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을 걷다 보면 미국대사관과 똑같은 건물이 보입니다. 이 건물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한국 근ㆍ현대사를 주제로 특별전시와 상설전시를 진행 중입니다. 이런 박물관 주제와 걸맞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한국 현대사를 품고 있는데요.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는 이 건물은 6ㆍ25전쟁 이후 USOM(미 대외원조처)의 원조로 1961년에 미 대사관과 쌍둥이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그 후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국가재건최고회의'건물로 쓰였습니다. 이후 1963년 경제기획원과 1968년 문화공보부를 거쳐 2010년까지 이 건물은 '문화체육관광부' 청사로 사용됐습니다. 이 후 2012년 이 건물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현재까지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1950 흥남, 그 해 겨울'이라는 주제로 2월 28일까지 특별기획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특별기획전 '1950 흥남, 그해 겨울'
특별기획전에서는 흥남철수작전 이전에 진행된 '장진호'전투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장진호 전투는 11월에 중공군이 2차 공세를 감행하자 함경도에 있던 미 해병 1사단이 중공군 9병 단의 포위망을 뚫고 장진호에서 탈출했던 전투입니다. 이후 1950년 12월 15일부터 23일까지 흥남철수작전이 진행됩니다. 흥남철수작전은 10만 명이 넘는 병력과 17,500대의 각종 차량, 35만 톤의 물자를 함정으로 완전하게 철수시켰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한국군 지휘관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남행을 결심한 피란민 98,000명까지 포함돼 미군과 국군 피란민 모두를 안전하게 남한으로 이송시킬 수 있었습니다.
- 크리스마스의 기적
여기서 우리가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았듯이 피란민을 가득 채운 배는 '메러디스 빅토리'호입니다. 이 배는 원래 화물선으로 원래 승선정원은 약 60명이었습니다. 이 배의 선장 라루는 군수물자를 포기하고 가능한 한 많은 피란민을 태우라고 지시했고, 22일 저녁에 시작된 피란민 승선은 23일 오전까지 계속돼 약 14,000명의 피란민을 태워 26일 거제에 도착합니다. 사람들은 이 항해를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부르며 2004년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됩니다.
<한봉학과 관련된 사진 및 문서들>
- 기적을 가능하게 한 인물, 한봉학과 포니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피란민을 태울 수 있게 한 것은 '한봉학'과 '포니'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봉학(1922~2007)은 당시 미 10군단의 고문관으로서 미 10군단 사령관인 알몬드 소장에게 민간인 철수를 설득한 인물입니다. 현봉학은 흥남부두를 가득 메운 피란민을 보면서 남겨진 주민들에 대한 중공군의 박해를 걱정했습니다. 이에 그는 피란민 구출에 나섰고 이런 현봉학의 모습을 본 미 10군단의 참모부장이자 탑재참모인 포니가 합세해 피란민을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현봉학과 포니가 주고받은 편지들>
- 굳세어라 금순아, 그리고 국제시장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이 노래는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의 노랫말입니다. 노랫말에 나오는 국제시장은 흥남에서 탈출한 피란민이 가득 모여들었는데요. 이 국제시장에서 피란민들은 일터를 잡고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영도다리는 북에서 내려온 피란민으로 가득 찼는데요. 피란민은 헤어질 때 '부산의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부산 영도다리는 가족을 찾는 사람과 벽보가 많았습니다. 현재 영도다리 인근에 점집들이 가득 들어차게 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피란민의 행렬>
- 흥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흥남은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을 통해 국군과 미군이 밀려 남으로 탈출해야 했습니다. 그 후 크고 작은 전투가 지속돼 현재의 휴전선을 가지고 '정전'이 아닌 '휴전' 상태인 대한민국과 북한. 흥남은 우리에게 전쟁이 일어나면 민간인 또한 큰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르네상스 시기 네덜란드의 학자 에라스뮈스는 '경험하지 못한 자에게 전쟁은 매력적으로 보인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전쟁이 없는 평화, 그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탄탄한 안보가 필요하겠지요.
