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424
■ 제2부 장강의 영웅들
제7권 영웅의 후예들
제 10장 필(邲)에서 크게 이기다 (6)
자신이 말한 바대로 초장왕은 필(邲)의 전투 직후 진나라 군사들의 시체를 모두 거두어
경건한 마음으로 장사를 지내주었다. 친히 제문(祭文)을 짓고, 황하 강변에서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 후에 개선가를 부르며 영성으로 귀환했다.
중원의 최대 강국인 진(晉)나라를 격파함으로써 초장왕의 존재는 일약 중원의 제1인자로 부상하였다.
서양의 한 시인처럼.- 아침에 일어나보니 유명해졌다.는 식이었다.
초(楚)나라 수도 영성은 한동안 분주했다.
정양공(鄭襄公)은 물론 제, 노, 허, 진(陳)나라 등의 군주들이 연일 축하사절을 보내왔다.
초장왕(楚莊王)은 필의 전투에서 공을 세운 신하들에 대해 논공행상(論功行賞)을 실시했다.
많은 신하들이 상을 받는 가운데 누구에게 일등 공신이 돌아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었다.
관례상으로라면 그것은 영윤 손숙오(孫叔敖)의 몫이었다.그런데 초장왕은 서슴없이 일등 공신으로,
- 오삼(伍參)이라고 발표했다.
오삼(伍參)은 편장급에 해당하는 말장(末將)이었다. 아직 대부 반열에도 오르지 못한 보잘 것 없는
가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를 일등 공신으로 삼은 것은 이번 필(邲)의 전투가
오로지 오삼의 주장에 의해 치러졌기 때문이었다.
이때의 포상으로 오삼(伍參)은 일약 대부에 올랐으며 초장왕을 모시는 최측근이 되었다.
후일 초나라에서는 오거(伍擧), 오사(伍奢), 오상(伍尙), 오원(伍員, 오자서) 등이 활약하게 되는데,
이들은 모두 오삼의 후손들이다.논공행상이 끝나자 영윤 손숙오(孫叔敖)는 자신의 집에 앉아 탄식했다.
"진(晉)나라를 이긴 큰 공훈이 한낱 보잘것없는 오삼(伍參)에게로 돌아갔으니,
나는 그저 부끄럽기만 하구나."이때부터 손숙오(孫叔敖)는 우울병에 걸려 병석에 눕고 말았다.
얼마 후, 손숙오의 병세가 악화되었고, 그는 아들 손안(孫安)을 머리맡으로 불러 유언을 내렸다.
"내가 왕께 바치는 글을 남겼다. 너는 내가 죽거든 이 글을 왕께 갖다 바치되, 왕께서 너에게
벼슬을 내리더라도 결코 받아서는 안 된다.""왜 그렇습니까?"
"나는 너를 잘 안다. 너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보살필 만한 그릇이 못 된다.
외람되이 벼슬할 생각을 하지 말라.""그래도 왕께서 큰 고을을 내리시면 어찌합니까?"
"그것도 받지 마라. 정 사양할 수 없거든 침구(寢邱) 땅이나 달라고 하여라. 그 곳은 토질이 황폐하여
아무도 탐낼 사람이 없을 것이다. 침구 땅 정도라면 네가 오래도록 자손을 보존할 수 있으리라."
손숙오(孫叔敖)는 이런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손안(孫安)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유서를 들고 초장왕에게 가 바쳤다.
초장왕(楚莊王)은 손숙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슬퍼하며 유서를 읽기 시작했다.
신(臣)은 재능이 없으면서도 군왕의 은덕을 입어 영윤자리에 머문 지 수년이 지났습니다만,
아무 공을 세우지 못하고 이렇듯 세상을 뜨게 되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손안(孫安)은 신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입니다만, 워낙 불초해서 가히 벼슬을 맡을 만한 인재가
되지 못합니다. 대신 신의 조카 원빙(薳憑)이 약간 재능이 있기에 천거하오니 한 자리를 맡길 만합니다.
진(晉)나라는 진문공 때 천하 패권을 잡은 이후 대대로 백업(伯業)을 유지해온 대국입니다.
비록 이번에 우리에게 패하긴 했지만, 결코 가벼이 볼 상대가 아닙니다.
반면, 우리 초(楚)나라는 오랫동안 전쟁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백성과 군사들이 지칠 대로 지쳐 있습니다.
군사를 쉬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십시오.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착하다고 합니다.
왕께서는 이러한 신(臣)의 마음을 살펴주십시오.유서를 다 읽고 난 초장왕(楚莊王)은 탄식했다.
