어떻게 잘 도울 것인가가 교육공동체의 뒷받침이고, 교사는 도움이 필요한 지점을 뚜렷하게 밝혀 뒷받침을 받을 필요가 있겠다. 맑은샘교육공동체 소통과 문화처럼 교사를 돕는 부모자원교사의 힘으로 자연속학교는 완성되리라 믿는다.
1시부터 시설의 날 청소가 시작되었다. 방학 뒤 개학할 때마다 시설의 날을 열어 학교 곳곳을 살피는 일을 하는게 비인가 등록대안교육기관 재정 형편이고, 민간의 힘으로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교육공동체의 즐거움이다. 이번에는 바깥 시설지원금 덕분에 부엌살림 가운데 상하부장을 크게 바꾸었다. 저절로 새로운 급식정책으로 모시는 급식선생님 맞이가 되었다. 미리 알아봐주고 설치할 때마다 나와서 살펴주신 시설일꾼 도윤어머니가 정말 애쓰셨다. 맑은샘 식구들이 곳곳에서 청소를 하는 동안 교사회는 개학맞이 회의를 마치고 함께 손을 보탰다. 일을 나눠 교사실과 층계 교구실, 마당 정리, 부엌살림 일을 했다. 교사와 부모가 함께 땀흘려 일하는 전통은 교육공동체의 자랑이다.
4시부터 시작하기로 한 모두모임(총회)는 더 일할 게 남아서 5시에 시작했다. 상반기 모도무임은 큰 의결사항이 없는 터라 보고와 격려 자리이다. 급식정책의 변화는 문구만 의결하는 것이라 어려움이 없고, 상반기 회계 또한 추가로 의결할 건 없고 하반기 재정 밑그림을 확인하고 채비하는 것이라 가을겨울학기에 함께 애쓸 일이다.
모두모임에서 교장은 봄여름학기 교육 되돌아보기와 가을겨울학기 교육밑그림을 발표하고, 덴마크 연수 보고를 하기로 되어있어서 두 개의 발표자료ppt를 만드느라 일주일 전부터 신경을 썼다. 덴마크 연수를 다녀온 뒤 여름학기에 임시담임을 맡으면서부터는 차분히 연수를 정리할 틈과 여력이 전혀 나지 않아, 여름방학에서야 비로소 사진을 정리하고 보고서를 쓸 채비를 했다. 그나마 영상과 사진 정리를 한 덕분에 이번에 덴마크 연수보고를 할 수 있다. 덴마크에서 보낸 한 달 동안 무엇을 보고 듣고 왔는지 교사회와 교육공동체 식구들에게 가장 먼저 말하고 싶었는데 임시 담임을 맡는 비상 상황으로 그러지 못했던 아쉬움을 모두모임에서 덜어보고 싶어 제안을 했고 30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개학 맞이 교사회의를 하다 보니 연수 보고 보다 교육공동체 살이의 부모와 교사 관계가 더 중요하겠다 판단되어 연수 보고를 생략하고 되돌아보기와 밑그림 이야기에 시간을 다 썼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핵심은 단순하다.
“봄 여름학기 맑은샘학교 교육활동은 알차고 풍부했고 교육공동체의 뒷받침은 대단했다. 임시담임 체제라는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는 힘은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가꾼 교육공동체 힘이었다. 그런데 교육공동체의 속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려운 지점들을 느낄 수 있다. 구체로는 관계다. 우리는 부모와 교사가 함께 교육공동체를 가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육공동체에서 교사와 부모가 사이가 좋을 때 행복한 교육은 일어난다. 교사가 행복해야 행복의 기운이 교육 속에 드러난다. 교육공동체는 교육을 인연으로 만난 곳이니 학교에서 학생들과 살아가는 교사 처지와 교사 마음을 살펴서 중심을 잡아가도록 교육공동체가 뒷받침해야 한다. 교사가 부족하고 미숙하더라도 학부모가 교사의 틈을 채워주고 굳건한 믿음과 지지를 보내주는 것이야말로 교육공동체의 진정한 힘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교육공동체라도 교사와 부모 사이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과정에서 슬기롭게 풀어내면 전통과 자부심, 문화로 쌓인다. 교사와 부모 모두가 서로 처지를 한 번 더 생각하고 이해하고 부족함을 서로 메꾸도록 애써야 한다. 그것이 어린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태도이자 자세이다. 교사들은 교육공동체 속에서 교사회와 부모와 함께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성찰하는 삶이 교사의 운명이고, 아이들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교사임을 끊임없이 깨닫도록 공부하고 연수하고 배우고 또 배우려는 열정이 살아있도록 해야 한다. 스스로 좋아 선택한 일에는 열정과 헌신이 나오고, 무한책임으로 이어진다. 함께 열정과 헌신, 책임이 함께 살아있는 교육공동체를 만들어가자.”
교육공동체살이 일반론일 수 도 있지만 학부모들은 교사들이 부족하더라도 교사 처지에서 이해하고 교사들을 도와달라는 것이고, 교사들은 어린이들을 위해 학부모 처지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스스로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다듬고 관계를 풀어나가 달라는 부탁인 셈이다. 교육공동체의 소통은 구체 사건과 구체 관계에서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이니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고 애쓰려는 마음을 표현하는 거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싶다. 언제나 그렇듯 맑은샘교육공동체의 힘을 믿기에 가을겨울학기에도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리라 믿는다.
모두모임까지 마치고 뒤풀이를 했다. 뒤풀이는 많은 분들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아침부터 밤까지 긴 하루지만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해서 고마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