서울 광화문을 걷다 보면 미국대사관과 똑같은 건물이 보입니다. 이 건물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한국 근ㆍ현대사를 주제로 특별전시와 상설전시를 진행 중입니다. 이런 박물관 주제와 걸맞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한국 현대사를 품고 있는데요.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는 이 건물은 6ㆍ25전쟁 이후 USOM(미 대외원조처)의 원조로 1961년에 미 대사관과 쌍둥이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그 후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국가재건최고회의'건물로 쓰였습니다. 이후 1963년 경제기획원과 1968년 문화공보부를 거쳐 2010년까지 이 건물은 '문화체육관광부' 청사로 사용됐습니다. 이 후 2012년 이 건물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현재까지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1950 흥남, 그 해 겨울'이라는 주제로 2월 28일까지 특별기획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특별기획전 '1950 흥남, 그해 겨울'
특별기획전에서는 흥남철수작전 이전에 진행된 '장진호'전투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장진호 전투는 11월에 중공군이 2차 공세를 감행하자 함경도에 있던 미 해병 1사단이 중공군 9병 단의 포위망을 뚫고 장진호에서 탈출했던 전투입니다. 이후 1950년 12월 15일부터 23일까지 흥남철수작전이 진행됩니다. 흥남철수작전은 10만 명이 넘는 병력과 17,500대의 각종 차량, 35만 톤의 물자를 함정으로 완전하게 철수시켰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한국군 지휘관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남행을 결심한 피란민 98,000명까지 포함돼 미군과 국군 피란민 모두를 안전하게 남한으로 이송시킬 수 있었습니다.
- 크리스마스의 기적
여기서 우리가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았듯이 피란민을 가득 채운 배는 '메러디스 빅토리'호입니다. 이 배는 원래 화물선으로 원래 승선정원은 약 60명이었습니다. 이 배의 선장 라루는 군수물자를 포기하고 가능한 한 많은 피란민을 태우라고 지시했고, 22일 저녁에 시작된 피란민 승선은 23일 오전까지 계속돼 약 14,000명의 피란민을 태워 26일 거제에 도착합니다. 사람들은 이 항해를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부르며 2004년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됩니다.
<한봉학과 관련된 사진 및 문서들>
- 기적을 가능하게 한 인물, 한봉학과 포니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피란민을 태울 수 있게 한 것은 '한봉학'과 '포니'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봉학(1922~2007)은 당시 미 10군단의 고문관으로서 미 10군단 사령관인 알몬드 소장에게 민간인 철수를 설득한 인물입니다. 현봉학은 흥남부두를 가득 메운 피란민을 보면서 남겨진 주민들에 대한 중공군의 박해를 걱정했습니다. 이에 그는 피란민 구출에 나섰고 이런 현봉학의 모습을 본 미 10군단의 참모부장이자 탑재참모인 포니가 합세해 피란민을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현봉학과 포니가 주고받은 편지들>
- 굳세어라 금순아, 그리고 국제시장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이 노래는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의 노랫말입니다. 노랫말에 나오는 국제시장은 흥남에서 탈출한 피란민이 가득 모여들었는데요. 이 국제시장에서 피란민들은 일터를 잡고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영도다리는 북에서 내려온 피란민으로 가득 찼는데요. 피란민은 헤어질 때 '부산의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부산 영도다리는 가족을 찾는 사람과 벽보가 많았습니다. 현재 영도다리 인근에 점집들이 가득 들어차게 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피란민의 행렬>
- 흥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흥남은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을 통해 국군과 미군이 밀려 남으로 탈출해야 했습니다. 그 후 크고 작은 전투가 지속돼 현재의 휴전선을 가지고 '정전'이 아닌 '휴전' 상태인 대한민국과 북한. 흥남은 우리에게 전쟁이 일어나면 민간인 또한 큰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르네상스 시기 네덜란드의 학자 에라스뮈스는 '경험하지 못한 자에게 전쟁은 매력적으로 보인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전쟁이 없는 평화, 그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탄탄한 안보가 필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