"손숙오(孫叔敖)는 죽으면서도 나라의 일을 근심하는구나. 과인이 복이 없어 이런 훌륭한 신하를
하늘에게 빼앗기는도다."초장왕(楚莊王)은 어가를 타고 손숙오의 집으로 갔다.
그는 손숙오의 시신이 담겨져 있는 관을 쓰다듬으며 통곡했다.따라갔던 신하들도 흐느껴 울었다.
손숙오(孫叔敖)의 장례가 끝나고 나서 초장왕은 조정의 요직을 개편했다.
공자 영제(嬰齊)를 영윤으로 삼고 손숙오가 천거한 원빙(薳憑)에게는 잠윤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손숙오의 아들 손안(孫安)에게는 공정(工正)벼슬을 주었다.
그러나 손안은 아버지로부터 벼슬을 받지 말라는 유언을 들었기 때문에 사양하며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슬며시 도성을 떠나 교외로 나가 밭을 갈며 살았다.
초장왕(楚莊王)은 손숙오를 아끼고 공경했었다.그가 죽은 후에도 늘 그리워했고,
그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제환공에게 관중이 있었고, 초성왕에게 투곡어토가 있었듯이,
나에게는 손숙오(孫叔敖)가 있도다. 나는 그것을 행복하게 여기노라.
손숙오가 살아 있을 당시, 초장왕(楚莊王)은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중얼거리곤 했었다.
이런 초장왕에게 손숙오의 죽음은 큰 슬픔이요 아픔이었다.
그런데 초장왕(楚莊王)은 손숙오의 죽음을 지나치게 아쉬워한 나머지 그 아들 손안(孫安)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손안이 도성을 떠났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425편에 계속
열국지[列國誌] 425
■ 2부 장강의 영웅들 (81)
제7권 영웅의 후예들
제 10장 필(邲)에서 크게 이기다 (7)
초(楚)나라 수도인 영성(郢城) 안에 난쟁이 하나가 살았다.성은 맹(孟). 그의 직업은 배우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우맹(優孟)'이라 불렀다.
우맹(優孟)은 키가 5척이 못 되지만 익살을 잘 부려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초장왕 또한 우맹을 자주 불러들여 그를 총애했다. 그가 궁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궁중에 웃음꽃이 피었다.어느 날, 우맹(優孟)이 교외에 나갔다가 우연히 나뭇짐을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손안(孫安)을 만났다. 우맹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초나라 최고 권력자였던 영윤 손숙오(孫叔敖)의 아들이 나뭇짐을 지고 있다니, 우맹(優孟)은
황급히 손을 모아 손안에게 인사했다."귀인께서는 어찌하여 이렇듯 고생하십니까?"
손안(孫安)이 탄식조로 대답했다."나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이 나라 영윤으로 계셨지만
아무것도 나에게 남긴 것이 없네. 그릇 하나 온전한 것이 없을 정도로 청렴한 분이셨지.
이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고 집안엔 남은 재산이 하나도 없는데,
내 어찌 지게를 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맹(優孟)은 한숨을 내쉬며 손안(孫安)을 위로했다.
"귀인은 낙심하지 마십시오. 언제고 왕께서 부르실 날이 있을 것입니다."
우맹(優孟)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생전에 손숙오(孫叔敖)가 입던 옷과 똑같은 의관을 한 벌 장만했다.
그 날부터 그는 손숙오(孫叔敖)가 살았을 적의 음성과 행동하던 몸짓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사흘 만에 우맹은 손숙오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똑같이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마침 궁중에 잔치가 있어 초장왕(楚莊王)이 우맹을 불러 연극을 하게 했다.
이때를 기다리고 있던 우맹(優孟)은 동료 배우 한 사람에게 일렀다.
"자네는 왕으로 분장하고 무대로 나가 손숙오(孫叔敖)를 그리워하는 행동을 취하게.
나는 손숙오로 분장하겠네."그러고는 상대 배우가 해야 할 행동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연극이 시작되었다.동료 배우가 초장왕으로 분장하고 무대로 나왔다. 그는 자리에 앉아 손숙오를
생각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잠시후, 우맹(優孟)이 손숙오(孫叔敖)로 분장하고 무대위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 걸음걸이나 행동이 어찌나 진짜 손숙오와 똑같은지 그를 보고 있던 사람들은 다 깜짝 놀랐다.
그런 가운데 연극은 계속되었다.무대 위의 가짜 초장왕(楚莊王)이 손숙오로 분장한 우맹(優孟)을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부르짖듯 외쳤다.- 숙오는 별고 없었는가.
