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본문이 있는 시편 119편은 성경의 모든 장과 편들 중 가장 긴 절이 있는 것으로 특히 하나님의 백성된 자가 어느 정도까지, 어떻게까지, 어디까지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인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으로 인해 고난 당하는 것까지 유익이라 고백하고 있고, 천천 금은보다 더 좋다고까지 증거하고 있으며, 저 또한 그것이 어떤 마음이고 어떤 고백인지를 조금은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저 부터도 어떤 문제와 위기들이 있을 때 주로 기도하고 찬미하곤 하고, 실상 그러한 기도나 찬미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말씀과 별개인 기도나 찬미는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말씀을 벗어난다면 그 어떤 기도나 찬송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열납이 안 되고 아예 그런 기도나 찬양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것이지만 그러면서도 어쨌든 그래도 말씀을 그 자체로 그대로 가까이하고 갈망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직접적인 것이며 원론적인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기에 가장 우선적이고 집중적인 면에 있어서는 말씀의 자리로 나아가는 경우들이 많은 것인데..
물론 당장이라도 뭔가 특별한 것을 말씀대로 작정하고, 대단한 것을 말씀 그대로 돌이키며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더할 나위 없이 가장 생생하고 강력한 것일 수는 있겠으나 사실상 그러한 어려움들의 때에는 대체로 마음이 분산되곤 하고, 여러 모로 분주한 경우들이 많기에 실제로 그렇게 실행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며, 사실 그러한 때에는 시간이나 여유도 없고, 아예 그와 비슷하게 할 수 있는 겨를조차도 없는 것이기에 무조건이다시피 만사 제쳐두고 기도를 겸하고 찬미를 겸하곤 하면서 시편이나 사도행전 등의 말씀들을, 아니면 구약이나 신약 성경의 처음부터 읽기 시작하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적지 않은 경우 잠시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내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이 아닌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한 후 그렇게 단지 말씀을 읽기 시작했을 뿐이고, 인간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한 게 없으며, 게다가 결코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일 뿐 아니라 내 지경에 많은 일들 가운데 어떤 영향들이 일어나는 것을 깨달으며 누리곤 하는 것이고, 심지어는 힘든 문제들 그 자체나 아니면 그 도구나 통로가 된 사람들, 더 나아가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마치 지구 반대편에라도 영향이 미치는 듯 크고 작은 일들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되거나 보게 되거나 경험하게 되거나, 또는 후에라도 발견하게 되고 분별하게 되며 누리게 되곤 한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사실상 그러한 모든 일들마다 크고 작은 하늘의 신령한 힘과 역사들에 속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조금만 따지고 봐도 그러한 일들 하나하나마다 생각 이상으로 마땅하고 당연한 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결코 복잡하거나 어려운 이유들일 수도 없는 것인데..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며,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그와 같은 모든 모양의 신령한 힘과 역사들의 실제와 경험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시기 때문인 것이고, 게다가 그와 같은 하늘의 힘들, 진정 일종의 구원의 일들을 위해 그 위치와 역할 상 창세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그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또한 직접적, 현실적 측면에서의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실제와 경험들, 무엇보다 그 속에서의 일반 은총이든 특별 은총이든 간에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모든 일들에 있어서 단 한 번도, 단 한 시도 예외 없이 직결될 수밖에 없는 구주 예수님,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은 모든 구원의 일들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인 것으로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하나님으로 인한 모든 모양의 신령한 힘과 역사들에 있어, 근원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들에 있어 합당하고 또 합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시편119:71~7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9월 19일(화)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