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알아가기 시리즈⑮
거기 계시는 하나님
참고말씀: 창20:2,3,7; 39:1,2,20,21; 겔10:18,19; 11:23; 44:4; 9:23; 10:12; 마1:23; 계21:3
읽을말씀: 겔48:35 하
주제말씀: 겔48:35 하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첫째,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48:35 하)
오늘 우리가 배울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여호와 삼마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48:35 하) 왜 이 이름을 배워야 합니까?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비전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비전이 담겨 있습니까? 본문을 통해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지금까지의 바벨론 포로 생활 25년 동안에, 어떤 큰 두 환상을 보았습니까? 먼저는,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가시는 환상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눈 앞의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겔10:18,19) /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에서부터 올라가 성읍 동쪽 산에 머무르고.”(겔11:23)
둘째는, 다시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맺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성전으로 돌아오시는 환상입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성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겔44:4)
돌아오신 후에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자기 백성들 가운데 계시고 다시는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 그리하십니까? 이스라엘의 구원이 완성된 날, 곧 하나님의 나라의 완전한 도래한 날 이후로 ‘영원히’ 그리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회복만을 보여준 환상입니까? 아닙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완성될 ‘임마누엘의 비전’ 역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모든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게 되고, 모든 백성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그런 비전 말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계21:3).
그렇다면 이 임마누엘 비전을 종말론적인 측면에서만 생각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임마누엘의 역사는 2천 여 년 전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을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으며,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지금도 진행 중에 있으며, 마지막 때에 최종적으로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임마누엘의 비전은 무엇과 맞닿아 있습니까? 여호와 삼마입니다. 또한 어디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까? 여호와 삼마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은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의 그 곳, 곧 바로 거기에 계심을 확신할 때 비로소 깨닫고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늘 우리의 그 자리, 곧 거기 계시는 분임을 깨닫고, 이 같은 확신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 늘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48:35 하)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으면, 이제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확신들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까?
① 하나님께서 거기, 곧 우리의 고난의 현장 속에 계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내가 이처럼 고통당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디 계시며 왜 아니 보이시는 것입니까?’ 라고 탄식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나도 거기에 있었단다. 네가 고난당하는 바로 그곳에 나도 있었단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창39:1,2) /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창39:20,21)
② 하나님께서 거기, 곧 우리의 실패와 넘어짐의 자리에 계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실패하고 넘어질 때마다 ‘주님! 또 넘어졌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했습니다. 내가 실패하고 넘어질 때 주님은 어디 계셨나요? 넘어져서 아프다고 울고 있을 때, 실패해서 속상하다고 고개 숙이고 있을 때 왜 내 곁에 계시지 않았나요?’라고 푸념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나도 거기에 있었단다. 네가 실패하고 넘어졌던 바로 그곳에 나도 있었단다.’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창20:2,3) /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창20:7)
③ 하나님께서 거기, 곧 우리의 기도의 자리에 계셨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랜 기도제목의 응답이 더디고 우리의 간절한 외침이 외면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 내가 기도할 때 어디 계셨나요? 내 기도를 들으시기는 하셨나요? 왜 내 기도를 외면하시고 또 응답하시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절규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나도 거기에 있었단다. 네 기도의 자리에 있었고, 네가 절규하던 바로 그곳에 나도 있었단다.’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단9:23 상) /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 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단10:12)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여호와 삼마, 곧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으면, 이제 하나님께서 ‘거기’, 곧 우리의 고난의 현장 속에 계시고, 하나님께서 ‘거기’, 곧 우리의 실패와 넘어짐의 자리에 계시며, 하나님께서 ‘거기’, 곧 우리의 기도의 자리에 계셨음을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