내가 요즘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도다. 경(卿)은 언제까지 내 곁에 머물며 나를 도우라.
그러자 우맹(優孟)이 초장왕으로 분장한 배우를 향해 아뢰었다.
- 신은 진짜 손숙오(孫叔敖)가 아닙니다. 이것은 연극일 뿐이며,
신 우맹은 다만 손숙오로 분장했을 뿐입니다.
- 상관 없노라. 그동안 과인은 수없이 손숙오를 생각했건만 그를 볼 수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이제 숙오(叔敖)와 흡사하게 생긴 사람만 봐도 마음에 위로가 되는구나. 우맹은 사양하지 말고
영윤자리에 취임하여라.우맹(優孟)이 가짜 초장왕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대답한다.
- 왕께서 하찮은 배우를 중용하시겠다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다만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 말해보라.- 신의 늙은 아내는 세상 물정에 능통합니다.
신은 잠시 집으로 돌아가 이 일을 늙은 아내와 의논한 후 확실한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우맹(優孟)은 무대에서 퇴장했다가 잠시 후 다시 무대 위로 등장했다.가짜 초장왕이 물었다.
- 아내와 의논했는가?
- 그렇습니다. 신이 집에 가서 상의했더니 늙은 아내가 말하기를 벼슬살이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 어째서 벼슬살이를 하지 말라고 하던가?
- 신의 아내는 이런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신이 이 자리에서 그 노래를 불러보겠습니다.
우맹(優孟)은 목청을 뽑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탐욕한 관리는 온갖 하지 못할 짓을 다 저지르지만
청렴한 관리는 오로지 자신 할 일 외에는 하지 않네.탐욕한 관리의 하지 못할 짓이란
자손을 위해 돈을 긁어 모으는 일일세.청렴한 관리가 하는 일은 높고 깨끗해서
그 자손은 헐벗고 굶주리네.그대는 초나라 영윤 손숙오(孫叔敖)를 보지 못했는가
그는 생전에 재산 한 푼 모으지 않았네.그가 죽자 집안은 망하고그 자손은 밥을 빌어먹으며
지게질로 살아가네.그대에게 권하노니 손숙오를 본받지 마라
왕은 지난날 그의 공로를 까맣게 잊었도다.-
연극을 보고 있는 동안 초장왕(楚莊王)은 내내 죽은 손숙오가 살아온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우맹(優孟)이 노래를 마쳤을 때 초장왕은 불현듯 자신이 손숙오의 아들 손안(孫安)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아, 내가 손숙오(孫叔敖)에게 몹쓸 짓을 했구나.'
그는 우맹을 불러 물었다."너는 손숙오의 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있느냐?"
"노래의 내용대로 입니다. 산에 들어가 나뭇짐을 해다가 시장에 내다 팔고 있습니다."
초장왕(楚莊王)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내가 어찌 손숙오의 공로를 잊을 리 있으리오. 우맹아. 그의 아들을 내게 데리고 오라!"
다음날, 우맹(優孟)은 교외로 나가 손안을 데리고 궁으로 들어왔다.
손안(孫安)은 해진 옷을 입고 구멍 뚫린 짚신을 신은 채 초장왕 앞에 섰다.
초장왕은 차마 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그대의 고생이 어찌 이리도 심한가?"
우맹(優孟)이 손안(孫安) 대신 대답했다.
"어찌 곤궁하지 않겠습니까? 손숙오는 청렴하고 어진 재상이었습니다.""전날 손안(孫安)은
벼슬을 사양했다. 벼슬이 싫다면 평생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큰 고을을 식읍으로 내려주겠다."
손안(孫安)이 읍하며 대답했다."왕께서 선친의 조그만 공로를 생각하시어 신에게 의식주를
내리시려거든 침구(寢邱) 땅을 내려주십시오. 신은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초장왕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침구(寢邱)는 땅이 척박하고 보잘 것 없는 곳이다. 그대가 그 곳에 간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선친의 유언이 그러합니다. 신은 침구(寢邱)가 아니면 받지 않겠습니다."
초장왕(楚莊王)은 어쩔 수 없이 황폐하기 이를 데 없는 침구 땅을 내려주었다.
그 후 초나라는 수없이 권세 있는 대부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져갔지만
아무도 토질이 척박한 침구(寢邱) 땅을 탐내지 않았다.
이로써 손숙오(孫叔敖)의 후손은 대대로 침구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는 온전히 손숙오의 선견지명(先見之明)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426편에 계속